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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05 초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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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리겔은 잘못 들었다는듯이 되물었다. 다시 들을 일 없다고 생각한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다.
"자네, 확실히 다르군. 강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라. 깊다, 라고 하면 맞으려나?"
카미루가 말했다. 다만 평소의 상냥하고 부끄러워하던 카미루도, 미즈루의 일로 분노하던 카미루도 아닌 미소로.
"자네, 이름이 무어라고 하나?"
카미루가 리겔에게 물어왔다.
"너, 카미루가 아니로군."
리겔의 말에 카미루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말했잖나. 나는 코야마가의 초대 당주, 코야마 타쿠미라고. 그리고, 이름이 뭐라고 물었는데."
"...리겔."
"그래. 다시한번 반갑네, 리겔. 바깥에서 이 아이, 카미루와 동조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장소가 이 안이라서 쉽게 의사표출을 할 수 있는거지."
리겔은 생각했다. 이형의 공간. 동조, 의사표출.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영혼이... 깃든건가?"
"아니. 비슷하지만 틀려. 영혼이 아닌 본인 그 자신이거든. 나는 이 혈해의 '공간' 안에선 죽지않는 방법을 만들어냈지. 거기에 형태는 중요하지 않거든. 나는 내 자신을 혈해의 '힘'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이 아이에게 준것이지."
즉, 힘을 대가로 몸을 얻었다는 것인가.
"그건 카미루씨가 원한것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카미루.
"뭐 거기에 내 정신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않았지만. 몸에 두가지의 정신이 깃들여 있다면 더 강한 정신이 발현되는건 당연하잖아?"
귀신에 씌이거나 정령등을 다루는 자들을 봐도 맞는 얘기이다. 사용자의 정신력이 강하지 않다면 그 힘을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몸을 조종당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카미루씨에게 몸의 주도권을 돌려줄 생각은?"
"일단 지금은 없지."
그렇군. 이라며 납득하는 리겔.
"그렇다면 그런 생각이 들게 해야겠군. 내 힘으론 다른 사람의 정신을 바꿔놓거나 할 수 없으니까."
리겔이 검, 염혈의 손잡이를 고쳐쥐었다. 등뒤의 ㄷ자형 구조물들도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거야!"
카미루, 의 몸을 지배한 타쿠미가 즐겁다는듯이 웃으며 소리쳤다.
"자네가 얼마나 강하기에, 내 후손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나의 힘을 원했는지 보고싶군!"
카미루가 검, 혈해를 높이 들어올렸다. 혈해는 증발하듯 사라지고, 공기가 달라졌다.
기체 분자 하나하나마저 리겔을 향해 살의를 들어내는듯한 기운.
'강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위험해. 그래도, 카미루씨를... 최대한 상처입히지 않고 쓰러트릴 수 있는 방향으로...'
리겔이 그렇게 생각하고 힘을 모았다. 염혈에선 피로 이루어진 붉은 날이 생겨나고 등 뒤엔 다섯쌍의 피의 날개가 펼쳐졌다. 달려가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가속을-넣기도 전에 멈춰졌다.
"?!"
발목을 붙잡은것은 바닥-피의 바다에서 올라온 젤과같은 '액체'. 마치 콘크리트로 고정시킨듯 단단하여 꼼짝도 하지않는다. 리겔은 당황하지않고 해결법을 생각하며 카미루를 노려보았다.
"시작신호같은거 필요없잖아? 아니, 애초에 있는게 이상한거라고, 그런거."
그대로 선 자세에서 손을 당겨, 손바닥을 앞쪽으로 지른다. 날아가는것은 붉은색 탄환. 굵은 창 같은 그것은 발이 묶인 리겔을 향해 한치의 빗나감 없이 향했다.
"칫."
적의 전력을 알지 못하기에, 피의 장벽으로 일차적 방어를 하고 뒤쪽에선 염혈을 세운다. 다행인지, 카미루의 공격은 리겔에게까지 닿지않고 소멸됐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리겔은 다리를 묶은 액체에 염혈을 찔러넣고, 베어버린다. 의외로 간단히 베어져 떨어져 버린다. 하지만 첫 공격은 시간벌기. 카미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리겔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며 달린다. 리겔이 그정도 속박은 간단히 풀어낼 거라고 생각하고 취한 행동이다. 리겔도 한발짝 뒤로 물러난 후 카미루를 추격한다.
카미루가 손을 들어올리자 리겔이 달려오는 자리를 따라 피의 바다가 튀어오른다. 리겔은, 달리기보단 날기를 선택해 수면에서 약간 뜬 상태로 카미루를 향해 간다. 양 팔을 벌린 카미루가 손을 앞쪽으로 모으자, 리겔의 양 옆에서 거대한 피의 벽이 나타나 그에게 덮쳐왔다.
쿠우우우웅.
커다란 파도가 절벽에 부딛히는듯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방에 피보라를 일으키며 벽은 수면으로 가라앉았다. 그 안에서,
"크아악!!!"
리겔의 외침과 함께 카미루에게 날아왔다. 카미루는 순식간에 몇미터를 이동하며 피하지만,
"날개?"
날아온 것은 다섯장의 피의 날개. 각각이 한자루 검과 같다. 그리고 뒤쪽에서 기척도 없이 리겔이 나타나 카미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온것은 수십, 수백가닥의 붉은 실. 하지만 한가닥, 한가닥의 강도는 강철의 사슬보다도 강하다.
"음?"
수많은 실이 카미루의 몸을 옭아맨다. 실이라지만 잘라버리기엔 너무나 강하고, 도망치려 한다면 몸이 실에의해 잘려나갈것이다.
'자. 붙잡는데까진 됐는데. 이제 어찌 하면 되려나.'
리겔은 카미루를 속박한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금 나와 카미루씨는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카미루씨에게 주도권을 넘겨줬으면 하는군."
리겔은 카미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검끝을 카미루 앞에 들이밀고 피의 날개 두장은 카미루의 목 아래를 한장은 등 뒤를 겨누고있다.
이제 됐겠지, 라며 리겔의 마음이 미즈루쪽으로 쏠리는데,

"하아? 자네는 바보인가?"
카미루의 한마디. 그리고 리겔의 발밑의 수면이 갑자기 솟아오른다. 순간 중심을 잃었지만 정확한 낙법(이라고 해도 공중에서 돈것이지만)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약간은 심한 상처를 각오하면서도 피의 날개로 카미루를 공격했다.
하지만 막혔다. 피의 날개와 카미루의 목, 등. 그 작은 틈새에 피의 막이 생기며 피의 날개가 베어버리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그 막을 부풀려, 몸을 감고있는 실들을 밀어냈다. 강철 사슬보다도 단단하고, 와이어보다도 날카로운 그것이지만, 표면이 매끄러운것 위에선 역시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벌려진 실의 사이로 카미루는 여유롭게 나왔다.
그리고 리겔이 미처 놀라기도 전, 카미루-타쿠미의 역습이 시작됐다. 수면에서 작은 방울들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 손톱정도 크기가 될까. 붉은 바다를 한층 더 왜곡시킬 정도로 빽빽한 방울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바늘과같이 변해서.
"뭐? 이런!"
리겔은 급하게 아래쪽을 향해 피의 장벽을 펼쳤지만 완전히 막진 못했다. 붉은 바늘들은 일부 리겔의 몸을 꿰뚫고, 일부는 그의 몸에 박혔다. 그에게 상처를 낸 바늘들은 증발하듯 사라졌고 다행히 장벽을 펼친 뒤의 공격들은 다 막혔다.
"아, 아직 다 끝난거 아니라고?"
카미루가 그렇게 말한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그것은 방금 전 하늘로 향해 날아간 바늘들의 무리. 붉은 궤적처럼 보이는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리겔을 향해 날아왔다. 리겔은 다시 그 쪽을 향해 피의 장벽을 펼쳤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붉은 레일건을 보는듯한 모습. 아니, 레일건 그 자체이다. 탄환이 피로된 바늘이라는것만 제외한다면.
단단한 리겔의 방어이지만, 이 피의 바다의 수면을 덮을 정도 숫자의 물방울들이 변한 바늘이다. 그 끊이지않는 공격에 피의 장벽도 뚫렸다.
"제길!!"
일부가 배에 박혔지만 제빨리 피의 날개를 앞쪽으로 향하여 나머지 공격들을 막았다.
"당황했나보군."
카미루의 목소리. 리겔이 곁눈질만으로 그쪽을 쳐다보자, 꽤나 떨어진 자리에서 카미루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낮은 자세에서 왼손을 허리춤에 대고 오른손은 그보다 앞에서, 무언가를 쥐고있는 모양을 했다.
마치-
카미루는 발도를 하듯 오른손을 앞으로 뽑아내고-상당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리겔은 느낄 수 있었다.
"제-기랄!!"
몸을 틀며 염혈을 카미루쪽을 향해 세로로 들었다. 그와 동시에 피의 날개로 취하고있던 방어는 약해지고, 일부 날개가 찢어지며 바늘들이 리겔의 등을 찔렀다. 게다가 카미루의, 아무것도 없던 행동이 바람을 타고 리겔에게 날아와 염혈의 날에 부딛치자 염혈이 거대한 피의 검기를 막고있는것이 보였다. 하지만, 리겔도 너무 급하게 방어행동을 취한지라,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아, 악."
염혈이 밀리며 튕겨나가자 피의 검기가 리겔의 몸을 베었다. 한번에 잘려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깊은 상처인건 분명하다. 거기다 하나하나는 작지만 수없이 받은 피의 바늘에 의한 공격. 짧은 순간에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왔다.
"크, 으아... "
살며시 신음소리를 내는 리겔.
하지만, 카미루의 공격은 끝나지 않는다. 손가락 끝으로 리겔을 가르키고, 그 끝에선 붉은 빛이 나가...는가 싶더니, 이미 리겔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아...?"
"간단해. 손을 든 것은 속임수. 애초에 공격은 자네 가슴팍에서 시작된것이라네."
털썩. 리겔이 떨어졌다.
검기에 베인 자리 한 가운데에 둥근 상처가 더 깊이 생겼다. 뼈에까지 닿았을지도 모른다.
'위험, 어떻게...'
리겔이 생각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카미루, 타쿠미는 그럴 틈마저 주지않는다. 리겔이 쓰러진 바닥으로부터, 송곳과 같이 날카로운 기둥이 솟아오른다.
"으아악!"
빠르게 몸을 굴려 피하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피했다.
분명 이것마저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그걸 써버리면...'
미즈루에게. 미즈루를 돕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성이라도 완전한 상태라면...!!!'
그러나 어느새, 공중엔 붉은색 공같은것이 여러개 떠 있었다. 그것들은 조금씩 부풀어올라,
"...!!!"
기뢰와같이 폭발한 그것들은, 작은 구형을 중심으로 사방에 기다란 피의 창을 들이고 있었다.
"......"
쿨럭, 리겔이 피를 토한다. 왼쪽 옆구리부터 등쪽. 오른쪽 어깨. 왼쪽 손바닥. 왼쪽 허벅지. 오른쪽 장딴지.
피의 창들이 깊숙히 박혔다. 귀 옆으로도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고 있다. 가슴이나 목에 박히지 않은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팔을, 염혈을 들어올리려 하지만-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들부들 떨며 팔꿈치를 굽히지만, 다시 떨군다. 그 반동으로 염혈도 떨어지고, 피의 날개들도 사라졌다.
"...끝인가."
카미루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리겔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손에서 혈해가 사라지자 공기부터 달라진 공간. 약간의 몸짓만으로 사방에서 덮쳐오는 공격. 애초에-이곳이 '코야마가의 가장 깊은 곳'이며, 상대가 '코야마가 초대 당주 코야마 타쿠미'라는 것부터.
이곳은 적진. 그것도 가장 강한 힘이 깃든 심층부이다. 아무리 리겔 자신이 강하다고 해도, 이건 상황이 다르다. 맹수의 왕이라고해도, 심해에서 싸운다고하면 절대 육식 물고기를 이길 수 없다. 주어진 조건 자체가 다르다. 이길 수 있는 수는 있었지만, 쓰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리겔의 몸을 꿰뚫고있던 피의 창들이 줄어들었다. 리겔은 몸의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린채 떨어졌다.
"......"
카미루가 차가운 눈으로 리겔을 바라본다. 그것만으로 초전도체라도 만들 수 있을것같은, 극한의 냉정함. 그것의 이름은 실망감이라고도 불린다.
카미루는 리겔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리겔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렸다.
"자네. 살아있나?"
"...으, 읏,"
리겔이 작은 신음소리를 낸다. 눈은 초점이 풀려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악..."
떨어지고서도 염혈을 주우려고 했던 리겔. 하지만 카미루는 눈치채고 폭발로 염혈을 날려버렸다.
"뭐 이렇게 움직일 정도면 아직 문제없겠군."
살짝 미소로 표정을 바꾸는 카미루. 하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변한다.
"실망이다."
카미루-타쿠미는 느린 속도로 말했다.
"내 후손이 나의 힘을 원하면서까지 이기려 했던 상대가 누군가 했더니. 아무리 이곳이 나를 위한 공간이라고 하지만, 너무 일방적이잖아?"
사실이다. 한번, 카미루를 속박했다고 해도 금방 풀려버렸다.
"하지만, 처음에 자네에게서 느꼈던 그 감각...분명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자네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거나,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던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카미루.
"그래서, 이번엔 이정도로 끝내겠네. 언젠가 자네와 나, 혹은 내 힘을 다루는 자가 다시 맞붙을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네. 이 아이, 카미루가 내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카미루-타쿠미의 표정이 약간은 풀어졌다. 하지만 역시 리겔에대한 실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땐,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겠네. 나를, 이 '혈해의 공간' 안에서지만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나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미소. 그리고 그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
리겔의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카미루는,
"리겔씨!!!"
쓰러진 리겔을 돌려 바로 눕혔다. 자신의 무릎에.
타쿠미의 정신에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지만, 정신이 잠들어있던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체이기에 몸에서 느낀 감각-시각과 청각도 모두 느끼고 인지하고 있었다.
"리겔씨...어쩜, 어떻게..."
어떻게 해야...당황하는 카미루. 하지만 치유같은건 할줄 모른다. 할 수 있는것이 없다.
"나, 나때문에...내가, 내가..."
아까 미즈루의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리겔이 미즈루를 어떻게 한것일 수 도 있지만, 둘의 모습을 봐선 그런 생각은 들지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개입이 있었다는 뜻.
그리고 아무리 그를 막을거라 각오를 했어도, 사랑했던 사람이 이렇게 너덜너덜하게 엉망으로 눈 앞에 있다면 제대로 사고를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리겔씨를..."
카미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이 리겔의 얼굴이 떨어지고, 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그의 의식을 깨웠다.
"카, 미루...씨..."
"리겔씨..."
하지만 리겔의 눈에 아직 초점은 돌아오지 않았다. 몸에도 전혀 힘이 들어가있지 않다.
"미즈루, 씨를..."
"하, 하지만 리겔씨가!"
"---,__--"
리겔이 무어라 말했지만 작아서 카미루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예? 뭐라고요?"
카미루는 귀를 리겔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리겔은 숨이 넘어갈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카미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했다. 그리고 타쿠미에의해 사라진 혈해를 다시 꺼내들었다. 자신의 피엔 코야마의 강한 마력이 깃들어있다. 그 마력을 리겔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분명 상처도...
물론 주변엔 혈해의 피의 바다. 마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액체들이 널려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은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것인지 카미루는 왼손으로 혈해의 날을 감쌌다.
상처와 함께 흐르는 붉은 혈액. 상처회복이 빠르기에 금방 멈출것이다. 카미루는 손을 리겔의 입으로 가져갔다.
주륵. 손바닥의 피는 리겔의 입 안으로 흐르고.
"으, 으, 코, 콜록."
기도로 잘못 들어간 것인가? 애초에 어떻게 삼키게 할 것인지부터 생각했어야했다.
'어떻게 하면...'
그리고 떠오른 방법. 자신의 입으로 넘겨주기. 그리고 카미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삼키게 할 수 있을까. 아니,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 아니, 그래도 어떻게...'
나름 복잡한 심정으로 카미루가 머리를 쥐어싸는 사이,
"──이름으로 해방."
리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웃,?!"
카미루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일어났다. 리겔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아니, 리겔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리겔의 왼쪽 볼엔 무언가의 문양이 그려졌다. 그와 함께 그에게서 퍼져나오고 있다. 엄청난 독기가. 저주가.
숨을 쉬는것만으로, 그가 숨쉬는 소리를 듣는것만으로, 보는것만으로, 곁에 있는것만으로도 그 독기와 저주에 삼켜질듯하다. 그 독기가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그 저주가 무엇을 원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리겔은 이런것을 몸 안에 담고있었다는 것인가. 하지만 동시에 리겔의 몸에 난 상처도 빠른 속도로 낫고있었다.
그리고, 리겔이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무감정하다랄까. 카미루쪽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보고있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더욱 먼 무언가. 이곳에 있지않은 무언가를.
"우욱..."
카미루가 그 저주에 구역질을 할듯이 허리를 굽히자, 리겔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아?!"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카미루를 본다.
"설마!"
왼쪽 볼에 손을 가져간다. 뜨겁다.
"설마, 무의식적으로..."
손을 떼었을땐 볼의 문양은 없어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끝나지 않을것 같던 독기와 저주도 멈추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고 잔류해있다.
"카미루씨, 괜찮나요?"
리겔이 카미루에게 다가가자, 카미루가 리겔을 보고 놀라더니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리, 겔씨...?"
"......"
카미루가 느낀것은 공포.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저런것'을 몸 안에 담고있었던 리겔이, 무섭게 느껴진 것이다.
"...미안합니다."
"리겔씨, 맞죠?"
"네. 방금거에 대해선...말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보단 지금은, 미즈루씨를..."
아, 하며 정신을 차리는 카미루. 리겔의 부상과 그 저주에 순간 정작 중요한 일을 잊을뻔했다.
"그렇죠... 빨리 가요."
리겔이 뻗은 손을 카미루가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둥글고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리겔과 카미루은 빠른 걸음으로 문의 밖, 코야마가로 갔다. 깊은 지하에서 어두운 돌계단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니.
"이건..."
집 안에 퍼진것은 죽음의 기운. 리겔이 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 사용인들이 쓰러져 있던 곳으로 가보니
"...숨이 끊어졌어."
이미 대부분 죽어있었다.
지금까지 삭의 밤에 있었던 사건들과 똑같은 상황. 잠들듯 쓰러져 조금씩 호흡이 흐트러지고, 이내 조용히 죽어버린다.
"리겔씨, 이건..."
"...데스입니다. 크윽. 성급했다. 그냥 잠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판단해버렸어."
물론 그들이 데스의 공격을 받은것을 알았다고 해도 리겔이 무언가 할 수 있는것은 없지만, 그래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리겔은 비난했다.
"데스."
"설마, 미즈루도?"
리겔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집안을 가득 삼킨 죽음의 기운 안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미즈루와, 데스를 찾기 위해서.
하지만, 얼마 갈 필요도 없었다.
현관을 열고 나가자-대문쪽에 미즈루가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하늘엔-
"여어. 만나서 반갑군, 리겔공. 이번에도 꼬박 한달만이로군."
잿빛의 존재. 머리칼도, 옷 색깔도, 등 뒤의 날개도. 무채색의 회색으로 칙칙하다. 그 두 눈만이-홍옥과같이 붉게 빛날뿐.
데스가, 거대한 낫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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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드입니다.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 17편입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시험기간에 기분이 좋다는게, 시험을 잘봤다든지 하는건 아니고요...
전부터 그리던 그림을 완성.
물론 제가 그리는 그림이 다 거기거 거기 수준이지만, 그래도 제 마음엔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17편도 완성하는군요.
...공부에 대해선 태클걸지 맙시다.

내용면으로, 리겔이 졌습니다. 그것도, 매우, 철저하게.
괜찮습니다. 리겔이니깐요.(←)

아무튼, 이정도라면 20편 내외.
많아도 25편 이내로 끝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n번째 세계-코야마가, 그때까지 잘부탁드립니다.

덧-오늘 1, 2편등 앞의 것들을 다시 살펴봤는데요
확실히 지금에 비하면 짧네요. 얼마나 짧냐면요, 많이 짧아요.(←)

아무튼,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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