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차의 문이 열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옆자리에 로베스가 탔다.
뒷 좌석에는 우선 짐들이 타고, 그 옆으로 마루가 앉는다.
그리고 로베스는 생긋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에렐리니아, 어때, 신선한 옷을 덮은 꼬라지 기분은?"

마루가 웃었다.

"풉."

조금 전 계산대에서도 계산을 마친 계산원에게 '대충대충 하십시오,
이쁜이님' 하는 인사를 건네서 묘한 시선을 받고 돌아오는 참이었다.

"로베스."

"응?"

차를 출발시키기 직전, 난 로베스를 보며 말했다.

"네가 말을 더 배울 때 까지, 물건 계산은 내가 하겠다."

고갸를 갸웃거리는 로베스를 외면하며, 난 기어를 넣고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린다.

돌아가는 길, 반쯤 왔을까, 로베스가 문득 나를 보며 묻는다.

"에렐리니아, 여기엔 닥치는대로 달리는 도로 없어?"

속도 제한이 없는 도로를 묻는 것이겠지,
아누라크에는 외곽 지역에 몇 군데인가 그런 도로가 있다.
하지만 이 곳의 일은 나 역시도 그다지 잘 알고 있지 못하긴 마찬가지.
그런 내 사정을 아는지, 마루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음… 그런 도로는 없어요."

그 대답에 로베스는 혀를 찬다.

"쯔, 아쉽습니다. 모자처럼인데."

룸 미러에 비친 마루의 얼굴이 갸웃거린다.
하지만 로베스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일단 난 뭔지 대충은 알았지만…

"하지마 아무놈도 없는 도로에 괜찮지 않을래?"

아, 로베스의 말에 신경을 쓰다가 길 하나를 지나쳤다.
알아 들을 수 있다는건 다행이지만…

"로베스, 혹시."

로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잡는다.
운전중이야, 로베스… 흔들지 마…

"눈알이 빠지도록 오랜만에!"

딴지를 걸려는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걸 상상해 버린다.

"…눈이 빠지는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로베스가 대체 무엇을 통해 말을 배웠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지만 로베스는 배시시 웃으며 떼를 쓰듯이 내 옷깃을 슬쩍 슬쩍
당긴다.

"그렇게 당기면 단추가 풀린다."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옷깃을 당기는 로베스.

"가자. 가자. 오랜만에 끝장까지 쳐밟아보자. 응?"

"단추 풀렸다."

조금 전에 사서 그대로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어꺠를 계속해서 당기자,
결국 윗 단추가 한개 풀려 버렸다.

왠지 뒷좌석 쪽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결국 난 다음 신호대기 시간이 오고서야 단추를 잠그었고,
결국 로베스의 말대로 사람이 없는 도로를 찾아 보기로 했다.
마침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지난번 마루와 갔던 해안가를 따라서 난 도로가,
텅 비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곳 근처에서는 검문소나 경찰의 모습도, 감시 카메라도 본 적이
없었다. 그 곳이라면,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난 차를 그 쪽으로 향했다.



그래, 모처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