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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벙어리 안느!”

소년은 조롱하는듯한 목소리로 한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와 쎄실은 이제 막 묘지언덕에서 내려온 참이였다. 한가한 거리에는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어린 소년, 소녀…사람이 보이지않는 그 거리에는 몇몇의 소년과 소녀가 뛰어 다니면서 놀고 있었으며, 오직 한 소녀만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슬픈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안느는 엄마 아빠도 없지~?”
“그래그래! 거기다가 말도 못하는 벙어리잖아!”
“저엉말 바보같애! 우리들 목소리라도 잘 들리는거야?”

아이들은.
한 소녀를 따돌리고 있었다. 그래, 안느라고 불린 한 소녀를…
소녀는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갈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자른 모습이였다. 낡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그 눈에는 의지라고는 저언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소녀는, 조용히…아주 조용히.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신을 놀리는 소년과 소녀들을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 어디에도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소년들의 부름에 반응하는지 가끔은 고개를 훽 훽 하고 돌릴때도 있다.

-민
“아, 응.”

옆에있던 쎄실이 그렇게 말을걸어왔다. 그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머릿속으로 직접 말하는듯이 울리는 목소리…왠지 밀렌의 방에서 들어본 그 목소리는, 아무래도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인것만 같다.

-이 목소리는 너에게만 들리고 있어. 알겠지?
“아아, 알고있어.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는거야?”

이렇게라는건.
이런 텔레파시같은걸 이야기하는 거겠지.

-사람이 많으면 내 목소리로 이야기 할수 없어.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줄 테니까.
“아아, 알았어 알았어. 지금은 이정도만 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거지…번화가같은데로 나가면 알아서 조심해라 이거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옆에있는 소녀는 그저 놀림받고 있는 ‘벙어리 안느’를 조용히 쳐다볼 뿐이였다. 그리고, 결국은 얼굴을 찡그리며 텔레파시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아이, 저주에 걸려있어.
“저주?”
-그래, 그것덕분에 말을 못하고 있는거야.
“음, 과연…”
-잠시만, 저 아이를 미행해보자.

그렇게 말하며 쎄실은 내손을 잡고선 골목 모퉁이로 끌고가버렸다. 그러고선 모퉁이에서 빼꼼, 하고 머리만 끄집어 내어 ‘안느’라는 소녀를 천천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에게 놀림받고 있었다.

“그런데 쎄실. 저 아이가 저주에 걸려서 말을 못하게 된건 어떻게 알았어? 역시 마법사라서 그런가?”
-그것도 그렇지만…보통 선천적인 언어장애는 청각장애까지 따라오기 마련이야. 그리고 청각장애까지 겹친 언어장애는 유전되기 쉽고…아니, 이런건 아무래도 좋고.
저 아이는 확실히 선천적인 언어장애가 아니라 어떠한 계기로 인해 언어장애가 된 후천적 언어장애야. 그리고 저 몸 핵과 피부에 마나가 흐르고있는걸 보면 저건 분명히 저주로 인한 언어장애야. 누가 저런 지독한 짓을…

쎄실은 쉬지않고 그렇게 말했다.
아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대로 집어넣은 목소리라서 숨차지도 않는가 보다. 이해하는데 쪼끔 곤혼스러웠다.

“그래서, 저 아이를 감시하는 이유가 뭐야?”
-그야…이런짓까지 한 녀석을 붙잡기 위해서지. 같은 마법을 쓰는 사람으로써 도저히 용서가 안돼!

입은 열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이 아이가 느낀 감정이 내게 확실히 전해져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난 마법사도 뭣도 아니라서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만…

아, 소녀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따라가자, 민!
“아…야, 야!”

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쎄실. 왠지 모르게 뿌리치기가 어렵다. 도대체 저 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며 조용히 난 쎄실에게 끌려갈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건물이 늘어선 주택가였다. 가끔 나와있는 주민들은 단순한 일광욕을 위해서였고, 대체로 거리에는 아무도 없는 유령의 마을 같은 주택가였다. 그곳에서, 우리 두사람은 혼자밖에 남지 않은 ‘벙어리 안느’를 미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노을이 져가는 초저녁이 되어버렸다. 아아, 이러다가 저녁밥도 제대로 못먹겠다. 오늘 저녁은 밀렌이 특별히 신경써서 만든 풀 코스라고 했는데…아까워 아까워 아까워──라는 거지근성이 언제부터 붙어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밀렌의 요리는 맛있으니까……

-밀렌의 요리는 다음에 해달라고 해도 좋잖아.
“아, 아니…마법사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수 있는거야?
-민 얼굴에 ‘저녁먹어야 하는데~’라는 글자가 씌여 있는데? 거기다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건 마법사 금기중 하나니까……아, 숨어!

쎄실이 내 머리를 끄집고선 모퉁이 속으로 확 밀어버린다. 그 덕분에 넘어질뻔 했지만…뭐, 불평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래도 미행하던 인물이 뭔가의 기척을 발견해 이쪽을 돌아본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가자.

그렇게, 쎄실은 다시 내 손을 잡고서는 어디론가로 날 끌고가버렸다.





불이 켜지지않은 방이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만이 방안을 밝혔다. 그리고, 그 방안에서 한 소년은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얇고, 그렇게 길지 않은 철로 만들어진 막대 같은…어찌보면 나이프와도 같다. 과일이라도 깎다가 그만뒀는가, 하고 생각해봐도. 소년의 앞에 놓여져있는 원형 테이블에는 과일따윈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깊은잠은 아니였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깨어날것만 같은…유리세공품 같은 잠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방 안에는 바람한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크 왕국 수도권에 위치한 도시, 엘벤. 이곳에선 프랑크의 고위귀족들의 성이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서민들이 사는 도시이기도 했다.
즉, 엘벤은 ‘시장거리’로 인해 크게 두개의 도시로 다시 나누어진다. 한쪽은 귀족들의 성이 있는 서쪽도시 ‘멜’. 그리고 서민들이 살아가는 동쪽도시 ‘메룬’. 이 두 도시는 ‘형제도시’라고 불리워 지지만, 각각의 생활모습이 너무나도 달라서 그다지 ‘형제도시’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로텐부르크의 저택과 발렌타인 성도 이 ‘멜’에 속한다──
그리고 ‘메룬’에서도 사람들의 생활의 차이가 있다. ‘시장거리’를 중심으로 이 거리에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상인들. 이쪽은 중상층 계급이므로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상인들이다. 하지만 문제는…그 시장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 가까운 주택가는 수많은 빈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빈민가중, 이곳은 양반이다, 라고 할 정도로 잘된 주택가였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소년은 깨어났다. 깜짝하고.
손에 들려진 은빛 쇠막대를 놓칠뻔 했지만 간신히 다시 손에 쥐었다. 소년은 확실히 어린티가 나는 소년이였다. 소년의 머리카락은 꽤 길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잘 정돈되지 않았고, 이리저리 흐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굉장히 세련된 얼굴이였다.

“아, 안느.”

문이 열린곳을 바라보며,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 소년의 눈앞에는…자신보다 머리칼이 조금 더 짧은 갈색머리 소녀, ‘안느’가 웃으면서 반기고 있었다.

“어서와 안느. 오늘도 많이 보고싶었어”

끼익 끼익.
알수없는 소리였다. 기쁜듯이 뛰쳐나갈듯한 소년은…의자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뛰쳐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의자가 아니였다. 의자라기 보다는 조금 작고, 바퀴가 달린…
안느는 소년이 달려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선 자기가 먼저 달려가 소년의 품에 안겼다.

“아아, 정말…미안해 안느.”

소녀를 끌어안은 소년은 그렇게 사과했다. 그러자 소녀는 그저 아무말 없이 고개만 저을 뿐이였다. 소년은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 익숙치 않았다. 나에겐 아직 힘도 없고, 익숙하게 이것을 다룰 기술도 없었다.
휠체어는 그저, 삐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좌우로만 흔들릴 뿐이였다.

“………”

소녀는 입만 뻥긋 거리며 소년의 다리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소년은 알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으응, 다리는 괜찮아. 걱정마. 안느가 내 다리가 되준다고 했잖아.”

꼬옥.
소년은 소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고였다. 소년은 사고로 인하여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는 건재하게 붙어있지만…어째서인지 움직이지 않는다. 의사는 하반신 마비라 했다. 돌아오기는…틀렸다고 했다.

“………”

소녀는 뭐라고 말하는지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소년의 품에 안겨 얼굴을 푹 숙여버렸다. 소년의 눈에는 소녀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소년은 토닥이며 소녀를 위로해줬다.

“괜찮아. 다리는 낫지 않겠지만…안느가 내 다리가 되주면 되잖아. 안느가…내가 나가고싶을 때 휠체어 끌어주면 되잖아. 괜찮아. 나도 안느의 목소리가 되줄 테니까. 나 뭐…대충 안느가 하는말 알아들으니까. 그러니까…”

소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울지마”

하지만 소녀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으으으음…별수없네.”

곤란하다는듯이 말하며 소년은 소녀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햇살로 인해 반짝이는 은색 쇠막대. 소년은 그 쇠막대를 입에 물었다. 입에 문 부분은 무언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러 개의 구멍이…그리고, 소년은 숨을 들이키고 내뱉은 순간.


“………”

은빛 쇠막대…하모니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민적이지만, 섬세한 소리. 얇은 파장이 방안에 울려퍼지는 소리. 크지만 작은 파도가 흘러 넘치는 소리. 방안을 뒤덮은 공기가 누군가가 돌은 던져놓은것처럼 퍼져가는 소리. 소녀는 젖은 눈동자로 소년을 조용히 올려다 보았다.

예술의 울려퍼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기, 이봐. 쎄실.”
“응?”

안느라는 소녀를 미행하다 미행하다 도착한곳은 어느 낡은 주택이였다. 1층으로만 지어진…군데군데 때가 낀 그 집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였다. 그 집의 창문으로…쎄실과 나는 두 소년과 소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아까 그 남자애 말이야. 그 남자애도 저주로 다리가 안움직이는거야?”
“으음…아니. 그 아이는 아니야. 몸에 마나가 흐르지 않았어. 적어도 저주라거나 마법으로 다리를 못쓰게된건 아니야. 마법으로 다리를 잃는다해도…몸에 마나의 흔적이 남아있거든. 저 아이는…그러니까 어떤 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잃은걸거야.”

이제와서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쎄실은, 여전히 쉬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녀석은 한번 입이 트이면 끊임없이 말을 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녀석의 말을 매일 듣고있는 밀렌은 도대체…

“음, 그래서 결국은 우리 여기까지 왜 온거야? 쎄실은 저 아이가 목소리를 잃게된 계기를 찾는다고는 했지만…”
“아. 그거? 뭐…저 아이 집으로 가면 뭔가 단서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어. 집안에 마나가 흐르는 곳도 없고, 마법사나 마녀의 기척도 없어. 그저 평범한 집인 것 같으니까…뭐, 다음에 시간이 많으면 직접 조사해봐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쎄실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이곳은 ‘멜룬’인듯하다. 이곳에서 로텐부르크까지 걸어갈려면……음, 밤이 되어서야 도찰할 것 같다.

“그런데 쎄실. 우리 저녁밥 못먹었네.”
“저녁밥 정도야 굶어도 돼.”
“하지만 밀렌이 오늘 메뉴는 풀코스라고…”
“내일 또 해달라고 내가 부탁할게.”
“쳇, 알았어 알았어…도착했을때 아가씨한테 혼나는거 잊지 마.”
“나야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민이나 혼나는거 잊지마.”

흥, 하고 훽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어디살던 누구와 닮았는지…

“쎄실”
“응?”
“내 동생 안할래?”
“………”

라는 한마디를 하자.
그곳에서 순식간에 굳어버린 쎄실은 이내 곧──

“누나면 몰라, 동생은 싫어.”

그렇게 말하며 휙, 하고 다시 가버린다. 뭔가, 행동이 그녀석과 굉장히 비슷하지만…뭐, 됐나.

“그나저나 쎄실”

먼저 뛰어가는 쎄실을 불러내자.

“말걸지마”

단호하게 말해놓고서는 도망쳐버린다.

“아까 말해준다고 했잖아. 사람들 많이 있을땐 자기 입으로 말 못하는거. 꼭 사람 많을때는 텔레파시 같은걸로 이야기 해야해?”

그 물음에 쎄실은 다시 우뚝, 하고 멈춰버린다. 그리고 뒤로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다음에, 말해줄게.”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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