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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Black Rusian#Chapter01

2004.11.14 18:24

T.S Akai 조회 수:198

"빌어먹을..."


해가 저가는 저녁이였다.노을은 나무에 의해 가리워져서 나뭇잎 사이로만 보일뿐, 전혀 '빛'이라는 이름으로써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흙길 위, 이진연 20세는 새카만 케쥬얼을 입고 왼쪽 어깨에는 스포츠 가방을 메고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런 산골이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잖아..."

아무도 없는데도 진연은 불평을 늘어놓는다.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않는──솔직히 말해서 쓸데있는 말이라도 하지 않는 진연이다──이진연이지만 이번만큼은 형의 부족한 자료 덕분에 화가났는지 혼자서 중얼거리기만 한다.

이번에는 은정씨를 놔두고 왔다.이번 일은 위험한 일이기에 그녀한테는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진연 나름대로의 배려일까나.이번 일은 실종 사건이니까.혹시라도 그녀마저 실종된다면 진연 역시 이성을 잃을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별은 싫었다.그것이 1주일이든 이틀이든 하루든 한시간이든.하지만 이번일은 자칫하면 그녀를 평생 못보게 될 상황이였기에, 그녀를 놔두고 왔다.
그녀 역시 가고싶다고 했지만, 진연은 그녀를 잘 타일러 주었다.

그녀는 옛날과는 달랐다.
진연의 메이드로 있을때에는 분명히 진연의 말에 무조건 복종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
메이드일때는 그저 메이드의 일을 수행하는 인형이였지만, 지금은 인형이 아니라 충분히 한사람의 인간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 이젠 인간이기에.진연은 그녀를 믿어 홀로 놔두면서도 놓고싶지 않는것이다.

"하아..."

겨울이 다가오는듯 했다.소년의 입김은 하얀색으로 변해 목구멍에서 흘러 나오고, 양손은 조금씩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언덕의 정상에 올라서 밑을 내려보니.


"다왔다..."

강을끼고 있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는 산골마을이 노을에 빛나고 있었다.







"하아아이이고오오..젊은이, 사진마을에는 무슨 일이길레 그려어?"
"아뇨, 사업상 잠시 일이 있어서요."

덜컹거리는 경운기를 타고있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경운기의 뒤, 짐을 싣는 곳에 앉아있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그렇게 물었다.남자는 친절하게 대답하고서는 다시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아아이이고오오..젊은이, 무우스은 일을 하아기일레에 그 무서운 마을에 가려고 하는겨?"

노인이 다시 묻자, 단정하게 안경을 낀 그 얼굴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탐정입니다."
"아아, 타암저엉..그거 나도 왕녀에는 했었지, 암."

노인의 근거없는 말을 대충 웃으며 넘기고선, 팔광탐정 아카이는 다시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는 머리가 저녁 산들바람에 약간 흔들리자, 그는 기분이 좋은듯눈을 감았다.







'기분나쁘군..."

진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전혀 사람이 살것같지 않는 풍경이였다.분명히 여기저기 폐가도 어느정도 보였지만, 누군각 사는듯한 집이 훨씬 더 많았다.하지만 마을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집 안에는 불이 켜져있고 마당에는 신발이 놓여져 있는데도,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외지인이 왔는데도.


부스럭 하는 진연의 발소리만이 들려온다.부스럭, 부스럭.해는 이미 졌다.밤이 다가오는 지금, 얼른 숙소부터 찾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하지만 이런 아무도 없는곳에서 무엇을...


부시럭.


진연의 발소리가 아니다.
분명히 다른곳 사람의 발소리다.진연은 귀를 세우며 주위를 둘러봤다.하지만 아무도 없다.그저 밤이 다가오는 마을이 있을 뿐이다.담장과 담장 사이의 골목과, 마당이 있는 초가집의 입구.그리고 멀리 보이는 논 밭과 저 멀리의 숲.산.그것 말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진연 도련님이시죠?"

갑자기, 등 뒤에서 그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연은 빠른 속도로 등 뒤로 눈길을 옮겼다.그곳에는 블랙&화이트의 여성정장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사무직 여성이 보였다.안경은 끼고있지 않았다.검은 머리가 어깨를 넘어 등까지 길려 있었다.이목구비는 뚜렷하고 눈매는 그리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쌍커풀이 있었다.

"아, 예."
"전 사진마을 사전 조사를 맡은 정승현이라 합니다."

여자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손을 건넸고, 진연은 그것을 받아 악수를 했다.

"그럼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등을 돌아 걸어가고 있었다.그 등뒤를 진연 역시, 아무것도 묻지않고 걸었다.

그 걷는 동안에, 인기척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기분탓일까.





"이곳이 숙소입니다."

승현이 기와집 대문 앞에 서서는 그렇게 말했다.고급스러운 기와가 놓여진 담장 너머로는 몇개의 기와지붕의 건물이 있었고, 마당에는 연못도 있는 그런 전통 여관같은 느낌이였다.

"이곳 사진마을은 온천으로도 어느정도 유명합니다.그러므로 이곳 저곳에 조그만해도 온천여관이 있고, 이 여관은 사진마을에서 최고의 시설과 넓이를 자랑하는 곳이지요.그럼..."

여자는 간단히 그렇게 소개하고 대문을 열어 진연을 안내했다.안에는 분명히 담장 너머로 보았던 그곳.여관의 안에서는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고, 분명히 인기척도 있었다.

"먼저 방은 특실로 예약 해두었습니다.그럼 드시죠."

진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서 그녀의 등 뒤를 따라 마루에 발을 올렸고, 여자는 복도를 따라 진연의 방을 안내해줬다.그곳에는 막다른 길, 구석에서 두번째에 있는 방이였다.

"이곳이 지연 도련님의 방입니다.저와 함께 온 다른 직원들은 모두 2층에 있으니 필요하시다면 불러주세요."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복도를 돌아 진연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진연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살풍경 했다.침대와 책상, 그리고 창문이 달랑 하나 달린 어두운 방.이것이 특실이라고 한다면 다른방이 어떻게 되먹었는지 모고싶다-, 라는건 진연의 진심어린 감상이였다.
진연은 할수없다는듯이 눈을 질긋 감고 가방을 내렸다.가방에는 별거 없으니까 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산을 올랐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 해야할것 이 있으니까...

온몸을 침대에 옮기고 핸드폰을 꺼내들어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들리고, 이내 전화를 받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귀여운 나의 동생.이제서야 전화했냐."
"헛소리하지마, 멍충아."

순간 진연의 이마에 힘줄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냐?"
"여관.얼떨결에 잡아버렸어."
"그으래?마을 사람들을 잘 반겨주던?"
"아니, 처음 들어왔을때는 인기척이 없었는데.사전 조사 온 사람이 나타나서 여관이 있는곳을 가르쳐 줬어."
"뭐시랔?"
"그러니까..정승훈이라고 했나?우리 회사 사람이라던데.사전조사 왔었다던데.다른 동료들도 이 여관이 있는듯 싶고..."
"........"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 진연의 형인 격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왜그래?멍충이?"
"이진연, 장난치지 마라."

장난끼 어린 형의 목소리는, 순간 진지해져 있었다.

"왜그래?"
"이...."

진연은 모르겠다는 듯이 묻자, 격인은 소리치며 말했다.

"바보자식!!목숨이 아까우면 거기서 당장 나와!!정승훈이라고!?다른 동료라고!?난 그런 녀석들 보낸적 없어!!거기다가──"

격인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잡음이 들려온건 기분탓일까.

"정승훈이라는 직원, 얼마전에 사전답사 보냈다가 우리 회사로 시체가 되어 돌아왔ㄷ....!!!!!"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잡음이 뇌를 지배하고, 진연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천장의 전등이,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다.기괴하게 비틀린 그 전등에서──


피가 새어져 흘러나왔다.



똑, 똑,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그 피는 이내 나무마루를 물들였고.



그것을 불러냈다.




하지만, 진연이 눈치 챘을때는 이미 늦은 후.

열려진 방문 밖에는.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채 아무런 표정도 없는 여자.─정승훈─이라는 여성이 입가를 일그러 뜨리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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