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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방패 사계절의 방패 18 끝

azelight 2008.08.22 16:56 조회 수 : 1484

사계절의 방패 마지막 편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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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하아.”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어요. 저는 허탈감과 공허함에 버거워 하며 허덕였죠. 아무것도 없는 그저 어둡고 어둔 빈 공간. 엘지아스둘레티가 나타나기 전까지 오로지 저만이 있었을 뿐인 공간이었죠.

 “루시엔.”

 그가 절 불렀어요.

 “기분은 어떠냐?”

 “글쎄요. 그런데 순순히 죽지는 못하는 모양이군요.”

 애던 오빠가 저를 갈랐던 순간을 저는 기억하고 있었어요. 분명 저는 영체를 격살당하고 육체가 반 토막이났었었죠. 아무리 저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치명상인데 그래도 아직은 의식을 유지하고 있네요.

 “그래, 너는 아직 살아있다. 루시엔. 아직 어린 하디아의 제자여. 경계를 걷는 자로서의 너의 능력과 꿈을 걷는 자로서의 본성이 네가 아직 살아있도록 만들고 있다.”

 구름과 번개를 두른 엘자는 앞발을 들어 저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어요. 적의도 비난도 조롱도 아닌 덤덤한 호의를 가진 행동이었어요. 저는 조용히 저의 종결을 내주길 바라며 말했어요.

 “끝을 내지 않나요? 스승님의 봉인은 파기되었고 저는 이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어요. 결국 저는 저. 꿈속에서만 되찾을 수 있던 본성을 되찾은 것일 뿐. 네린 언니는 그것을 제가 무언가에 쓰였다고  표현했지만 옳지 않은 말이죠. 단지 저는 완전해 진 것일 뿐이니까요.”

 그래요. 저는 완전해진 것일 뿐이었어요. 현세에서는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일부를 되찾은 것이었죠. 그들은 저를 되돌린다니 뭐니 말했지만 그 모든 것이 헛수고, 어디까지나 저는 저일 뿐이니까요. 단지 잃었던 것을 되찾아 완전해지고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 뿐인 거예요.

 “안다. 그러나 루시엔. 넌 갑작스럽게 되찾은 본성에 휩쓸려 알지 못했겠지만 넌 그럼에도 그들에게 결정적인 공격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만약 네가 원했다면 그들은 반격의 기회도 없이 너의 세계 속으로 침전 당했겠지. 너는 꿈의 지배자이며 또한 신의 파편을 흡수하여 이 세계에 강림했다. 원한다면 너는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숨 한 번 쉴 틈도 주지 않고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려줄 수 있었다.”

 “제가 그들을 무의식중에 봐주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다, 루시엔. 아직 어린 드림이터여. 하디아가 너의 본질을 걷는 자로 잘 못 파악하고 어리석게도 접촉자의 길을 걷게 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다만 너는 그 덕에 목숨을 건졌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되겠지. 나로서는 하디아의 마지막 전인인 네가 그렇게 죽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요? 머리가 식으니 알 수 있어요. 현세의 저는 그들의 존재가 파괴되길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섭취를 시도했던 라니아 언니도 결정적인 부분은 먹지 못했고... 아마도 완전한 존재가 되었어도 이미 학습한 인격과 심성이 저 자신에게 제동을 건 것이겠죠. 반면 이중 적인 상태가 된 것은 꿈속에서는 현세의 제가 관여할 수 없고 현세에서는 꿈속의 제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 결국 원래 훨씬 강력했던 본성 쪽이 현세의 부분을 누르고 있었던 것뿐이지 완전히 통합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거의 알 수 있었어요. 제가 현세의 인격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서 완전한 경계를 걷는 자로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가진 탐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자각이 시작된 이상 그들에겐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니 자제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세계를 집어삼킬 거예요. 저는 더 이상 드림이터인 정도가 아닌 경계를 허무는 자. 존재로서 재앙인 자.”

 “재앙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구나.”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엘자는 다시 저의 이마를 툭툭 건들렸어요. 분명 상냥하긴 한데 그 목소리와 존재가 그의 상냥함보다는 위엄을 강조시켜서 오히려 우스광스럽게 보이기까지 해요. 아... 그래도 저는 조금 여유를 찾은 듯하네요. 아까와는 달리 차분히 생각하며 두 자신을 분리해서 비교하고 또한 제 자신이 인지하는 바를 살폈어요.

 “너는 그렇게 배워왔다. 루시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조화가 무엇인가? 경계를 걷는 자로서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어디가 깊은가? 어디가 얕은가? 어디까지가 적당한 가? 어떻게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 하디아는 너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나는 너의 성장 전반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네가 현명한지. 얼마나 네가 뛰어났었는지.
 하디아의 모든 것을 고작 10살 때 익혔던 너에 대해서 말이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있을지. 네가 정말 자신이 재앙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말이다.”

 “나 자신을 관철하라. 그리고 둘 다 뛰어넘어라. 뭐 이런 말이네요. 결국에는... 그건 결국 완전히 다른 저 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네가 존경하는 너의 스승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는.”

 저는 입을 다물었어요. 스승님의 유지. 사실 스승님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던 사람이었죠. 기억 속에 남은 추억들은 무척 희미해요. 접촉자로서의 능력을 빨리 익히긴 했지만 천재였던 것은 아니었죠. 단지.
  당시에 그랬다는 것을 몰랐지만, 저는 엿보는 자로서 경계를 걷는 자의 능력을 쉽게 얻을 수 있었었죠. 그렇다면 경계를 걷는 자. 양쪽 모두를 경계하며 살얼음판처럼 길의 한 가운데로 걷는 자로서 얻은 기술과 능력으로 저 자신의 사이에서 조화를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마도 말이죠.

 “이해했어요. 지금의 저는 억눌려져 있던 탐식하는 자의 의지가 발현되면서 저는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그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는 거군요. 무엇보다 한 번 죽음을 겪음으로서 홍수처럼 들이 닥치던 탐식의 의지가 꺾인 지금에요. 그래서 저를 붙잡아둔 것이군요. 아무리 경계를 걷는 자이자 신의 파편의 영성을 가졌어도 그 검. 침묵시키는 자를 정면으로 맞고는 소생할 수 없었을 거니까요.”

 “그렇다. 그리고 너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고 말이다.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여긴거다.”

 “알겠어요. 그럼 현세로 돌아가게도 도와주세요. 지금 제 힘으로는 무리이니까요.”

 “뭐, 좋다. 적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마음이 든 것 같으니.”

 그리고 저는 눈을 떴어요. 저를 내려다보는 한 마리의 새가 있었죠. 청람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덕에 그 새가 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저는 “풋.”하고 웃으며 물었죠.

 “이번에는 날개 덩어리가 아니네요.”

 “이케다를 흡수함으로서 네 영지 자체가 방대해졌기 때문이다. 애던에게 살해당하면서 상당히 손실해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딱히 힘이 넘친다는 감각은 없었기에 저는 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하긴 살해당하기 전까지 저는 엄청난 힘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고작 평소보다 약간 강해진 상태가 강해진 것처럼 느껴질 리가 없지요.

 “그들은요?”

 이 이케다의 제단에서는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저는 엘자에게 물어보았어요.

 “발락이 회복되는 대로 돌아갔다. 시신이 내가 고향으로 데리고 돌아가겠노라고 말했지.”

 “그랬나요. 어땠나요?”

 “신경이 쓰이나?”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나요. 스스로 내쳐버렸다곤 하지만 옛 동료인데요. 게다가 제가 입힌 피해가 워낙 커서 괜찮을지 알 수 가 없었어요. 라니아 언니는 결정적인 것은 먹지 못했어도 어느 정도 제게 먹혔고, 발락 아저씨는 사지절단, 갠 아저씨와 애드가 오빠도 멀쩡하지 못한 것 같고. 그나마 가장 멀쩡한 것은 중반에 일찍 기절한 베이커드와 네린 언니정도였으니 이래저래 신경이 Tm이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긍정했어요.

 “네.”

 “별 문제없었다. 네가 워낙 사정 봐주면서 상대한 덕에 결정타를 받은 인물은 전혀 없어. 네가 먹은 라니아라는 여자도 약간의 기억장애가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너를 위해 슬퍼해줬지.”

 “그렇군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항상 제멋대로인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저를 지켜준 라니아 언니. 나는 그런 그녀에게 너무 끔찍한 일을 하고 말았어요. 꿈을 먹는 다는 것은 그 꿈의 기반이 되는 기억들 역시 먹는 다는 것으로 기억의 소실로 이어지죠. 언니는 그것들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을 까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람의 의식의 기반이 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예요. 아마 모르겠죠. 소멸한 것들은 영원히 떠올릴 수 없으니까요.

 “언니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나요?”

 “얼마 안 되었다. 따라가려면 따라갈 수 있을 거다.”

 “그냥... 뒷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애드가 오빠가 무사히 사계절의 방패를 무사히 되찾았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이 여정, 아니 모험은 하라스티아의 성물인 사계절의 방패를 되찾는 것이 목적인 모험이었어요. 저의 존재가 이 여정의 과정을 변질시키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러했죠. 사계절의 방패란 말 그대로 4계절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 태양의 여신인 하라스티아는 각 계절을 지배하는 여신이지요. 그리고 이 방패는 하라스티아가 불러오는 사계절의 흐름과 변화. 즉 시간과 조화를 상징해요. 어떤 것이든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들 이지요. 그래서 왠지 신경이 쓰이네요.

 “가죠.”

 “음.”

 저는 처음은 다 같이 들어왔던 어둔 복도를 되돌아 걸어 나갔어요. 복도의 양옆에 있던 석상들은 이제 제각각 위치에 서서 다시 석상으로 돌아가 있었지요. 사르마스의 죽음이나 이케다의 소멸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어요. 하긴 그들은 이케다의 아이들. 영지의 주인인 이케다의 소멸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그 이케다를 흡수한 제가 손을 쓰면 이들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지만요. 조금의 흥미가 무심함으로 그것들을 살핀 저는
 신전을 벗어나 올라가는 길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마지막까지 소란스러운 것 같네요.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에 저는 숨어서 살금살금 다가갔지요. 그곳에는 한 명의 드라키온과 애던 오빠가 검격을 나누고 있었어요. 명백히 애던 오빠가 밀리고 있었지만요. 그리고 그 모습을 드라키온의 동료나 부하로 보이는 세명과 애드가 오빠들이 지켜보고 있었지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관여할 마음은 없었기에 얌전히 뒤에서 지켜보기로 했어요. 무엇보다 모습을 드러낼 염치도 없었고요. 일단 저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저 멀리서 살필 따름이었죠.

 “어찌 된 거냐. 그래서야 내 입을 열게 할 수는 없다.”

 드라키온이 비웃듯 외쳤어요. 그는 강검으로 애던 오빠를 누르고 있었지요.

 “크윽.”

 굴욕적인 표정을 한 오빠는 비웃는 드라키온을 향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요. 하지만 오빠의 검격은 모두 드라키온의 방어에 여유롭게 막히고 말았어요. 압도적인 실력차. 도저히 애던 오빠에게 승산이 보이지 않았어요.

 “저 드라키온 강하네요.”

 저는 솔직하고 단순한 감상을 말했어요. 엘자 역시 동의했죠. 저 드라키온은 적어도 검술에 있어서는 애던 오빠 이상인 것 같았어요.

 “그렇군. 도와줄 생각이라도 드는 건가?”

 “설마요. 이제 와서 뻔뻔하게 돌아가긴 좀 그렇지 않나요? 구제 못할 위기상황이라면 몰라도요. 에던 오빠도 아직 전력을 발한 것이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애던 오빠가 모습을 감췄어요. 투명화의 비술. 마법사이지도 않은 애던 오빠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마법사 살해자로서 검은 처녀에게 배운 비술 덕이겠지요. 하지만 드라키온은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애던 오빠의 검격을 받아냈죠.

 “소용없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애던 오빠의 신음 소리와 구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곧 애던 오빠가 모습을 드러내며 일어섰죠. 저는 정 안된다면 나설 준비를 하며 다음에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았어요. 힘을 끌어 올리고 언제라도 뛰어들 준비를 했죠. 애던 오빠는 승부를 걸 생각인 것 같았으니까요. 만약 한다면 역시 그거겠죠. 물질을 투과하여 영체를 베는 검. 저를 쓰러뜨린 바로 그거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두 사람이 서로 에게 검을 내질렀어요. 애던 오빠의 수는 역시 제가 생각했던 그것이었어요. 드라키온의 애던 오빠의 상단을 찔렀고 애던 오빠는 투과된 검을 휘둘렀죠.

 “큭.”

 드라키온의 검이 애던 오빠의 어께 위를 찔렀어요. 거의 목에 가까운 부위로 조금만 비켜나갔다면 목 한가운데를 꿰뚫었을 위치였죠. 그리고 애던 오빠의 검은 드라키온의 한쪽 팔을 잘라냈어요. 그러나 쓰러진 것은 애던 오빠였죠. 하긴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한계에 달하는 싸움을 해왔으니 버틴 것이 더 용했지만요.
 “털썩.”하고 애던 오빠가 무릎을 꿇더니 쓰러졌어요.

 “애던!”

 “라그쟈드님!”

 양쪽은 자신들의 편을 향해 뛰어가다가 곧 멈춰서고 경계했어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그 라그쟈드라고 불린 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집어 들더니 말했어요.

 “흠. 나는 팔을 잘리고 이 자는 어께에 상처를 입었다. 사라드여. 이럴 경우에는 누가 패한 것 이냐?”

 그는 유쾌하다는 어조로 자신의 부하로 보이는 자들에게 말했죠. 그러자 그들 중에서 뱀과 인간을 합성한 듯한 외모의 남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어요.

 “라그쟈드님은 서 계시고 그자는 땅에 쓰러졌으니 라그쟈드님의 승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 하지만 그는 오늘 사르마스를 쓰러뜨리며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걸 감안해 둔다면 뭐라고 말할테냐?”

 “실전에 서로를 상태까지 봐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라드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의 상전으로 보이는 라그쟈드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럴까? 하지만 나는 이것이 실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와 내가 서로 무언가를 걸지 않았더냐? 그는 나의 정보와 안전을 원했고, 나는 그들이 지닌 방패를 원했지. 그렇다면 이건 내기라고 할 수 있지. 공평하게 평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라그쟈드님! 어둔 황혼 결사를 아는 자들을 살려둬서는 안됩니다.”

 사라드 양 옆에 서 있던 다른 둘이 끼어들었지만 라그쟈드는 남은 팔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어요.  그리곤 애던 오빠를 내려다보았죠. 하지만 애던 오빠는 이미 체력이 너무 떨어진 나머지 기절해버린 듯 했어요. 라그쟈드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죠.

 “인간의 검사여. 우리의 결투가 공평하지 못했으며 그대는 단순한 상처를 입은 데 반해 나는 팔을 잘렸으니 그대가 승리한 것으로 하겠네. 이의는 없겠지. 그래, 말이 없으니 없는 거겠지.”

 시덥잖은 농담 같은 것을 말하며 근엄하게 라그쟈드는 말을 이었어요.

 “그래서 그대가 원하는 바를 알려주고 싶지만 나는 아쉽게도 알지 못하네. 하지만 이 라그쟈드. 검을 쥔자로서 검으로 나눈 약속을 깨는 일은 절대 없는 자. 그대가 원하는 바를 알게 되면 내가 알려주겠네. 부디 그동안 휴식을 취하고 자신을 되찾게. 그래서 완전해진 그대와 다시 한 번 검을 섞고 쉽군. 이라고 그에게 전해 주게.”

 “에?”
 모두가 무슨 소리냐는 듯 동시에 외쳤어요.

 “그는 듣지 못하니 내가 한 말을 그에게 전해 주게. 그리고 그대와 검을 섞을 수 있어 즐거웠노라고 말이네. 아, 그리고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자에게도 말이네. 나에게 대한 적의가 무섭군. 자, 그럼 우리는 돌아가자. 사라드, 글로토, 마쟐.”

 라그쟈드가 자신의 팔을 들고 먼저 걸어나갔고 그의 부하들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는 바로 라그쟈드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어요. 멍하니 있는 일행들과 쓰러진 애던 오빠를 남기고요.

 “상당한 능력자로군. 그저 검만이 전부가 아니야. 적어도 너의 존재에 대해서는 눈치 채고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야.”

 엘자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어요. 하긴 아무리 봐도 단순한 전사처럼은 느껴지지 않았죠. 용인인 드라키온이지만 보다 한 단계 높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이었어요. 적어도 지금의 애던 오빠가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죠.

 “그렇네요. 어쩌면 이케다를 흡수한 직후의 저에 가까울지도 모를 정도예요.”

 “적어도 네가 완전히 균형을 찾는 다면 그와 호각일지도 모르지.”

 “그럴 지도요. 그렇다면 서두르도록 하죠.”

 “음?”

 엘자가 저를 바라보았어요.

 “그들이 먼저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제 짐을 미리 챙겨두고 싶어요. 그들과 접촉할 맘이 없는 이상 지금이야말로 제 물건을 챙길 기회잖아요. 빨리 올트 마을로 돌아가도록 하죠.”

 “그렇게 되면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마는데...”

 “상관없어요. 그렇게 되더라도 어차피 저를 찾아 쫒아올 위인들은 아니니까요.”

 저는 그렇게 말하고 엘자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어요. 그리고 저의 힘의 일부를 할애하여 엘자가 현세에 드러나 부분을 늘렸죠. 그러자 엘자는 16개의 날개를 가진 커다란 새로 변모하여 제 앞에 섰어요.

 “그러니 태워줘요.”

 저의 요구에 엘자는 제가 타기 쉽도록  몸을 낮췄어요.

 “알았다. 그런데 올트 마을에서 짐을 찾은 이후로 어디로 갈 생각이냐?”

 “일단은 스승님의 묘소에 갈 생각이에요. 솔드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안가본지 꽤 되었으니까요.”

 “좋아. 그러도록 할까.”

 엘자가 날아올랐어요. 바람이 크게 일며 머리카락을 날리게 했죠. 한 순간에 까마득히 높이 올라간 엘자의 등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점처럼 작아진 애던 오빠 일행이 이제는 거의 안개가 사라진 리딘 숲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죠. 그리고 그 속에서 어쩌면 저에게 약속된 조화를 이루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계절의 방패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손쉬운 길만을 가서야 발전이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어찌나 빨리 나는지 순식간에 보이기 시작하는 올트 마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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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사계절의 방패를 종결했습니다.
주인공을 루시엔으로 잡아 나름 색다른 시도를 해보겠다고 해요체를 집어 넣고
복선도 깔아보겠다고 설쳐보고
화자를 보스로 잡는 등의 짓을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병맛이 되었다는 안습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저는 열심히 노력했어요.
하지만 폭주하듯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루시엔을 따라잡기에는 제 능력이 너무나도 허접했습니다.
거의 끌려가다 시피해버렸지요.
덕분에 루시엔은 폭풍의 탑에서 사계절의 방패의 결말까지 성격이 엄청나게 변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꺼이꺼이...
사실 개연성도 많이 부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루시엔을 써먹을려면 단서를 폭풍의 탑에서 부터 던져놓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화자가 발락인 이상 절대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요.
후우...
사실 8편이 끝나고 진짜 많이 고민 했습니다.
이미 제손으로 수습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나있었죠.
루시엔의 등장은 뜬금없었고(표현력 부족...) 퇴장시키기 위해 루시엔이 무의식적으로 봐준다는 듯한 묘사를 넣을려고 했지만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루시엔은 쓰러졌고(초 작위적인 설정아래!) 내용이 수습이 안될만큼 참혹했습니다.
결국 저는 루시엔을 그냥 이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유령이 된 루시엔이 모두에게 사죄의 말 한마디 던지고 방패를 정화시킨 후 소멸이라는 엔딩을 하기로 정했다가 친구에게 실컷 까이고 난 뒤...
루시엔은 완성판 버전으로서의 기억을 상실하고 예전처럼 돌아간 후 다시 파티로 돌아 온다. 로 했다가. 안그래도 작위적인 내용이 더욱 작위적이게 될 것같은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대폭발!
결국 현재 엔딩을 집어 넣었는데요;;;
솔직히 이것도 별로 마음에는 안듭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머릴 쥐어짜도 이 이상의 결말은 생각이 안나네요.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폭풍의 탑은 드라마틱한 면이 전혀 없고 기승전결이 부족했어도 결말이 그렇게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반해 사계절의 방패는 뒷끝을 남기네요.
이제 이 씨리즈는 앞으로 2개 남았습니다.
원래는 트릴로지의 형식으로 3편짜리를 만들생각이었지만 각편의 분량이 줄어들어서 한 편 더 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각 편마다 화자를 바꿀 생각이니 다음 편 화자에 대해서도 고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자에 따라 내용이나 줄 수 있는 정보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번 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럼 다음 작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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