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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Black Rusian#Chapter02

2004.11.21 01:52

T.S Akai 조회 수:205

진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 입구로 눈을 돌렸다.그곳에는 기분 나쁘게 입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여자가 서있었다.그저 서있는것 뿐이였다.무수한 피를 흘리며, 말이다.

"쳇, 기분나빠!"

진연은 그저 입에서 그런소리를 했을뿐, 전혀 다른 말은 내뱉지 않았다.그것은 진연의 입에서 나온 진심의 목소리였다.

무섭냐고?

무섭지 않다.이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몇번이고 당해봤다.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적도 있고 사람을 죽인적도 있다.죽일뻔한 적도 있고 소중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눈 앞에서 똑똑히 보기도 했다.
그것이 이 아이의 최대의 무기, 감정의 기폭이 너무나도 좁기 때문에.공포 마저도 모른다!

진연은 그 여자의 얼굴에 손바닥을 대고선 팔에 힘을 주었다.그때였다.

쿠웅-!!

무거운 무언가가 돌바닥에 일직선으로 추락하는 소리, 하지만 그것은 진연의 손에서 들려왔다.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여자의 등 뒤, 진연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완전히 가린 그 여자의 등 뒤, 벽에서 그 소리가 일어났다.

하지만 진역이 타겟은 벽이 아니라, 이 여자였다!

"칫!영체는 안먹히는건가!?"

깨달음과 동시에 진연은 손을 떼고서 방으로 다시 들어와 가방을 주워들고서 여자를 노려봤다.여자는 여전히 기분나쁘게 얼굴을 일그러 뜨리고 있을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이젠 이 위험한곳을 나가야 한다── 진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빠져나올려고 할때, 방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여자를 보았다.

무섭지는 않아, 하지만 기분나쁘다.

그 역시 진연의 진심어린 기분이였다.빠져 나가려는 방문은 이미 그 여자가 가로막고 있다.그런다고 저 문을 비집고 나가기에는 내 기분이 심히 나쁘게 될것 같다.그것이 녀석의 진심이였다.그런다고 이 방문 말고, 다른 도망 루트가 없다는것은 아니다.

이곳은 2층, 그렇다면 문제 없다.


진연은 천천히 등 뒤를 돌아봤다.그곳에는 분명히 창문이 있었다.하지만 창문의 반쪽만 생각한다면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충분히 무리가 있는 공간이였다.

하지만 진연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안되면, 부숴버리면 돼!


진연은 여자의 눈을 노려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하지만 여자는 전혀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까와 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을뿐, 그 징그러운 면상은 전혀 변화 없다.
진연이 등이 방의 벽에 맞닿았을때, 진연은 다시 오른손의 손바닥을 그 여자를 향하게 했다.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자의 머리 위에있는 방문의 틀을 노리고.손바닥[팔]에서 그것을 쏘았다.


콰앙!!쿠르르르──

머리위 시멘트의 방문틀이 부서지자 마자 정문은 우르르 무너졌다.그와 동시에 진연은 그 오른손을 다시 창문에 맞대고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그러자 쨍그랑!하고 부숴지는 창문, 창문 틀 마저 그 반동에 구부러져, 창문은 더이상 무의미 하게 되어버렸다.

진연은 그 창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탔다.

그리 높진 않아, 이정도면 추락할수 있다!


쿠웅!


진연의 가방과 몸의 무게가 적당히 자란 잔디 위에 쿠웅!하고 내려앉고.주위를 둘러봤다.널널한 공가의 눈 앞에는 담장이, 등 뒤에는 건물 벽이.왼쪽에는 화단이.그리고 오른쪽에는 마당으로 가는듯한 코너가 있었다.그쪽을 향해 진연은 천천히 걸아나갔다.








"이곳이 사진마을인가..."

단정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한밤중 마을의 한 가운데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그 체격은 그리 큰편은 아니였다.키는 170을 조금 넘는 정도였고 덩치도 그리 크지 않다.살도 그리 쪄 보이지는 않고, 콧등 위에는 평범한 안경이 씌워져 있을 뿐이였다.

팔광탐정 아카이는 이내 이 마을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챘다.

"이레선 조사고 뭐고 할수 없잖아.분명히 의뢰비는 통장으로 입금 되었지만 끓어오르는 조사를 향해 끓어오르는 내 뇌세포는 어쩔수 없다고."

어느 유명한 탐정이 말한듯한 말을 다시 입에 담으며, 아카이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내 입에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아아, 여관도 없고, 뭐야!분명히 사람사는곳은 맞는데 사람이 없다니!이레가지고는 노숙을 할수 밖에 없...얼레?"

아카이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분명히 그의 귀에는 들렸다.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너무나도 서글픈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하지만 아카이의 눈 높이에서 여자아이는 물론, 인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거기에 인기척 마저 있을리가.........있다.


오른쪽 담장 밑을 내려다 보았다.얼핏 보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 그곳에는 붉은 반코트를 걸친 소녀가,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꼬마는 아카이가 보고있는것을 전혀 모르듯, 아니.아카이가 있다는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듯이 혼자서 흐느끼고 있었다.

"왜 우니?꼬마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쪼그려 앉아 파묻고 있던 얼굴을 훽 들어 아카이를 올려본다.그 커다랗고 말똥한 눈매에는 분명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머리카락은 대충 어깨를 조금 넘은 정도로 길려진 흑발에, 얼굴이 눈빛같이 너무나도 새하얘서 그런지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눈썹이 짙었다.

"오빠는 누구?"

소녀의 물음에 아카이는 감격할수 밖에 없었다.
오빠!몇년만에 들어보는 호칭이랑 말인가!!라는 감탄 따윈 대충 집어 치우고.

"엣흠, 오빠는 탐정이란다, 탐정!"
"탐정...?"
"그래!탐정!"

가슴을 쫙 펴고, 그 가슴에 주먹을 탕! 치며 당당한게 콧등을 세우는 아카이는, 이내──

"그런데 이상하네..우리나라에는 탐정제도따윈 없다고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라는 한마디에 콧등이 부러지고 어깨가 축 늘어나 불쌍한 표정으로 소녀를 보길 시작했다.그렇다.녀석은 역시 탐정놀이를 하고 있었다!라는건 어찌됐든.
소녀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귀여운 표정을 짓고서 아카이를 바라보자.

"아아!꼬마야.우리나라에는 탐정제도가 있.....진 않지만.그래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한다던가.머리가 좋아서 그런일을 떠맡아 하는 사람들이 있단다.난 그중 한사람이야.그러니까 탐정이라고 해도 나쁘진 않다─라는 거지."
"그런게 어딨어?"
"여기있지롱."

소녀의 물음에 아카이는 가볍게 박자를 맞춰두고선 혀를 내밀어 소녀에게 메롱, 을 하자.

"오빠, 추해."

라는 말은 다시 한번 더 아카이의 마음속 깊은 수해의 어느곳에 대단히 길다란 비수를 꽂아버렸다.분명히 이 말의 숨은 내포는 '나잇살 쳐먹어서 뭐하는 짓이냐'라는 뜻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혼자서도 잘하는 아카이였다.

"그래서, 왜 울고 있었니?"
"삶이 고달파서."
"아아, 그렇구나.역시 삶이란건 고달프....네?뭐라구요?"

다시 물어보는 물음에 소녀는 다시 한박자씩 늘려 '삶-이- 고-달-파-서-'라는 말따위를 진심으로 하고 있었다.에이, 설마.라는 아카이는 다시 물어봤지만 소녀는 역시 '고-달-차-서-'라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였다.

"저, 정말이냐.."
"정말이야."

어린녀석이 벌써 많은걸 알아버렸구나, 새삼 느껴버린 아카이였다.

"하아, 그래.알았어 알았어.꼬마야, 이름은?"
"혜빈.조혜빈이야."
"그래, 우리 귀여운 혜빈양.마을 어른들은 모두 어디갔어?"
"마을에 어른들은 없어."

아카이의 물음에, 소녀는 그저 아무렇게나 대답할 뿐이였다.

"어른들은 아침에만 잠시 왔다 가셔.모두들 군청에서 데모를 해야하거든.마을 어른들의 대부분은 군청 앞에서 텐트치고 그곳에서 지내."
"과연, 소문대로 그랬구나.그럼 다른 애들은?혜빈이 말고 다른 또래 애들은 없어?"
"다른 애들은 대체로 성당에서 지내.목사님이 굉장히 착하신 분이라서.어른들이 없을때에는 잘 돌봐주셔.뭐, 내 또래 애들은 얼마 없어서.다들 오빠 언니라거나 아줌마 아저씨들 뿐이고 말이야."

신나게 말한 소녀는 이내 곧 아이다운 미소를 지어보냈다.(이때 아카이는 혼이 빠져나가는것을 간신히 몸에 묶어두었다, 는 것을 잊지말자.)
그렇다면 현재, 이 밤에는 어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밤이 되면 아이들이 더 걱정되기 마련인데, 이 답답한 어른들은 어째서 아이들만 마을의 성당에 방치해 둔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아카이는 슬슬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선, 전혀 엉뚱한 질문을 했다.

"너 정말, 아까 삶이 고달퍼서 운거야?"
"아?그거?"

아카이의 물음에, 소녀는 바보를 올려다보듯 답했다.

"뻥이야.오빠 바보?순진하다고 해야하나.그런거에 쉽게 속는 타입이구나."

라는 대답에 아카이는 다시 어깨를 화악 늘어뜨리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꼬마녀석 따위에게 바보취급 받았다는 전제 하에 좌절을 하고 있었다.그런 그를 재밌다는 듯이 소녀는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길을 잃어버렸어.목사님이 밤에는 어두우니까 나가지 말렜는데.나와 버렸거든."
"그러니까 나오지 말레는데 왜 나오고 그러니."

아카이는 어느세 제자리로 돌아와 소녀를 다그치고 앉아 있었다.(확실한 표현으로는 놀고 앉아 있었다.)하지만 소녀는 아무레도 상관없다는 듯이 왜 나왔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요즘 마을이 밤만 되면 이상해져.안개가 껴서 앞이 잘 안보이고, 골목이 많다 보니 길도 자주 잃게 돼.그것보다 더 무서운건..."

소녀의 목소리가 음침하게 바뀌었을때, 아카이는 목구멍 뒤로 침을 삼켰다.

"분명히 마을에는 아무도 없는데...보지도 못한 어른들이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그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때.

등 뒤에서는 쿠웅-!!이라는 폭음과 함께 한바가지의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그것은 분명히 소년의 목소리였으며, 폭움과 함께 들렸다.등 뒤의 폐가에서!!

아카이가 등을 돌린다.하지만 그것은 새하얀 질풍!날라오는 바위 사위에서 날라온 그것은 한순간에 눈 앞의 소녀를 가로채고, 담장에 그 등을 조용히 기대었다.
하지만 아카이의 눈에는 그 한순간이 보였다.팔의 움직임도, 다리의 놀림도.눈빛의 시선도.왜냐하면 그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니까!

"뭐하는 짓이냐."

아카이는 천천히 소녀가 붙잡힌 담장 앞의 소년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소년은 분명히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오른팔로 소녀, 혜빈을 감싸 안고 있었지만.혜빈은 전혀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였다.그저 이 품에서 도망칠려는 그 발버둥이, 혜빈과 이 소년은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과, 서로 적의심을 품고 있다는것 정도는 눈으로 척 봐도 알수있다.

흐트러진 갈색의 머리,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단정하게 보인 머리카락이였다.안경은 콧등 밑까지 흘러내려와 거친 움직임을 했다는 증거를 남겼고, 새하얀 먼지와 바위가루가 묻은 검은 케쥬얼 정장은 초라하지만 예전의 세련됨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는 10대 후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 이진연은 자신의 왼손을 쫙 펴 손바닥을 아카이에게 향하면서 물었다.


"하나 물어보겠다, 네놈.인간이냐, 귀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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