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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 보니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시큰하다고 해야할까? 소독약 냄새에 이 곳이 어디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드나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들기는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분명히 동아리 방에 있었는데, 무언가 큰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퓨즈 아웃.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은 아니고 양호실로 추측되는 곳에 와 있는 상태.
 평소에는 신세 질 일이 없었던 만큼 역시 이 곳에 와 있는 이유는...

 

 ... 왠지 알 것 같았다. 아파!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막 깨어났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정신이 돌아오면서 통증까지 같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온 몸이 욱신욱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말 선배님 앞이 아니었다면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댔을 만큼.

 하지만...

 

 "아, 이런... 벌써 약효가 다 되었나 보네요. 일단 이 것을 좀 마셔요."

 

 선배님의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손이 목을 감싼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알싸한 향에 취한 사이, 선배님은 내 몸을 일으켜 준 뒤 입가에 무언가를 가져다 대었다.
 씁쓸한 맛. 목을 타고 넘어가는 끈적한 액체를 받아마신다.

 

 그리고, 통증이 사라졌다.

 

 ".... 어라?"

 

 "이제 좀 괜찮으세요? 마고 후배님이 만들어 놓은 진통제인데."

 

 "...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죠?"

 

 반사적으로 나온 물음에 선배님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실제적인 약품이 아니라 주술적인 진통 효과를 주는 것이라 특별한 문제는 없어요. 효과가 1초의 오차도 없이 8시간 4분 17초 동안만 지속된다는 것을 빼면요."

 

 "그런가요?"

 

 그래서 아까 그렇게나 드라마틱하게 팍! 하고 아팠던건가..
 성능이 좋다고 해야하나 나쁘다고 해야하나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랄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뭔가 애매모호한 시간도 그렇고.

 

 "덧붙여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더 마실 경우 반작용으로 통증이 배가 된다는 것 정도만 주의한다면 말이죠."

 

 ... 절대로 일부러다.

 어쩐지 마고씨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는.

 

 "그나저나 무슨일이죠?"

 

 아무래도 한동안은 입에 약을 대고 살아야 할 것 같은 통증이었다.
 선배님 말씀대로라면 내가 정신을 잃은지 최소 8시간은 지났다는 것인데...
 게다가 지금 보니 온 몸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에... 어째서 다리는 부러진 것 처럼 석고로 감싸놓고 위에 매달아 놓은거지?

 

 "아, 그건 말이죠... 자, 어서 사과하세요."

 

 선배님은 내 물음에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굳은 목소리와 표정. 아무래도 조금 화를 내는 것 같다.
 그나저나 사과?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 냐아...."

 

 그 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선배님의 반대쪽에 누군가 있었던 모양.
 왠지 귀엽게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저건 고양이 소리인데?

 

"...."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무언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꼬리였다.
 짧은 검은색 머리칼 아래 보이는 것은 새하얀 등. 가슴 부분과 엉덩이 부분만을 가리고 있는 노출이 심한 의상.
 머리 위로는 삐죽 튀어나온 귀가 축 늘어져 있었고 손과 발에는 옷과 같은 색의 털장갑과 털신이 신겨져 있었다.
 
 "... 에...."

 

 자신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랄까... 저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고양이?"

 

 "아니다냐아!"

 

 한 대 맞아버렸다.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오 찬양하라, 마고님의 이름을.

 

 "... 어 우우... 에?"

 

 "... 영웅 후배님, 턱 빠졌어요."

 

 선배님이 어쩐지 지쳐보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가느다란 손이 내 턱을 잡더니 조금 우악스러울 정도로 턱을 맞춘다.

 

 하지만 아프지 않아! 무언가 엄청 아플 것 처럼 세게 움직였는데!
 오오 찬양하라, 마고님의 이름을!

 

 ... 이게 아니지.

 

 "... 뭐, 뭔가요. 저... 사람은?"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조금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쫑긋 선 귀, 쭉 찢어진 눈. 고양이의 털 같은 무늬가 그려진 옷. 살랑거리는 줄무늬 꼬리.
 아니, 그러니까 고양이를 의인화라도 한다면 저런 모습이 되려나.. 싶은 모습이었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영웅 후배님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선배하고 이야기 하지 말라냐아!"

 

 선배님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순간 복슬복슬한 고양이 손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선배님이 빠르게 그 팔을 낚아챘지만 순간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언가, 눈치 채고나니 눈 앞에 주먹이 있었다... 라고 할 정도의 속도.
 머리카락을 세우고 가르릉하며 목젖을 울리는 고양이 소녀는 생긴것과 달리 상당히 난폭해 보였다.

 

 "사과 하라고 했을텐데요."

 

 "하지만... 냐아..."

 

 선배님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 중에서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선배님은 딱 부러지게 말했다.

 

 "사과 하라고 했어요. 이유도 없이 영웅 후배님을 때린 것부터 전부!"

 

 마지막에 목소리가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한 대 쳤을 것 같은 분위기.
 
 아무래도 내게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든 것은 저 소녀인 것 같았다.
 단 한 방에 날 기절시키고 몸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게 만들 정도로 우악스럽게 말이지.
 하지만 그런 소녀도, 지금 선배님 앞에서는 냐옹 거리며 귀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축 가라앉아있는 모습.
 이러면 오히려 이쪽이 미안해...

 

 "빨리 사과하세요. 가라호 후배님!"

 

 질리가 없다. 당장 백만번 죽어서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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