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A→B #→막간2

2008.06.27 19:23

빨탕 조회 수:204


짝.
눈꺼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참지못해 눈을 뜨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천국이 아닐까도 의심해 봤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눈에 보이는건 현실, 지금 제 눈에는 현실에 강림된 천국이 펼쳐져 있는거 같았습니다.
좋은 향기, 그와함께 느껴지는 땀냄새. 조심스레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 봅니다. 그리고 부비부비. 좀 더 격렬하게 해보고싶었지만 그녀가 잠에서 깰까 걱정되서 그렇게는 못하겠어, 저는 제 어깨를 안고있는 그녀의 팔을 조심조심 떼어내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저 세상 모르듯이 좋은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습니다. 어제밤 너무 무리해서 놀았나? 분명 그 담쟁이덩굴속 카페는 즐거웠지만 너무 밤늦게까지 놀았나 봅니다. 하랑이는 도저히 일어날거같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있을까? 어떤 풍경을 보고있을까? 알수없지만, 제 꿈을 꾸고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거에요.

“좋은 아침이야, 하랑아.”

하랑이의 뺨에 가벼운 모닝키스. 기척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풀고 잠들어 버립니다. 아으, 꽉 안아주고싶지만 자제해야겠죠?
주위는 언제나 다를바없는 제 방이였습니다. 우선은 벽시계를 보자… 아침 9시를 조금 넘은 시간. 학교가기는 아마도 이미 늦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랑이도 나도, 땡땡이는 하루이틀일도 아니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걸까… 생각하자면 꽤 먼 과거까지 생각해야되니 금방 그만두었습니다. 새로운 한 주의 월요일아침을 땡땡이로 보내다니 이것도 새로운 느낌?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밥… 브런치? 적어도 점심밥 정도는 하기위해서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냉장고도 열어보고, 수납장도 확인. 슬플정도로 빈약한 재료에 또다시 눈물을 흠칩니다. 어제 밤을 끝으로 재료들은 전부 써버렸나…… 사와야될것 같습니다.
우선은 세수하고, 양치질 하면서 PC의 전원을 누른후 어제밤까지 관리하던 블로그를 체크합니다. 자고 일어난사이에 답글이 몇갠가 더 달렸네, 나름 흡족해하며 양치질을 종료, 여름이면 즐겨입는 원피스를 걸쳐입고 지갑을 들었습니다.

“그럼, 다녀올게 하랑아.”

대답은 없습니다.
그저 아무말 없이 손을 흔들뿐. 전 그 모습에 뒷모습에 흡족해하며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습니다.



-
갑작스럽겠지만 이야기를 하자.
나 서혜지는 말하자면 우등생 같은거였습니다.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착한 아이였고, 초등학교 6년동안 반장 부반장은 빠짐없이 했습니다. 공부, 예능, 운동, 외모, 성격. 무엇하나 빠질거없는 완벽한 아이였고, 또래 아이들 어른들 모두가 부러워하며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음악학원, 영어학원, 기타 과목학원. 부모님이 시키는거라면 뭐든지 잔말말고 했었고, 거기에 불만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품을 이유도 없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아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때의 이야기였을 겁니다. 별다를거 없이 졸업하고 별다를거 없이 중학생이 된 저는 초등학생때와 다를바없는 생활을 하고있었습니다.
학년 톱에 들어가는 성적, 외모, 그리고 재력. 어느 누구나의 선망의 대상, 그와함께 시기와 질투의 대상. 알고있으면서도 모른척 해야되는 세계, 알고있으면서도 웃음이라는 가면을 써야되는 사회. 진심일까? 그렇지 않으면 거짓일까? 잘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 분명히 웃고있진 않았습니다.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매일, 부족할거 없는 천재가 일상생활이 되었고, 근처 남학생들에게 고백을 받는게 일상생활이 되었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부러워하면서도 혐오하기 시작하는 주위 친구들. 하지만 웃고있는 나.
나도 그런 나 자신이 싫었어.

…그런 와중이였을까? 그녀를 만난건 입학한지 얼마 되지않았을때입니다. 제가 다녔던 여중학교는 언덕위에 지어져 있었고, 학교를 가기위해서는 숲이 우거져있는 오르막길을 오를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은 포장되어있지만, 울타리 바깥의 숲은 굉장히 울창해 언뜻보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학교가는게 너무 싫증났었던 날이였던 것 같습니다. 이상기온덕분에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전부 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저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울타리 옆으로 나있는 샛길로 들어가 나무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왠지 쉴수있을거같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이곳이라면 아무도 찾아낼수 없을테고, 편안히 쉴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가면을 써야되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들도 가면을 쓰고 날 대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만 없어지면 되니까.
그렇게 어느정도 나무가 우거진 언덕길을 올랐을까, 코를 찌르는 매캐한 향이 났습니다. 이 향은 기억에 있어… 길가에서 아저씨들이 피던 담배연기. 설마 이런 깊은 산속에 아저씨들이 숨어있는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저 멀리 나무를 방패삼아 빼곰 앞을 내다보자… 그곳에는 우리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불량학생, 또는 비행 청소년. 그녀들은 흙길에 쭈그려앉아 담배를 피고있었습니다. 새하얀 손에 쥐어진 연기나는 막대사탕, 조그만한 입술사이로 피어오르는 새하얀 연기. 그녀들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요하랑과의 첫만남이였습니다.

“야.”

낯선 목소리.
등 뒤로 돌아보자 한번도 보지못했던 여학생이 내 어깨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놀란 토끼눈, 두근거리는 가슴. 훔쳐보던게 들켰다. 저는 불안한 마음으로 등 뒤에있던 소녀와 저 멀리 담배를 피고있던 소녀들은 번갈아가며 쳐다봤습니다.

“너 여기서 뭐하는거야?”
“저기, 그게…….”

필사적으로 변명할 거리를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애가,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품고 살아온 서혜지가. 그때만큼은 아무말도 하질못하고 입을 닫고있었습니다.

“그…….”
“무슨일이야?”

담배를 피고있던 그녀들까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인상은 하나같지 부드럽진 않았습니다. 격하고 날카로웠습니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고, 천재라고 불린 소녀는 아무말도 하질 못했습니다.

“얘 1반 반장아냐?”
“알고있어?”
“응, 성원초에서 천재로 유명한 애잖아.”
“천재─?”
“흐흥, 말하자면 우등생이라 이거구나.”

그녀들의 비웃음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질책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뭐하고 있었던거야? 1반 반장.”
“혹시 선생들한테 꼰지르진 않겠지?”
“천재라면 머리 잘 돌아갈거 아냐? 어떤 선택을 해야될지 알고있지?”

툭, 툭, 그녀들의 손가락이 머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처음 만나보는 불량배, 처음 느껴보는 굴욕감. 목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꾹 참았습니다.

“대답을 해.”

꾹 참았지만.

“대답 해라고.”
“으… 흐윽.”

무서워서 눈물이 흐르는건 어쩔수 없었습니다.
이를 꽉 물어봤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의 눈물, 눈가가 뜨거워지는걸 참지못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꽉 깨물며,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우, 윽, 흑…….”
“야, 이녀석 울고있어.”
“뭐야? 뭐하는거야 너? 울면 해결될줄 알아?”

울음이 멈추지 않아. 그칠려고 했지만 울음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칠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은 마치 홍수난듯 펑펑 터졌고, 그런 저를 보고있던 그녀들은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악몽같다, 이건 꿈이야. 분명 나쁜 꿈일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장난일거야. 그렇게 생각하기를 몇번이나 지났을까?
조금은 서투른 손이 제 머리에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애를 울리면 쓰나.”

울음을 그치고 눈을 뜨자, 그곳에는 너무나도 인상적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짧게 묶어올린 머리. 무관심한 표정. 아직 다 타들어가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서투르게 제 머리를 쓰다듬고있는 그녀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눈빛.

“봐, 그쳤잖아.”

여자애 보다는, 선머슴같았던 그녀.

“1반 반장이라고 했지?”

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약속하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그말만을 하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오른손은 아직도 담배를 쥐고있는 상태였습니다. 천천히 타들어가는 담배, 그것과 새끼손가락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저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가락에 내 새끼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거짓말 하면 바늘천개 삼키기.”

무심한 어투로 노래하는 그녀. 손가락을 뺄려하자 그녀는 제 손을 쉽사리 놓을 생각을 하질 않고 뒤를 이었습니다.

“자, 좀있으면 1교시 시작한다. 너희들도 얼른얼른 돌아가야지, 안그래?”
“야, 요하랑. 넌 어쩔건데?”
“나?”

요하랑.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똑똑히 머리속에 새겼습니다. 잊혀질래야 잊혀질수 없는 이름, 잊으라 해도 잊을수 없는 그녀의 이름. 그녀는 담배를 한모금 목 뒤로 넘겼다 내뱉고서는 말했습니다.

“오늘도 땡땡이.”

그말 하나로 다른 학생들은 납득을 했는지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남겨진 그녀의 걱정은 그 누구도 하지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 친구가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너는 수업 안들어가?”

그녀가 툭 뱉은 한마디에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차피 오늘 하루정돈 학교를 가지않을 생각으로 여기까지 올라온것이니, 이젠 가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지옥 같은 곳, 도망치고 싶었지만 학교도 지옥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면무도회 같은 학교. 다들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제게 다가오고, 저 역시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들을 대했으니까요. 나도 그게 거짓인줄 알고있고, 그녀들도 그것이 거짓인줄 알고있을텐데. 그런 거짓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피어볼래?”

대뜸, 나무 아래주저앉은 그녀는 자신의 예쁜 입술에 물려있던 담배를 제게 건넸습니다.

“싫으면 싫다고 해도돼.”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녀를 보고있자, 그녀는 가만히 있던 제 손을 펼치고서는 조심스레 담배를 쥐어줬습니다. 새하얗고 차가운 손, 그리고 부드러운 그 손은 평생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타인의 손이였습니다.
손에 들려있는 연기과자. 파랗고 가느다란 연기가 눈앞에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이걸 이렇게.”

그녀는 담배를 잡고있는 시늉을 하며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습니다. 빨아들이고, 내 쉬기. 빨아들이고, 내 쉬기. 그녀가 보여주는대로 따라 해 보았지만,

“콜록 콜록!”

실패, 연기는 그저 목 뒤를 전부 넘기지 못하고 입밖으로 뱉어져 나왔습니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걸 왜 피는걸까?

“거봐, 힘들지?”

그녀는 제게서 담배를 받아들고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능숙하게 빨아들이고, 내 쉬기. 그녀의 예쁘장한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연기는 어쩔수없는 독극물이였습니다.

“담배피지마, 몸에 안좋아.”
“몸에 안좋은데… 왜 피는거에요?”

존댓말은 어릴때부터 배워왔던 습관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경해야 마땅하다고 배워왔으니까. 그게 비록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라도, 나보다 연하라 하더라도.

“풉”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를 비웃었고.
처음보는 미소였습니다.

“존댓말 쓰니까 귀엽다 너.”
“그, 그래요?”

당황해서 되물어봤지만, 그녀는 더욱 웃을 뿐이였습니다.

“응, 그래. 그런데 너나 나나 1학년인데, 말놓아도 되지않을까? 그래, 이참에 자기소개하는것도 좋겠다. 내이름은 요하랑, 성원여중 1학년 7반이야. 너는?”
“저는…….”
“나는!”

움찔.
온몸이 꿈쩍하고 놀라버렸습니다.

“나는… 1반의 서혜지 입니…”
“서 혜 지 야!”
“…서혜지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래도 그것이 만족스러운지 좋은 표정을 짓고있었습니다. 이상하다, 겉으로 보면 다른애들과 다를거 없는 미손데. 다른애들과 다를거 없는 ‘웃음’인데.
어째서 난 그녀를 의심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 서혜지. 넌 왜 수업 안들어가는 거야?”

그녀가 그렇게 물었을때는 뭐라고 대답해야될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대답을 해야될까, 진심을 말해야 될까?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가증스럽다. 거짓말 같다. 내가 웃고있는것마저 거짓말같고, 그녀들이 하는말까지 거짓말 같다. 실은 나를 싫어하면서, 실은 나를 질투하면서. 그저 내가 천재니까, 그저 내가 흠잡을데 없는 천재니까, 그러니까 그저 가면을 쓰고 내 가면을 벗길 틈을 보고있다.

“세상은… 가면 무도회장같아.”
“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가 되물었습니다.

“무슨말이야?”
“다들 날 싫어해…….”

그녀가 이쪽으로 앉아라는 듯이 손짓을 하였고, 전 그녀의 손짓대로 그녀의 바로옆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습니다. 누구 볼사람도 없을텐데, 치마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다들 날 싫어하면서 웃고있어. 다들 날 질투하면서도 웃고있어. 그게 너무 싫어… 내가 없을땐 내 욕을 하면서, 내 앞에서는 웃고있는 아이들이 싫어. 그 뻔한 가면들이 너무 싫어…….”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천재의 비애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재수가 없어서 그런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만 난 정말 진정한 친구하나 없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매일 매일 공부 공부 학교 학원 집 그리고 학교 학원 집, 그것들의 반복. 친구를 사귈틈따윈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부모님과 주위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아이로 있지 않는 이상, 친구따윈…….

“천재의 비애같은건가.”

그녀는 다시 한번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말했습니다.

“난 그런건 잘 모르겠는데, 결국은 그쪽 녀석들의 잘못이잖아.”

그녀는 그렇게 단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이야기 잘 몰라. 가면이라느니, 그런거 말이지. 머리가 나쁘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같이 머리나쁜애도 확실히 알수있는건.”

무심한 표정, 무심한 말투. 그 목소리에, 그 눈빛에 드디어 생기가 돌아오고있었다는걸 그때 느꼈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였고, 그 다음으로 이어질 행동 역시 진심이였으니까요. 적어도, 그녀의 행동에 위선은 없었으니까요.

“넌 아무런 잘못이 없고, 나쁜것들은 그년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집어던지고서는 어디론가로 걸어갔습니다. 어디로 걸어가는걸까? 묻기도 전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학교로 가자.”
“이제와서 뭐하러…….”
“가르쳐 줘야지.”

교복을 입은 그녀의 등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쁜게 어느쪽인지.”

그 후로 저는, 그녀의 뒤를 그렇게 미치도록 쫓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
그때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대로 언덕을 내려가 1학년 1반 제 교실에 들어간 하랑이는 ‘서혜지에게 불만있는놈들 다 나와’라고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해가며 말했지만, 그런다고 나올 사람들이 있나요. 아무도 나오질 않자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도 책상을 뒤짚고 의자를 집어던지고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전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하랑이를 말리려 했지만, 말리다가 저도 휩쓸릴까봐… 결국은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랑이는 그 일을 계기로 몇 달간 봉사활동과 부모님 호출이라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고, 1학년 1반은 물론이고 성원여중 전체적으로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일이 있은 이후, 하랑이는 이런 결과를 바라는게 아니였는지 연신 제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바라던건 ‘그녀들의 가면을 벗기고 나와 친하게 지내게 만드는 것’.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그런 행동으로 멋지게 실패. 아이들은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요하랑’을 피하는것과 동시에 그녀가 지키는 ‘서혜지’마저 더욱 싫어하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하자면 기뻤으니까요. 말하자면 그게…….
그와는 바꿀수없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으니까요.
비록 그 애들은 하랑이와 어울려 노는 말하자면 불량학생들이였고, 다들 거칠고 날카로운 애들이였지만. 그녀들은 적어도 가면을 쓰고 있진 않았으니까요. 그녀들이 절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금에 와서는 알수 없지만, 전 적어도 세상 그 누구보다더 그녀들과는 허물없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느곳에나 있지요? 교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가끔 생각합니다. 교실에서 불량학생이 불리는 아이들이 멋있어 보인다고. 난 비록 미숙하지만, 그아이들의 틈에 같이 끼어있고 싶다고. 한가지의 동경, 한가지의 꿈. 그녀의 등 뒤만을 쫓고있던 옛날, 요하랑은 내 생애 최고의 동경의 대상이였고,
지금은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
어제보다 더 더운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어제는 그래도 구름은 있었는데, 그 구름마저도 없어지고 바람한점 불지않는 땡볕 아래. 저는 성원동 주택가의 삭막한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모자라고 쓰고올걸 그랬나요? 주위 아주머니들은 대부분이 양산을 쓰고있었고, 그렇지 않은사람들은 적어도 모자는 쓰고있었습니다. 조금은… 힘들다. 하지만 곧 마트에 도착하니까 괜찮겠죠. 더우면 어제처럼 또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 되고, 마실것도 잔뜩…….
마트에 거의 도착했을때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어머.”

근저 남자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긴 머리를 묶어올린 소년.
하랑이의 동생이였습니다.

“예랑아.”

다가가서 이름을 부르자 그 아이는 깜짝 놀라며 이쪽을 쳐다봤습니다. 동그랗게 뜬 눈이 귀여운 아이. 눈 코 입 전부가 중학교시절의 하랑이를 닮았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남자니까. 분명 이 이야기를 꺼낸다면 화낼겁니다.

“혜, 혜지 누나! 이시간에 여긴 무슨일이야?”
“그러는 예랑이야말로, 이시간에 학교안가고 무슨일이야?”

내 물음에 예랑이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우물쭈물 하고 있었습니다.

“아, 아니 그게… 이제부터 등교할려고.”
“흐흥, 그래? 빼먹을려고 하는게 아니라?”

정곡이였을까? 예랑이는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제 시선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정곡이였구나?”
“우리 누나한테는 말하지마…….”
“내가 말 안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묻자 예랑이는 또 다시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다른곳을 바라볼 뿐이였습니다. 많이 당황해하는 표정, 저는 아무렇지않게 말을 이었습니다.

“땡땡이 치는건 좋은데 숨기진 마 예랑아. 나도, 하랑이도 예랑이 시절때는 땡땡이 많이 쳤는걸. 그걸 한번도 부모님이나 다른사람들한테 숨길려고 한적은 없으니까.”
“그, 그래 누나?”

예랑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사춘기 소년이라 그런지 까칠한면이 없는건 아닌데 꽤 귀여운게많은 아이이니까요.

“그래. 하지만 오늘은 이 누나가 예랑이의 땡땡이치는 장면을 목격해버렸으니, 이길로 조심히 학교에가는게 좋지않을까? 선생님에겐 혼나겠지만 그래도 등교를 해야되겠지?”
“그, 그래야겠지 역시?”

당황하는 눈빛으로 절 올려다보는 예랑이.
하랑이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서 끌어안아보고 싶었지만… 사춘기의 여린마음에 상처날까봐 섣불리 끌어안진 못하고, 조심스레 손을뻗어 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학교 잘다녀와, 요예랑.”
“응! 잘다녀올게 누나!”

힘차게 대답하는 예랑이. 빠이빠이 손까지 흔들면서 학교쪽으로 돌아가는 예랑이를 보고있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오늘도 한사람을 갱생시킨 탓일까요? 그건 잘 모르겟지만… 얼른 마트다녀와야지.
오늘 반찬은 뭘로 할까요?



---

요즘은 소설을 잠결에 쓰니까쓰는 저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88 천로역정~★ - 당고마기 (1) [2] 비렌 2008.08.14 678
1087 [R:W / SS] 과거를 연주하는 악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Op.1, No.1 [2] Lunate_S 2008.08.10 229
1086 [R:W / SS] 서곡序曲―오버추어, 처음으로 마주치다序頭奇緣. [1] Lunate_S 2008.08.10 219
1085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9 [1] 코드 2008.08.04 267
1084 [R:W / SS] 즉흥곡卽興曲―앵프롱프튀, .바라는 것念願. [2] Lunate_S 2008.08.03 230
1083 [R:W / SS] 장송곡葬送曲―퓨너렐마치, 시들어버린 세상에 대한 구원惡夢終熄. [2] Lunate_S 2008.08.03 298
1082 [Ver.R:W] 심상을 위조하는 작곡가, 슈리에 헤브라이카 비올 슈투트가르텐시아. (현재 1회차 추가 完) [5] Lunate_S 2008.08.03 316
1081 첫사랑이란... 뭘까요? 카와이 루나링 2008.08.02 217
1080 기사 아시논의 전설 [1] azelight 2008.08.02 217
1079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8 [2] 코드 2008.08.01 242
1078 Sky Walker (2) [4] 낙일군 2008.07.27 241
1077 Sky Walker (1) [2] 낙일군 2008.07.26 204
1076 Endless Dream - 끝나지 않는 꿈 - 02화. [4] 카와이 루나링 2008.07.25 260
1075 Endless Dream - 끝나지 않는 꿈 - 01화 [6] 카와이 루나링 2008.07.15 294
1074 [미얄 팬픽] 담소 [2] 카와이 루나링 2008.07.10 447
1073 이능배틀물 - 컨셉 플룻 [3] 비렌 2008.07.06 201
1072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7 [1] 코드 2008.07.06 224
1071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6 [1] 코드 2008.07.02 197
1070 [그녀]의 이야기 : n번째 세계-코야마가-15 [1] 코드 2008.07.01 236
» A→B #→막간2 [1] 빨탕 2008.06.27 20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