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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01 초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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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이 일어났다.
피의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난 폭발은, 엄청난 질량의 피를 높은 해일처럼 일으켜 카미루에게 덮쳐왔다.
"무슨!"
카미루는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으며 대처한다. 앞쪽에서 오는 높은 파도를 피하기위해 피의 날개를 만들어 뒤쪽으로 날아올라 파도를 넘기위해 상승해갔다.
펑-다시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바로 카미루에게 덮쳐오던 파도의 중간에서. 폭발이 일어난 부분에서 피들이 날아와 카미루를 가격한다. 타격은 크지않으나 날아가는 중이던 카미루의 중심이 흔들렸다. 그리고, 높은 파도는 그대로 카미루에게 떨어졌다.
철썩-대량의 액체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거대한 파도는 수면으로 떨어져 피의 바다에 넓은 파문을 만들었다.
"푸핫!"
카미루가 고개를 내민다. 전신에 격통이 온다. 단순히 물을 끼얹은 정도이지만, 저정도의 질량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둔기의 타격보다 강하다.
"뭐, 뭐야 갑자기!"
카미루는 피의 바다 위로 올라온다. 타쿠미는 가만히 서서 웃으며 카미루를 바라볼 뿐. 여전히 사람을 위축시키는 날카롭고 매서운 시선이다.
펑-다시 피의 바다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이번엔 카미루의 발 밑. 카미루는 놀라며 피의 날개로 날아오르지만, 폭발이 일어난 수면에선-붉은 기둥같은것이 쫓아 올라온다. 기둥은 상승중 다시 여러개로 갈라져서 카미루를 추격한다. 갈라진 기둥은 다섯개의 채찍처럼 따라와, 카미루의 몸을 후려친다.
"크윽."
이를 갈며 혈해로 공격을 쳐내는 카미루. 하지만 채찍들은 끊어짐과 동시에 바늘과같이 형태가 바껴 카미루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아아악!"
피의 날개를 앞쪽으로 감싸 몸을 막지만,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팔과 다리같은 부분에 따끔따끔한 통증이 왔다. 하나하나는 크지않지만 이정도 수가 되니 타격도 컸다.
카미루는 지상-수면으로 내려왔다. 타쿠미는, 가만히 서 있다. 다르다. 무언가 다르다. 분명 타쿠미는 저 앞쪽에 보이지만, 그 이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지만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대해 생각해보기도 전, 다시 공간에 이변이 일어난다.
다시한번 발 밑에서 일어나는 폭발. 카미루는 재빠르게 날개를 펼쳐 이동한다. 수면에 가깝게, 거의 최고속력으로. 뒤쪽에선 카미루가 지나간 자취를 따라 연속해서 폭발이 일어난다. 커다란 폭발이 마지막으로 일어나고, 카미루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상태로 급강하하며 혈해를 타쿠미로 향해 참격.
"하아아아앗!!!"
기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타쿠미의 눈 앞에 와 혈해를 당기지만, 막힌다. 가로막고있는것은 피의 벽. 타쿠미의 발치에서 일어난 피들이 벽처럼 카미루의 혈해를 막아섰다.
"크으으..."
카미루는 팔에 힘을 준다. 특히 오른팔에 피의 밀도를 높혀 더욱 강하게 만들지만, 타쿠미 앞에선 아무런 효과가 없다.
"뭐..."
타쿠미가 입을 열고. 피의 벽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주먹과도 같은 그것은 카미루의 배를 강타, 카미루는 멀리 나가떨어졌다.
"얘기할것도 있으니까, 느긋이 하자고."
타쿠미가 말한다. 분명 정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런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마치 사방에서 말을 걸어오는것처럼.
"먼저. 내가 코야마가의 조상신 같은거라고 했는데-그거, 반정도밖에 맞지않아."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피의 바다에서 회오리바람-마치 용오름과 같이 붉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카미루에게로 달려왔다. 주변에 퍼지는 저기압의 바람만으로도 찢어질것처럼 강하다. 그런 소용돌이가-두개, 세개, 네개... 하나에라도 잘못 닿으면 확실히 몸이 찢어질것이다.
크기 역시 크다. 하늘로 날아오르자니, 끝없이 올라가있다. 수면 밑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망치는것은 소용없는 짓. 아마도-직접 무언가로 맞부딪쳐야할것이다. 하지만 맨몸으로는 어림도 없다. 자신과 유사한 육체. 하지만 파괴되어도 자신에게 피해는 없는.
유사혈체.
'하지만, 오른팔이...'
카미루의 오른팔은 잘렸다. 지금 있는 팔은 유사혈체를 응용하여 만들어놓은것. 카미루는 유사혈체를 한번에 하나씩밖에 만들 수 없기에 지금 몸체의 모양으로 만든다면 오른팔은 사라져버릴것이다.
그래도-
"해봐야겠지!"
혈해를 왼손으로 옮긴다. 오른팔이 붉게 변하고, 주륵 흘러 사라진다. 동시에 앞쪽에서 생겨나는 사람의 형상. 오른팔이 없는 또 하나의 카미루가, 왼손에 혈해를 들고 달려간다. 카미루의 유사혈체는 그대로 회오리의 하나로 몸을 날린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 안에서 퍼지는, 살점이 뜯겨나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그 소리는 곧 액체가 튀기는 소리로 바뀌고,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졌다.
'됐다!'
그리고 반동. 유사혈체는 자신의 힘이 담긴 피로 그 형태를 만들고, 정신을 공유하여 조종한다. 그것이 순식간에 파괴되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반동이 밀려온다. 카미루처럼 한번에 하나씩밖에 만들지 못하는데다, 이런 반동이 있으니 또 새로 하나를 만들려면 시간이 더 걸릴것이다. 아직 남아있는 소용돌이는 세개.

"나는 죽는게 두려웠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타쿠미의 목소리.
"겨우 이정도의 강대한 힘을 넣었는데. 겨우 모든 생명들의 정점에 섰다고 자신했는데."
무감정한 목소리는 더욱 카미루에게 날카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죽지 않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죽는것이 싫었지. 그 모든 것을 잃을테니까."
그러는 사이, 카미루는 유사혈체 하나를 더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소용돌이의 움직임을 관찰해...한번에 세개 모두에 피해를 줄 수 있도록...'
유사혈체가 다시 달려간다.
"적어도,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자와 싸워서 지는거라면, 죽어도 한이 없었을 테지만. 내가 살아있을땐 없었어. 그래서 난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지."
유사혈체는 달리며, 소용돌이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하며, 세개의 흐름을 이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지금!"
세개의 소용돌이가 카미루의 유사혈체로 달려들고, 서로 충돌한다.
"성공?!"
유사혈체가 터져버리고 소용돌이도 사라진다. 세개 모두. 거리와 위치, 타이밍을 완벽하게 조절한 결과였다.
"그리고."
타쿠미가 말을 잇는다. 카미루가 그에게 신경을 돌리는 순간, 소용돌이가 사라진 자리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뭐?"
날아온 것은 세개의 사슬. 그것들은 각각 카미루의 왼손과 양 발을 단단히 속박하고 허공에 그녀를 묶어놓았다.
"난, 이 혈해의 공간 안에선 죽지않는 힘을 얻었지."
타쿠미가 카미루의 눈 앞에 나타난다. 날개같은 것도 없는데, 공중에 떠서 카미루의 코 앞에서 눈을 마주치고있다.
"키츠는 강했지만 그것뿐이었어. 그녀의 광기는, 나하곤 상성이 맞지않았지. 스테너는, 츳. 그녀석은 키츠에 비하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녀석도 아니었어."
"무슨..."
카미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두번 연이은 유사혈체의 소멸로, 정신에 꽤나 타격이 크다.
"쉽게 말해서, 네 앞에 있는 이 코야마 타쿠미는, 수백년전에 살아있던 그 코야마 타쿠미 본인이라는거지."
타쿠미가 웃는다. 상대의 시선이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고, 날카롭께 찌르는 웃음. 타쿠미는 천천히 카미루에게 다가왔다.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자는, 강한가?"
"네가 신경슬 바 아니야."
카미루는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몸을 뒤틀지만, 오른팔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속박한 사슬들에서 벗어 날 수 없아.
"자신의 전력을 다 해도 이기기 힘들 정도의 적인가?"
---
"아니면, 다른 감정이 있기에 자신의 힘으로 싸우기 힘들다는 것인가?"
큭, 카미루가 이를 깨문다.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이야!!!"
카미루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하지만 사슬은 그녀의 몸을 풀어주지 않는다. 타쿠미는 그녀의 턱을 들어 자신의 얼굴 앞으로 당겨온다.
"그렇다면 빌려주지. 이 힘, 어디 소화시켜내 보라고."
그 웃음이 의미하는것. 심장부터 얼어붙게 만드는한 날카로운 칼날의 조소. 그리고, 타쿠미는 안개같이 사라졌다.
털썩.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슬이 사라지며 카미루는 바닥-피의 바다 위로 떨어졌다.

무언가-허망하다.
혈해의 공간을 통해 외부와 감각을 잇는다. 이곳으로 들어 온 지 3시간이 채 되지않았다.
리겔과 키스하고, 또 다른 존재에게 습격을 받고, 기억을 되찾고.
미즈루는 쓰러지고, 자신은 이 안으로 들어와 싸우고.
'하지만...'
고민해서는 힘들다. 나아갈 수 없다. 지금은 일단 리겔을 막자.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잘못되었다면-그땐 내가 다시 바로잡아주겠어, 카미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하지만 강대하지 않다. 힘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도 아닌 이것은, 안쪽에서 이물질처럼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할 뿐이다. 이것은 타쿠미가 이정도의 힘밖에 주지 않은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다루지 못해서일까...
카미루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전신에 덮쳐오는 통증과 피로감. 타쿠미가 중간중간 회복시켜주어서 상처는 없지만,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은 아무래도 무리가 덮쳐온다.
'쉬어야겠군...'
혈해의 공간과 이은 바깥의 감각에서 리겔의 성이나 데스라는 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느낄 수 있도록 혈해를 가지고 쉬어야했기에.
그리고 둥글고 무거운 문이 눈 앞에 나타났다. 드르륵 거리는 거친 소리와 함께 한참동안 문이 열렸다.
 


다행히 미즈루는 다음날 눈을 떴다.
"어디 이상한 점은 없어?" 라는 물음에, "응. 말짱해. 언니야말로...괜찮아?" 라며 되려 카미루를 걱정해주었다.
그 이상 자매 사이엔 말이 없었다. 카미루는 학교에 가고, 미즈루는 배웅해줄 뿐.
하지만 카미루와 미즈루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한가지.
이 일을 막아야 한다.

 

하늘.
성층권까지는 아니라도 대류권의 거의 끝트머리 정도의 높이의 하늘. 보통 사람이라면 비행기라도 타지 않는한 그런 곳에 갈 일은 없다. 또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외부에서의 그 공기를 직접 마실 일 역시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이 상황은 일반과는 매우 거리가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하늘에 거대한 성이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의 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다만 그것이 끝나가는 세계가 몸부림 침으로 인해 일어난 이상 현상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겔 역시 현재는 실내이지만, 문을 열기만 하면 대류권의 가장 꼭대기의 공기를 직접 마실 수 있다는 것은 특이를 넘어선 무언가 일 것이다.
리겔은 의자에 앉아있다. 왕좌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크고, 멋지게 장식된 의자이다. 다만, 그것이 있는 실내는 정 반대이다. 역시 멋진 방이긴 하다. 아니, 멋진 방이었을것이란 표현이 더 맞을것이다. 황폐라는 표현이면 될까. 폐허의 상태. 칠은 벗겨지고 벽은 부숴지고 카펫은 찢어졌으며 등들도 떨어져있다. 마치 귀족이나 왕실에 침입자가 들어 헤집고 지나간것처럼.
거기까지라고 하면 방의 모습 자체는 그다지 큰 이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파손된 방이 조금씩 원래 모습으로 고쳐지고 있다는것. 언뜻 봐선 알아 볼 수 없다. 무너진 벽같은 것은 모래나 먼지 알갱이 하나 정도 수준씩 제 자리로 가 붙는다. 떨어진 가구들은 분당 몇 센티미터 정도의 속도로 조금씩 제 자리로 이동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 방 뿐만이 아니다.
방의 바깥으로 나가 성을 이곳저곳을 보면, 역시 파손된 부분이 미세하게 복원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리겔이 하고 있는 일. 왕좌에 앉아, 성 전체와 자신의 영혼을 이은 뒤 인간의 상처가 자연히 치유되듯, 성이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자신의 몸이라면 웬만큼 심한 상처라도, 심지어 죽을 수준의 상처라도, 일주일이면 완전히 회복될테지만 성은 다르다. 질량부터가 압도적으로 다르다. 파손된 부위도 인간의 몸에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그런 것을 리겔은 자신과 연결하여 '치료' 하고있다. 성을 만든 것은 리겔 자신의 마력. 그것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것도 리겔 자신의 마력이기 때문.
오랜 시간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때로는 한번에 많이, 잘라내어 만든 요새. 염혈과 같이 자기 자신의 또다른 분신.
그것이 이 성이다.
"더디군."
리겔이 자신의 가슴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데스의 술법...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건가. 아니, 후유증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
리겔은 지난번 데스에 의해 마력과 기억을 봉인당했었다. 코야마 자매의 피를 빨아 봉인을 풀긴 했지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것은 아니다. 막혔던 수로가 갑자기 열리면 가둬져있던 물은 엄청난 수압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런걸 막기 위한 몸의 반사작용인가...라고 리겔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데스의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사라진지 겨우 이틀. 다음 삭의 밤까지는 아직 한달 가까운 시간이 남았지만, '그' 데스라면 안심할 수 없다. 애초에 이런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등장한 것은 이번 세계에서가 처음이다.
'적어도, 성만 완성됐다면...'
리겔은 입술을 깨물며 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겉모습만 봤을때, 코야마 자매. 카미루와 미즈루의 지난 한달간의 생활은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나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사람이 그들을 봤다면 경계했을것이 분명하다. 혹은 단순히 관찰력,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봐도 그들이 뭔가를 하고있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미루는 똑같이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오고, 미즈루는 놀러가거나 아르바이트를 가거나. 그런 일상인데, 코야마 자매는 언제나 자신들 주위에 마력을 흘려 주변을 경계했다. 카미루는 언제라도 혈해를 '공간'을 통해 꺼낼 수 있게, 혈해 없이도 싸울 수 있는 미즈루 역시. 혈해는 지난번 일 이후 다시 봉인해 놓지 않았다. 언제 리겔이나 데스가 나타나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지 모르기에.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의 초저녁. 코야마가의 응접실.
"한달. 오늘이 삭(朔)의 밤이야, 언니."
"응. 어머니, 아버지는 아직 오실 수 없다고 하셨고."
"우리끼리, 해결해야해."
항상 경계를 하고 다녔지만, 그대로 그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삭의 밤. 지금까지의 사건들도 대부분 삭의 밤에 일어났다. 그렇기에 오늘 밤.
단순히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의 감촉이 다르다랄까.
"나는 이제부터 지난번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중심으로 이 주변을 직접 둘러볼게."
"언니...역시 직접 나가는건 내가..."
카미루는 고개를 저었다.
"미즈루는 혈해의 공간에 들어가서 나를 백업해줘. 역시 이 일은...내가 직접 해결하고 싶어."
"...응."
미즈루는 카미루의 기분을 이해해 준것인지, 순순히 물러났다.
카미루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 개인의 방이 아닌, 코야마가 당주가 사용하는 집무실. 그리고 장농 안에 들어있는 것은 코야마가의 전통 의상. 카미루는 입고있던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은 후 그 옷을 꺼내 입었다. 속옷은 아래쪽만.
소매나 품이 넓은 옷이다. 정성스럽게 수 놓인 장식이나 바느질 선만 보아도, 고급 수제품이라는 느낌이 온다. 딱 보아도 활동용이 아닌, 예복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움직이는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걸 입고 격한 운동이나 싸움을 하는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카미루는 어렸을적 부터 이 옷을 입고 검술등을 익혔다. 그래서 전혀 문제 없음. 오히려 다리가 허전한 교복 치마쪽이 그녀에겐 더 불편한 것이다.
"언니..."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익숙함의 차이. 입고 움직이는데 별 차이가 없다면 좀더 편하고 부담 없는 옷, 이를테면 트레이닝복등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카미루가, 코야마의 당주가 이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것은 코야마가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여,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명.
"미즈루. 그럼, 다녀올게."
"조심해, 언니."
미즈루는 카미루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잠시간 그녀를 꼭 껴안았다.
카미루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예복을 입고 담장을 뛰어 넘어간다든지, 하는 짓은 할 수 없다. 적어도 대문을 넘어설때 까지는. 미즈루는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은 후에도 잠시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발걸음을 집 안으로 옮겼다.
향하는 곳은 코야마가의 지하. 돌계단으로 이어진 가장 깊은 곳. 지하 5층정도의 깊이에 있는 '혈해의 공간'.
하지만 그건 무슨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하 3층정도. 이미 위에서 내려오는 불빛 따위는 없는 곳. 미즈루가 다음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컥,"
그녀는 숨을 삼키며 벽을 짚었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든다. 두 팔로 버텨 겨우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꼴은 면했지만, 숨을 쉬기 힘들다. 심장이 죄어오는것 같다. 아무런 빛도 없고, 눅눅한 돌과 습기의 냄새. 자신이 헐떡대는 숨소리 외엔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미즈루가 쓰러졌다.

 

"?!"
리겔이 놀람에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성도 멈추었다. 그의 마력으로 조금씩 진행되던 성의 복구(전보다는 훨씬 속도가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멈추었다.
"우윽..."
지독하리만큼 짙고 짙고 짙은 피냄새. 리겔은 성의 복구를 하면서 동시에 데스의 추적도 함께 하고 있었기에 이 도시 전체에 성의 감각을 흩뿌려놓았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리겔도 역시 느낄 수 있다. 그 도시 어딘가에서 퍼져오는 피의 냄새.
물론 리겔이 피냄새에 약한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다고 할 정도. 일반인이라도 냄새'만' 맡는다면 역겨워져서, 심할 경우에도 구토나 하는 정도의 수준. 하지만 리겔이 이렇게까지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 녹아있는 수 많은 감정. 그 감정 안에는 기쁨이나 즐거움 따위는 전혀 없다.
슬픔, 절망, 증오, 원한, 괴로움, 질투, 시기, 욕망...
'수 많은 저주에도 견딜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내가, 이렇게 약했단 말인가. 겨우 이정도의 감정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에겐 그렇게 말하지만, 결코 '이정도'라고 치부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길고 긴 역사를 지나오며 수많은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들이 깃들어있는 피의 냄새. 그것은 이미 저주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리겔이 왕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볼 수 밖에 없군."
삭의 밤. 달도 뜨지 않은, 대류권에서 가장 높은 하늘.
리겔이 성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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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은 시험기간에 써야한다.

라는것이 기정사실이 되었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코드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5 입니다.
지난번 14편을 4월 16일에 업로드 했으니, 무려 2달도 더 지났군요.
...죄송합니다. 너무 놀았습니다.

...랄까 시험기간입니다. 아직 시작은 안했다만(7월 3일부터) 이렇게 소설이나 쓰고있군요...

동시에 집에서 컴퓨터가 자취를 감춘지도 1달이 넘었습니다. 이곳은 독서실이거든요.
역시 시험기간+독서실의 조건이 갖춰져야 소설이 써지는 모양입니다(←)

이번엔, 길고 길게 끌던 카미루와 타쿠미(및 기타)의 싸움이 끝났습니다.
이것에 대해선, 원래 더 내용도 많았고 어찌어찌 했는데 어째어째 해서 이렇게 짧고 허무하게 끝내버려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리고는 별로 진도도 안나갔네요. 분량도 전에비해서 적고...
어쨌든, 다시 스토리가 가속이 붙을 기미를 보이는군요.
이번 시험기간에 또 한번 열심히 써볼까 합니다!!
...공부해야하는데. 고삼이...

아무튼, 시험 이틀 앞두고 소설쓰고있지만 스스로 막장이 아니라 외치며 전혀 설득력 없는 코드코데코덱코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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