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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날이었다.
 
 풍월이 두들겨 패다시피 하는 통에 잠에서 깨어나고,
식당에서 다가온 가희씨를 보며 싱글거리는 풍월과 함께 아침을 먹고,
 신비한 미소의 하늘비 선생님을 보며 수업을 받는다.

 

 연희에게 끌려가 옥상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은 목숨에 위협까지 느껴가며 동아리 방을 찾아가고,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날이었다.

 
 어제까지는...

 

 

 

 

 

 

 
 "...아. 일어나."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무겁기만 한 눈꺼풀 사이로 하늘 같은 푸른 빛이 보인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켠 뒤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다보니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깨워주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도 미안하다.

 몸을 적당히 추스른 뒤 침대에서 내려온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풍월을 보며 가볍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바로 식당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그 것이 언제나와 같은 아침일 것이다.
 
 "아, 일어났어. 고마워 풍...워...."

 

 눈 앞에 있는 것이 풍월의 모습을 한 귀여운 여자 아이가 아니었다면.
 꿈에서 보았었던, 바로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 사풍?"

 

 묶지 않은 긴 파란색의 머리칼.
 귀 뒤쪽으로 나 있는 깃털 같은 화려한 색깔의 돌기.
 조금은 작은 키에 발육이 덜 된 것 같은 가느다란 몸.
 입고 있는 옷 만이 평소 풍월이 입던 간단한 옷이었을 뿐, 그 모습은 틀림 없는 사풍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죽은 동생 이야기가 왜 나와?"

 

 돌아온 것은, 그런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에? 아, 그... 그게..."

 

 그 말에 일순 머릿속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풍이었다.
 꿈에서 보았던 적 외에는 없었지만... 잊어버릴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확실하게 다른 성별.
 아니, 그러니까 넌 사풍이잖아. 풍월이 아니고.

 

 그래, 여기서는 역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둬야해!

 

 "미안... 착각했나봐."

 

 "... 혹시나 해서 협박해 두는건데, 꿈 속에서라도 그 녀석한테 이상한 짓 하면 죽인다?"

 

 "... 안 그랬어. 잠시 작각한거야."

 

 가늘게 눈을 뜨며 노려보는 풍월에게 대꾸하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젠장, 귀엽잖아.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풍월의 모습은 분명히 엄청 귀여웠다.
 사실 풍월이 저런 행동을 했다면 좀 때려주고 싶었겠지만, 지금처럼 귀여운 여자 아이의 모습이라면야 뭐...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방을 나선다.

 아무래도 풍월 같은 생각을 해 버리는게... 조금 불안한 느낌까지 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진행했다가는 스스로의 사상 자체에 아주아주 커다란 실망을 하게 될 것 같은 생각까지 들어서 말이지.

 

 그냥, 풍월에서 좀 안좋은 취미가 있다고 생각해두자.
 그렇게 결론 내려 버린 채, 재빨리 방문을 나선다.


 

 

 
 

 
 "... 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풍월의 여장 취미 따위는 웃으면서 넘어가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그러니까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런거죠?"

 

 한참을 두서없이 말했던 내 이야기에 선배님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영웅 후배님을 제외한 모두가 여성이 되어 있다... 라는 거죠?"

 

 "네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네요."

 

 한숨을 푸욱 쉬며 대꾸한다.

 오전 수업을 받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점심 시간 식당에 가서야 그 느낌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황당한 마음에, 일단 달려온 곳이 동아리방.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로 맞아준 선배님께 오늘 있던 일을 설명드리자 선배님은 조금은 당혹스러운 듯,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 글쎄요. 몇 가지 가설은 있지만 확신은 들지 않네요."

 

 쑥으로 만든 주스인지 녹즙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두 잔 정도 비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선배님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 저는 이상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었거든요. 영웅 후배님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알겠네요."

 

 "그런... 가요?"

 

 "네, 어째서 이 곳에서 영웅 후배님 만이 남자일까... 하는 의문도 이제야 겨우 생긴 참이라서요."

 

 쓴 웃음과 선배님은 말을 이었다.

 

 "이런 경우 몇 가지 경우가 있긴 할 거에요. 전 세계적... 아니, 학교 전체 정도로만 한정해 볼까요? 그 정도로 커다랗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술의 발현이라든지... 평행 세계의 이론이라든지... 영웅 후배님의 기억이 잘못 되어 있었다든지... 하는 정도의... 하지만 역시 세 번째는 아니라고 생각해 두는 것이 좋겠죠?"

 

 "그렇지요. 뭐..."

 

 랄까... 확실히 그런 선택지도 있긴 있는 것 같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런 상태라면, 이 것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이상한 것은 나이겠지.

 하지만 그 경우는 일단 빼 놓고...

 

 "뭐,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일단 두 가지이긴 한데요... 후자는 확실하게 말씀 못 드리겠네요.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것이라서요."

 

 평행 세계 이야기인가...
 역시 그 쪽은 뭐라고 말 하기가 껄끄러운 것 같다.
 밝혀진 것도 없고... 있다면 내 꿈 속의 이야기라든지?
 하지만 그 것도 미묘하게 평행 세계와는 뭔가 다른 느낌인 것 같고...
 
 그 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제대로 알고 있거나 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역시 주술이네요. 생각해보면... 주술로 작은 세계를 구성해 놓을 수만 있다면 그 평행 세계의 이론 역시 어느 정도 설명이 될 테고. 단지 그런 커다란 주술을,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높은 수준의 주술사들 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걸 만한 사람이..."

 

 "... 있는 건가요?"

 

 내 말에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나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아시죠? 누구 이야기 인지."

 

 "... 결국 범인은 마고씨라는 이야기죠?"

 

 한숨을 푹 쉬며 대꾸한다.
 이 검은색의, 외모와는 정 반대로 살벌한 꼬마 아가씨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네? 아니에요. 전 마고 후배님이 이 일의 장본인이라고는 안 했어요."

 

 "하지만... 마고씨... 말고는 이런 일을..."

 

 "그렇다고 해서 마고 후배님을 의심하면 안돼요. 그런 버릇은 고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영웅 후배님."

 

 선배님의 양 눈썹 사이로 살짝 주름이 지어진다.
 똑바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선배님의 눈.
 역시 선배님은 이런 면에서는 타협이란게 없는 것 같다.

 

 "그...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사과 받을 일도 아닌데요 뭘. 단지 앞으로는 조금 주의 해 주세요."

 

 그제야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풀린 듯한 얼굴. 그 모습을 본 뒤에 선배님 몰래 작은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고씨를 의심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주술사는.. 아마도 마고씨 뿐일 테니까.

 

 확실한건...

 

 "그럼... 일단 마고씨를 만나 봐야 겠군요."

 

 아무래도 이번에도 꽤나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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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포시 새로운 천로 역정 스토리 하나 투척 준비..

 

... 그런데 왜 본편은 신경도 안쓰고 외전만 주구장창일까요. 므헤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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