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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44

2008.03.20 07:42

미에링 조회 수:203




마루의 길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한번에 여러 옷을 고를 수 있는
스토어즈였다. 이 곳에서는 '백화점'이라고 한다는 듯 하다.
생각해보면, 이전부터 내가 옷을 구하는 방법은,
어릴 때 아버지가 주문해서 만들어주신 한 벌과,
어머니의 옷으로 알고 있는 옷 한 벌의 모양을 토대로
계절이나 용도에 맞춰 주문해서 만들어 온 것이 전부였다.

"차를 쳐박아두고 오겠다. 먼저 들어가 있어라."

스토어즈의 입구에 차를 멈추고 말하자, 마루가 차 문을 열며
웃음을 짓는다.

"에렐, 그건 '주차하다'."

그리고 난 평소 말을 배울 때 처럼 그 단어를 사용해서 말을 반복한다.

"차를 주차하고 오겠다."

이젠 말의 연결에 맞게 어미를 바꾸는 것도 익숙하다.
이럴 때 마다 꽤 배운게 있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스토어즈에서는 별도의 주차장 건물을 운영, 기본은 유료이나
나올때 스토어즈 내에서 물건을 구입시에 함께 주는 티켓을 보여주면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는 듯 했다.

아누라크에도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곳곳에 운영되고 있는
다층 주차 건물이 있었기에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주차 위치는 주차 건물 3층의 한쪽 자리, 위치를 대강 기억해 둔 뒤,
지갑과 열쇠를 챙겨 들고 차를 나선다.

"잠금."

차내의 음성 인식 램프가 희미하게 반응,
찰칵, 하고 차의 도어 락이 걸리는 소리가 난다.
문을 열 때의 음성 락은 조금 다른 단어를 써 두었지만,
잠금은 단순했다.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이동, 곧바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었지만, 스토어즈의 앞쪽으로 돌아
정문 방향으로 들어섰다.

1층은 바로 보이는 품목들로 보아, 신발과 가방, 악세사리 등의
잡화류가 주류인 듯 했다. 그리고 바로 앞쪽에는 그 악세사리를
구경하고 있는 로베스와 그 옆에 서 있는 마루의 모습이 보였다.

"아, 에렐."

마루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로베스는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고 다시 악세사리를 열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로베스가 보고 있는건 아무래도 목걸이인 모양이었다.

"이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베스가 마루에게 묻자, 마루는 나를 보던 눈을 그 쪽으로 돌려
로베스가 가르킨 것을 살펴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
…두 사람, 무얼 하는 것일까.

"괜찮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진열장과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내게 무언가 요구하는 것일까? 하지만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난 그냥 마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럴까요?"

다시 두 사람끼리 무언가를 얘기하더니, 로베스는 그 스토어의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어, 주인장님, 이걸로 내놔입니다."

마루는 표정을 굳혔고, 스토어의 주인은 웃다가 말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다시 미소를 띄운다.
아아, 저런것이 영업용 미소라는 거겠지.

"예? 손님, 이걸로 드릴까요?"

그리고 난 소리죽여 웃었다.

"……쿡."

다행이라고 할까, 로베스는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느라 듣지 못한
듯 했다. 사람 뒤에서 웃는 것, 실례지만…
지금은, 앞에서 웃는 것 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로베스를 따라 이동한 곳은 2층, 이곳은 의상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마루 교사님, 적합한 옷을 발견하셨습니다의 경우, 당장
  후려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마루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 네, 아하하…"

그리고, 로베스는 가만히 서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내 어깨를
덮석 잡았다.

"에렐리니아, 너의 옷을 꼬시는 거야.
  반반한 옷이 보이면 바로 말 타."

그리고, 난 로베스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곳 말을 익히고 온
것인지를 잠시 고민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옷은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로베스가 저렇게 들떠 있으니
살펴보는 흉내 정도는 내 주는것도 괜찮겠지.



....



"에렐리니아, 이 옷을 신어 봐!"

옷을 둘러보기 시작한지 대략 20분.
로베스는 매장 저끝에서부터 옷 두 벌을 들고 매장 한쪽을 걷고 있던
나에게 달려왔다.

양 손에 한 벌씩 들고 있는 옷은, 한 쪽은 원피스, 한 쪽은
상 하의가 별도인 옷이었다. -그 이상의 모양은 알 수 없었지만.

"어서, 에렐리니아, 분장실은 이쪽."

로베스는 내 손을 이끌고 탈의실 쪽으로 막무가내로 걸어가고 있었다.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기에, 난 굳이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탈의실로 향하는 길에 마루가 보이자, 로베스는 마루에게도 손짓을
했다. 마루는 한참 고민하는 얼굴이더니, 이내 옷 한 벌을 집어 들고
로베스를 따라온다.

탈의실 앞에 도착하자 로베스가 들고 있던 두 벌의 옷 중에서
한 벌을 내 손에 툭 쥐어주며 내 등을 떠민다. 그리고는 마루에게
손짓을 했다.

"계집애분이 옷을 갈아입을 때는,
  눈 깔아 주시고, 돌아서 주시는 거에요."

……로베스도 어서 말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탈의실은 매장 한쪽에 간이식으로 마련되 있어서,
여러 칸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안쪽에는 사방에 거울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였다. 간이로 설치한 것이어서인지, 가려지는건 무릎 위부터
였다.

우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문에 걸려 있는 옷걸이에 걸고,
정장 타입의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벗어서 걸쳐 놓는다.

왠지 공기가 더 서늘하게 느껴진다.
이런 장소에서 옷을 갈아 입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일까,
묘하게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 기분 탓이겠지.
…어서 입어보자.

그렇게 난 옷을 살펴 볼 새도 없이 옷을 얼른 몸에 걸쳤다.
원피스를 다리에서부터 끌어 올리고, 팔을 넣고,
지퍼를 올린다.

색상은 짙은 파랑, 그런데…
입고 나서 보니 가슴 조금 위쪽이 뚫려 있는 것이었다.

거울로 보니 가슴 위쪽에, 가슴골까지 들여다 보인다.

"에렐리니아, 입는 어려움? 도와줄까?"

로베스가 기다리는 것 같아서, 어쩄든 일단 문을 열고 나왔다.

"와아, 반반하네."

그리고 그 소리에 뒤로 돌아서 있던 마루가 돌아본다.

"마루 교사님, 어떤 목격이신가요?"

하지만 마루는 어째서인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나에게 두지 못하고 이내 눈을 돌려 버렸다.

"에… 괜, 괜찮네요."

그런 마루의 반응에 궁금해 할 새도 없이, 로베스는
다음 옷을 나에게 들려주며 나를 다시 떠밀었다.

마루는 다시 뒤로 척 하고 돌아섰고,
난 뭐라 말할새도 없이 다시 탈의실 안으로 밀어넣어졌다.

방금 전의 원피스를 다시 벗고,
이번엔 상하의가 별도인 옷의 상의를 몸에 걸친다.

색은 갈색에 가까운 적갈색에, 소매는 손등을 덮는 길이였다.
그런데… 앞쪽에 있는 단추를 모두 잠그고 나니,

…겨우 가슴 아래까지를 가리는 길이였다.

"에렐리니아, 도와줄까?"

로베스의 목소리에, 난 대답을 해 두고 일단 입어 보기로 했다.

"괜찮다."

그리고 끌어올려 입은 스커트는, 상의와 비슷한 색이었다.
골반에 걸쳐지는 것으로, 길이는 허벅지를 반쯤 덮을 길이…
게다가 오른쪽은 옆이 트여 있었다.

이거, 괜찮은걸까…


일단은 다 입었으니, 탈의실을 나가 보기로 한다.

"와아, 에렐리니아, 지금으로 신고 가자!"

그리고 마루가 돌아보았다.

"푸헙."

마루는 다시 돌아섰다.

"마루 교사님은 눈동자에 안 채워되시나요? 새색시한데."

마루는 왜인지 말을 더듬어가며 답한다.

"아니, 그, 그게, 예쁘지만, 그러니까…"

로베스는 이대로 가자고 내 손을 잡아당겼지만,
난 현실적인 문제부터 지적하기로 했다.

"이대로 나가는건 춥다."

"아.……"

그리고 난 마루가 들고 온 옷을 받아들고 다시 탈의실로 들어갔다.

…왠지 옷 갈아입히는 인형이 된 기분이 드는것은,
역시 기분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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