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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4. 16 초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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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는, 말 그대로 '예뻤다'.
붉은 머리칼과 귀여운 방울장식. 너무나도 순수한 눈동자. 카미루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르게 사람을 매료한다. 카미루도 그녀가 달려오는 모습을, 순간 넋 놓고 쳐다볼 뻔 했다.
쉬익-키츠는 맨손으로 카미루의 옷 앞섬이 찢어졌다. 블레이져의 단추가 뜯어져 나갔다.
'헉!"
카미루가 숨을 삼킨건, 떨어져나간 교복 단추를 봤기 때문이다. 키츠의 손톱에의해 뜯어진 금속의 교복단추는, 마치 칼로 벤듯 깨끗이 두동강 나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이건?!"
"키츠는 기뻐! 더 이상 사람을 못 만날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누군가를 만나다니."
카미루는 지금도 계속 놀라고있다. 저렇게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에게서 어떻게 시야를 일그러트릴 정도의 기운을 내뿜고, 단추라지만 맨손으로 금속을 쪼갤 정도의 힘이 있는것인지.
'솔직히...'
무섭다. 솔직히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의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혈해에 남아있는 기억이라 생전의 능력을 일부밖에 발휘하지 못한다지만, 그게 이 정도인데.
"생전엔 얼마나 강했던거지..."
카미루가 블레이져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응? 뭐라 그랬어 카미루?"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선조라고 해도 이런 소녀에겐 높임말이 나오질 않는다. 솔직히-아까의 그런 무서운 기운과 힘만 아니라면, 보고만 있어도 픽-웃음이 나와버릴만큼 귀여운 소녀이다.
'하지만.'
하지만. 카미루는 마음을 다시 잡는다.
'난 리겔을 막아야해. 리겔은 지금의 키츠보다 더 강해. 그러니 이 정도에 막혀선 안되지.'
카미루는 혈해를 꽉 움켜쥐었다. 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살짝 굽혀 자세를 취한다.
"아! 그거 혈해지!"
키츠가 외쳤다.
"혈해! 혈해! 그렇구나. 카미루도 혈해 사용자였구나."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키츠가 반가운 표정을 하며 웃었다.
"나도 혈해~"
키츠가 말하고-그녀의 기운이 더욱 농밀해졌다.
머리 위엔 뾰족한 뿔 같은것이 두개 났다. 뿔-이라기보다 동물의 귀.
손에는 동물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무언가가 둘러싸고있다.
그리고 등 뒤로 펼쳐진 아홉개의 붉은 피의 응축. 말하자면 꼬리의 모양.
여우의 귀와 발톱과 아홉장의 꼬리를 가진,
"적색의 구미호..."
사방에서 찔러오는듯한 강한 기운은 없어졌지만, 키츠 자신의 기운은 더욱 강하고 무거워졌다.
"카미루. 내가 혈해 꺼냈다고 너무 금방 죽어버리는건 아니지?"
키츠가, 맑은 눈동자를 둥글게 뜨며 얘기했다.

날카로운 기운이 카미루에게 덮쳐온다. 키츠를 쳐다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느껴지는 강한 기운. 살기와는 다르다. 저 소녀는 그런 것을 내뿜지 않는다. 그저-아무것도 아닌 느낌. 말하자면 인기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것이,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찢어발길것 같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약해져선 안된다.
"지지않아!"
카미루는 외쳤다.
리겔이, 데스가, 미즈루가.
"이런것 빨리 끝내주겠어!"
그래?
카미루는, 그런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주륵.
가슴께에서 붉은 것이 흐른다. 붉은 액체는 블라우스를 같은 색상으로 물들인다.
"아...?"
순간, 머리가 따라가지 않았다. 피의 바다에서 튀긴 액체가 블라우스에 묻었거니-싶었다. 하지만, 이윽고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으아악!"
카미루는 갑자기 온 통증에 현기증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뭐지? 지금, 뭐가 어떻게 된거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하지만 그 앞에 키츠는 없다. 그리고 더불어-방금 전까지 존재하던 기척 역시 전혀 남지않고 사라졌다.
"크악!"
등쪽에 공격을 받았다. 블라우스 표면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나는 순간 몸을 앞쪽으로 최대한 빼긴 했지만, 공격을 피하진 못했다.
'뭐, 뭐야! 어떻게 된거야!'
키츠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공격이 오고있다.
어깨, 팔둑, 옆구리, 허벅지.카미루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옷 표면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드는 순간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겨우 겨우 치명타는 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뿐. 공격 하나 하나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있다.
'이대로면, 상처 회복도...'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코야마가의 각성자라도, 기본으로 상처의 정도와 회복 시간은 비례한다. 이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정도로 깊은 상처를 계속 입는다면 치명타는 없어도 위험하다. 과다출혈로 죽을 일은 없겠지만, 피하는것도 한계가 있다.
다시 오른쪽 팔둑의 옷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카미루는 그 느낌을 따라 공격의 방향을 예측해
팔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이었다.
딸랑.
'응?'
무언가 소리가 들리고, 그게 카미루의 정신을 흐트러놓았다.
"아아악!"
카미루의 의도와 달리 팔이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정신이 흐트러져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것이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공격-손톱인것 같다-은 카미루 오른팔의 살을 파고들고, 근육을 찢고, 뼈를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허공으로 날아간 오른팔은 옷을 제외하고 완전히 붉게 변하더니, 물풍선 터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옷소매와 혈해만이 찰박,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와아! 정말 대단해 카미루!"
다시 키츠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 무슨 짓을..."
카미루는 말을 하는것도 힘들었다. 키츠의 옷은 이곳 저곳 붉게 변해있었다. 아래쪽 하카마는 원래 붉은 색이여서 별로 차이가 없지만, 위쪽 하얀 치하야는 이미 카미루의 피로 이곳 저곳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기척을 감춘거야. 키츠는 그게 특기거든. 그래서 금방 카미루를 죽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버티다니, 어떻게 한거야?"
카미루는 대답하지 못한다.
"뭐 상관없나? 카미루. 이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것 같으니까. 키츠가 빨리 죽여줄게. 정말 기뻤어. 이렇게 오랜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어서."
키츠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만큼 예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카미루는 한팔로 기어갔다. 떨어진 혈해를 향해서.
'하지만!'
왼손으로 혈해의 날을 잡았다. 손에 상처가 나고, 그보다 더 한, 힘에 의한 압력이 가해져 오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금방, 죽어줄 수는 없거든."
카미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녀의 잘린 오른쪽 팔둑에서 붉은 덩어리가 생겼다. 덩어리는 팔의 모양으로 변하더니, 이내 색도 평범한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팔로 혈해를 손잡이를 쥐었다.
'스테너가 썼던것을, 응용해보자.'
자신의 오른팔은 유사혈체를 이용하여 팔의 형태로 취한것이다. 스테너도 본체가 다쳤을때 유사혈체를 이용해 그 부분을 임시로 막았다. 그것을 떠올리며 카미루는 몸의 상처에 신경을 옮겼다.
혈해의 피가 체내로 흘러들어온다. 직접 무언가를 타고오진 않지만 확실히 느껴진다. 흘러들어온 피는 혈관들을 타고 몸의 상처들로 옮겨가, 그곳을 메운다. 깊이 패인 상처들에 붉은 액체들이 덩어리지듯 원래 신체의 모습을 만들고, 이내 색도 변한다.
"어? 카미루, 상처 벌써 다 나은거야?"
키츠가 놀란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상처가 다 나은것은 아니다. 이미 어렸을적 잘렸던 오른팔은 상처도 다 나앗고 평소에도 유사혈체로 생활을 하니 완전히 익숙해져 있지만, 방금 생긴 다른 상처들은 겉으로 보기엔 다 나은듯 싶지만 통증도 남아있고 어색함도 느껴진다.
"괜찮아. 그럼 키츠가 더 재미있을 수 있으니까. 카미루, 그럼 이번엔 제대로 죽여줄게."

그리고 다시 키츠의 기척이 사라졌다.
카미루에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습은 커녕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옷에 닿는 느낌만으로 피했지만, 이젠 옷도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몸을 제대로 가려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 감촉으로 공격을 피한다는건 이제 어려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두번은...'
카미루는 희망을 버리지않고 다음 공격에 대비한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기 때문.
옷깃에 스치는 느낌이 나고, 그와 동시에 카미루도 몸을 틀었다. 이번엔 다행이도 피부만 살짝 긁히고 지나갔다. 하지만 계속 이래서야 대응이 불가능하다. 어느쪽에서, 어떻게 오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
딸랑.
"어?"
카미루의 코 앞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고, 카미루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푹 숙였다. 그리고-무언가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나며 관성으로 떠오른 머리칼 약간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딸랑-딸랑.
분명히, 들린다.
모습도, 냄새도, 기척도, 그리고 움직이는 소리도 나지 않던 키츠였지만. 어째서인지 방울 소리만은 들린다. 굉장히 작고, 조금만 신경을 끄면 놓칠듯이 작은 소리이지만.
딸랑.
왼쪽에서 방울소리가 들리고, 카미루는 몸을 비틀며 오른쪽으로 뺐다. 역시 눈 앞에 허공을 가르는듯한 느낌이 났지만, 그 외의 일은 없었다.
딸랑.
위쪽에서 난 방울소리를 듣고, 카미루는 앞으로 굴렀다. 뒤쪽, 자신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 떨어지며 바닥이 찰박 했지만,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혹시 이거...'
방울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고 키츠의 공격을 세번이나, 아무 일 없이 피했다. 그렇다는건-분명 그 소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방울장식은 분명 키츠의 앞머리에 달려있었다. 그녀의 공격 형태까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와 키츠의 팔 길이등을 고려하여 대강 공격 거리등을 예측해 피할 수 있을것이다.
'해봐야겠...지.'
카미루는 혈해를 꽉 잠는다. 그리고 청각에 집중한다. 눈을 감는다.
딸랑-딸랑-딸랑.
분명 들린다. 키츠가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때마다 흔들리는 방울 소리. 그리고-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딸랑.
오른쪽 뒤. 카미루는 소리를 듣고 앞쪽으로 뛴다. 뒤쪽에서 작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방울 소리가 이동한다.
한번, 두번.
그리고 카미루는 완전히 방법을 터득했다. 방울소리가 들리는 방향. 그리고 거리. 위치. 눈 깜빡 할 정도의 시간만에 그것들을 재빨리 파악하며 키츠의 공격들을 하나 둘 피해간다.
딸랑.
정면. 이번엔 혈해를 쥐고, 소리가 난 거리, 키츠의 팔 길이등을 생각하여, 앞쪽으로 밴다. 팅-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치는듯한 느낌이 나고, 카미루는 다음을 준비했다.
'다시 정면! 하지만 더 낮아!'
피하기만 하기보단 이젠 반격을 해야한다. 아니면 이길 수 없다. 끝나지 않는다.
혈해에 힘을 집중하고, 검을 거꾸로 들어 베어올린다. 또한번 단단한 것에 부딪혔고, 카미루는 그대로 몸을 돌리며 정면을 향해 베어 내린다. 앞을 향해 피의 검기가 날아가고, 무언가에 맞닿은 검기는 형태가 일그러지며 사라졌다.

"꺄앗!"
키츠의 외침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타났다, 라기 보다는 카미루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것을 보게된것.
"세개나 잘렸어..."
키츠의 말대로 그녀의 꼬리가 세개나 잘려있었다. 잘린 꼬리는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카미루도...들리는거야?"
키츠가 방울에 손을 가져갔다. 카미루는 흠짓 놀랐다. 알아챈것인가?
"그때도 그랬고..."
키츠가 방울을 만지작 거린다. 금방이라도 잡아뜯을것 같다.
'안돼...저 방울 소리라도 들렸으니까 이정도인데, 저게 없으면!'
하지만, 키츠의 손은 그렇게 거칠게 움직이지 않는다. 방울을 쓰다듬는다.
딸랑.
"그래도. 이건 안돼."
소중한 것을 만지는듯, 섬세한 손길.
"아빠가 준, 선물이거든..."
소녀의 귀여운 얼굴에 약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맑은 눈동자에 결코 없을거라 생각되던 '슬픔'이 옅보인다.
'이 아이...'
카미루는 순간 마음이 풀어졌다. 잠깐이지만 키츠가 걱정됐다.
"키츠는 사람을 죽이는게 좋았어. 그냥, 좋았어."
키츠는 작은 입술로, 전혀 상상도 하지못할 위험한 말을 내뱉는다.
"카미루도 힘을 원하는거지? 그건 누군가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기 위한거야?"
카미루는 키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나는."
카미루가 대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막으러 가는거야. 그리고 분명...그 사람을 다치게 하겠지."
그래? 키츠가 말했다.
"그럼 키츠하곤 반대네. 키츠는, 그 반대로 했는데...카미루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수 있는거구나."
"......"
카미루의 표정도 어두워진다. 유사혈체로 막아놓은 상처들이 쿡쿡 쑤시는것같다.
"키츠, 카미루를 돕고싶어. 하지만 그래도 카미루와 싸울거야."
키츠가 말했다.
'바꼈어.'
죽이겠다, 에서 싸우겠다로.
"그래. 나도 지지않을거야, 키츠."
카미루의 등 뒤에서 피의 날개가 나타난다. 혈해에 힘이 들어간다.
키츠의 꼬리들이 펼쳐진다. 비록 여섯장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충분히 강대한 힘이다.

"하아아앗!"
카미루가 살짝 발돋움을 한 뒤 날개를 펄럭이며 낮은 높이로 돌진해갔다. 순식간에 키츠와의 거리를 좁혀 혈해로 베어내린다. 사악-하고 검이 내려가지만, 키츠는 한발짝 물러서는것으로 간단히 피한다.
키츠는 살짝 뛰어올라 묘기 부리듯 공중에서 돌며 피의 꼬리로 카미루를 쳐 내린다. 카미루는 피의 날개를 앞쪽으로 접어 공격을 막지만, 허무하게 뚫려 한쪽 날개가 소멸되어버렸다.
'칫, 밀도에서 밀리는건가?'
피의 날개는 금방 다시 만들어졌지만, 키츠의 꼬리보다 약한건 여전하다. 애초에 피의 날개는 전투용이 아니니까.
키츠가 손톱을 세워 앞쪽을 할퀸다. 피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라, 카미루는 손목만 움직여 혈해를 움직였다. 무거운 충격이 팔에 전해져왔지만 키츠도 멈칫 했다.
"괜찮아? 기척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카미루, 다시 소리로 알아챌거고. 그럴거면 차라리 이렇게 하는게 나아."
그리고 다시 격돌한다.
검과 손톱이 맞붙는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퍼졌다.
카미루는 혈해를 거꾸로 쥐고 바닥에 꽂았다. 검 날이 향한 앞쪽으로 피의 바다가 가시처럼 올라가며 나아갔다. 가시는 나아갈수록 커지고 그 범위가 넓어졌지만, 키츠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손톱을 세우고 앞쪽을 향해 강하게 할퀸다.
정면의 가시들은, 그것만으로 허무하게 부서져 없어졌다. 피가 먼지처럼 흩어지고, 키츠는 카미루를 향해 달려간다.
"응?"
앞쪽엔 카미루가 없다.
"단순해!"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키츠가 고개를 돌렸을땐 이미 카미루가 혈해를 휘두른 뒤 였다.
"아앗!"
키츠는 재빨리 몸을 뒤로 틀었지만, 꼬리가 또 하나 잘렸다.
"네개째. 이제 다섯개 남았어."
키츠에게 당했던 부분이 아직 찌릿찌릿 아파오지만,
"일단 그 꼬리들을 모두 잘라내주겠어."
카미루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키츠는 표정을 일그리지 않는다. 마치 더욱 재미있어졌다는듯.
달려온다.
다시한번 키츠의 손톱이 다가온다. 카미루는 주저하지않고 혈해로 받아내려했다. 키츠의 손톱이 내려오고, 카미루의 혈해가 받아친다. 부채를 펼치듯 검이 내려간다. 하지만, 검에 충격은 오지않았다.
"뭣?!"
키츠는 중간에 공격을 거두고, 재주부리듯 몸을 허공에서 돌렸다. 그대로 다리를 들어-카미루의 오른쪽 어깨를 발꿈치로 힘껏 내리찍었다.
어깨뼈가 으스러지는듯 강한 충격. 둔기로 내리친것 같다.
"커헉!"
카미루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만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히얏!"
키츠가 손을 펼쳐 쓰러진 카미루를 내려찍으려 한다. 하지만, 펑 소리와 함께 카미루의 피의 날개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조금 커다란 물풍선을 터트린 정도밖에 안되는 정도. 하지만 그것이 눈 앞에 터져버리고, 나온것이 투명한 물이 아닌 붉은 피여서-키츠도 순간 깜짝 놀라 손을 거둬갔다. 카미루는 그 순간을 놓치지않고 앞쪽으로 굴러 키츠에게서 빠져나갔다.
어깨가 삐걱거렸지만 그정도로 쓰러져 있어선 안된다. 다시 피의 날개를 만들어내어 일단 키츠와의 거리를 벌린다.
'공격 하나하나가 너무 강해...위력 자체가 비교가 안돼...'
달려오는 키츠의 공격을 흘리고, 막아내며 카미루가 생각했다.
'그만큼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방금전처럼 속임수도 쓰고.'
하지만.
"그렇다고 당할까보냐!!!"
키츠가 몸을 빙글 돌며 손톱으로 카미루를 벤다. 카미루는 왼쪽 팔뚝이 찢어지는 느낌이 났지만 신경쓰지않고 그대로 혈해를 휘두른다.
"꺄, 꺄앗?!"
키츠가 소리쳤다. 팔을 내주면서 공격해 들어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키츠가 빙글 돌며 공격을 했기에 등이 카미루에게 노출됐고, 혈해에 꼬리 두개가 잘려나갔다.
"아, 아파..."
그리고 등까지 베여 옷 안의 고운 살결에서 피가 흐른다...
"히이잉..."
키츠가 신음하며 주춤 주춤 물러섰다. 카미루는 이때다, 싶어서 반격을 하려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많이, 깊어...'
지금까지 상처들도 모두 깊었지만, 그래도 전부 공격이 오기 직전 옷 위에서 그것을 느껴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반격을 위해 팔을 내줄 각오로 달려든것. 뼈까진 아니지만 근육이 모두 찢어져 버렸다. 팔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이정도라면 유사혈체로 상처를 메워도 제대로 쓰지 못할것이다.
'그래도 안하는것보단 낫겠지...'
카미루는 피의 흐름을 조절하여 팔뚝의 상처를 막는다. 겉모습은 제대로 돌아왔지만, 팔꿈치나 어깨를 조금만 움직여도 큰 통증이 온다. 이제 왼팔은 못쓰는 상태라고 생각해도 좋을것이다.

이제 적색의 구미호의 꼬리는 세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꼬리를 모두 잘라낸다고 키츠의 힘이 모두 사라진다거나, 무언가 일어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카미루는 한손으로 혈해를 들고 키츠에게 맞선다. 혈해가 수도처럼 든 키츠의 손과 부딪힌다. 한손의 힘만으론 현저히 딸린다. 카미루는 오른팔의 유사혈체로 피를 집중시켰다. 그때-키츠는 카미루의 혈해를 막은 상태로 뛰어올라 공중제비 돌듯 몸을 틀어 카미루의 목에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카미루도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 발차기를 피했다.
다시 거리가 멀어지는 두 사람.
"혈해의 기억으로 힘이 약해져있어도 꼬리가 새개밖에 안남아있으면 할 수 있을것도 같은데..."
키츠가 말했다.
"뭐를?"
"으응. 아니야. 역시 하지않을래. 그걸 하면, 카미루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을거고."
순간, 두려웠다.
지금도 이렇게 상대하기 벅찬데-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는 다른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니.
"카미루는 나와 달라.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카미루의 길을 보고싶어."
카미루는 과거에 소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키츠가 하는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칫!! 사람 무시하고!"
카미루는 혈해를 쥐고 앞으로 휘둘렀다. 피의 검기가 날아간다. 크고 밀도 높은 공격. 그리고 두번 더. 세개의 검기가 키츠를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검을 뒤로 돌려 한번 끌어올린뒤, 키츠를 향해 도약해간다.
키츠는 간단히 첫번째 검기를 막아낸다. 두번째, 세번째 공격도 막아내어 뛰어오는 카미루에 대비한다. 카미루가 키츠의 코 앞까지 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다시 한번 뛰어올라 키츠의 뒤로 넘어갔다. 키츠가 놀라 카미루를 향해 돌아보는 순간, 촤악-소리와 함께 키츠의 꼬리 한개가 잘려나갔다.
"뭐, 뭐?!"
키츠가 놀라서 당황하는 순간, 키츠 뒤로 넘어간 카미루는 무릎으로 키츠의 옆구리를 차고, 몸으로 밀쳐 쓰러트렸다.
"하아아아!!!"
"꺄앗!"
앞쪽으로 엎어진 키츠. 그리고 카미루는 남은 두개의 꼬리 모두 간단히 잘라버렸다.
"아..."
그리고 키츠의 손을 감싸고있던 동물의 발톱같은 것도, 머리 위에 나 있던 여우 귀 같은것도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끝났어, 키츠. 내가 이겼어."
"어떻게...한거야?"
"검기를 날리고 내가 달려가는 순간, 시간차를 두고 검기를 내 뒤쪽에서 하나 더 만들어 날린거야. 나한테 시선을 뺏기게 하고 말이지."
카미루가 혈해를 뒤로 빼서 한번 끌어올린것이 마지막 검기를 날리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내가 졌네. 이걸로 두번째 패배야."
키츠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하지만 즐거웠어. 카미루, 만나서 반가웠어. 아만 끝내줘."
이내 다시 활짝 웃는 표정을 짓는 키츠였다.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미안."
카미루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혈해를 키츠에게 찔러넣으려 했다. 하지만 키츠의 몸은, 피의 바다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응?"
"이미 승부는 났으니까. 괜히 그런 가슴 아픈짓 할 필요 없잖아?"
어느새 타쿠미가 카미루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좋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카미루에겐 그것마저도 날카롭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타쿠미는 그런 느낌의 남자였다.
"자. 너무 심하게 다쳤지?"
짝, 하고 타쿠미가 손뼉을 쳤다. 피가 카미루의 몸 주변을 감싸고, 순식간에 그 심한 상처들이 모두 나았다. 옷은 되돌아가지 않았지만.
'정말...아무리 그래도 너무 대단해.'
그렇게 생각하며 타쿠미를 보았다.
"키츠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기 위해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엄청나게 죽였지. 너와는 반대되게 말이야."
키츠가 말했던, 카미루는 자신과 다르다는것이 이걸 말하는것 같았다.
"정말...최고의 적격자였지. 정말 살육만을 위해서 태어난듯한 아이었어. 어렸을적 부터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사방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날카롭게 웃는 타쿠미었다.
"그만해..."
카미루는 그를 막는다. 그런데,
"아, 그건 어떻게 된거지? 혈해의 사용자들이랑 싸우는것 아니었어? 키츠는 혈해를 안쓰던데?"
카미루가 묻는다. 분명 키츠는 자신도 혈해를 쓴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혈해는 커녕 검 비슷한것도 들고있지 않았다.
"응? 누가 언제 혈해가 검이라고 했나?"
하지만 오히려 타쿠미가 의아하다는듯이 말했다.
"혈해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무기야. 사용자에 맞춰서 그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형태를 띄지."
타쿠미가 당연하다는듯이 얘기했다. 하지만 카미루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였다.
"키츠의 경우는 손을 감싼 동물 발톱모양 무기. 이전엔 창이나 대검이나 뭐 이것 저것 다른 형태도 많았어. 지금 검의 형태는 스테너가 고정해놓은것이지."
타쿠미가 말했다. 담담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말투인데도, 어딘가 가시 돋힌듯 날카로웠다.
카미루는 생각했다. 그러고보니-어머니 유리네는 초월자이시면서도 혈해를 사용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유리네는 언제나 활을 사용했다. 하지만 스테너가 형태를 고정시켜놓았다면...
"그럼 활의 형태도 가능한거야?"
아아, 하며 타쿠미는 생각했다.
"유리네 말하는건가? 뭐 말하자면 가능하지. 원래는 스테너가 형태를 고정시켜놓아서 불가능할텐데-어떻게인지 그녀는 활의 형태로 바꿔서 사용하더라고."
타쿠미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타쿠미가 말을 돌리며 카미루를 쳐다보았다. 보는 사람을 싸늘하게 얼어붙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세번째 시험. 시작해야지?"
카미루도 긴장을 하고 혈해를 고쳐쥐었다.
"마지막은...코야마 타쿠미. 내가 상대다."
날카로운 미소를 지은 타쿠미가, 카미루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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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지칩니다.
안녕하세요, 코드입니다.
n번째 세계-코야마가 14번째 입니다.
이번엔 아마 5시간은 걸렸을겁니다.
엄청 힘들었습니다. 지쳤습니다.

카미루와 키츠의 전투씬.
대충 썼습니다. 그렇기에 망했습니다.
그런주제에 시간은 엄청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카미루와 싸우면서 성격이 변한(?) 키츠가 인상깊었습니다.

다음은 타쿠미가 상대입니다.
다음건 빨리 끝날 예정입니다.
그 뒤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지쳤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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