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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블랙 색소폰

2005.08.15 15:48

김국일 조회 수:404 추천:3






블랙 색소폰














                                                                        김 국일














머리말

1995년말 과 1996년 초는 한국 음악계의 어두운 날이기도 하였다. 대뷔 1년 만에 정상을 달리던 가수 서 지원과 힙합과 랩의 돌풍 속에서도 포크음악을 활성화 시킨 김 광석의 죽음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약 5년 전쯤 난 아주 우연히 두 명의 인기 가수 죽음에 대해서 라디오를 통해 청취하게 되었다. 그 둘 사이의 죽음은 그림이라는 연관관계가 있었다. 서지원씨의 자살 후 서지원씨 집에 있었던 그림이 김광석씨 집으로 옮겨진 것 이였다. 그리고 그림이 옮겨간지 5일 후에 김광석씨도 목을 매 자살을 했다. 그 저주 받은 그림을 불속에 집어 던지고서야 이 자살은 일단락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나의 상상은 마구 뜀박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림의 주인공 이였던 색소폰 부는 흑인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었다. 연주가가 흑인 이라는 것에 착안 하여 흑인 관련 서적을 뒤지고 쩨즈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흑인 역사를 헤집고 들어 갈 때 마다 그들의 한 매친 역사에 대해서 알아 가게 되었다. 이쯤 되니 한편의 소설 스토리가 모아졌고 여기에 토태미즘적 주술 이야기와 형사의 이야기를 구성에 맞추어 넣었다.
그동안 미궁 속에서 그들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라는 수사 결과만 보아온 우리들은 더 자세한 얘기에 갈증감과 목이 메이기 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면으로도 의미를 전달해 준다고 보기에 자료를 찾으면서 그리고 책을 쓰면서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꼈다.
내심 나에 마음은 독자가 마지막 장을 읽고 2편이 나왔으면 하고 생각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그것은 이 작품이 나에 처녀작이고 그리고 다른 차기 작품을 준비하고 있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글을 단지 흥미 위주로만 읽기에는 무게감이 있게 다루어진 한 민족의 고통과 스타들의 죽음이 가볍지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도 외세의 침략 속에서 꿋꿋이 견디어 났기에 그들 흑인들의 노예의 삶을 더욱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뒤지면서 난 아직도 그들의 노래가 살아 숨쉬며 우리들 곁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추모 사이트는 아직도 그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숨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고인이 되어서 무대에 설 수 없는 그들이라 할지라도 노래와 맑은 미소는 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책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독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프롤로그



불길은 둥그런 원을 그리며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유 보살은 민국의 부모 묘에 뿌릴 개피를 담은 양동이를 내려놓고선 주머니에서 조그만 유리병을 꺼낸다. 불길이 마른 풀들을 집어 삼키며 더 거 새 지자 유 보살의 입술은 쉴 세 없이 움직이며 주문을 더욱 빨리 읊었다. 알코올로 채워진 유리병에 자신의 검 지 손가락이 둥둥 떠 있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리는 민국 이였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얇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그 기세를 더해 굵은 소나기가 온 산에 흙 내 음을 풍기며 뿌려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유 보살을 에워 쌓고 있던 거센 불길은 비에 젖어 나풀나풀 될 뿐 이였다.
“죽어라-” 흐느적대는 불길 위로 몸을 날려 유 보살에게 돌진 하는 민국 이였다. “쏵-” 유 보살은 양동이에 가득 담긴 개피를 민국에게 끼얹었다. 그의 몸과 옷은 붉은 피로 물들고 흘러 내렸으며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개피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민국은 눈을 뜨기 힘들었다.
“이놈! 네가 죽어라! 이놈!” 유 보살은 들고 온 시퍼런 낫으로 웅크리며 눈을 비비는 민국의 등에 낫을 내려찍는다. “으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민국은 앞으로 고끄라 쓰러졌다. 마치 비는 유 보살의 부름에 불만 끌려고 왔다는 듯이 이내 그쳤다.
  “이로써 너에 가족은 내가 다 죽이는 구나.” 가늘게 눈을 뜨며 묘지를 쳐다보던 유 보살은 발목에서 불이 난 듯 한 느낌을 받아 눈을 민국이 쓰러진 곳으로 재빨리 돌린다.
“억!” 낮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유 보살도 민국의 옆으로 쓰러졌다. 민국은 등에 꽂혀있던 낫을 뽑아 유 보살의 발목을 댕강 자른 것 이였다.
옆에 쓰러진 유 보살과 눈이 마주치자 민국은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유 보살을 본 후부터 매일 악몽에서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이 머리에서 고통과 함께 뜀박질 치기 시작했다. 어둠과 아사 직전에 보았던 그녀의 얼굴은 강산을 세 번 이상 보낸 시간이 결코 공포를 없애기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다.
“너에 손가락은 내가 잘랐지, 네가 핏덩어리였을 때 내가 널 업고 도망쳐 나왔어 너에 집에서.” 유 보살은 자신이 살만큼 살았다는 듯 잘려 나간 발의 출혈은 신경 쓰지도 않고 과거사를 열거하기 시작한다. 피로 목욕을 한 낫을 쥐고 있던 손을 든 민국은 말없이 자신의 잘려 나간 검지를 보았다.
“왜?” 나지막하게 물은 민국의 두 눈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유 보살을 신엄마로 모셨었던 선혜 에게 자신의 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고 자신의 꿈을 통해 부모님이 그녀에 의해 돌아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그였지만 자초 지정을 유 보살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무려 일주일간 아무 음식도 없이 어둠 속에 처박아 둔 아기... 기적에 가까웠지 살아 있었다는 건, 숨이 꼴딱 꼴딱 하는 너에 입술에 나에 젓을 물렸지, 넌 본능적으로 젓을 빨아야 산다는 것을 알고는 손을 뻗었지. 나에 젓이 손에 안 닿자 넌 손을 오무렸어 검지가 뻗어 나가도록... 검지 끝으로 무엇이 모였다고 생각하나! 난 요술을 부린 것이야 아까 비를 오게 한 것처럼 말이야.” “그렇담 우리 부모님은 왜 죽인거지?” “난 자네 아버지가 간난 아기였었을 적부터 자네 집 가정부 일을 도맡아서 해 왔내 그러니까 내 인생의 전부를 자네 가족을 위해서 바친 것이지 그런대 내가 신병을 앓자 자내 식구들은 전염되는 병균 덩어리로 나를 본거야, 추운겨울 맨발로 쫒겨 나왔지.” 유 보살은 민국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 이였다는 사실을 숨긴다. 배다른 어머니에서 태어난 죄로 겪어야 했던 고통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의 한 평생을 말로 설명하기엔 끝이 없어 보였기 때문 이였다. 더욱이 자신이 발견한 어머니의 피 맺힌 일기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었다. “단지 살육이 가정부 일을 그만두게 됐다는 이유뿐인가!”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목숨과 30년 넘게 자신의 손가락을 차고 다니는 악에 찬 그녀를 보자 역겹고 구역질이 나는 민국 이였다.
“지옥에 보내주마!” 낫은 어느덧 유보살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유 보살은 유리병을 쥐고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콰자악-” 마른하늘에 벼락은 민국이 치켜든 낫 위에 떨어졌고 낫에서 튀긴 불꽃이 땅에 떨어지자 휘발유를 머금고 있는 땅에선 불이 일었다. 에너지를 소진한 둘은 불길을 피하기보단 누워서 맑은 하늘의 구름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불길이 둘을 휩싸 안았다.




*죽음은 모든 고통의 축구다. -
                              알아르콘





1. 가난한 백인


1890년 1월 23일, 노란 태양은 추운 날씨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대지와 강에 옅은 오렌지 빛깔로 물을 들인다. 고흐의 머리 속에선 한참 밖 풍경들을 스케치 중이다. 습관적으로 잘려 나간 왼쪽 귀 언저리를 손으로 훔쳐 내린다. 멍한 시선은 창에서 화로로 고개를 돌렸을 때 꺼져 가는 장작더미위로 힘없는 불길이 보였다.
“고겡 녀석...” 신경질 적으로 잡지를 집어 드는 고흐는 동생이 보내온  잡지에서 자신의 그림 비평을 읽는다. 그리곤 다 외웠다는 듯 휙 하니 잡지를 땅바닥에 던져 놓고선 책상 위에 있는 소설 제르미날을 집는다. 한동안 그의 책상에서 부동의 자리를 굳히던 톨스토이의 책은 제르미날 책에 손때가 더할수록 구석으로 밀려났다. 해가 서쪽을 향함에 따라 대지와 강의 오랜지 빛들은 차차 그 빛을 잃어 간다.
“망할! 23프랑 남았군” 주머니를 뒤지던 고흐는 동생 태오에게서 받은 50프랑의 절반 이상을 쓴 것을 알고 화가 났다. 눈은 자동적으로 켄버스가 몇 개 남았나 하고 세어본다. 여기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그는 5프랑에서 4프랑으로 줄여 하루를 생활해 나가고 있었다.
“고겡 녀석...” 마치 고겡 녀석이 고겡의 이름이 된 듯 냥 연신 입에서 터져 나왔다. “지가 뭔 대 내가 밀레의 작품을 모방했다고 떠들고 다녀!” 나무 담배 파이프를 찾는 고흐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얀 담배 연기를 입으로 뿜으며 찬 공기를 듬뿍 머금은 어두워진 밤하늘을 창을 통해 쳐다본다. 검은 하늘 무료 켄버스에 성모의 그림이 이내 투영 되 그의 한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난 멀었어 그 작품은 모사마저도 힘들어.”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손과 입은 조금씩 떨렸으며 체념 섞인 그의 목소리는 슬피 우는 듯 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동생 태오와 그의 부인 조 때문 이였다. 자신이 그려온 그림의 켄버스는 태오의 신임에서 오는 것 이였으며 자신이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 할 수 있는 여건도 태오의  형제 애 때문 이였으리라.

“잘 있었나 고흐?” “아! 나에 친구 보크!” 생명에 은인이라도 되는 듯 그를 반가이 맞이했다. “아를르에 잠깐 볼일이 있어 들렸네.” “자 어서 앉게나.” “늦었지만 자네가 큰 아빠가 된걸 축하하네.” 마치 자신이 아기를 낳은 냥 기뻐하는 고흐의 모습 이면엔 또 한편 일그러진 얼굴 근육의 움직임도 잡혔다. “고맙내, 한번 찾아가 제수 씨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 하는데...” 목이매이고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은 고흐를 본 보크는 다른 아무 이야기나 꺼내야 겠다 싶어 다짜고짜 배고프다고 말한다. “자네 혹시 아이 오리를 먹을 줄 아는감?” “자네 말투가 꼭 이 지방 사람들을 닮아 네.” “다 전략 일세 하숙비 한 푼 이라도 아끼려는.” 고흐는 보크가 자신의 그림에 심취해 있음을 대화 도중에도 자신의 그림에 얼굴이 가있는 보크를 보고 알았다. “몇몇 그림은 동생과 고겡에게 붙였다네.” 고흐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보크는 그의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자네 그림에 변화가 일었군.” 고흐도 보크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자네가 타고 온 마차에 작업한 그림이 있는가?” 기대가 앞선 고흐는 마차에서 꺼내 들고 올 그림을 기다릴 수가 없어 보크와 같이 마차로 향한다.  
둘은 서로의 그림에 만족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서로의 그림을 맞바꾸었다. 보크가 떠난 뒤 한참동안 고흐는 자신의 그림과 보크의 그림을 번갈아 보며 비교했다. “바꾸길 잘했군.” 고흐는 보크의 그림이 하나에 선생님이 되어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있자니 고흐의 머릿속에선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브뤼셀 아카데미에서 만난 베르나르, 얼마 안 있으며 군에 입대할 그이기에 군에 가서 혹시 잘못 될까 아니면 그림을 중단할까 가슴이 조마조마한 고흐였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해...” 고흐는 불이 낳게 편지를 쓰며 자신의 스케치 그림과 함께 동봉한다.

베르나르에게 편지를 붙인 지 몇 주 안되어 답장이 온 것으로 봐선 그도 고흐 못지 않게 자신을 보고 싶어하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의 편지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더욱 확신하는 고흐였다. “나에 그림이 보고 싶다고.” 편지를 들고 있는 고흐의 손은 기쁨과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웃는 그의 웃음에 얼굴 근육들이 놀라고있었다. 고흐는 무엇보다 배르나르가 퐁 타벤에서 가져올 그림들과 아프리카 여행에서의 일 그리고 그곳 풍경들을 그로부터 듣고 보고 느끼고 싶었다. “오늘밤은 무척 길구나, 뭐 그래도 나에 베르나르를 만날 날이 온다 면 야...” 화로에 희미한 불빛사이로 외로이 서있는 그의 그림을 하나 하나 눈여겨보았다. 12게월 동안 생래미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면서 그린 그림들을 지켜보자니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정신병원의 정원, 알피유 가족, 의사들의 초상화, 렘브란트, 들라쿠루아 그리고 밀레의 그림을 본뜬 모작이 보였다. 각각에 그림들은 꺼질 것 같은 화로 불빛에 비쳐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그의 상상력과 함께 묻어 나고 있었다.
“지난 1년은 생각하기도 싫어.” 중얼중얼 대면서 스르르 눈이 감기는 고흐는 베르나르를 본다는 생각에 편히 잠이 든다.

“안녕하세요 고흐 아저씨!” 마차에 내리자마자 고흐에게 뛰어가는 그였다. “몰라보겠구나.” 포옹을 하는 고흐는 어느덧 키가 훤칠히 커진 베르나르를 올려다본다. “아프신 대는 없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잠시만 요.” 그는 마차로 달려가더니 둘둘 말린 그림 여러 점을 들고 온다. 고흐는 이륜마차를 보며 베르나르가 보크만큼의 여유는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마 놀라실 그림이 많을 거에 요.” 고흐는 자신의 그림보다 더 주위하며 그림을 펼쳐 보았다. 숨이 막히는 고흐였다. 적어도 자신이 베르나르보다 두 배 정도는 오래 살았는데 그림을 보자 두 배는 작아짐을 느낀다. 특히 얼마 전에 보낸 편지에서 그림의 터치법과 색채에 대해 그리고 새로 시도해 보는 자신의 표현법을 그에게 가르치듯 열거하지 않았던가.
“너는 나를 놀라게 하는 제주가 있구나.” 방으로 베르나르를 안내한 고흐는 빛이 발한 나무식탁 위에 빵 담은 바구니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소고기 수프 그리고 브이아베이스를 같이 놓는다. 반짝 반짝 빛나는 포크와 나이프는 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차린 게 없지만 이거라도 우선 들게.” “모두 아저씨가 손수 만드신 건가요?” “수프만 만들었지.” “요리사 하셔도 되시겠어요.” 음식을 다 비워 갈 즘 고흐는 아직도 둘둘 말려 있는 한 켄버스에 눈을 돌린다. “저건 무슨 그림이니?” “이 그림들 중 유일하게 제가 안 그린 그림 입니다.” 과연 어떤 그림일까? 고흐는 벌써 봐버린 그림보다  펼쳐질 그림에 눈길을 더 쏟았다. “아프리카에서 선물 받은 그림이에요” “아프리카란 어떤 곳이니?”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모래 긴장하며 풀을 뜯는 야생 동물, 강렬한 태양, 창과 활을 들고 다니는 흑인들, 제가 백인이라서 그런지 흑인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더라고요. 그들은 백인을 토우봅 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듣고만 있어도 기운이 솟는 고흐였다. “아프리카에서 보는 해는 이곳에서 보는 해와 틀리니?” “틀려요, 저에 뜻은 느낌이 틀려요.” 베르나르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고흐 또한 가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자신의 그림을 좀더 좋은 값에 팔고 그 돈을 모아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그림을 그리리라 생각한다. 정 아프리카가 힘들다면 프랑스나 파리가 아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그림을 그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충동 또한 들었다.
어둠이 깔리는 밤이 되자 고흐는 더욱 움추러 들었다. 베르나르는 고흐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고 온 이륜 마차에 몸을 실어 떠나 버렸다.
남겨진 켄버스에 감히 접근을 못 할 것만 같았다. 그곳엔 자신이 12개월 동안 갇혀있었던 생래미 정신병원보다 더 지독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직감한다. 그러나 사람에 호기심이 판도라 상자를 열게 만들 듯 마침내 고흐는 둘둘 말린 켄버스에 손을 댄다.
“너는 왜 우는 거야?” 고흐는 발작적으로 그림을 덮어 버렸다. 그의 우울증은 그 그림으로 인해 몸과 머리에서 요동을 치는 듯 했다. 켄버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넌 병들고 늙은 비를 맞고도 목욕이라곤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흰 닭 같아! 냄새 가 너무 지독해!’
“네가 뭔 대 나한 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부화가 치밀어 오른 고흐는 그림을 내동댕이친다.
‘오른쪽 귀마저  잘라 창녀에게 선물로 줘 그럼 너에 모습은 비 맞은 닭에 머리와 같을 태니.’
“난 그런 짓 안 해!” 말려 있던 켄버스가 스르르 펴지더니 순식간에 켄버스의 검은 톤의 물감이 거치고 동생 태오와 그의 부인 조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물감들이 혼합되며 그려졌다.
  ‘너에 동생 태오를 봐, 너에게 돈을 대주느라 등골이 휘고 그것도 모잘 라 넌 그에게 종이까지 사서 보내 달라고 졸랐지, 조는 임신했을 때에도 너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었지, 기억하나 남에 그림이나 모방한 너에 자신을!’ 물감이 걷히던 그림은 다시 귀가 잘려 붕대를 감고 담배를 물고 있는 고흐의 자화상 그림으로 변하고 있었다. 창피함으로 얼굴이 붉어진 고흐는 한 손으론 민 및 한 왼쪽 귀를 부여  잡고 발작을 일으키듯 주위에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한다. 눈을 뜨고 볼 수 도 귀를 열고들을 수도 없는 말들 때문 이였다.
“으아악~” 야생마가 자신의 등을 허락 안 하듯 고흐는 그렇게 미치고 날뛰었다. 더 이상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 집요한 말들은 하나하나가 맞는 말이기에 진실을 덮어두려는 마음으로부터의 고통은 더했다. 켄버스 마저 사서 보내라고 동생에게 다급히 편지를 보냈던 자신, 레미의 그림을 모사 해놓고도 고겡의 비판을 악담으로 여긴 일, 성모의 그림을 보고 아늑히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 느낌, 하숙비를 아끼려고 그 지방에서 오래 산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사투리 연습을 한 자신, 5층집에서 힘겹게 아이를 기를 조 등이 머리에서 빙빙 어지럽게 맴돌았다. 온몸이 창피와 자책감으로 폭파 할 것 만 같았다. 쉴새 없이 여러 그림으로 변화하는 켄버스의 그림과 거기에 장단 마쳐 들려오는 그 굵은 목소리가 고흐로 하여금 그림을 화로로 밀어 넣게 한다.  
아침 햇살이 작은 창을 통해 고흐의 뺨을 비췄을 땐 집은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눈을 힘겹게 뜬 고흐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하룻밤 사이에 얼굴은 야위어 지고 수척해진 고흐는 타는 듯한 갈증을 몸으로 느끼며 물을 찾는다. 힘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고흐는 불 꺼진 화로에서 검게 타버린 악의 그림을 발견한다.
“퇫-” 마른침을 억지로 거뭇한 재위로 뱉은 그는 물 찾는 것 도 잊은 채 생명의 아침 공기를 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 온 것은 팔을 뻗치며 태양의 따스함을 받고 있는 측백나무의 푸르름 이였다. 산들바람에 기분 좋은 듯 살랑 살랑 잎사귀들은 흔들렸다. 그런 따스함을 반갑게 맞는 측백나무가 밉기라도 한 듯 아침이 찾아 온지 불과 몇 분 만에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이고 강한 바람은 검은 물감을 수채화에 뿌리듯 그렇게 먹구름을 하늘에 흩뿌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밀밭은 살려 달라 이리저리 흔들렸으며 측백나무의 잎사귀들은 겁에 질릴 듯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려야 해...”요웰 슈즈웨즈 성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고흐는 몸을 다시 트러 집으로 향한다. 고흐는 자신이 완성 못한 밀밭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친구 내가 떠난 줄 알았나?’ 화로에 재로 변했던 그림의 잿더미 잔해가 마치 까마귀가 날개 짓을 하듯 퍼득이고 있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릴 것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붓을 든 고흐는 꺼져 가는 화로에 불처럼 비틀거리며 목숨을 내주기로 결심한 듯 귓속으로 악의를 품은 속삭임이 들려와도 묵묵히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탕-” 째질 듯 한 폭음이 조용한 시골 마을을 뒤흔든다. 고흐의 손에 들려진 총은 집 주인인 라바에게 까마귀를 쏜다며 빌린 것 이였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라는 그림 옆으로 가슴에 총알이 박힌 고흐가 쓰러져 있다. 총알이 박힌 위치가 횡경 막 뒤쪽이여서 즉사 하지 않았으며 그로인해 탄환 척출이 또한 불가능 하였다. 더 이상 갈증도 미칠 것 같은 마음도 없었다.
“이제 자유로워지는가...” 파란 하늘이 자신을 받아 줄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가없었다. 집요한 울음은 총을 맞고 쓰러진 고흐에게 다음은 너에 동생 차래라고 이틀 동안이나 외치고 있었다.



1961년 7월 2일 새벽 2시, 나무로 만들어진 벽장시계의 황금추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던 헤밍웨이는 더 이상 아침을 못 볼 듯한 사람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묻고 의자에 앉아있다. 시계 옆에는 그림 몇 점과 자신이 사냥에서 잡은 사슴 박제머리가 보인다. 고개를 들기가 무섭다. 울고 있는 그가 그림 안에서 더욱 자신을 침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무거운 아령을 단 듯이 고개를 힘들게 드는 헤밍웨이는 애써 그림을 외면했다. 벌써 몇 시간째 혼자 타자기가 쳐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한 그는 일정한 타자 속도에 따라 고개를 돌리며 읽어 내려간다.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인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오른쪽 눈을 실눈으로 하곤 먼지가 뿌옇게 싸 인 타자기를 처다 본다. 마치 유령이 피아노를 쳐가듯 한 자 한 자 혼자서 타자기는 그렇게 글을 찍어내고 있었다.

                    -우간다에서 넌 부인과 같이 죽었어야해!-

우간다 얘기가 나오자 눈을 지그시 감는 그였다. 죽다 살아난 비행기 추락사고였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웃음이 나온다.
“흐흐..”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엽총 노리쇠를 만지작거린다. 이내 눈을 돌려 창 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히 껴있었다. 밖의 경치를 구경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타자기는 탁탁 소리 내며 글을 쳐 내려 간다.

       -헤드리 리처드슨, 폴린 파이퍼, 마서 겔혼 그리고 마서 겔혼, 메어리 웰시-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아름다운 추억들의 이름들. “그래 그들 모두와 아프리카 여행을 갔었지, 그놈에 이질도 걸려보고 말야” 덥수룩한 하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여인들과의 회상에 젖는 그였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바라본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타자기를 쳐다보며 말한다. “부탁이내 조용히 타자를 쳐주게 2층에서 아내가 자구 있다구.” 누구의 방해도 받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타자는 멈추어 졌고 필기체의 글씨가 종이 위에 신들린 듯 써진다.

              -자넨 더 이상 자루에서 꺼 집어낼게 없는 빈 자루와 같다내-

다시 덥수룩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침울하게 고개를 떨 군다. “그러게 말이야 위험한 여름이나에 마지막 작품이 될 거 같아,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가 없네. 나도 이제 갈 때가 된 거지.” 그에 체념하는 말투가 끝나기 무섭게 타자기는 다시 글씨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 버 지-

다음 글을 읽으려 기다린 그의 눈엔 그 한 단어에 의해 눈은 커졌으며 목은 칼칼해 지고 눈시울이 젖는다. 엽총에 훵 하니 머리가 뚫려 자살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덧 투명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아버지! 흐흑...” 두 눈을 감았을 땐 눈물이 떨구어저 그의 손에 서 흘러 내렸다. 아버지라는 말을 대뇌인 뒤 아버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그였다. 그의 코끝에선 소독약 냄 세가 나는 것 같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을 질료 하시는 아버지, 시간 나면 자신을 미시간의 별장으로 데려가 낚시 줄 끼는 방법과 미끼를 거는 방법을 잔잔히 말없이 흘러가는 물위에서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남자는 사냥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사냥법과 총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인자하신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님의 웃는 얼굴이 기억나는군, 선물로 내가 집필한 해는 또다시 떠오른 다를 드렸을 때 말이지.” 웃는 그의 모습이 역겹기라도 한 듯 정신없이 알파벳이 새겨진 쇠와 잉크에 의해 글이 처내려 간다.
  
                         -자 살 자 살 자 살 자 살 자 살..........-

타자기는 고장 난 것 마냥 계속해서 자살이라는 글자를 또박또박 쳐 나가며 종이를 매우고 있었다.
“그마-안!” 어금니를 꽉 문 그는 타자기를 있는 힘껏 창문으론 집어 던지곤 이내 엽총을 집었다.
“탕-” 화약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기 전 깜짝 놀란 그의 아내 웰시가 황급히 뛰어 내려 왔다. 얼마 전 비행기 프로펠러로 뛰어들려는 남편의 모습이 회상되었다.
“오! 하느님.” 머리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피는 방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화약 냄새가 방안에서 가실 때
즘에는 한 그림이 바람과 같이 살아졌다. 헤밍웨이의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그림은 그렇게 사라진 것 이였다.  



-“아빠 죽는 게 힘들어요?” “그건 아주 쉬운 일이란다.”-
                                                   헤밍웨이의 첫 소설 중



2. 심령사          


1995년 6월 28일 따스함이 묻어나는 거리의 아스팔트 아래로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안내양의 목소리가 경고음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빠-앙-” 검은 터널 안을 라이트로 비추며 바람과 먼지를 안고 달려오는 전철, 운전사는 신경질 적으로 안전선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은혜를 쏘아본다.
‘어딜 가나 차가워 사람들의 시선... 뛰어 내릴까?’ 혼잣말로 주절거리는 은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최근의 일련 사건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어머니의 행동이 그러하다. 자신을 무속인 집에 다짜고짜 끌고 가서는 굿판이 벌어 진 곳에서 징이며 꾕가리 북소리를 듣게 하는 것 이였다. 그런 것들보다 더욱 은혜를 괴롭히는 것은 무서운 무속인의 얼굴 이였는데 두 눈썹은 마치 귀신이 땅겨 올린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켜졌으며 소에 눈을 연상시키는 큰 부리부리한 눈은 흰자를 보이며 무섭게 자신을 훑어보았다. 쥐잡아 먹은 듯 한 붉은 입술을 가늘게 파르르 떨며 주문을 외는 그 무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시계를 보니 그 시간이 왔다. 그녀가 마음의 위안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곳. ‘바보 같은 생각 그만두자’ 은혜의 몸은 어느 세 출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전철역 앞 공원 벤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밴치에 홀로 앉아있는 민국을 본 은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저 때문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정색을 하는 민국은 은혜의 얼굴을 살핀다. 얼굴에 어둠이 짖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디 불편하신 대라도 있나요?” 고개를 떨구는 은혜는 무겁게 입을 띠었다. ‘제가 꼭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은혜의 말에 놀라는 민국이였다.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대학 켐퍼스는 어떤 가요? 전 대학  이라는 곳을 한번도 못 가봐선...” ‘고등학교보단 자유롭죠 뭐.’ “무얼 전공 하셨다고 하셨죠?” ‘미술이요.’ “와 그럼 그림 잘 그리시겠군요?” ‘그리는 것보단 보는 것을 좋아해요.’ 민국은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은혜와의 대화내용을 간추려 적고 있었다. 민국은 검지 두 마디가  없었으므로 중지와 약지 사이에 볼팬을 끼고 글을 써 내려갔다.
‘뭘 그렇게 적으세요?’ “은혜씨와의 만남 이렇게 자료를 남깁니다.” 민국이 유난스럽다고 느끼는 은혜였다. 마이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민국의 손은 다시 라이터를 찾기 위해 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담배 몸에 안 좋은데 끊으세요.’ “네.” 은혜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저 담배 한 대만 얻어 피웁시다.”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걸어온 노숙자는 민국을 이리 저리 훑어본다.
“여기요.” 때에 절은 시커먼 두 손은 그의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낸다. 노숙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로 궁시렁 대기 시작한다. “멀쩡하게 생겨 자지고 혼자 얘기 하 내 그려.”

민국과 해어진 은혜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나침반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거니와 더욱이 자신을 그 무속인 집에 데려갈 엄마를 떠올리자 도저히 집으로 향할 수 가 없었다. 민국과의 대화 중 대학 캠퍼스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 은혜는 학교로 발길을 돌린다. 낮에 그 활기찬 켐퍼스는 어둠이 내려앉자 반딧불의 그것처럼 건물에  듬성듬성 불빛을 드리운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민국은 온몸이 땀으로 덮여있었다. “또 그 꿈이군!” 손에서 질퍽히 흐르는 땀을 이불에 문대는 민국은 이번 꿈만은 자신이 꿈꾸었었던 그 어느 꿈보다 더 오래 춤을 추었고 국화꽃도 더욱 만발하였으며 아예 한 건물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음을 상기하였다.
"S자라...“ 기억을 더듬어 무엇을 봤는지 더 많이 기억하려 한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민국은 큰 사건이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하얀 국화꽃 사이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약2년 전에 국화꽃 다리에서 춤을 춘 그는 다음날 성수대교 붕괴 현장을 목격하게 됐고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이러한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자신의 알 수 없는 병을 고치고 심령사진을 찍기 위해 산을 찾은 후부터였다. 산을 타면 암이라든가 많은 병들을 고칠 수 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고 인적이 드문 산이라면 심령사진을 어렵지 않게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였기 때문 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신을 다지려는 이유는 자신을 억누르고 짓눌렀던 공포감이 산에서 심신을 단련 한다면 누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공포감은 문득문득 급습 적으로 찾아오는 것 이였는데 아기인 자신에게 온화한 얼굴로 다가와 젓을 물리려던 여자가 느닷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것 이였다. 그것이 귀신인지 아니면 자신이 납치당했던 어린 시절의 한 부분 이였는지 민국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정토...“ 민국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속리산은 여름임에도 쌀쌀함이 느껴졌다. 산을 오를수록 가로등 불빛보단 달빛에 의존해야 했다. 산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는 마치 아기의 울음소리 같아 기괴했다.
”으악!“ 고개를 쳐든 민국은 눈앞에 나타난 하얀 물체를 보자 기겁하였다. ”자넨 무엇 때문에 혼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건가?“ 손으로 쓸어내릴 수 있을 길이의 흰 수염과 늘어뜨린 흰 눈썹 거기다 흰 백발이다 보니 민국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개마저 자욱하게 낀 새벽 산이지 않았던가. ”사.. 사람이요?“ ”하하하 난 정토라고 하오.“ 쩌렁 쩌렁 산을 울리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국은 그의 모습을 뜯어보았다. ”사진을 찍는게 저에 직업입니다“ 얼떨결에 대답을 한 그는 그가 어떻게 자신이 심령사진사 라는 걸  알았을까 하고 생각하며 목에 건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업이라...“ 마치 수염 자랑이라도 하는 듯 흰 수염을 쓸어내리는 정토는 민국의 어깨를 유심히 보았다.
“혹시 귀신이 잘 출몰하는 데를 아시나요?” 도인 같이 생긴 그라면 알 듯 하였다. “먼데서 찾지를 말게 오랫동안 자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처녀 귀신이 있지 않는가!” 흠칫 놀라 자신의 양어깨를 번갈아 살피는 민국 이였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자네의 눈은 아직 음과 양의 이치를 모르고 있네,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허귀와 이승을 떠도는 원혼만을 볼 수 있는 거라네!” 정토는 두 팔을 조용히 들더니 하늘에서 무언가를 그리듯 손을 돌리자 구름이 그의 손 움직임에 맞추어 어두운 새벽하늘에서 따라 움직였다. 빙빙 도는가 하면은 멀리 퍼지기도 하며 솜사탕처럼 구기기까지 하는 정토였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어깨 결림부터 잦은 구토와 식욕부진 소화 불량과 침울함 등등의 잔병들은 민국을 말라가게 만들어 가끔 그의 마른 체형을 뒤에서 보곤 사람들이 여자로 착각까지 하기도 하였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붙은 이 처녀 귀신 때문에 병이 기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자 꼭 두 눈으로 영의 세계를 봐야겠다고 느꼈다. “어떻게 하면 귀신을 볼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이 아니라 왜 귀신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고민에 빠진 민국이였다. 단지 심령 사진을 돈으로 사는 사람이 있어서 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이른 새벽에 담력 좋게 산에 홀로 오른 거로 봐선 굳은 결심을...” “정토님! 저에게 귀신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어떻게 하면이 아니라 왜 봐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입을 질끈 물은 민국은 대답한다. “제 업입니다.”
  
민국의 속리산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약은 없었다. 무거운 정토의 입에선 하산이란 단어가 몇 백 년이 흘러도 안나올 것 만 같았다. 정토는 동굴에서 살았지만 나름대로 방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명은 감히 그의 발끝에도 접근을 못하여 전기나 화장실은 없었고 담요나 배게 같은 것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겨울에는 어떻게 추위를 견디며 살았을지 민국은 정말 의아해 했다. 사방은 돌과 돌의 집합 이였다. 방 내 귀퉁이에는 선천팔괘방위도, 후천팔괘방위도, 선천팔괘차도, 후천팔괘차도라고 한자와 태극기의 건 곤 감 이 같은 검은 선이 여덟 방향으로 하얀 창호지에 각각 적혀지고 그려져 있었다. 민국은 태극기의 검은 선들을 떠올렸다.
“신시는 오행의 금에 해당 하네 우리의 몸 오장육부도 오행사상과 연계가 되어있어 신에 해당하는 금은 장부가 폐이므로 신시에 폐 기능이 최고조에 달하니 산을 뛰어다녀 정기를 폐 속으로 끌어 드려야 하네.” 신시에 산을 뛰는 것과 귀신을 보는 것 그리고 음 과 양의 조화를 아는 것이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벌써 그의 귀는 정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토의 말에는 거역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반대로 신 폐 기능이 가장 저조한 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정오라네, 금을 극하는 오행이 바로 화이기 때문에 이 시에는 소주천을 행하여 몸을 하나로 통일하게.” 정토는 음과 양이라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며 낮이 있으니 밤이 있고 하늘이 있으니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니 여자가 있는 것이라 말했다. 또 정토는 지구라는 땅과 나라는 관계를 혼연일치로 보고 둘이 아닌 하나로 생각하라 가르쳤다. 흔히 과학에서 배우는 지구는 하나에 죽어 있는 돌로 우주 공간에 회전하는 물질 덩어리라고 설명 하지만 정토가 말하는 지구는 자신의 생명과 혼이 깃들어 살고 있는 몸뚱이라 말하였다. 그러한 이치를 막연하게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었고 구체 적 이였다.
365 기혈에 의해 생긴 1년의 365일, 인체의 수분이 70이듯 지구도 바다가 70을 차지, 우주에 5운 6기와 지구에 5대양 6대주는 소우주인 인체의 5장 6부와 같으며 아홉 개의 행성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있듯이 인체에도 9개의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자전 공전 주기가 인간의 맥박과 같으며 우주에 태양이 있듯이 지구엔 핵의 뜨거움이 있으며 지구가 기울어져 있든 인체의 심장 또한 왼쪽으로 기울어져있다는 것 이였다.
정토의 배움이 깊어 갈수록 음 과 양이라는 것에 대해 한 발작 더 다가감을 느꼈다. 수행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전이라는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열기는 민국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특히 소주천을 행할려 가늘게 숨을 고를 때면 자신의 몸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았다. 그제 서야 추운 한겨울에도 왜 담요가 필요 없는지 알게 되었고 산은 하나에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기운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기 공부 또한 있었는데 도덕경이니 삼강오륜이니 하는 것들은 그런 대로 이해가 갔으나 식단을 외우게 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쫄쫄 굶고 오로지 무념무상의 명상에만 몰두하였으며 화요일은 마음을 다스리는 음식 콩, 자도열매, 부추, 박하차, 창포차, 연뿌리, 달걀, 소백, 양고기, 건포도, 벌꿀, 돼지 심장을 먹었으며 수요일엔 비뇨 작용을 관장하는 음식인 닭고기, 복숭아. 파, 콩, 돼지와 닭 그리고 양의 신장, 흑두, 녹용, 메추라기, 다시마, 석남화, 숙지황, 백자인, 수박을 목요일엔 간과 쓸개 그리고 신경작용에 좋은 멥쌀, 쇠고기, 대추, 생강, 밀감피, 참깨, 자도열매, 파, 부추, 파파이야, 사과, 토마토, 홍당무, 자라, 갱조개, 닭, 오리, 돼지, 소의 간장, 벌꿀, 쌀로 빚은 엿, 배추, 레몬을 금요일엔 폐, 대장 , 호흡, 배설 작용을 좋게 하기 위해 메밀, 닭고기, 파의 하얀 부분, 밀, 양고기, 자도열매, 매실, 우유, 달걀의 흰자, 돼지의 허파, 땅콩, 물고기의 허파, 생강, 살구, 백합, 바나나, 마늘, 염교 그리고 토요일엔 위, 비, 소화 흡수 작용에 좋은 콩, 돼지고기, 밤, 멥쌀, 대추, 쇠고기, 감, 메밀, 벌꿀, 뱀장어, 미꾸라지, 율무, 닭과 오리의 통 구이, 돼지와 소의 위, 버섯, 땅콩, 찹쌀, 엿, 인삼, 만고, 파인애플, 마늘, 파, 밀감의 식단이었다. 이 식단은 어김없이 상으로 차려졌다. 피골이 드러났던 민국의 얼굴엔 혈색이 돌고 몸은 단단해 보이는 근육형으로 바뀌었다. 하얀 쌀밥이 그리울 법도 하였지만 기가 충만해지자 음식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식사를 할 때면 동굴에서 나와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그곳엔 정토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노파가 정토에게 깍듯이 대하는 것 이였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상을 꾸부정히 들고 오는 할머니의 상을 받아들며 민국이 말했다. “아흔 아홉!” “나이가 많으시군요” “말조심하게 정토님이 들으시면 섭섭하게 생각하시겠네” “설마 할머니보다야 많으시겠어요?” 민국의 의심어린 말투에 노파는 심경이 거슬렸는지 민국을 쏘아본 뒤 정토에게 다감스러운 눈으로 말을 건낸다. “정토님 이 젊은이는 그때 그 젊은이보다 기가 많이 모자른 것 같군요!” 민국은 의아해 했다. 자신말고 이런 훈련을 먼저 받은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누군가요?” 정토가 입을 굳게 닫고 있자 노파가 나서서 말한다. “아마 광석이라고 했었지, 그이는 기타를 들고 왔었다우” “광석...” 식어 가는 음식을 보면서 과연 광석이 누구일까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는 민국이였다. 마치 스님들이 식사를 하듯 민국도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갔다.
예고도 없이 민국의 눈엔 산에서 나무하는 귀신이며 멱을 감는 아낙 귀신 목을 매달아 죽었던 귀신 군복에 총알구멍이 숭숭 뚫린 군인 귀신 등 온갖 영들이 눈에 들어 왔다. 어깨 위에서 떨리는 잔잔한 진동과 무게감이 느껴져 민국은 말을 던졌다.
“이제 어깨에서 내려오시죠!” ‘제가 보여요?’ 먼지와 같은 가벼운 무게였지만 혼령이 자신의 어깨에서 내려오자 어깨가 둥 뜨는 것을 느끼는 민국 이였다. 민국은 퇴마 법이라곤 하나도 몰랐다. 오로지 정토가 시키는 데로 따르고 행했을 뿐이다.
“자, 이젠 저승으로 가셔서 편하게 지내세요.” ‘전 처녀 귀신이에요. 남자한번 못 안아보고 서러워서 어떻게 가겠어요. 전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될 거에요.’ 귀신의 그 말은 민국에게 정 내지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 다분하였다. “저는 이승에 살고 당신은 이미 죽었는데..” ‘아니에요’ 민국의 말을 끊은 그녀는 느닷없이 자신의 한복 저고리를 벗어 땅에 던져 놓았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자 두 손으로 수줍게 가슴을 가렸다. 고개를 숙인 민국 이였지만 하체에선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만 두세요” ‘자 이리로...’ 생각해 보면 자신을 말라가게 만든 장본인인 그녀를 안을 수는 없었다.
“저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등을 돌리며 자세를 가다듬고 가좌부를 튼 민국의 등을 껴않는 그녀였다. ‘음~ 음~ 음~’ 신음 소리를 민국의 귓불에 내며 이내 다리를 벌리고 눕는 처녀 귀는 자신의 음부를 노골적으로 보여 주었다. 산에서 수행한 후부터 정력의 기운이 넘쳐흘러 아침이면 자신의 하단으로 모든 것을 흡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였기에 민국에겐 그 신음 소리가 마치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애무하는 듯 하였다. 그녀의 달아 오른 욕정의 전라 몸과 달콤한 속삭임과 신음 소리에 민국은 아랫도리가 젖어 갔다.
“민국아!” 동굴이 쩌렁쩌렁 울리는 정토의 말에 비몽사몽으로 일어나는 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팬티에 넣어본다.
“윽!” 손을 들어 올리자 멀건 정액이 손을 타고 흘렀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민국에게 정토는 개울에서 씻고 오라고 말했다.
“이젠 네가 그토록 원하던 영혼도 볼 수 있는 기를 얻었으니 내려가 보거라.” 정토의 말이 섭섭하게 들렸다. “아닙니다. 더 머무르며 도를 쌓겠습니다.” “업!” 정토의 외마디에 민국은 아무 말도 할 수 가없었다. 자신의 업이기 때문에 산에 남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인데 지금은 혼령을 보고 대화도 할 수 있으니 업은 이룬 셈이었다.
“선몽이 있을 것이네 그리고 광석이란 자를 도와주게.” “네.” 민국은 다른 대꾸는 할 수 없었다. 무슨 선몽을 꾼 다는 건지 그리고 광석이라는 자가 누군지도...

늦잠에서 깨어난 민국은 리모콘으로 TV를 킴과 동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 냉장고 문을 연다.
“여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입니다.”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를 들은 민국은 순간적으로 어제 자신이 국화꽃 사이에서 덩실 덩실 춤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S자가...” 식탁에서 하얀 김을 내뿜는 하얀 쌀밥을 뒤로하곤 카메라를 집어 들고는 이내 밖으로 뛰쳐나가는 민국 이였다.
폭격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기분마저 드는 현장. 소방차 구급차 경찰 차 그리고 구조에 필요한 중장비 차들로 즐비해서 도로는 정지되었다. 구조견을 대리고 정신없이 구조하는 오렌지색의 옷을 입은 소방서 사람과 구경하러 나온 사람 취재하러 나온 사람까지 모든 시선은 삼풍백화점의 침식으로 눈이 모였다. 민국은 연신 카메라를 터트렸다. 심령사진을 담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어느덧 필름 2통을 다 채운 그는 말없이 현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당신을 안내하는 하얀빛이 있습니다.” 고요한 듯하면서도 자신에게 갈 곳을 안내해주는 민국의 목소리에 아련하면서도 달콤히 빠져드는 은혜였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피 흘리며 쓰러진 흑인 주위에 여러 대의 경찰차와 백인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어요.’ “흑인은 혼자 인가요?” ‘아니요,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하고 아스팔트에 엎어져 있는 흑인도 보여요. 총에 맞은 흑인은 결국...’ “죽나요?” 은혜는 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알 수 있는 은혜였기 때문이리라.
‘그 흑인은 지갑을 꺼내 경찰관에게 보여 주려고 한 건대...’ “오인 사살이군요.” ‘네.’ 은혜의 감정 변화가 심한 것을 느낀 민국은 다음에 이어 하기로 마음먹는다.
“제가 손뼉을 치 면 당신은 지금 현 자리로 돌아옵니다.  ”짝-” 은혜는 살며시 눈을 뜨며 민국을 바라본다. 간절한 눈빛 이였다.
‘저 오늘...’ “네, 말씀하세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괜찮아요. 말 하세요.” ‘오늘 여기서 자도 되나요?’ 민국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리고 속리산에서 겪었던 처녀 귀신과의 일이 생각났다. 자신이 좀 심한 부탁을 했다고 여긴 은혜는 최소한 여기서 더 머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냈다.
‘그럼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저 청소도 잘해요.’ 간절한 은혜의 목소리에 민국의 마음도 흔들렸다.
“좋습니다. 단 조건은 다른 사람들이 오면 자리를 피해 주시는 거 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은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문밖을 향한다.
“네, 여보세요.” 순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저 민국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천은 다급해 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흑인이 총에 맞아서 죽은 것 이외엔 별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실망하는 순천의 한숨이 전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흑인이 총에 맞아 죽은 것과 딸아이가 자살한 것이 무슨 관련이란 말입니까?”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신경질 적으로 내려 꽂는 순천 이였다. 그런 그가 서운하기도 한 민국은 한편으론 은혜 아버지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국화꽃으로 뒤덮인 한 호텔이 그의 꿈에 보여 전화를 한 통 건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E호텔의 사장과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아쉽게도 일하던 밸맨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유독 가스에 의해 숨을 거두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 많은 인명 피해를 불길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E호텔 사장의 소개로 순천을 만나게 된 민국은 그가 딸에 죽음을 석연치 않게 생각하며 애통해하자 자살 경위를 알아봐 주겠다고 한 것 이였다.
은혜의 자살은 순천에겐 머리위로 떨어지는 낙뢰와도 같은 소리였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대학 미술과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던 딸아이가 얼마 전 손목을 그어 그 피로 벽에 유서를 쓴 것 이였다. 거기에 목까지 매어 자살을 했으니 부모의 입장으로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 이였다. 부검의의 외 질식 소견에서도 보듯이 명확한 자살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멀쩡하던 애가 하루사이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인지 순천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유서에서 말하던 -검은 재가 되어 하늘을 나니 폭풍이 일었다- 라는 대목이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하는 일련의 혈서는 하나에 수수께끼처럼 보였다.



*자연과 합치하는 것이 많은 자는 살아남는 것이 좋고 그렇지 못한 자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다.-
           키케토





3. 토우봅 풔! (백인을 죽여라!)


“탕- 탕 탕탕탕탕탕” 7곱 발 모두 보비의 몸을 관통했다. 그중 첫발이 보비의 심장을 꾀뚤고 지나갔다. 보비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1000미터를 숨 안 쉬고 뛴 것처럼 피를 솟구치며 뛰었다. 그리곤 이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차츰 차츰 심장은 뛰기를 포기했다.
경찰차 위에서 빙 빙 도는 빨간 불빛과 헤드라이트 빛이 어두운 LA골목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크리스!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아!” LAPD라 쓰여 있는 경찰차에서 다급하게 뛰어나오며 크리스를 부르는 워든 경사였다. “젠장 이자식 지갑을 꺼내려고 한 건데.” 다른 순찰차에서 지원사격을 한 경관들도 피 흘리며 쓰러진 보비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엎드려” 스미스 권총의 차가운 총구가 보비의 친구 브라운 인중에 꼽히자 브라운은 바닥에 깍지를 끼고 엎드린다. “너 이새끼 가만히 있어!” 크리스는 브라운이 엎드린 것을 확인한 뒤 베레타 권총 한 자루를 순찰차에서 꺼내더니 이내 보비의 손에 쥐어준다.
“너 이름이 뭐야?” “브... 브라운입니다.” “브라운 좋은 이름이군! 잘 들어 네 친구는 불법 무기를 소지 했어 근대 LA의 평화를 위해 순찰 중인 우리에게 총구를 이유 없이 겨누었지 우리의 투항하라는 소리엔 상관없이 계속 총을 들고 위협했지.” 크리스는 땅바닥에 깍지 끼고 엎드린 브라운의 머리를 구두 발로 밟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 우리는 총을 쏘게 된 거야!” “네, 선생님! 네, 선생님!” 공포에 휩싸인 브라운은 친구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아스팔트 위로 살며시 부는 바람이 보비의 몸을 통과했다. 보비의 심장은 뛰는 것을 포기했다. 아주 기분 좋은 미풍이라며 보비의 혼은 웃음을 띄었다. 먼지가 바람을 타고 흐르듯 보비의 영혼도 시간을 타고 흘러흘러 어머니의 땅 아프리카로 떠나가고 있었다.

움흘랑가 갈대로 엮어서 만든 인듐바라는 점치는 어두운 방안에는 열 마리의 겁먹은 닭들이 방 한쪽 구석으로 몰려 있었으며 여섯 마리의 염소는 무언가에 놀라 눈에 불이 들어온 채로 꼿꼿이 서있었다.
“움타카티!(마녀!), 칼과 총은 백인의 것이야 넌 창을 이용해서 재물들을 받쳐!” “네!”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밤딩고는 아마늘로지(조상혼)를 위한 의식을 진행 중이였다. 그는 하얀 하이에나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소의 쓸개로 만들어진 모자가 씌워져 있었고 오른손엔 쇠꼬리가 들려 있었다. 방안은 이바스라는 염소의 지방을 햇볕에 바짝 말린 후 약초와 함께 짓이겨 환으로 만든 약재의 냄새로 가득했다. 들고 있던 쇠꼬리로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친 뒤 창을 든 그는 먼저 여섯 마리의 염소의 목을 하나하나 뚫어갔다. 피가 수도 꼭지에서 쏟아 나오듯 염소의 목에서 터져 나오자 그 피를 온몸에 바르고 마시는 밤딩고였다. 염소가 다 쓰러지자 몸을 웅크려 닭을 잡았다. 닭의 목을 물고 이리저리 흔들자 닭의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방안은 죽은 동물들 피로 질퍽해 져있었다.
“움흘라바 우야링가나.” 밤딩고는 바다를 건너 자신 쪽으로 향해오는 한 혼령이 레봄보와 모잠비코 위에 펼쳐진 평원을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토테미즘을 기반으로 한 신앙으로 한국에 무속 신앙이 있다면 남미엔 부두교가 그리고 아프리카엔 상고마 신앙이 있다. 백인 의사들은 상고마 신 내림 현상을 팰라그라의 질병과 연관 시켰다. 옥수수에만 의존하는 식 습관으로 인해 비타민 B의 구성요소인 니아신 결핍으로 피부질환과 신경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 이였으며 그 신경질환이 신 내림으로 변이 되었다는 것 이였다.
어머니의 땅에 도달한 보비를 처음 맞이해 준 것은 사바나에 초원 이였고 그를 환영한다며 팔 벌리고 서있는 키 작은 관목림도 보였다. 가젤은 한가로이 풀을 뜯으면서도 언제 출몰할지 모를 포식자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한시도 풀지를 않았다. 시간을 타고 더 흘러가자 광활한 사탕 수수밭의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사탕 수수밭은 보비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달콤함 뒤엔 당신들 흑인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어둑한 밤이 오자 보비의 눈엔 모기를 쫓기 위해 마른 바오밥 통나무를 태워 연기를 내는 여자가 보였고 그녀 뒤로 인듐바(점 집)가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으으으으윽” 샤야 은다오(혼령)가 밤딩고의 몸으로 들어갔다. 밤딩고는 저체온 증에 거린 사람처럼 떨었다.
“아흐-살라키움-살라암!” 정중히 보비에게 인사하는 밤딩고 몸에 실린 은다오 영 이였다. ‘말라키움-살라암’ 보비 또한 정중히 인사를 했다.
보비는 브로드웨이의 거리 악사로 색소폰 연주를 하며 살았다. 코란이나 아랍어를 한번도 본적이나 들은 적은 없지만 영혼으로 시간을 타고 공간을 이동하게 된 이 시점에선 이승에서의 지식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피로 뒤범벅 이 된 밤딩고는 콰콰북을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북소리는 바다를 건너고 광활한 대지를 건너 지쳐있는 보비에게 강한 힘을 불어 넣어줬다. 신이 난 보비를 본 은다오 혼령은 이내 클레커(동물 뼈를 넣어 소리 나게 하는 악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400년 동안 억눌리고 유린당한 우리 흑인들의 삶, 분노의 악이 증오와 함께 당신의 영원에서 폭발하리라!” 밤딩고의 입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고 말할 땐 피 거품이 일었다.
“자 나를 따라오게.” 은다오가 밤딩고 몸으로부터 빠져 나오자 밤딩고는 땅에 쓰러졌다. 온몸의 에너지를 다 소비한 것 같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또 한 분 모시고 가셨군...” 밤딩고는 예전에도 여러 혼령을 은다오와 만나게 해줬던 것처럼 말하며 축 늘어진 몸으로 누워서 웃음을 지었다.

1847년의 비극이 영사기를 틀 듯 시간과 공간 속에 떠있는 보비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 이였다. 하늘의 파랑을 닮은 바다는 한 척의 배 고집에 못 이겨 배가 물살을 차고 나갈 때마다 파란 바닷물을 허옇게 내뿜는다.
귀가 잘려 피를 흘리는 흑인은 자신의 잘린 귀를 갑판 위에서 씹어 먹고 있었다. 얼굴이 U자형 판화 칼로 고무판화를 판 듯 얼굴이 파져 있는 것으로 봐선 그는 윌로프 부족이였다. 레이먼드는 말 안 듣는 흑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채찍으로 때려도 안 된담 인두로 지진다. 그렇게도 안 되면 칼로 신체의 일부를 하나 씩 하나 씩 자르는 것 이였다.
“자 이쪽도 씹어 먹으라고.” 다른 한쪽의 귀마저도 칼로 자르는 레이먼드는 고통을 호소하는 고함을 기대하지만 어금니가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꽉 문 윌로프 부족 전사의 입술에선 그 어떤  소리도 밖으로 내지 않는다. 다른 부족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고통 어린 표정을 보여선 안 된다는 윌로프 부족의 법 이였다.
배 안에는 윌로프 부족 말고도 만딩카 부족과 세레레 부족도 같이 타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타고 가는 배는 노예선 이다. 가난한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납치해 부자 백인들에게 파는 것으로 흑인 여자보단 노동하기에 적합한 남자 흑인을 원했고 아이보단 노동의 가치가 있는 성년 흑인을 원했다. 그렇다고 노예 선이 전부 건장한 흑인 청년으로만 차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예 선으로 끌려가는 손자, 아들, 오빠, 형, 남동생을 차마 홀로 이 못 보내 배에 같이 올라탄 가족도 꾀되었다.
레이먼드는 귀를 씹어 먹으면서도 살려 달라 애원 한번 안 하는 이 흑인이 몹시 미웠다.
“퍽-” 레이먼드는 두 귀를 잃고 정신이 나간 흑인의 왼 손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어도 역시 소리만은 지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여러 부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천둥을 쏘는 막대기(총)만 없으면 우리도 충분히 저들을 쳐부술 수 있어!” 머리가 흰 만딩카 부족장 노인이 총을 보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들의 손목과 다리엔 굵은 쇠사슬이 족쇄와 함께 채워져 있었으며 백인들의 총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켑틴! 나 이것하고 재미 즘 봐야 겠어!” 허리를 들쑥날쑥 흔들며 레이먼드를 쳐다보는 윌리였다. 윌리의 손엔 일곱 장마철을 지난 소녀가 들려 있었다. 달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들 부족은 몇 장마철을 지났느냐를 따져 나이를 헤아리곤 하였다.
“아빠!” 아이는 공포에 휩싸여 귀가 잘려나간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더 이상 윌로프 부족의 법 따윈 필요가 없다. “어억!- 우- 엌!엌!엌!-” 마치 비비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흔들며 미쳐 날뛰듯 하였다.
아이의 손엔 목각 인형이 들려 있었다. 다섯 번째 장말 철 아버지가 바오밥 나무를 깍 아 만든 인형 이였고 아이는 어디를 가나 그 인형을 소중히 들고 다녔다.
아이를 갑판 위에 내팽겨 치자 목각 인형은 아이의 손을 떠났고 정신을 잃은 아이는 곧 있을 허연 동물의 능욕에 아름다웠던 꿈들을 짓밟힌다. 윌리는 앞 이빨이 다 빠져있어 혓바닥을 낼름 거릴 때면 마치 간사한 뱀처럼 보였다. 담배에 찌든 그는 들숨을 쉴 때도 고약한 썩은 냄 세가 입에서 났으며 겨드랑이에서도 돼지 타는 냄 세가 진동을 했다. 태어나서 이빨이라곤 한번도 안 딱은 듯한 그의 누런 이를 보고 있자 면 역겨워 지기까지 하였다. 허연 악마의 몸이 어린 소녀를 덮쳐 능욕하는 것을 보고도 잠자코 침묵만 해야 하는 각 부족들은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백인의 배 밑에 깔려 처녀성을 잃어 가는 자신의 딸을 보자 아이와의 추억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머리를 가눌 줄 몰라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의 고개가 생각났고 눈과 눈을 마주칠 줄 모르던 순수한 아이의 눈빛 또한 그의 머리에 떠올랐으며 아이의 생일 선물로 목각인형을 깍 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윌리의 희멀건 정액이 아이의 가슴위로 뿌려지자 그는 쾌감에 휩싸인 소리를 지르며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으아아악!” 손등에 꼽혀있던 칼을 뽑아든 그는 칼날을 윌리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였다. “도려내리라 너에 심장을 이 칼로 도려내리라!” “탕-” 불을 내뿜는 막대기에선 허연 연기와 불꽃이 튀었고 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은 총탄과 함께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으악!” 두 귀에선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고 칼을 들고 있던 오른손은 형체도 없이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어떤 놈이든 움직여 보라고.” 레이먼드의 이 말 한마디에 영어를 못 알아듣는 그들 이였지만 모두들 주눅이 들어 숨을 죽였다. “햄머 갖어와!” 돛 대 앞에 서있던 나이가 제일 어린 제임슨을 보며 레이먼드가 지시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제임스는 좋아라 하고 햄머를 전한다. 레이먼드는 나무로 된 헴머 손잡이를 잡고선 이내 피 흘리고 기력 없이 쓰러진 그의 머리위로 내려친다. 묵직한 햄머가 그의 얼굴에 닫자마자 하얀 이빨은 총알 파편이 튀기듯 사방으로 튀었고 그의 얼굴은 못 알아 볼 정도로 뭉그러졌다. 아버지의 죽음도 모른 체 바로 옆에서 기절해 있는 딸의 발가벗은 모습이 보였다. 한번만이라도 딸아이를 업고 강을 구경하고 싶은 그였지만 온 몸은 걸레 조각처럼 되어버린 이 순간 단지 아이의 목숨만이라도 끝까지 살아 남길 바랬다. 칼과 총 그리고 햄머로 난도질당한 몸은 아프리카 땅에선 윌로프 부족 전사였으며 한 아이의 아빠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어 거친 바다에 던져 진다. 바다에 빠지자마자 피 냄 세를 맡은 상어들이 삼각 등지느러미를 수표 위로 보이고선 뾰족한 톱 이빨로 그를 덥썩 물곤 깊은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노예선 갑판 아래엔 3구역으로 나뉘었다. 죽어 가는 흑인들을 모아둔 곳, 상품 가치가 있는 젊은 흑인들을 모아둔 곳 그리고 늙은 여자와 아이를 모아둔 곳 이였다.
백인들이 갑판아래 흑인들을 보러 들어 갈 때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식초가 가득 담신 물통에 넣어 수증기를 발생시키며 얼굴엔 수건이나 옷가지를 두루 고 들어갔다. 쇠사슬로 묶어 놓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들은 똥오줌을 앉은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배설물과 구토가 쌓이는 만큼 이와 쥐들이 번식했다. 코엔 코딱지가 가득 앉아 입으로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으며 햇볕을 너무 오래 못 쐬어 피부에선 곰팡이들이 피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으로 튀는 이들은 매일 수천만 마리씩 오물과 똥에서 증식을 하였으며 죽은 시체를 파먹는 눈이 뻘건 쥐도 보였다.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병이 생겨 죽어 가는 흑인들이 늘어갔다.
“켑틴, 이 녀석도 비실 거리는 데요.” 레이먼드는 쇠사슬로 묶여있는 흑인을 발로 툭툭 차며 반응을 보고 있었다. “안되겠어 이질이야 모든 깜둥이들을 전부 갑판위로 집합시켜!”
괴혈병과 펠라그라 그리고 이질이 주된 원인으로 흑인들의 목숨을 아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면역력이 약한 몇몇 백인도 죽었다. 레이먼드의 눈은 마치 돈에 눈 먼 유태인의 눈처럼 시장에 팔 흑인들이 몇 명 정도 되나를 계산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자, 우리가 너희 노예들을 위해서 직접 청소를 해줄 것이다. 그러나 전부다가 청소된 너희 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백인들이 거품을 일으키며 바닥을 청소하는 동안 레이먼드 손가락은 생사의 갈림을 결정짓고 있었다. 제임스는 레이먼드의 손짓에 따라 족쇄를 풀며 사람을 불리하기 시작했다. 오른 편엔 건장한 젊은 흑인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청소가 끝나는 대로 오른 편에 서있는 너희들은 갑판 아래 너희 깨끗해진 방으로 들어간다.”
왼편으로 눈을 던진 레이먼드는 병들어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흑인들을 보며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윌리엄이 능욕하였던 일곱 장마철을 보냈던 소녀도 보였다. 소녀의 두 손엔 목각인형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씩 뱃머리 위에 서라!” 고열과 다리 붓는 병에 걸려 일어날 힘도 없는  흑인들은 백인들이 바로 바다로 던져 버렸다. 뱃머리에 서게 하는 건 자비에 가까웠다. 쇠사슬로 두 명씩 칭칭 감는 제임스는 인육의 맛을 보고 지느러미를 수표면 위에 올려놓고 따라 오는 상어들을 웃으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바다 속에서 상어들에게 뜯겨 먹히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한 병든 흑인들은 저항의 기색마저 없었다.
“켑틴! 저 꼬마는 나한테 맡겨!” 윌리가 바다에 던져질 아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공짜는 없어!” “어차피 공짜로 얻은 것들이잖아 나한테 돈 받아야겠어!” 레이먼드는 장총으로 윌리의 미간을 밀었다. “너도 바다에 뛰어들래?”
아이는 샌드위치라고 하여 성인 두 명 사이에 끼여 바다에 던져 졌다. 아이의 손엔 목가인형이 꼭 쥐어져 있었다.
그 날 밤 살아 남아있음을 치욕으로 여긴 모든 흑인 노예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토우봅 풔! 토우봅 풔! 토우봅 풔!”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악- 악-’ 보비의 외침이 천둥과 번개로 변하여 바다에서 그렇게 뿌려지고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브라운은 브로드웨이 거리에 스케치 북과 화가용 연필 그리고 한동안 열지를 안아 말라붙은 물감이 보이는 파렛을 놓고 멍한 시선으로 자신의 맞은편에서 섹소폰을 불었던 거리의 악사 보비를 떠올렸다. 연필을 들어 스케치에 들어가는 브라운은 자신이 보비를 보고 그리는 것인지 아니면 상상해서 그리는 것인지도 모른 체 손을 분주히 움직여 보비의 모습을 켄버스에 그려 넣고 있었다.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섹소폰을 부는 보비, 그의 뺨을 타고 투명이 흘러내리는 눈물, 째즈는 흑인의 음악이라는 듯이 그림은 그것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길거리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곤 상상도 못할 생명력을 가진 그림 이였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은 브라운의 주위로 하나 둘 구경 꾼 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되는 소리를 못 듣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브라운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며 온 정신을 켄버스 위에만 집중을 시켰다. 이내 그림이 완성이 되자 한 소년에게 말없이 그림을 주었다. 엄마에 손을 잡고 있던 소년은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림을 엄마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가댄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지갑을 꺼내던 아이의 엄마는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꽂는다. 한여름의 더운 열기를 식혀줄 한줌의 바람과 함께 보비는 브라운의 곁에 서있다. 보비는 자신이 쉴 곳을 알았다. 그 곳은 바로 브라운이 만들어준 그림 이였다.  




*우리가 자살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저세상에 대한 괴로움과 두려움. 정신적으로 짐승의 차원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인간들이 불멸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면 자살은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내가 어디에도 종속되어있지 않고 나의 새롭고 엄연한 자유를 확인해 보이기 위해 자살을 하려 한다. 부산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합당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깊은 사고 끝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
                                         도스토예프스키



4. 둘리 비디오방 살인 사건



1995년 8월 14일,  노량진 경찰서 앞엔 2열로 의경들이 서있다. “째 쟁 쟁-” 원만은 자동적으로 창문 밖을 쳐다본다. 사복을 입은 제대 의경의 손에서 잔돈 50원짜리 뭉치가 뿌려 졌다. 동전을 뿌리는 건 노량진 경찰서의 전통이 되었다. 저들 의경들처럼 노량진 경찰서에서 방범 순찰과 대모를 막으며 제대한 원만 또한 자신의 제대 때도 그렇게 동전을 뿌렸었다. 동전을 정신없이 줍는 후임 병을 뒤로하고 도망가듯 경찰서를 나가는 것이다. 안 그러면 원한을 품은 상경이나 일경들에게 일명 축하 빵이라는 매를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 이였다. “운 좋은 놈.” 피식 웃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원만이다. 내일이 8.15니 운이 좋은 기수였다. 육군으로 따지자면 전쟁 일어나기 하루 전에 제대하는 것이 아닌가. 원만의 8월 15일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낸 슬픈 날이다. 같은 기수이자 중학교부터 친구인 민철이가 죽은 날이기도 하였다. 자신이 의경을 지원 입대하자고 꼬셔 같이 입대한 민철이지 않았던가.  
“내일이 15일 이군...” 힘없이 말을 던지며 생각에 잠기는 원만 이였다.

“상계 대형으로! 상계 대형으로!” 제대를 코앞에 둔 수 하나 무전은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 위에서 마이크와 연결된 확장기를 들고 의경들 대형을 지위 한다. 두꺼운 진압 복을 입은  수천명의 의경과 전경들은 각 경찰서의 수하나 지휘에 따라 방패 와 진압 봉을 들고 일사분란 하게 움직였다. 움직이는 그들 머리위로 돌맹이와 화염병이 마구 쏟아졌다. 화염병을 맞아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의경은 불이 붙은 방독면을 벗으려 하자 방독면의 고무가 불에 녹아 얼굴에 눌러 붙어 고통스러워하였고 쇠파이프에 맞아 헬멧이 반으로 쪼개진 의경의 머리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간이 소화기로 동료의 몸에 붙은 불을 끄는 원만은 지옥의 불길 속에 뛰어든 기분 이였다. 화염병과 돌을 투척하는 그들 대학생을 보고 있자니 저들도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원만이였다. 이념이니 정권이니 하는 붉은 깃발의 글들은 전‘의경에겐 아무 의미도 뜻도 없었다. 단지 살아서 이 지옥 같은 곳을 나가고 싶을 뿐이였다.
“저 자식들 죽여야 겠어!” 피 흘리며 정신을 잃고 풀썩풀썩 쓰러지는 신임 병들을 보자 분노에 치를 떠는 수경 승민 이였다. 최루탄 총을 거꾸로 뒤집은 뒤 둥그런 노리공을 빼 내 직격탄을 쏘는 승민 이였다. 장총같이 생긴 최루탄 총은 45도 이상 시에만 유탄이 발사되나 노리 공을 빼면 직격탄을 날려 흉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승민 이였다. 승민의 직격탄을 맞았는지 한 대학생이 눈을 부여잡곤 이내 쓰러졌고 그를 부축하며 학교 교실로 들어가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방독면을 써도 장갑차 같이 생긴 검은 차에서 쏟아 붓는 체류 탄 때문에 눈물 콧물이 주르르 흘렀다.
“전원 후퇴! 전원 후퇴!” 피해가 심하다는 것을 안 소대장이 수 하나에게  다급히 지시를 했다. 무전을 잡은 수 하나는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선두 대열을 인솔해 나오고 있었다.
“옆을 봐!” 학내를 진입하다 실패한 부대를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방순대(방범 순찰대)와 타격대가 숨어있던 대학생들에게 둘려 쌓이게 되었다. 고립된 대학 캠퍼스 안에 전‘의경을 대학생들이 헬멧을 벗기며 쇠파이프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플라스틱 진압봉은 쇠파이프 앞에 나무젓가락처럼 힘없이 뚝뚝 부러 져 나갔으며 방패도 대학생들 손에 넘어갔다.
“250부대와 1191부대가 갇혔습니다.” 수 하나는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소대장의 무전기는 각 중대별 소대장과 대대장 무전기로 연결돼 있었다.
“독수리 작전이다!” 이 말을 던진 소대장의 얼굴은 의미심장했다. 마침 부산과 광주에서 기동 타격대가 지원 나왔다. 여러 대의 닭장차(진압버스)안에서 수백 명의 전의경이 완전 군장에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수적으로도 자신들이 우수해 보였는지 소대장은 독수리 작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교 옥상에서 돌맹이를 던지는 대학생을 잡기 위해 방패를 머리위로 들어 떨어지는 돌을 막고 계단을 올라가 대학생을 검거한다는 것 이였다. 중상을 입지 않은 전`의경들을 추려 모았다.
8열종대로 선 전`의경들은 방패를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 왼발을 시작으로 발맞추어 나갔다. 줄을 맞춘 개미의 행렬 같았다.
“민철아! 방패 머리위로 올려! 머리위로!” 민철은 정신 나간 눈으로 방패를 가슴 앞으로 들곤 그렇게 캠퍼스에 진입한 것 이였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에 맞아 고막이 찢어지고 정신이 반 나간 상태에서 원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퍽-” 14층 건물 높이에서 수직 낙하한 수많은 돌맹이들 중 묵직한 하나가 민철의 머리위로 떨어져 민철은 악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천형사! 살인 사건이야!” 오른 손으로 뺨을 지지하며 생각에 잠겨 있던 원만은 살인 사건이라는 말에 회상을 접는다.
“이건 현장 사진이고 이건 CCTV에 찍힌 범인의 모습이야.” 사진 여러 장과 태입을 놓고 원만의 표정을 살피는 박 반장 이였다. 피해자의 사체 사진을 살펴본 원만은 테입을 틀어본다. 원만이 강력 3반에 지원한 것은 되도록 시체를 직접 안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시체를 보면 돌에 맞아 죽은 민철이 떠올랐던 그였기 때문 이였다.
얼굴엔 복면을 한 사람이 카운터 앞에 앉아 있는 비디오방 여자 주인을 수차례 칼로 찌르고선 이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안까지는 CCTV의 영역이 아니 여서 다만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추를 할 뿐 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범인이 보였다.
“뭔가 집히는 게 있나?” 박 반장은 원만의 눈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죠?” “사진에서 봤다 시피 남편도 범인의 칼에 찔려 병원에 있네, 다행히 상처가 심하지 않아 피해자 조서를 받았네.” “그 피해자 조서 제가 좀 읽어 보겠습니다.” 박 반장은 피해자 조서를 갖고 오려고 강력 1반으로 몸을 돌렸다. 박 반장은 원만을 강력 1반으로 스카웃 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듣지 않는 원만의 고집에 안타까워 할 뿐 이였다. 사실 박 반장은 원만의 죽마고우였던 민철이 대모를 막다가 숨을 거둔지 모른다. 원만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였었던 민철과 싸우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수업이 끝나고 뭔가 사건이 없나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그에게 돈을 잃어버렸다는 학급 친구가 나타났다. 형사처럼 용의 선상에 민철을 집어넣고 심문을 해서 싸움이 일어나게 된 것 이였다. 그때 교훈을 얻은 것은 확실한 물증과 체력 이였다. 심증만으로 함부로 범인을 지목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난처한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것과 아무리 추리를 잘 하여 범인을 지목한다 하더라도 힘으로써 범인을 제압 못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명탐정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 이였다. 그 싸움 이후로 둘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 졌으며 원만의 제안으로 둘은 의경에 지원입대 하게 된 것 이였다.
노량진 경찰서의 강력 1반과 2반은 살인, 강도, 강간, 방화와 같은 중범을 전담하는 부서였고 원만이 몸을 담고 있는 강력 3반은 강력 1반과 2반의 도우미 역할과 자질구레한 경범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였다.
“자 여기 있네.” 박 반장이 건네 준 조서를 읽은 원만은 박 반장을 쳐다본다. “이건 피해자 조서가 아니라 피의자 조서군요.” “그럼 남편이 범인이란 말이야?” “물론 직접 살인 한 것은 아니니 교살이라고 해야겠죠.” 박 반장은 여러 미결 사건을 해결해준 원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본다고 치면 형사는 돋보기로 사물을 확대해서 본다. 하지만 이 원만이라는 사람은 현미경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 사진과 태입 만으로 범인을 지목하다니.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는 박 반장의 눈을 본 원만은 차근차근 정황의 증거들을 설명해 나간다.
“범인은 이 더운 여름날 긴 팔을 입었습니다. 다시 말해 문신이 있거나 흉터 같은 것이 있다는 거겠지요.” 벌써부터 진범을 잡으려는 추리라, 박 반장은 원만을 강력 1반으로 끌어 들이고 싶다.
“그리고 왼손에 시계를 찬 것이 보이지요.” 테입을 정지 시키곤 오른 손으로 주인 여자를 찌르는 범인의 반대 팔에 찬 시계를 화면 위에 볼펜으로 찍어 가리킨다. “그건 그가 오른손  잡이 라는 걸 말하려는 건가?” “네, 오른 손으로 찌른 것이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원만은 CCTV가 찍지 못한 방의 사진 한 장을 들며 이야기를 이여 간다.
“피는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DNA 때문에 생겨난 말이지만 때론 피는 말합니다.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그리고 어떤 높이에서 흘러 나왔는지.” “그럼 이 사진을 보고 피해자 아니 그 남편이 어떻게 찔렸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여러 번 놀래 키는 신참이라 생각한 박 반장은 원만에게 몸을 밀착한다. 빨간 볼펜으로 종이 위에 똥그라미를 그리더니 원안을 소리 내며 시뻘것게 칠하는 원만이였다. “이 원이 피라면 30cm에서 떨어진 피 입니다.” 동그랗게 칠한 원 둘레를 톱니 모양처럼 삐죽 삐죽 긋는 원만은 이제 다 말했다는 듯이 볼펜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건 1m이네에서 떨어진 피죠.” “그렇군 낮은 곳에서 떨어진 피일수록 동그란 결정을 유지하고 높은데서 떨어진 피일수록 동그란 모양이 퍼저 나갈려 하겠지.” “네, 여기서 보이는 남편의 진술은 누워있는 자신을 범인이 덮치며 찔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피가 퍼져 있으니 진술과는 상반되죠!” “진술은 번복할 수 있어 이 단서로는...” “그래서 범인이 오른손잡이 였다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CCTV와 사진에서 보이듯이 죽은 부인의 상처는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찌르거나 그을 때 나타나는 상처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상처는 어떻죠?” 원만에게 훈계를 듣는 것 같아 박 반장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아! 맞아! 나도 병원에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어!” “맞습니다. 남편은 왼손잡이이고 자기 자신이 자신을 서서 찌른 겁니다. 남이 찌르면 아플 거란 생각 이였겠죠.” “이 녀석을 당장 가서 체포 해야겠네.” “안돼요!” 박 형사는 알았다는 듯이 민국에게 윙크를 했다. “그래 도청장치 설치하겠네.”

형기는 병원에서 공중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형기는 킬킬거리며 웃다가 수화기를 입 가까이 대곤 소곤소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수고 많았어! 멍청한 형사들도 다 속아 넘어갔어. 내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데로 확실하게 챙겨주마 두둑 히.” 환자복을 입고도 뭐 그렇게 재미있는 말이 많은지 한참을 킬킬거리며 통화하던 형기는 마침내 전화기를 놓고 담배를 입에 물곤 연신 웃었다.
“뭐가 그리 좋은가!” 박 형사가 느닷없이 나타나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는 형기였다.
“아예... 그러니까.. 저...” “더듬을 필요 없어! 지금 통화 다 녹음했으니!” 뒤통수를 맞은 듯이 멍하니 서있는 그는 이내 무릎을 풀썩 꿇는다. “얘기 즘 같이 해보자고.” 박 형사는 무릎 꿇고 쓰러져 있는 형기를 부축해 그가 묵고 있는 병실로 들어간다.


VF 125cc 검정색의 개조 오토바이 뒤에 가스통을 얹으며 배달을 나가던 현준은 오토바이의 싸이드 미러로 차 한대가 자신의 가계 앞에 서는 것을 보았다. 건장한 사내 네 명이 자신이 일하는 가스 집에  들르는 것을 보자 불길한 예감에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는 그였다. 주인과 무슨 얘기를 나누는 듯 하더니 건장한 사내들이 차에 올라 탓고 둥그런 싸이렌 등을 차위에 달고선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엔진 굉음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당황한 현준은 오토바이를 옆으로 뉘여 가스통을 땅에 떨어트리고선 가스 벨브를 풀었다. 가스가 쏟아져 나오자 가스통은 천천히 빙빙 돌며 굴렀다. 발로 더 빨리 도르라고 가스통이 도는 방향으로 힘껏 차는 현준 이였다. 싸이렌을 키며 달려오는 차 쪽으로 가스통이 탄력을 받아 뱅글뱅글 돌며 돌진했다. 편도 2차선의 좁은 도로에 갑작스런 현준의 가스통 공격은 형사로 하여금 핸들을 급하게 틀게 만들었다. 그만 차를 은행나무에 받고 만다.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찌그러진 엘란트라 차위로 우두두 떨어졌다. 운전자를 제외한 3명의 형사가 뛰쳐나왔으나 못으로 마후라를 뚫은 현준의 오토바이는 심한 소음과 검은 매연을 내뱉으며 차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갔다.
“순 24호! 순 24호!” 다급히 무전기를 꺼내 순찰차를 찾는 형사다. “여기.” 순찰차 안에 설치된 무전기로 대답하는 백 순경 이였다. “용의자 검정색 오토바이 지금 도주중이다.”  암호 갖지도 않은 서툰 형사의 암호가 끝나자 싸이렌을 키며 관내를 도는 순찰차였다.
경찰서에 경범 딱지를 건네주러 파출소에서 순찰차를 몰고 온 임경장과 얘기를 나누던 원만은 강력 1반 형사와 순찰차 24호의 무전을 임경장이 몰고 온 순찰차를 통해 듣고 있었다. 이 무전 상황은  둘리 비디오방 살인범을 잡는 것 이였다. 원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찰서 옆으로 파란 짜장 그릇 수거 통이 달린 때가 많이 묻은 자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보였다. 철가방이 안 보이니 필시 배달 온 것이라.
“나 검거하러 갑니다. 임경장님!” 웃통을 벗고 나름대로 자장 배달원으로 변장하는 원만 이였다. “이거 같이 타고가면 되잖아!” “나 너 잡으러 가네 하고 알릴 필요 없잖아요. 제가 잠깐 빌린다고 배달하는 분 한태 말해 주세요.”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원만은 무전에서 흘러나온 형사와 순경의 대화를 토대로 추리를 시작했다. 의경시절부터 활동해온 노량진 경찰서 관내는 원만에겐 부처님 손바닥과 같은 곳 이였다. 그리고 범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오토바이를 계속 타고 도망 다닌다는 것은 얼굴에 도둑이라고 문신하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 이란 생각이 들자 미소를 짓는 원만 이였다.

“야 오토바이 즘 바꿔 타자.” 다급하게 말하는 현준 이였다. “어제 쇼바 더 올렸어.”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오토바이를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뽐내는 병준 이였다. “개조 같은 거  필요 없어! 기름은 가득 있지?” 자신의 집에 다짜고짜 찾아와 오토바이 바꿔 타자는 현준이 이상스럽기도 하였으나 워낙 급하게 말하는 바람에 현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꾸를 한다. “만땅 넣었어 어제.”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오토바이를 바꿔 타곤 마후라에서 소음을 터트리며 내달리는 현준 이였다.

“안녕 하세요.” 원만은 가스집 주인에게 친절히 인사했다. “네...” 처음 보는 중국집 배달원이라 생각한 주인은 형사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천 형사님 무슨일로 짱깨 오토바이를?” 형사라는 말에 주인은 원만을 쳐다봤다. 원만은 수첩에 열심히 메모하는 강력 1반의 신입 형사에게 고개로 답래를 한 뒤 주인을 쳐다보며 말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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