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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조례 시간 교실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 것은 교실에 들어서면서였다.

분명히 변한 것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뒤 정신을 집중해 마력의 잔재를 찾아보려 했지만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내게 도움을 주었던 그 직감이라는 존재는 내게 자꾸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라면·······. 굳이 비교하자면 라이더가 사용했었던 결계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커다란 괴수의 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내 생명이 커다란 위험 앞에 노출되어있는 느낌. 그런 느낌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 것이 어떤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교실.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 자신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 보통의 아침 풍경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그 모습에 자신이 느낀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리 없었다.

- 딩동

아침 조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생각을 멈춘다. 아마 10초도 지나지 않아 타이가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이다.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다가는 후환이 두려우니 참도록 하자.

“좋은 아침~ 오늘은 조금 늦었지?”

보통은 종 치고 1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들어온단 말입니다. 하지만 잡생각은 그 정도에서 멈추기로 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생명이 걸린 일이니까. 뭐, 이런 이상한 위화감의 정체야 좀 있다가 토오사카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개운해졌고, 난 별 문제 없이 조례를 안전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토오사카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난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1교시 후 교실

“여. 에미야. 드디어 그 암여우가 꼬리를 잡힌 모양이더군.”

1교시가 끝나자마자 내게 다가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거는 잇세. 녀석이 말한 암여우라는 것이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들어 익숙해진 단어이지만 그래도 조금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잇세.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매도하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라니까.”

“뭐. 분명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일테지만 그 여우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은거라네. 그러니 그런 식으로 굳은 표정은 짓지 말게나.”

그렇게 얼굴이 굳어있었나? 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불린다는 것은 분명히 기분 안 좋은 일이라고. 물론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성배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듯 연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친해지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테니 얼마 동안은 서로 모르는 척 하자는 것이 토오사카의 의견. 때문에 잇세를 비롯한 다른 사람이 나와 토오사카의 사이를 알리는 없었다. 그냥 어디까지나 얼굴만 알고, 스쳐 지나가며 인사나 건네는 정도의 사이로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뭐. 그 누구에게라도 친절한 것이 에미야의 장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에미야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이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거라네.”

잇세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로 기쁜 듯 웃으며 가볍게 합장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데?”

“음. 그게 말이지·······.”

내 물음에 잇세는 조금 곤란한 말을 하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다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말을 이었다.

“그 암여우가 말이지. 결국 사고를 친 모양이야.”

“아니.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거야.”

“후으. 이 정도까지 말해도 못 알아듣는건가? 뭐. 그게 에미야답기는 하지만.”

“눈치 없어서 죄송합니다.”

잇세의 빙빙 돌려말하는 것에 질려서 나도 모르게 조금 짜증을 내 버렸다. 아차차·······. 이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잇세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여우가 임신을 했다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네.”

“아. 그래?”

·······





················






························









뭐야!!!!!!!!!!


잠깐잠깐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토오사카가 임신이라니.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그 토오사카에게 애를 배게 만들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다는 거야!

“역시 당황스러운 모양이로군. 하지만 이 것으로 되었어. 요조숙녀인 듯 꾸며대던 연극은 이제 끝이라는거다. 그 여우의 본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이제 학원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거야.”

하지만 당황하고 있는 내게 잇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건성으로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면 안돼.’ 라는 식으로 지푸라기를 던져 놓고는 생각에 빠져들 뿐이었다.

토오사카가 임신했다. 그 말은 토오사카가······· 에, 그러니까 그······· 남자랑 했다는 거겠지? 그런데 뭐랄까······· 날짜를 잘못 계산했다든지, 뭐 그런 이유로 아이가 생겼다는 거겠고. 아니 애시당초 토오사카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날 리가 없·······.

·······.

잠깐만. 이거·······.

필사적으로 지난 몇 개월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토오사카의 그 날짜랑 대조해서, 에 그러니까·······.

········ 범인은 나······· 인가?

“뭐, 증거는 없을지 몰라도, 증인은 있다고 하더군. 학원의 누군가가 약국에 갔다가 그 여우가 임신 진단 시약을 사는 것을 보았다고 하던데.”

“자, 잘못 본 거겠지.”

억지로 태연을 가장하며 묻는다. 하지만 잇세는 고개를 저으며 추가타를 날려버렸다.

“이미 학원 내에 소문이 파다하다네. 아마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당사자와 교직원들뿐이겠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여우를 더럽힌 범인을 색출해 내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는 듯 하던데. 뭐, 오히려 난 감사하고 싶을 정도다. 그 여우의 진짜 모습을 밝혀낼 기회니까 말이야.”

그랬던 것인가·······. 아침에 느꼈던 위화감은·······.

지나치게 서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그리고 그에 반해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감추는 듯 조용하기만 했던 것.

거기에 남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방향성이 없는 살기를 뿜어내고 있던 것.

“하, 하하·······.”

자신도 모르게 메마른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거, 나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친 것 같은데?




2교시 후 교실

“그런 고로, 우리 토오사카 친위대는 이 학원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여신을 더럽힌 자를 찾아내어 말살해 버리는 것이다!”

작은 함성. 아무래도 이런 내용을 공공연하게 떠들 수는 없는 것이겠지. 고토에게 이끌려 나도 모르게 끼어들게 된 이 자리에서 난 마치 랜서의 앞에 서 있던 그 날처럼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그래, 그 때 날 구해준 것은 토오사카였지. 10년분의 마력을 담은 보석을 버려가면서·······.

우아아. 거기서 왜 또 토오사카가 떠오르는 거야!

재빨리 자신을 진정시킨 뒤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 자리에 모여 앉은 남자들을 둘러보았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제로. 아니, 무엇보다 토오사카한테 ‘널 임신시킨 상대가 누구냐!’ 라는 말을 꺼내기는커녕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그룹에서 무언가를 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 우아아! 그만 그만! 지금 토오사카를 떠올리면 안돼!

다시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킨다. 사람들이 내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것을 느끼지는 못했는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미야의 생각은 어때?”

“으, 응? 뭐가?”

“후우. 상심이 큰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회의에 집중해 줘. 어떻게 하면 그 대역죄인을 찾아낼지 묻고 있는거야. 우리가 토오사카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잖냐.”

“에. 그게 말이지. 역시 토오사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뭐. 이 정도면 무난한 대답일 것이다. 사실 토오사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나마 여자들 중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에구사 파에게 토오사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도 없고, 미츠즈리는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을 할 만한 성격이 아니지. 아니, 사실 처음부터 토오사카가 그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리가 없잖아? 나한테도 말을 안 했을 정도인데.

아. 조심조심. 또 토오사카를 떠올릴 뻔 했다.

이제 내 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그리고 그 실현 방법이 나올 리가 없는 것에 대해 떠들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처신에 대해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군요.

“······· 뭐, 뭐야?”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나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에 당황하며 대답하는 순간 고토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의외로 토오사카는 사쿠라와 친한 것 같아서 말이야. 분명히 넌 사쿠라와 친하지? 좀 물어봐 달라는 말이었어.”

······· 신은 죽었다.





점심시간 옥상

젠·······. 토오사카와 사쿠라가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알아낸거야? 신지 녀석이 병원에 입원한 뒤로 자주 문병을 간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문병을 간 것은 나 뿐이고, 토오사카는 내가 가는 길에 같이 간 것 뿐일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띌 리가 없었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방과 후에 만나서 물어볼께.”

“아니. 점심 먹으러 가서 물어봐.”

“·······에?”

“그러니까 같이 밥을 먹자고 하고, 그 사이에 넌지시 물어보란 말이야.”

그 말에 난 무언가 반박하려고 했으나 내게 쏟아지는 눈총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해 버렸다. ‘안 가면 네가 범인이다!’ 라고 외치는 듯한 눈빛은 도저히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다. 버서커가 눈 앞에 서 있더라도 이 정도로 두렵지는 않았을텐데·······. 아니, 애시당초 범인은 나 맞지 않던가?

뭐. 어쨌든 덕분에 사쿠라를 데리고 온 곳은 옥상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난 뼈저리게 후회해야만 했다. 차라리 궁도장을 택할 것을·······. 그렇다면 이렇게 미행당할 일은 없었을텐데!

옥상의 입구 문 뒤에 있는 것만 세 명, 내가 등지고 앉아있는 계단 건물의 양쪽 모서리에서 보고 있는 것이 다섯 명. 거기에 어떻게 올라간 것인지 급수탑 위에서 듣고 있는 녀석이 한 명·······.

“이래서는 뭘 말하고 싶어도 못하겠잖아!”

“에? 선배?”

“아······· 아냐. 아무것도.”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내뱉은 것을 후회하며 놀란 사쿠라에게 재빨리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쿠라는 미묘하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지만 곧 평소의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그러니까 선배. 저기·······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이 뭐에요?”

“에······· 그러니까. 토오사카에 대한 건데·······.”

“······· 그런가요.”

순간 사쿠라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사쿠라는 기쁜 듯이 웃으며 무언가 기대에 찬, 마치 어린아이 같은 밝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지금은 만지기만 해도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아니. 그게 말이지. 오늘 토오사카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걱정이 되니까. 그래서·······.”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나를 보고 사쿠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선배는 정말 어쩔 수 없군요. 곤란한 사람은 아무도 그냥 두고 못 보고 지나치는 점은 여전하다니까요.”

“응? 아, 응. 그, 그렇지. 하······· 하하·······.”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웃었다. 다행히도 사쿠라는 아무런 이상한 것도 느끼지 못한 듯 별 다른 태도의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저도 그 소문은 들었어요. 선배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만 시간문제겠지요. 하지만 저도 알고 있는 것은 없어요.”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네? 지금 뭐라고?”

“아, 아냐. 알려줘서 고마워.”

무심결에 실언을 해 버린 자신을 질책하며 급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뭐, 이 것으로 되었어. 이제 남은 것은 토오사카와 입을 맞추는 것 뿐인가?





Interlude

점심시간 궁도장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거야?”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거야. 사실이야?”

점심시간,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말에 궁도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미츠즈리가 물어본 것은 나 보고 ‘정말로 임신한거야?’ 였다. 그 말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미츠즈리에게 왜 묻냐고 반문하자 오늘 아침부터 교내에 쫙 퍼져버린 소문에 대해 알려준 것이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이상하게 귀가 간지럽더라니.”

“어쩔 수 없지. 학원 최고의 아이돌인 토오사카가 그런 소문에 휘말리면 이야기 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야.”

미츠즈리의 말에 한숨을 쉬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뭐, 시로와 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날짜 계산 정도는 분명하게 했는데 말이지. 어디서 이렇게 어긋난 것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털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 미츠즈리(그리고 시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은 잡아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선의로 가득한 거짓말을 하려는 찰나 미츠즈리는 표정을 바꾸며 내 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그래서어~ 사실 여부는 던져 놓고, 누구야?”

“뭐?”

“아니, 그런 소문 따위는 접어놓자 이거야. 네가 임신을 하건 어쨌건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누구야? 그런 소문이 나려면 일단 무언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이······· 이봐?”

“적어도 말이지, 내가 알고 있기로는 넌 그런 소문이 날 수가 없어. 일단 상대 자체가 없거든. 테스터를 샀다고 하지만 닮을 사람을 잘못 볼 수도 있는 노릇이고, 테스터가 아니고 다른 약일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은 무언가 토오사카와 특! 별! 한! 관계의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난 것 아닐까? 적어도 그 때의 토오사카를 보았던 그 사람만은 알고 있는!”

“뭐, 뭔가 잘못 본 것이 틀림없어. 응, 그럴꺼야.”

“후으······· 그런가.”

있는 힘껏 허세를 부리는 내 모습에 미츠즈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게 미츠즈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고.”

“으음?”

“토오사카는 너무 강해. 그 속에 비해서 겉이 너무 강해서 부러질 것만 같다고. 이런 남자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지. 너랑 특별한 내기를 한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내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무언가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기대도 돼. 그 내기에서 내가 지더라도 상관은 없으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미츠즈리·······.”

무언가 미츠즈리의 말이 제대로 연결되는 것 같지 않은, 그런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미츠즈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마음속으로나마 고마움을 표했다. 마술사로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나도 그 녀석에게 전염이 되었다는 것일까? 예전의 나라면 부정하려 들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에미야야?”

“응?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거기서 에미야군이 왜 나와?”

“칫. 잘못 짚었나?”

정정. 이 녀석은 분명히 악당이다. 뭐.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겨우 평정을 가장하고 무사히 답할 수 있었다. 내 연기 실력도 많이 늘은 모양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시로랑 입을 맞추는 것뿐인가?

Interlude Out





방과 후 교실

“뭐. 그럼 결정 된거다.”

“알었어. 어디보자. 특별한 것도 없이,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다 보면 소문은 사라질테고, 곧 졸업이니 별 문제 없이 모든 소동이 끝날 테지. 정말이지, 수험공부 포기한 것이 이럴 때는 정말 다행이라니까.”

“어차피 런던에 가기로 한 거잖아. 수험공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토오사카의 가벼운 질책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하지만 토오사카는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볍게 내게 몸을 기대어 왔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토오사카의 얼굴 역시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매료된 채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그저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런 말없이 빈 교실에서 정적을 즐기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교사는 텅 비어있을 것이다. 계속 휘둘리기만 했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간 하루. 아마 며칠 동안은 비슷한 나날이 지속되겠지만 언젠가 그 것도 사그러들리라. 그리고 졸업을 한 뒤 런던으로 날아가면 거기서 상황 종료.

“나름대로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야.”

“뭐, 그렇다고 해야 하나?”

토오사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잡고 교사 밖으로 이끌었다. 해프닝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 정도로 해결된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그리 크지 않은 운동장을 걸어 나갔다. 이 교정을 나서는 순간 악몽은 끝이 나겠지.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응? 무슨 일이야, 토오사카?”

“정말이지. 날짜 계산 똑바로 하라니까! 생각해보니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갑자기 쿠아! 하고 불타오르는 토오사카의 모습에 순간 정신이 오그라들었다. 무언가 엄청 납득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지만 내 잘못은 분명히 잘못. 아니, 날짜 계산은 본인이 해야하는 것 아냐!?!? 라고 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듯 했지만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후환이 두려워진다. 이럴 때는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겠지.

한숨을 쉬며 토오사카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하지만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아무래도 악몽은 아직 끝난 것 같지 않았다.





Interlude 2

방과 후 궁도장

“역시 뭔가 수상하긴 하군요.”

“응. 평소의 토오사카라면 거기에서 ‘뭐, 뭐, 뭐, 뭐야? 거, 거기서 에미야군이 왜 나와?!?!’라고 하면서 ‘쿠와!’ 하고 입에서 불을 뿜었을거야. 사실이건 아니건 그런 기습에 약한 녀석이니까.”

“토오사카 선배의 지나칠 정도로 침착한 반응, 에미야 선배가 옥상에서 제게 그 것을 물어본 것. 역시 그렇게 결론지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말이야. 심증만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네가 토오사카를 잘못 볼리는 없는데 말이지.”

“물론이죠. 그건 분명히 토오사카 선배였어요. 뭐, 선배라면 이 다음 행동이 어떨지는 예상이 가능하니까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굳이 방과 후에 돌아가지 않고 궁도장에서 시간을 때웠던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에요. 모르긴 몰라도 교문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으면 분명 대어가 낚일 거에요.”

“과연. 5년 가까이 바로 옆에서 보아온 것은 헛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물론이죠. 봐요. 저기 오고 있죠.”

“어디어디. 오. 정말인데. 저 녀석들 역시 네 예상대로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앞으로 있을 일들을 상의하고 나오는 모양이야. 뭔가 분위기 좋은 것 같은데?”

“그럼요. 이제 조심스럽게 미행해서 결정적인 증거만 포착하면 돼요. 분명히 무언가 말을 할 거란 말이에요.”

“후훗. 좋았어. 소문은 이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약점 하나는 분명히 잡았으니까.”

“뭐, 서로 돕고 사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그런거지.”

당연한 거지만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Interlude Out





Epilogue

둘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둘이 함께 걸어가는 미래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신이 찾아야만 했던, 그가 찾아주지 못했던 나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둘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검을 뽑았을 때 잊었던 감정 중 기쁨 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붉은 기사가 내게 했던, 자신이 찾아주지 못했던 나의 해답이 이런 것일까?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틀린다고 한 이유는, 이런 감정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속 싸우려 했던 나를 질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더욱 그 느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나의 본래의 마스터와 현재의 마스터. 그 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을 채워가는 잘 알지 못하는 감정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함께, 그 것도 가장 기뻐할 때라아·······. 아마 둘의 아기를 낳았을 때가 아닐까?‘

‘아이······· 입니까?’

‘응응. 드라마에서 본 거지만 말이야. 남자와 여자라면 당연히 그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


양 손을 허리에 올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타이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에 타이가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고 린과 시로우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날에 무리를 해서 성검을 두 번이나 날려버렸다. 덕분에 마력은 바닥.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성검을 사용했지만 내가 구하고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호수의 요정도 용서해주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린에게 간청해 시로의 방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버렸다.

“아아. 기대되는군요. 린과 시로우의 아이.”

설레는 마음과 함께 마시는 홍차는 정말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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