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인형이야기
-병기를 만드는 인형사-
이상한 공간이라고 종종 생각하고 있다. 분명히 내 몸도 건물도 물건도 사물도 모두 다 보인다. 빛이 있다는 증거. 하지만 우리들 이외의 사물도 물건도 건물도 모두 무채색을 띈 공간.
회색 빛? 아니면 검정? 빛깔을 잃은 무채색의 공간에서 나는 인형을 만들고 있다.
“알렉님...”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나.”
나는 내 눈 앞에 앉은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어섰다. 아무런 힘도 없는 듯 추욱 처진 체 늘어진 금발의 머리카락과 하얀색셔츠와 검은 바지 그리고 조금 큰 모노클 아이를 착용한 단아하게 생긴 청년... 내가 만든 ‘인형’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나는 인형사 알렉... 그 이외의 이름 따위는 없다. 오로지 이 무채색의 인형의 땅에서 인형을 만들 뿐... 하지만 내가 만드는 인형은 병기라는 이름을 가진다.
인형은 본디 인간의 형상을 가진 존재. 인형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목표는 바로 또 다른 인간의 창조.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만드는 것은 ‘병기[兵機]’다. 인형술에 속하는 마법과 정교한 기술 아래 만들어지는 인간의 형태를 한 병기... 인간처럼 생각하고 기억하고 느끼고 자아를 가지며 학습까지 가능한... 그러나 결국 병기 일 수밖에 없는 자들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무채색의 공간 아래 나와 내가 만든 인형 그리고 내 뒤의 또 다른 인형만이 있다.
이곳은 ‘인형의 땅.’이라고 불리 우는 차원이다. 정확히는 실제 지구를 똑같이 베낀 모형과도 같다. 인형만이 이곳의 문을 열 수 있는 현실과 같은 무채색의 공간. 빌딩도... 사물도... 차도... 쇼핑가의 쇼윈도우 안의 물건들도... 모두 다 현실과 같은 것들... 하지만 실재로는 그저 현실을 베낀 공간... 그곳을 인형의 땅이라고 한다.
나는 이곳에 살며 인형을 만들고 있다. 왜 만드냐고 한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상대를 ‘죽이기’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병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도 그것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창조주인 나의 욕심 때문에...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적. 반드시 이루어야 할 숙원이 있기에 나는 ‘아이들’을 계속 희생하고 있다.
“알렉님 이름은 생각해 두셨나요?”
다시 뒤에서 조용하고 나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조용히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있는 것은 AKM-1730-11-05라는 형식넘버가 붙은 인형. ‘알리스’다. 청색,검정,백색기조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메이드복을 꼼꼼히 입은 모습에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검정색의 긴 생 머리카락... 새하얀 얼굴과 단아한 생김세...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인간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외모를 지닌 존재. 그녀도 ‘인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병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래 ‘누나’같은 느낌도 들며 항상 나를 뒤에서 챙겨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름... 꼭두각시... 인형...”
나는 아무 의미 없이 그렇게 중얼 거렸다. 인형... 마스터인 창조주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 인간을 목적으로 만드나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 인간임을 포기하고 병기로서 만들어 진 존재. 오로지 마스터의 이름 아래서 움직이는 그런 존재... 꼭두각시인형...
마리오넷...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리오. 미안하지만 나를 위해 눈 떠 주렴...”
내가 그렇게 속삭이듯 말하자 눈앞의 청년의 늘어진 팔이 마치 망가진 기계처럼 삐끄덕 움직였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마 그 형태를 소리로 나타낸다면 삐그덕이라는 소리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몇 번 경련 아닌 경련을 한 뒤에 눈앞의 청년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잔잔한 초록색눈동자를 지닌 이지적인 청년이었다.
“...아버지...”
첫 말은 그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힘없는 어린 인형에게 허리를 숙여 조용히 웃어보였다. 잔혹할 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처음 눈을 뜬 나의 자식에게 부모로서 이런 웃음정도는 지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리오. 나는 지금부터 너를 인간이 사는 곳으로 보낼 거야. 네 다른 형제들도 대부분 세계각지에 떨어져 살고 있지. ‘병기’로서 나의 연구를 위해서 말이야.”
웃는 얼굴이지만 내가 들어도 조금 잔혹한 말을 나는 술술 내뱉고 있었다. 이질감이 조금 든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으면 안됀다. ‘그 남자’를 죽여야만 한다.
“너는 ‘지식’을 다루는 인형. 너는 내가 만든 인형 중에 손꼽히는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어. 병기로서 네 힘을 어떻게 쓸지는 네 자유. 이건 사실 일종의 실험이야...”
그래... 많은 인형을 만들고 각자 특기를 주고 인간세상에서 학습하여 병기로서 어떤 능력을 보이는 지 보기 위한 실험... 나는 그를 위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들어 왔다. 이제와서... 한 둘 정도 생긴다고 해서 죄가 줄거나 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악마다...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자식들을 팔고 있지 않은가?
“미안하다.”
“아버지...?”
마리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물었지만 내가 해줄 말은 이것 뿐 이었다.
“...비록 이 괴로운 세상에 태어났더라도 부디 행복하거라 아들아.”
그 말이 끝이었다. 마리오의 주변에 구멍이 뚫렸다. 정확히는 색이 생겨나갔다... 그리고 그 색은 마치 이 공간을 좀 먹듯이 마리오의 주변을 채워나갔다.
“아... 아버지 갑자기 무슨...”
“...나를 원망한다면 나를 찾아와라...”
색의 침식은 더 더욱 빨라져갔다. 마리오는 조용히 팔을 들어 나를 향해 뻗어왔다. 색의 침식은 마리오의 팔을 지나 마리오의 손가락까지 다다라 있었다.
“아버...”
그 말을 끝이었다. 마리오는 더 이상 내 눈 앞에 없었다. 인형의 땅을 떠나 세상에 나간 것이다.
“알리스. 여기가 프랑스 파리였지?”
“예.”
“돌아가자. 다른 아이들이 기다릴 거야.”
나는 그렇게만 말한 체 조용히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죄책감 때문에라도 나는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조금 걷자 큰 길이 나왔다. 내가 있던 곳은 한적한 뒷골목이었다. 눈앞에 차가 달린다. 사람은 없다. 사람도 색도 없이 오로지 무채색뿐인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풍경... 현실을 그대로 본 뜬 체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곳... 이곳이 인형의 땅이다.
나는 조용히 발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뒤를 알리스가 소리 없이 따라오고 있다.
“알리스.”
“예?”
“나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조용히 그렇게 물었다. 병기로서의 인형을 만들어 그 데이터를 모아서 궁극의 병기를 만드는 일. 인형사인 주제에 자신의 아이들로 하여금 병기로서의 능력을 주고 내 버린 체로 실험삼아 인형을 만드는 나날...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나는... 같은 후회가 반복 되어 간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이미 수많은 아이들을 희생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알리스는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다. 조금 무뚝뚝한 그러면서도 항상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며 나를 도와주는 인형. 조금 복잡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알리스다. 나와 행동을 함께하는 4기의 인형. 그 중의 하나.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들지 않았다. 그녀를 만든 것은...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맑은 목소리가 들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 기댄 체로 산수화가 그려진 부채로 입가를 가린 청년이 서있었다.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모습 하얀색 도포입고 검은색의 갓을 쓴 남자였다. 내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 그곳에서 만든 인형으로 이름은 ‘이수안’이라고 한다. 내가 창조한 인형 중에 가장 머리가 좋은 아이로 그 덕에 이것저것 손대는 것이 많고 뒤에서 꾸미는 것도 많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나도 손대기 껄끄러운 녀석이 된 나의 자식 중에 하나이며 나와 함께 행동하는 4기의 인형 중 하나이다.
“무슨 일이지 수안? 네가 나를 다 기다리다니.”
“이런, 이런 매정하군요. 아버지.”
수안은 눈가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식어있었다.
“이번에 만드신 인형... 아마 저와 같은 종류 인 것 같은데. 저로서는 만족하지 못 하시는 겁니까?”
수안은 그렇게 물어왔다. 내가 만드는 인형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병기에 알맞게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아이. 아니면 큰 대국을 볼 줄 아는 지식을 지닌 아이. 전투에 불필요함 감정을 가지지 않은 아이. 여러 아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지식’을 모토로 만든 아이는 별로 없다. 말 할 것도 없이 가장 우수한 것은 수안이지만. 지금 만들어 내보 넨 마리오도 수안과 같은 종류의 인형이라 수안은 불만이 생긴 모양이다.
“네가 이런 일로 불만을 가지다니 의외군.”
“저도 인형이긴 하지만 감정과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멀쩡한데 저와 같은 종류의 인형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굼한 것뿐입니다.”
눈은 여전히 살 웃음을 짓고 있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못 했다. 능글맞기로 알아주는 녀석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꽤나 화가 난 모양이다.
“걱정마라. 나의 사(四)인형을 바꿀 생각은 없다.”
“..............”
수안은 살 웃음을 풀고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부채를 접었다.
“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싶지도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게 재미있어서 말이죠.”
“널 대신할 정도로 음험한 녀석은 지금에 와서는 만들지도 못 한다.”
“하하하. 칭찬으로 들어 두겠습니다.”
수안은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걸어갔다. 수안의 주변이 색으로 침식되더니 곧 수안의 모습은 사라졌다. 세계로 나선 것을 보아 산책이라도 가려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그것도 조선의 전통의상을 입은 체 태연히 돌아다니는 녀석을 보면 종종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지만 워낙에 싸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아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나는 아이들에게 이래저래 간섭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수족으로서 필요할 때 움직여 주기만 하면 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알리스는 우수한 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 골목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가벼운 느낌이 드는 붉은 색 유카타를 입고 물들 인 듯 한 진홍빛 단발머리에 커다란 노란색 리본을 올려놓고 있다. 가녀린 느낌이 드는 몸으로 커다란 짊을 한가득 끌어안고 걷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거기다가 모르는 아이도 아니다.
“스즈 장보고 오니?”
내가 그렇게 묻자 소녀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 알렉이구나. 그 쪽도 용무는 끝난거야?”
“응 지금 막 보내주고 왔어.”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스즈에게 다가갔다.
“방금 수안이 있었는데 못 만나서 아쉽겠는 걸?”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즈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조금 울상이 되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인형도 사랑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지만 스즈는 그렇게 만들어진 경우다. 이 아이도 내가 만든 인형이 아니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일본의 인형술사가문 ‘우츠키로가’의 장인이 만든 마(魔)와 싸우기 위한 인형이다. 백여년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우츠키로가의 ‘레이신’이라는 자와 어떤 ‘계약’을 하여 데려 온 아이다. 이렇게 온순해 보이지만 사실 내가 만든 인형들 이상의 전투능력을 보이는 진정한 병기로서 만들어진 아이다. 여러모로 흥미 있는 아이다. 아까 만난 수안을 좋아하는 게 이상하다고도 느껴지지만 나는 아이들 개인 문제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열심히구나 스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스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스즈가 나보다 연상인 것은 사실이다. 제작년도가 나보다 앞서 있으니까.
“나야 원래 집안일을 좋아하니까. 알리스 도와줘.”
그렇게 말하며 스즈는 알리스에게 자신의 짐 반을 떠넘겼다. 전투용 병기로 만들어진 스즈지만 사실 스즈 혼자서 나와 스즈를 포함한 사인형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인형도 식사를 하고 있다보니 음식을 만들던가 장을 봐오거나 해야 하는데 알리스도 꽤나 집안 살림을 잘 챙겨주지만 알리스는 비서라면 스즈는 가정부랄까 그런 느낌이라 일을 분담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둘은 수다를 떨며 먼저 걸어가 버렸다. 인형의 땅에 빈집은 발에 치일정도로 많기 때문에 어디에 살아도 상관은 없지만 일단 거처를 잡았으면 그 지역에 살 때는 왠 만하면 옮기지 않는다. 어쨌든 두 미녀를 떠나보내고 나는 잠시 주변 주택가의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녹아내려 형체를 잃었다. 손가락이 한대 모여 붙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손은 날카로운 한자루의 검이 되 있었다. 무광택의... 그러나 날카로운 한 자루의 검이 된 오른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왼손을 들어 올려서 살짝 쥐었다 펴 보였다.
화르르륵
한순간 일어나는 붉은 불꽃...
내 몸은 인간이 아니다. ‘인형’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희생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아이들의 능력을 몸에 지닌 병기.
나는...
그를 죽이기 위해...
자식을 팔아가며...
힘을 얻는다...
빌어먹을 인형사...
오로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나는 병기라는 이름의 인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알리스도... 이수안도... 스즈도... 그리고 방금 세상에 내 보넨 마리오도... 나라는 단 하나의 인형사의 손에 만들어져 나를 위해서 사용되는 아이들이다. 저주받은 운명. 오로지 병기를 만드는 것만이 나에게 허락 된 삶...
그를 죽일 때까지 나에게 자유는 있을 수 없다. 그를 죽일 때까지...
용서해라 아이들아...
이 아버지를...
너희를 병기로 만든 체 세상에 버리는 아버지를...
병기를 만드는 인형사를...
나는 그렇게 자신을 한탄하다가 다시 일어나 길을 걸었다. 거처로 돌아가 다시 만들어야한다. 또 다른 인형을... 또 다른 병기를... 또 다른 자식을... 나는 그렇게 되도록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를 죽이고... 마스터를 죽이고... 그리고 자유를 얻겠다. 오로지 나는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나는 무거운 걸음을 걸어 나가며 그것만을 생각했다.
저주받은 인형사의 운명을 끝낼 것을...
---------------------------------------------------------------------
버엉인 겁니다.
머엉인 겁니다.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