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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FM 단편] 어둠의 습격

2004.12.29 10:39

Harzpid 조회 수:247

  더럽혀진 전장.

  피는 강이며, 시체는 산이다. 그리고, 그 전장을 짓밟고 뒤로하는 군대가 서있었다.

  검은, 그렇기에 백골이라 부를 수 없는 두개골은 그 자신과 같은 검은 색의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려 했으며, 이 수많은 시체의 행진은 그 상징 아래 일사불란하게 행군하고 있었다.

  그 앞을 막아선, 저 머나먼 남방에서 올라온 강철의 군단은 이 대군과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면하게 되는 진(陣)과 진의 한쪽에서, 검은 갑옷의 기사는 조용히 말했다.

「…그대의 사령술은 여전하겠지.」

  이 허공을 향한 부름은, 곧 허공에서 반환되어 돌아온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너의 딱딱한 칼질 만큼이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나왔으면 싶군.」

  그 이야기에, 어딘가 즐거움을 표방하는 기묘한 웃음성을 허공으로 울리며 다시 한번 돌아온다.

「나는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하지. 그 허약한 자들이 외치는 공포라는 거 말이야. 그것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날 뿐.」

  어딘가가 광적(狂的)인 대사였고, 그 기사 역시 광적이라 느꼈으나,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정신을 모은다. 그리고 이 흑갑의 기사는 손을 펴, 어둠과의 맹세로 얻은 힘으로 하나의 존재를 불러내었다.

  언제나 광채를 발하는 어둠의 꽃. 그 빛을 다루는 그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 듯, 살아있는 자를 죽음으로, 죽어있는 자를 살육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써 그가 애용하는 것이리라.

  그 명멸(明滅)하는 그림자는 이 진지를 연신 돌며 연신 신호를 보낸다.

  이에 후드 그 자체의 모습을 가진 안개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마력으로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령의 힘을 일깨우고, 전장을 연신 휘돌며 소리쳤다.

  그 그림자들은 이미 역할을 다한 채, 그들을 거두어 갈 신에게로 돌아간 상태였다.

「죽음을 역행하는 하나의 법에 이끌렸으니, 모두 일어나라! 저 어두운 스틱스의 강을 건너 되돌아온 자들이여! 레테의 강물을 마시어도 잃지 않을, 삶에의 증오를 얻은 자들이여! 그 살육의 갈망을 풀 수 있도록 은총해주신 지휘관께서 선두에 서실 것이다. 모두 뒤를 따르라! 이제 곧 펼쳐지는 모든 생명을 죽이며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진군하라!!!

  안개의 외침은 안개 낀 심야의 진지에서 무엇보다도 확실히 울려퍼졌다.

「이제 다시 한번 시작되는 건가.」

  그의 옆으로 시체들이 행군한다.

  너무나 오래되어 뼈만이 남은 존재, 그 스스로가 썩어 다시 새로운 썩을 거리가 나오는 존재, 땅에 숨었어야 했으나 어둠의 힘으로 날개를 부여받아 날아오르는 존재, 마법으로 늑대요, 곰으로 변해버린 저주 받은 인간들이었던 자들, 도시의 더러운 한켠에서 인간을 죽여온 병해충, 안개의 기사들, 검은 해골의 방패들, 아이바를 따르는 검은 기사단들.

  그리고 이곳에 앉아 이 행군을 바라보는 한 인간이 있었다.

  그 모습은 분명한 인간이었다. 사령─언데드의 호칭이 붙을 수 없는, 북방의 군세에 포함될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자네는 여기서 무엇하는겐가. "살아있는" 자여.」
「흐음, 죽음의 군주(Lord of Death)인가.」

  그는 그 말을 한 이후로, 검대(劍帶)를 허리춤에 멜 생각도 없다는 듯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침묵의 시간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그것을 부순 것은 이 죽음의 군주가 무언가를 기억해냈다는 듯한 어조의 말이었다.

「흐음… 그래, "파멸에의 운명(Doom)"이 다가오는 자들의 심판자! 그래, 그게 자네였군.」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이 군주의 모습은 어쩌면 저 빛의 존재 이상으로 순수함의 그것. 그렇게나 순수하기에, 그는 이 어두운 세력의 정점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이리라.

「좋아, 재미있어. 그래, 자네를 만난 기념으로 가벼운 선물 하나를 주지.」

  그리고 그가 꺼낸 것은 검은 주사위였다. 그 숫자를 표현하는 점에는 해골 문양이 박혀있었고, 그 해골의 눈가에는 기이한 광채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자네는 운명의 심판자였지. 운명의 심판자가 운명에 먹혀선 안될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이건 자네의 운명을 심판할 사신과의 대면에서, 자네의 운명을 와전할 수 있는 재미있는 주사위야.」

  주사위와 주사위를 잡은, 단지 뼈만이 남아있는 그 손을 바라보던 이 기사는, 다시 텅 비어버린 진지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 것에는 흥미 없다. 난 단지 내가 행해야 할 심판의 운명을 가진 자에게 검을 휘두를 뿐.」

  그리고 그가 저 멀리 펼쳐진 밤의 평원을 응시했다.

  습기 가득 찬 공기를 무시한 채, 인간들이 쏘아올린 불화살이 평원의 초목을 불태웠다. 그렇게 화염은 치솟았고 생과 사가 얽혀 살육의 무도회를 여는 것은 순식간. 그 전장을 바라보는 이 군주의 몸에서는 어두운 힘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찌되든 주사위는 남겨두겠네. 자네가 해야 할 운명의 심판이 어찌될지, 즐겁게 기대하고 있겠네.」

  그렇게 그 육신은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진다. 그 흩어진 장소 아래에 남겨진 것은 여전히 광채를 발하는 해골 문양의 주사위 뿐. 그렇게 흘러갈 뿐인 지루함의 시간 중에서도 저 머나먼 곳에서 살육은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지내온 생활의 일부. 어떠한 감흥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는 건가.」

  어느 시점에선가, 그는 그 한 마디만을 내뱉고는 자신의 모든 무장을 확인한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주사위만을 바라보았다. 가져갈 것인가, 가져가지 않을 것인가.

「나는 운명을 행하는 자, 운명의 장난감이 된다한들 상관 없겠지.」

  그렇게 그의 수갑(手鉀)으로 덮힌 손은 그 주사위를 집었다.

  그리고 그는 전장을 향하여 내달려나간다. 잠깐의 달림으로 도착한 전장은 학살의 장이었다. 시체는 인간을 죽이고, 그렇게 시체가 된 인간은 다시 시체가 되어 인간을 죽인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가 심판해야 할 상대는 무참히 돌진하고 있었다.

  "리노"라고 불리는 생물은 두터운 장갑을 전신에 둘렀고, 그 위에 올라타 흉기를 휘두르는 자 역시 마찬가지의 갑옷으로 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손상되지 않을 것 같은 그 갑옷째로 적에게 돌진하는 방식의 공격. 리노라는 생물의 전형적인 공격 방식에 인간이 올라타 그 공격을 보충함으로써 강인한 병기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리라.

「너의 검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의 운명이 어디서 끝날지 아는가.」

  그리고 그를 향해 휘둘러지는 선공.

  "카앙"하는 강철과 강철이 부딫히는 소리는 서로에 대한 적의의 불꽃에 울린다. 갑옷 속에 감춰진 피판자(被判者)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적의 속에 묻어나는 맹공에 대한 두려움을, 이 심판의 기사는 표정보다 더욱 뚜렷히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너의 운명에 대한 심판이다.」

  이에 상대방은 어느샌가 벌어진 거리를 다시 좁히며 리노의 힘을 극대화 시키고 있었다. 활성화된 근육은 더욱 더 빠른 속도를 부여하였고, 빠른 속도는 곧 더 강력한 충격으로 이어지는 것. 그 최적화된 돌진 공격에 그 역시 허공으로 치솟고 바닥을 구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검을 바닥에 꽂고 이에 지탱하여 일어난다. 방금의 충격으로 손상된 몸으로는, 이제 다시 한번 들어올 공격에 그대로 목숨을 잃어야 할 상황. 저 돌격자(Rider)는 다시 한번 그를 밀어붙이고 짓밟을 준비를 마치고 달리려 했다.

「너의 작은 악은 어두운 밤의 무리들을 위한 먹잇감이 될 것이리라.」
「까악-!」

  그리고 까마귀가 날아온다. 그것의 이름은 크릴 크로우. 사신의 도래를 알린다는 이빨 달린 까마귀가 이곳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너와 나, 둘 중 하나의 죽음이 행해지리니.」

  그리고 들어지는 주사위.

  사신과의 조우에서 모든 것을 걸고 도박할 수 있다는 데스다이스가 저 크릴 크로우처럼 허공에서 춤춘다. 나올 수 있는 숫자는 여섯. 셋은 자신의 파멸을 의미하고, 또 다른 셋은 상대의 파멸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사위가 허공을 부유하는 사이, 양자는 서로를 향하여 돌진했다. 주사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사신과 조우할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이 전쟁터의 광기에 몸을 맡긴 그대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나아갈 뿐이다.

  저 리노의 탑승자가 든 철퇴는 그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고, 그의 검 역시 그의 적이 가진 심장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주사위는 바닥에 떨어진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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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마스터즈의 팬픽입니다.

짤막하게 써봤는데 왠지 이거[...]

한때 잘 먹고 잘 썼던 둠나이트를 회상하며.

-By Harzpid

※블링크셰이드를 거두어간 신이 코인신이라는 것은 이곳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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