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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이드력 669년 어느 여름날-

「엘자!」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나를 찾으러 온 오빠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구차하다. 추하다. 도움을 구하는 것 따윈 아무래도 내 직성에 안맞는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이러고만 있을수는없다.

숲이였다.
하지만 내가 있는곳은 숲을 빠져 나온 절벽 아래였다. 떨어진것이다. 바보같이, 샤를로트에게 속아버려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린것이다. 그런다고 이제와서 녀석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렇게 일일히 원망할 시간이 있다면 지금 부어오른 발목을 식히는 것이 더 먼저일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절벽 아래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부어오른 발목을 그 냇물에 담그고서,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저 새소리와 오빠의 목소리만이 들리는 산속의 숲.
오빠는 아무래도 날 찾기 힘들것이다. 저 절벽은 산에서도 꽤나 높은곳에 위치해있고, 이 절벽 아래는 숲의 가장 안쪽인듯 하니까 말이다.

못찾으면 죽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죽는건 싫다. 난 아직 7살인걸. 아직 안한것도 많고, 결혼같은것도 해보고 싶다. 마지막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죽고싶었다. 이런곳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나 다를바 없어.

「하아…」

유감을 토로하며 한숨을 내뱉는다.

샤를로트는 내게 말했다. ‘7살 주제에 너무 잘났다’ 라고. 하지만 그런건 내 천성인데, 어쩔수 없는건가? 난 샤를로트처럼 어린애처럼 구는 것 보다는 이렇게 있는 것이 더 좋다. ‘어른스럽다’라는 다른 어른들의 칭찬도 들을수 있어서 좋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는 월등감, 다른 공작 아가씨들보다 더 유능하고 더 어른스러운 나는 어머니의 칭찬에 오르내릴수 밖에 없었다.
난 그저 그게 좋았다. 이러고 있으면 어머니도 웃을수 있었고, 아버지도 나를 좋아했다. 어린애처럼 구는것따윈 딱 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샤를로트의 탓을 할 생각도 없고, 나를 애타게 찾고있는 오빠에게 목숨을 구걸할 이유도 없다.
이 내가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니까.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는 오빠의 목소리는 점점 옅어져갔고, 이내 그 목소리는 완벽하게 사라져 갔다. 이제 가버렸는가보다. 아니면 어른들을 데리고 와 찾던가,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아침부터 샤를로트에게 장난감 취급 받는 바람에 밥도 못먹었다. 녀석은 왕자라는 이유로 나를 괴롭혀 왔으니까, 오늘도 그 괴롭힘의 일환이였다.

정말,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수 없는 불쌍한 녀석.

저녀석이 국왕이 되는것과 동시에, 이 나라는 망할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버려진 강아지, 산속의 짐승들에게 안먹혀져 버린게 신기할 정도였다.
강아지는 만신창이였다. 이곳저곳 긁히거나 맞은 상처도 있었고, 뒷다리 한쪽으로 다친듯이 절고 있었다.

「예전에 네 주인은 꽤나 난폭했나 보구나」

그렇게 말하자 강아지는 천천히 다가와 다치지 않은 나의 다른쪽 발을 혓바닥으로 핥기 시작했다.

「와, 와앗! 아하하! 그, 그만해! 간지럽단 말이야~」

무릎을 더욱 움추리자 강아지는 거기까지 쫓아와 내 발가락을 핥는다. 이야아, 안돼 안돼. 이녀석, 발가락은 먹는게 아니라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두손으로 강아지의 허리를 잡아 들어올린다. 강아지는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굉장한 냄새가 났다. 뭐, 이참에 목욕이라도 하게 해줄까?

「좋았어!」

돌조각 위에 있는 엉덩이를 들어올려 우뚝, 하고 몸을 일으킨다. 발목은 시냇물에 완전히 담겼고, 슬슬 발목의 아픔도 약해져 가고 있었다.──그래봤자 아직 아프긴 아프다──
손에 들려있던 강아지를 아무렇게나 시냇물에 담궈버린다.

「와하하~」

머리만 내밀고 몸을 바둥거리는 강아지가 굉장히 우스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리고 강아지를 다시 들어 올리자 마자.

「꺄악!」

강아지가 온몸을 부르르 털면서 물방울들이 모두 내게로 튀어 나왔다. 아으, 덕분에 드레스도 다 젖어버렸어.

「이녀석, 좋았어! 도전이구나!」

나는 또다시 녀석을 시냇물로 집어넣어 버리고서는 아예 흔들어 버렸다. 이녀석, 오늘 확실하게 목욕시켜 줄 테다!

아무래도 그렇게, 시끄러운 늦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이녀석의 이름을 뭘로 지을까…」

눈 앞에 앉아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피스의 드레스는 완전히 젖어버려서 벗어서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 던져놓았다. 지금은 아무래도 알몸이지? 그래봤자 볼 사람은 이 강아지 뿐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이녀석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목욕까지 시켜줬는데 이름도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멘치? 아니, 아닌데…」

아니, 왠지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너무 흔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 도대체 뭘로 할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다. 뭐, 안그래도 작명이라 함은 전문으로 해주는 사람도 있는데, 7살짜리 어린애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될지는 모르니까…

「그래, 루네!」

그것은.
순식간에 머릿속에 스친 한 단어였다.

「루네, 좋네~」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감상에 빠진다. 왠지 누군가가 보고있다면 정신병 말기라는 소리까지 들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무도 보고있지 않으니 그런건 신경 끄도록 하자.

「강아지야, 이제 네 이름은 루네야. 루네!」

그 목소리에, 루네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 행동이 굉장히 귀여워서, 다시 들어서 꼭 껴안아 버렸다.
이젠 그 씻지않아 나는 개냄새도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묘해졌다. 그것은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의 태양이 져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푸른색의 하늘은 금방 오렌지색의 노을을 만들어 갔고, 다시 포도빛의 밤을 끌고 오겠지.
그래,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

「뭐」

하지만 태연하게 말한다.

「루네와 함께라면 죽는것도 외롭지 않을거야!」

그렇게.
밤은 찾아오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숲을 뒤지던 성의 수많은 시종들에게 발견되었다. 단 하루만의 일이였을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이마에는 열이 엄청나게 나고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 긁힌 것 같은 상처들이 많았다고 한다.
뭐, 밤이 왔을 때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옷을 도로 입어버려서, 시종들도 내가 알몸이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뭐,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내방.
침대 바로 옆에있는 카펫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루네’에게 난 그렇게 말을 걸었다.






「어이, 엘자!」

듣기싫은 목소리였다. 등 뒤에서 역겨운 무언가가 다가오려 하고 있을 때, 나는 시선 돌리는 것을 거부했다. ‘왕자님이 부를때에는 즉시 대답 하십시오’라는 저쪽의 걸레 같은 메이드가 그렇게 말했지만, 저런녀석 따윈 왕자라는 이름마저 아깝다.

나는 지금 ‘루네’와 산책 중이다. 사정을 들은 아버님께서 루네에게 집도 주었고, 목걸이도 주었다. 이젠 새로운 가족이 된 이 강아지는 나의 유일하고 진정한 친구였다.

「엘자, 뭐야? 그 똥개는?」

녀석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천천히 ‘루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안아들고서는 똑바로 샤를에게로부터 도망쳤다.

도망친 후.
샤를은 아무래도 따라오지 않은 것 같다. 그래, 차라리 피차에 그러는 것이 훨씬 좋다. 나도 귀찮아서 싫고, 녀석도 내가 자신보다 잘났으니까 싫은거다. 싫은 녀석들끼리 만나봤자, 하는것을 싸움,
귀찮다. 차라리 아예 안만나는 것이 낫다.

걷다보니 이곳은 성의 뒤뜰이였다. 아무래도 성의 뒤에는 숲이 있고, 이 뒤뜰에도 그 숲의 영향력이 있었기에, 몇몇의 커다란 나무들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뒤뜰, 오빠가 자주 검술훈련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자주 이런곳에 와 있었지…

그렇게 말했을 때.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나를 향한 목소리가 아니였다. 저 모퉁이를 돌고나면 있을 것 같은 오빠. 그리고, 그 오빠와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여자…?」

여자아이의 목소리.
내 또래의 평범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들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모퉁이를 돌아 숨어서 쳐다본다. 그곳은 커다란 나무의 그늘 아래였다. 돗자리까지 펴놓고, 두사람은 즐겁게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소년은 금발, 확실한 나의 오빠. 그리고 소녀는…단순한 메이드였다. 어린 메이드, 아무래도 저번 전쟁에서 데리고 온듯한 아이.

뭐, 아무래도 상관 없나. 오빠가 어떤 사람과 놀든, 나는 상관 없으니까……


나는 조용히 성의 뒷뜰에서 ‘루네’를 데리고 떠났다.




「루네!」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루네가 없어져 있었다. 주위의 모든 메이드와 시종들에게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루네’는 성의 모든 사람들이 ‘엘자 아가씨가 키우는 강아지’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을텐데, 왜 다들 모를까?
어째서? 설마, 강아지가 증발 한것일까? 아니, 그럴리는 없다. 그럴리가……

「집사!」
「네, 아가씨.」

무언가 바쁜 업무로 빠른걸음으로 달려가는 집사를 불러세웠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뒤 무슨일인지 물었다.

「혹시, 내 ‘루네’를 보지 못했어요?」
「아아, ‘루네’라면 아가씨의 애완견 말이십니까?」
「네!」
「‘루네’라면 샤를 왕자님께서 잠시 볼일이 있으시다며 데리고 갔습니다.」

샤를이?
도대체 왜?
강아지 따위는 관심도 없을 녀석이? 그저 강아지를 갖고싶은 거라면 왕궁안에 더 좋은 애완견들이 있을텐데, 저 계보도 모르는 잡종따위를 왜?

나는 집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급히 성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녀석이 아직 성 안에 있기를 바라며, 성 주위를 삥 돌아가며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샤를!’ 하지만 대답은 없다. 역시나 이미 왕궁으로 돌아가 버린 것일까.

하지만 나의 예상을 뒤엎은 한마디가, 굉장히 선명하게 들렸다.

「엘자, 이녀석을 찾고 있지?」

그 목소리는 굉장히 역겨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방금만큼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 샤를로트 왕자의 목소리가…
등 뒤를 돌아보니 그의 손은 ‘루네’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다행이가, 아직 무사하다. 만약에라도 샤를이 무슨 헤코지를 할까 무서웠는데.

「있잖아, 요즘 너. 나랑은 안놀고 이런녀석이랑 놀고 있더라?」

이런녀석이란, ‘루네’겠지. 그렇다, 이제까지 녀석을 심하게 무시하고 있었지. 이제 곧 슬슬 열받을때도 됐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왜 하필이면 불길한 예감이 들까? 녀석의 오른손은 등 뒤에 숨겨져 있었다.

「맘에 안들어, 엘자. 넌 도대체 왜그래? 저번에 절벽에서 굴렀을때도, 넌 아무렇지도 않던데?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거야?」

그래.
더 이상 네놈의 괴롭힘에는 진절머리가 났으니까. 이젠 화낼 생각도 없고 화낼 힘도 없어.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왼손에 들려져 있던 ‘루네’를 샤를이 땅바닥으로 확 던져 버린다. ‘깽!’하고 울부짖으며 바닥에 부딪히는 강아지. 이때다, 이때 루네를 이쪽으로 데리고 오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짧게 달려 손을 뻗는다. 이제 손을 조금만 뻗고 잡은뒤 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면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하지만 나의 손길보다, 녀석의……

‘알수없는 무언가’가 먼저였다.

퍽!

둔탁한 소리.
기분나쁜 소리.
나의 손이 뻗기전에, 시커먼 그 ‘무언가’는 섬광같이 ‘루네’의 머리를 짓이긴다.

퍽!

‘루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그저 둔탁한 소리를 낸다. 피가 튄다. 드레스에도, 얼굴에도. 금발의 머리카락에도. 그리고 샤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귓바퀴를 돌아 고막까지 도달한다.

퍽!

이제야 알았다.
샤를은 지금 커다란 몽둥이로, 눈 앞의 조그만한 강아지를…

힘껏, 몇번이고 내려쳐 죽이고 있었다.

퍽! 퍽! 퍽!

‘루네’의 새하얀 두개골이 으깨어 진다. 핑크빛 살갗 사이로 보이는 그 두개골은 가루가 되고, 뇌는 짓이겨 진다. 피는 몇번이고 튀고, 갈비뼈는 살을 파고 튀어 나온다. 내장은 터져버린 만두 속처럼 흘러나오고, 더 이상 ‘루네’의 숨결도, ‘루네’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하하! 엘자. 이제야 알겠지? 엘자, 표정이 마음에 드는데? 합격점이야?」

손대기가, 곤란해져 버린 그것은……
‘루네’의 시체였다.

「말했잖아 엘자? 넌 자신의 일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녀석이야!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이 강아지를 죽인다면?」

그 목소리가.
굉장히 선명했다.
하지만 머리는 어지러웠다.
하지만 증오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하! 역시 효과는 있어! 대단해! 엘자, 모르지? 너 지금 굉장히 좋은 표정을 하고 있어! 이거이거, 정말로 유쾌한걸? 다음부터라도 자주 써먹어야 겠어?」

유쾌하고 웃는 샤를을.
노려본다.

「뭐야 엘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건데? 날 죽일 셈이야? 날 죽이면 어떨까? 네 가족은? 아버지가 가만히 안있을걸?」

하지만.
노려보기만 할뿐.
나는, 평범한 공작의 딸이니까…아무것도 할수 없다.


그 후로.
상황을 목격한 성의 메이드가 아버지를 불러내 샤를을 설득하여 왕궁으로 보냈다고 한다. 난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루네’의 시체는 성 뒤의 숲에 아주 곤히 묻어 두었고, 조촐하게나마라도 장례식까지 치뤄줬다고 한다. 물론, 난 거기 없었지만……말이다.

그후의 나는.
왠지 방에 틀어박혀서 울기만 우는, 그런 녀석이 되어버렸었던 것 같다.






-676년 어느 여름날, 클라우스의 환영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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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쁘네, 처녀자리의 별자리가……」

검은 하늘위로 손을 뻗으며, 사랑스러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의 아픈과거를 모두 치료해줄것만 같은 의사이자 마법사인 그는, 입에서 새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있잖아 엘자, 그거 알아?」
「뭐가요?」

그 눈빛은.
내게 ‘처녀자리’의 이야기를 해줄때와 비슷한 눈빛이였다. 정말로 흥미로워 미칠것만 같은 그 표정. 반짝거려, 저 하늘의 어느 별 보다 더 아름다운 눈동자의 끝. 난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행복감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별이라는건, 정말로 슬픈 생물이야.」

아니.
생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마는.

「별이 반짝이는 이유는 저 별은 사라지려고 하고있기 때문이야. 별이 사라지기 전에 내뿜는 것이 저 아름다운 별빛이지. 슬프지 않아? 저별은 마지막 한몸을 불살라서, 우리들에게 이렇게나 아름다운 별빛을 보여주는 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그 벌려진 두 팔은, 저 검은 하늘을 모두 끌어안아 버릴듯한 느낌이 들었다.

「별이라는건 말이야. 몇만년전에 존재했던 환상일 뿐이야. 그 환상이 우리에게 별빛을 내리쬐어 주는거지. 이상해? 뭐, 어쩔수 없어. 그건 어쩔수 없는 별의 운명이니까.」

조금은 슬픈듯한.
하지만 엄청 기쁜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나를 다시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엘자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생각해?」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니.
그런건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런건 아이들이나 믿을만한 이야기지, 실제로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뿐… 더 이상의 무엇도 없다.

「아뇨,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 그렇지?」

슬픈듯이.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니…그렇다면 이미 저 하늘은 별로만 가득히 차있을걸요.」
「하하! 하긴 그렇겠네. 이제까지 죽은 사람들의 수는 셀수없이 많을 테니까. 만약 모두 일일히 별이 되었다면 지금 저 하늘은 별로 가득 찼을 테니까.」

그렇다.
지금의 하늘도 충분히 별로 차있는데, 이 역사동안 죽은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저 하늘은 이미 별천지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난 믿어.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것을.」
「에…?」

의외의 대답에.
나 역시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마법사라는 작자가, 자기 말로 과학자이자 철학자이고, 이런 이런 알수없는 말을 혼자서 늘어놓은 이론쟁이가 ‘사람은 죽어서 별이된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믿는다니……

「바보같아 보여?」
「아, 아뇨!」

아니, 그것보다는.
아직도 그런걸 믿는다니, 굉장히 귀여워요.

「난 그렇게 믿어.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만약 저 하늘이 아니라면.」

조용히 이쪽을 본다.
그의 표정은 굉장히 편안해져 있었다. 천천히 걸어와, 그는 나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굉장히 따뜻한 온기가…느껴진다.

「네 마음의 별이라도 되고싶어.」

그래.
죽어서라도 저 하늘에 자리가 없어 별이 되지 못한다면.
난, 하늘보다 더욱 더 넓은 당신의 마음의 별이 되겠다고…









-아델라이드력 679년 5월 4일 어느 아침-


“미, 민씨!!”

하아, 하아, 하아.

굉장히 초조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고, 그리고 사람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을 때 굉장히 초조했었다. 나도, 내 옆에 있는 리샤르 대공도, 그리고 내 품에 안겨있는 그녀도. 피투성이인 그녀도…

날 처음 맞이해준 것은 레아씨였다. 야간업무중이였는지 아직 그 신기한 사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세련된 안경 너머로 그녀는…놀랄수 밖에 없었다.


피투성이인 남자가 피투성이인 소녀를 안고 하룻밤 사이에 돌아왔으니.

“이, 이게 어떻게 된일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고,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난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눈물을 흘렸다. 난 이아이에게 아무것도 잘해준게 없었는데, 이 아이는 내 대신 죽었다.

“레아씨…부탁할게요…”

그녀의 눈도 마주칠수가 없었다.
그저 한마디만을. 사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텐데, 웃으면서 눈을 감은 그녀의 시체를 내려다 보면서 그 한마디만을 외쳤다.

“이 아이의……장례식을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주체할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Golden RequiemⅡ-

“반갑습니다, 로텐부르크 부인. 이렇게 만나는건 처음이로군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옥시타니아 대공. 대공의 명성은 베레니스에서도 익히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몰락한 귀족으로써, 대공으로 불릴 시대는 지났습니다. 편히 부르시지요 부인.”
“아닙니다, 아무리 대공의 이름을 버렸다 하더라도 대공의 명성에는 흠이 가지 않습니다. 제게 대공이라 부르도록 허락 해 주십시오.”
“아뇨, 그렇지만…”

말싸움에서 져버린 것 같은 기분을 털어내며, 옥시타니아 대공은 아무말도 없이 승락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에서도 로텐부르크의 부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베레니스 고위귀족에 드는 이 부인은, 국왕보다 더욱 큰 정권을 휘두를수 있는 유일한 귀족 부인. 아니, 어차피 자유국가인 베레니스에서는 국왕보다 더 큰 정권을 휘두를수 있는게 쉽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시민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 있어서 이 막셀 폰 로텐부르크라는 공작부인은 시민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 정치를 해나가는 인물로써, 자칫 잘못하면 국왕을 밀치고 국왕의 자리에 앉을 여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작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뭐, 어쨌든 대공. 이번일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저택의 응접실.
막셀과 리샤르밖에 없는 이 응접실은 아주 명확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일그러진 한 곳이 있었으니… 약간은 열려진 문 사이로 보이는 두사람의 눈빛. 막셀과 리샤르는 그것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베냐민의 정체와, 그의 여동생인 엘자 드 발렌타인에 대해서 아시는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샤르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문 밖의 두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다. 그 두 눈동자의 주인은 레아 슈나이더와 밀렌이였다.

“뭐? 베냐민? 그게 민씨의 본명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거기다가 발렌타인 가문이라면… 프랑크의 고위귀족중에서 하나인 발렌타인 공작집안이잖아요!?”
“이봐 밀렌!! 이거 굉장한 특보라고!”
“그, 그러게요!! 이,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보…아, 쎄실!”

둘이서 그다지 작지도 않은 귓속말로 이야기 하던 레아와 밀렌은, 흥미없는 눈초리로 지나가는 쎄실을 불러세웠다.

“쎄실 쎄실!! 이것 봐! 지금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글쎄 민씨가──”
“…………”

쎄실은 조용히 밀렌을 올려다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렌은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알고 있었다고? 알았어…”

옆에서는.
레아가 알수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부인, 피의 발렌타인 사건은 알고 계신지요?”
“알고 있습니다.”
“베냐민과 엘자, 이 두사람은 그 사건의 생존자였습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마는, 아무래도 이 사이에서 베냐민과 엘자의 마찰이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그 사이에서 엘자는 오빠인 베냐민을 증오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엘자는 베냐민에 복수를 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엘자가 작위를 회복했는데, 이것에는 아무래도 샤를국왕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흐음.
하고 납득하는 로텐부르크의 부인.

“그리고 베냐민과 재회한 엘자는, 베냐민에게 발렌타인 성으로 와라. 결판을 짓자, 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베냐민은 그에따라 발렌타인 성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샤를국왕의 개입이 있었고, 베냐민과 샤를국왕의 싸움에서 부상이 심한 베냐민이 밀리자 엘자는 자신의 오빠 대신 샤를국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잠시만요, 대공. 자신의 오빠에게 복수를 하려던 엘자가, 왜 다시 자신의 오빠를 감싼거죠?”
“잘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하고 또 다시 납득하는 막셀.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것과 동시에 침묵은 또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이내 곧 깨져버렸다.

“레아”
“네, 넷!!”

덜컹!
하고 문을 열고 들어와버린 레아는 자신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다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모습은 완벽하게 도박이 제 발 저린다라는 속담이 분명했다.

“내일…아니, 오늘 아침부터 마을의 유명한 장의사를 불러 장례식을 시작합니다. 장례식 비용은 제 이름으로 최대한 성대하게. 알겠습니까?”
“넷!”

그렇게 대답하면 덜컹! 하고 또 다시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그런 레아의 한숨소리가 응접실까지 들려온다.

“그러고보니 대공, 민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 그…쎄실이라는 여자아이한테 치료받고 방에 누워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실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막셀을 바라보며, 리샤르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민”
“………”

그다지 좁지도 않은 방에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빛은 한줌도 들어오지 않는 방. 저 구석에 있는 침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침대의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슴지 않고 막셀은 할말을 계속했다.

“곧 엘자 드 발렌타인의 장례식을 할것입니다. 참가하지 않겠나요?”
“………”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 막셀 폰 로텐부르크 부인은 ‘알았습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민의 방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다.


소년의 입술에는.
아직도 동생의 입술에 닿은 감촉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몇번이고 눈물을 흘려 그 감촉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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