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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심한의 검사

2006.08.29 05:22

고쿠 더 히트 조회 수:189



"...."

눈을 떳을때 보인다는 것은 하얀 천장이라던지 전등이 아닌 녹색의 이끼가 낀 절벽. 그리고 좁고좁은 공간 바닥을 깔고있는 돌과 모래, 거기다 옆에는 이상한 향같은 것이 피워져있는 곳에서 한 소녀가 눈을 떳다.
찢어진 스타킹에 너덜너덜해진 티셔츠, 짧은 갈색 머리칼에 나이는 만 13살로 보이는 소녀는 일어나자마자 옆에 있는 동굴을 바라보았다.
쇠창살로 마치 감옥같이 막혀져있는 그곳에는 남색 코트와 남색 바지, 거기에 챙이 달린 남색 모자를 쓰고있는 긴 흰색머리의 남자가 돌벽에 기댄채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

소녀가 먼저 담요위에 다리를 모아앉아선 말을 건넸다.

"점심이다."

여전히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채로 눈을 하늘에서 떼지않은채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늘은 회색빛 구름이 잔뜩끼어있는게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만 같았지만 그의 눈은 마치 추억이라도 깃든 물건을 구경하는듯 멍하니 응시하고있다. 소녀는 지리의 특정상인지 남자와는 달리 고개를 수직으로 올려들어선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회색빛 구름이 잔뜩낀, 매우 흐린 하늘이었다.

"좋은....날씨인걸까?"

3m도 되지않는 폭에 깊이는 10m정도 파여있는 절벽, 그 아래의 두사람을 향해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소녀의 갈색 머리칼도, 그리고 남자의 코트와 모자도 흔들거리게 만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좋은 날씨다."

남자가 대답했다.




[심한의 검사]





"헉, 헉, 헉, 헉."

소년이 뛰고 있다. 나이는 만 열네살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소년이 창백한 얼굴로 쉴새없이 숲속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잠시후, 소년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것이 옆에서 휙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

그것은 늑대, 혹은 곰, 그것도 아니면 사자, 가장 가깝게 표현한다면 모든 맹수를 집합해 놓은듯한 녹색의 괴. 물. 늑대의 얼굴에 소의 것과 같은 굵은 뒷다리, 그러면서도 인간의 것과 같지만 굵고 두꺼운 손을 가지고있는 양팔, 덩치가 2m는 넘는것이 으르렁 거리며 갑자기 맹렬히 달려든다면 누구든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 잡아 먹힐것이다.
그리고 이 소년에게는 그것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네마리나 되는 괴물이 쫓아가고 있었으니 심장이 최소 네배이상은 더 크게 울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고작해야 사람이, 그것도 100m달리기 선수나 장거리 달리기 선수도 아니고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이 아이가 과연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그것의 굵은 팔이 소년을 향해 한번 내려쳐지자, 등에는 길게 손톱자국이 피와함께 그어지면서 소년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운도 나쁘게 그냥 넘어진것이 아니라 약 2, 3m가량의 절벽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온몸으로 땅을 박은 충격에 당연히 몸을 움직일 수 있을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떨어지지만 소년과는 달리 높이 뛰어서 간단히 그의 곁에 착지를 쿵하니 하는 네마리의 괴물, 온몸을 부르르떨며 숨을 헐떡이는 것은 분명히 힘들거나 지쳐서가 아니라 그를 향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라 아무리 아는것이 적은 나이라해도 다음 순간에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긴 어렵지 않으리라. 그렇게 한마리가 그 큰 주먹을 꽉 쥐며 높이 치켜들었을때, 소년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소리없는 외침을 마음껏 지르기밖에 할 수 없었다.

콰각!!

그리고 마치 바위가 뜯겨져나가는 소리가 펑하니 터져울려졌을때 몸이 찢겨져나간건 소년쪽이 아니었다. 어린애의 특성인 작은키로, 그것도 앉아있었기때문에 살 수 있었을까? 그의 머리위로 무언가가 한번 붕하니 크나큰 바람을 일으키며 휘둘러졌다. 그리고나서 잘려진 상체가 빙글빙글 꼬꾸라지며 튀겨나오는 피의 분수, 그것을 맞으며 앉아있는 소년앞에는 이미 몸과 함께 반정도 피를 적시고 있는 큰 검 하나를 손에쥔채 갈색머리의 소녀가 서있었다.
짧은 단발은 전투에 맞게 잘라낸것일까 아니면 여기저기 어긋난게 싸우다 잘려나간것일까? 남색 코트를 입은 몸의 키는 약 160cm정도로, 나이는 자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듯한 소녀였지만 그녀의 눈빛과 분위기만큼은 마치 사신을 방불케 하였다.

"..."

한마디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소녀는 그에게서 몸을 홱 돌리더니 다시 그 큰 검을 양손으로 쥔채 앞쪽을 향해 겨눴다. 그녀의 검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방금전에 소년이 봐왔던 그 맹수와 똑같은 것들이 약 이십, 아니 삼십을 넘어 사십, 오십은 되는 것들이 이빨을 갈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강한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검폭이 10cm는 가볍게 넘어보이는 굉장히 두껍고 긴 검, 그것을 든채 소녀쪽에서 먼저 그것들을 향해 달려든다. 무겁고 거대한 검을 들고 있으면서도, 나이어린 소녀라서 너무도 작고 힘없는 체구에도 불과하고 그 속도는 맹수들보다도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적들의 바로 앞에 탁 서서는 있는힘껏 검을 휘두르자 한번에 괴물 대여섯마리가 베어진다. 그리고 그대로 멈추지 않고서 검을 계속 휘두루며 마치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며달려드는 소녀, 그 맹렬한 돌풍이 쾅쾅쾅거리며 정체불명의 괴물을 베고 또 벨때마다 비를뿌리듯 피를 쏟아져나온다.
마침내 땅에 다시 포탄이 터지든 땅을 부수며 넘치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검이 꽂혀졌을때는, 적진 한가운데가 뻥하니 뚫려서는 여기저기 터진 땅바닥엔 괴물의 시체와 비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마..말도 안돼?!!"

이빨을 덜덜 떨며 멀리서 누운채로 놀라는 소년, 그리고 소녀의 지친 모습에 이제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듯 앞다투어 달려드는 녹색의 맹수들, 하긴 성인에게도 벅차보이는 검을 만열네살정도의 꼬마가 있는 힘껏 휘두른것만도 이미 기적인데 여기서 지치지 않을리가 없었다.
근처에 있던것들은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라는듯 혼신을 향해 달려들었고 소녀가 다시 검을 들고 베려했을때, 멀리있던 적 하나가 그녀에게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

'!'

쾅! 눈앞의 적에 정신을 쏟은판에 눈치를 챘다해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정통으로 커다란 바위에 조그만 소녀의 육체는 당연히 수십m는 넘게 나가떨어지고나선 커다란 바위산에 몸을 박자 그제서야 반동으로 멈출 수가 있었다.

"크윽!"

꺾여진 왼팔이며 부러진 이빨, 터져버린 살점, 그 모든 것이 위태로운 상황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놈들이 달려든다. 이때까지 죽은 동료며 죽을 뻔한 자신의 목숨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서 자신을 향해 폭풍처럼 달려든다. 이 많은 수를 지금의 몸으로 상대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소녀, 그리고 그녀는 문득 방금전 공격으로 자기 주변에 무수히 떨어져있는 '무기'를 보았다.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적들, 그중 하나가 마침내 사정거리에 도달해서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마치 산탄총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올려진 놈의 팔이 펑하니 폭발했다. 없는 팔로 휘두르자 몸의 균형을 잃고 주춤거리는 괴물, 그리고 이번엔 그것의 얼굴을 무기가 터뜨려버린다.

퍼억!

두게골을 꿰뚫은 소녀의 무기는 그대로 날아가서는 나무를 하나 더 뚫고서 멀리서 바위를 던졌던 놈들 근처에 툭 떨어진다. 그것은 돌맹이였다. 좀전에 던진 바위가 소녀의 몸을 넘어서 바위산에 부닥칠때 만들어진 파편, 그것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며 소녀쪽을 바라보는 그것들, 이미 수많은 동료가 소녀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채 몸이 펑펑터지며 죽어가고 있다.
피로 적셔진 몸을 땅에 떨군채로 성한 오른팔을 안간힘으로 움직이며 소녀는 손에 쥔 돌을 마치 총탄처럼 하나둘 적을 해치우고 있었다. 하나의 적앞에서 수명의 수십의 동료가 쓰러져간다. 점차 살의가 공포에 물들여져 힘이 넘치는 다리는 석상처럼 굳어가고 분노에 떨던 이빨은 두려움에 떨어갔다. 상대가 되질 않는다!

"끄으으으으으━!!"

크나큰 괴성과 함께 두발을 땅바닥에 쿵쿵거리면서 놈들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살의를 가장 강하게 내뿜고 있는 녀석이 공포에 벌벌떠는 동료를 등진채 홀로 소녀를 향해 걸어왔다. 크기가 약 5m는 족히 되어보이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석상과도 같았다.

"왜냐..왜냐!"

그리고 그것은 매우 굵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째서냐! 너는 우리에 더욱 가까울 것인데 어째서 우리의 반대편에 서려하는 것이냐. 너는 우리쪽에 더욱 어울릴텐데 어째서 더욱 우리를 멀리하는 것이냐."

소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과 삐뚤어진 눈매로 그것을 계속 노려봤다.

"돈인가?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있을때 더 많은 것을 안겨줄터. 명예인가?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있을때 더 높고 깊은 영광을 안겨줄터. 권력인가?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있을때 평생의 충성과 안식을 안겨줄터. 그런데도, 그것을 네가 모를리가 없는데도, 어째서 너의 검은 우리를 향하고 있는가, 전사여!"

키키킥 웃으면서 소녀는 몸을 비틀거린채 일어서 검을 쥐었다.

"너희들 주제에 말도 할줄 알았네. 아니, 맞아. 그러고보니 말도 할 줄 알았지. 그래, 맞아. 키키킥. 재밌어. 너무도 재미있어서 웃음이 멈추질 않아."

카앙!

소녀의 익살스런 웃음과 함께 오른손에 쥐어져있던 검이 괴물의 오른팔을 가격했다. 허나 소리는 제대로 났으나 결과는 제로(0). 적은 완전히 정지한채 아무짓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검은 살점하나 자르지도, 뚫고베지도 못했다.

"그런가, 그것이 너의 대답인가. 검사여!"

말이 끝남과 함께 적의 오른팔이 소녀를 강타! 다시 바위산쪽으로 그녀를 쌩하니 날려버린다.
크나큰 주먹이었던지라 전신에 타격을 입은 충격으로 튀어나오는 비명과 한바가지의 핏덩이, 입술은 크게 부르텄고 왼팔은 완전히 뒤쪽으로 꺾였으며 그나마 어느정도 형태는 유지하던 단정했던 짧은 머리는 완전히 어수선한게 상처투성이 얼굴과 함께 비춰지는 그 모습은 흡사 마녀와 같았다. 물론 무섭고 사나운 마녀보다는 용사의 손에 처절히 죽어가는 쪽으로말이다.

"우우우욱!!"

하지만 두 다리만큼은 아직 무릎꿇지 않았다. 한쪽 눈만큼은 살의를 잊지않았다. 그 얇은 팔은 검을 쥐는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아."

"놀랍군. 내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도 서있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그것은 한발짝 쿵하는 소리와함께 소녀쪽으로 걸어갔다.

"그것도 꼬마 여자애가 말이야. 아니, 아니지. 너는 인간보다는 우리쪽에 더 가까운 자. 꼬마여자라고는 도저히 비하할 수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지."

"하아, 하아."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 어떤가? 아직 늦지 않았다 용맹한 검사여. 나는 그대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있다."

그것은 거대한 손을 핀채 소녀에게 내밀었다.

"함께하지 않겠는가."

파슉!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전에 손목쪽에서 핏줄기가 튀어나왔다. 그 두껍고 긴 장검은 적이 한순간 만든 방심을 주저않고 사용한 것이다.

"!"

"안타깝게도"

소녀의 검은 한번더 주인의 몸과 함께 빙글빙글 돌면서 이번엔 옆구리쪽을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다.

"못생긴 녀석은 질색이라서 말이야."

까앙!!

하지만 이번엔 방금전처럼 손목을 베지못하고 마치 강철을 친듯 불꽃을 일으키며 튕겨져나온다. 그리고 그 힘에 밀려서 당연한듯 검과 함께 밀려나가는 갈색머리꼬마. 한손에든 검으로인해 균형을 더욱 잃고서 주춤거리기를 몇초, 중심을 찾는것보다 그 거인의 주먹이 먼저 온몸을 칠거란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급한대로 몸이 반사적으로 팔을 접어올려서 검으로 막기는했지만, 오른쪽에 오는 공격을 안으로 접힌 오른팔로 검을 위아래 뒤집혀 막았으니 역효과로 충격후의 대비는 완전 꽝이었다.

투두두두두두!

흙을 긁으면서 날아간 몸뚱이는 멀리서 벌벌 떨고만있던 그 금발의 소년 근처 절벽에 쾅하니 맞고 떨어졌다.

"하아, 하아."

"크르르르르."

"....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왼팔은 이제는 뒤로 꺾인채로 몰골이 정상이 아닌대도 검을 들고 일어선 소녀. 멍하니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그 와중에 솟은 작은 호기심의 삼대요소로인해 꼼짝달싹 못하고 있던 금발의 소년. 둘로부터 몇십여m 떨어진채 살의만은 번개를 내리칠만큼 뿜어내고있는 문자그대로의 녹색 괴물들. 잘린 오른팔에 피를 뚝뚝 떨어뜨린채 힘껏 문 이빨을 내보이는 그 거인.
소년이 순간 죽음의 공포로 몸이 굳어버린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때, 소녀가 오른팔로 목을 휘감곤 그 큰검을 목에 들이대며 명령을 내렸다.

"달려."

놈들의 녹색 피가 묻힌 칼날이 소년의 얼굴 바로 옆에서 번쩍거렸다.

"날 업고 당장 달려!!"

갑자기 목에 불현듯 칼날이 들어와선 협박을 해대니 만 열세네살 소년에겐 입닥치고 전력질주하는것 외에는 애초에 선택이 없을 것이다. 부랴부랴 일단은 괴물과 정반대쪽으로 소녀를 업은채 뛰기 시작하는 소년, 그나마 다행인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소녀가 가벼웠다는 점이지만 불행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검이 남는 무게를 채우고도 넘쳐났다는 것일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소년이 먼저 행동을 취하자 이어서 녹색의 생명체들도 날뛰며 쫓아갔다.
소년이 제 아무리 발이 빠르다한들, 이런 맹수에게 쫓긴이상 길어야 30초도 안되서 따라잡혀 몸이 몇조각으로 찢어질 확률은 동전을 던져서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오는 확률과 차이는 없을 것이었다. 만약 덩치가 5m는 되는 그들의 리더가 정지명령을 내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 검사는 돌아온다."

잘린 팔이 스물스물 액체처럼 변하더니 녀석의 몸에 흡수된다. 그리고 발끝에서부터 그것이 조금씩 들어갈때마다 녀석의 왼쪽 팔또한 조금씩 재생이되어갔다.

"인간에게서 멀어진 이상, 선택은 하나밖에 없을터."



*        *        *




안쪽의 창살이 박힌 감옥과도 다름없는 동굴, 그곳의 입구부근 벽에 몸을 기대며 바깥을 바라보는게 영락없이 죄수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이 창살안쪽에서 짜증을 내는것에 갈색머리 소녀가 당황을 하며 말했다.

"에, 그, 그래도 도움을 받으면 꼭 보답을 하라고 엄마한테 배웠단 말야."

"그럼 두번다시 오지말란 말이야. 음식이라면 이미 썩어넘친다고. 내가 원하는 건 조용하고 고요한 생활뿐이야."

"안돼. 그런건 보답이 아니라고 엄마가 그랬어."

"그럼 가서 다시 배운뒤에 두번다시 찾아오지마."

남색 코트와 남색 바지, 거기에 챙이 달린 남색 모자를 쓰고있는 긴 흰색머리 남자가 잔뜩 성을 내며 말한것에 소녀는 고개를 조금 떨구었다.

"그, 그치만 이것도, 이것도 분명히.."

"......하아."

우적. 울먹거리는 소녀의 얼굴을 보곤 청년이 마지못해 창살사이로 손을 내밀어 빵한조각을 집고선 씹어대기 시작했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진 않겠지."

턱을 쉴새없이 움직이며 빵을 계속 먹어대는걸 보고 금새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청년은 여전히 손과 입은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눈만은 창살너머의 하늘을 향해 유지시키고있었다.
맑기는 하나 태양만은 거대한 구름으로 완전히 가려져있고, 다른 곳도 군데군데 구름들이 끼어있어서 그렇게 맑다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상황, 오히려 한두시간뒤면 비가 오지 않을까하며 걱정해야만 정상인 상태, 그런데도 마치 신기한 장난감 혹은 추억이 깃든 사진처럼 남자는 시선을 떼지못한채 계속 하늘을 바라보았다.

"좋은....날씨일까?"

소녀가 빵조각을 하나 씹으면서 물었다.

"그래, 좋은 날씨다."

남자도 음료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        *        *




"저기, 검사님."

"....?"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집 마루 구석에서 벽에 기대고 누워있던 갈색 머리 소녀가 눈을 떳다. 소녀의 나이는 만 열세네살정도로 보였으나 풍기는 분위기며 옆에 놓여져있는 커다란 검을 보았을때, 언뜻봐선 보통의 꼬마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왼쪽 팔은 코트를 걷고는 붕대를 감은채, 그렇게 검사는 일어났다.

"스, 스프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집의 주인인듯한 금발의 소년이 탁자위에다 음식을 가지고 왔다.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네요."

그가 약간 손가락을 떨며 말했지만 그녀는 애초에 그런것따윈 상관 안했다는듯 묵묵히 오른손으로 수저를 움직이며 식사를 시작했다. 배가 고팠는지 수프가 맛있었는지 별다른 부담없이 먹고있던중, 검사는 문득 소년 너머로 보이는 방문 하나를 쳐다본다.
소년의 동생인듯한 꼬마들이 여럿, 문짝을 살짝 열어놓은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모두들 결코 환희에 차있거나, 호기심이 깃든 눈빛이 아닌, 공포와 적의가 가득 실린 눈빛을 띄고 말이다. 어른이라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이 집안에는 오로지 소년과 그의 동생들만이 이 집안을 소녀와 함께 메우고 있을때, 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자정이 지난무렵 그의 동생들이 모두 잠이들자, 남색코트의 검사가 설거지를 하고있는 소년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뭐지?"

"네?"

"나도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녀석은 아니야. 간접적으로 생명을 구해주긴했으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보답할 이유는 없어."

소녀는 여전히 매서운 눈매를 지닌채 말을 이었다.

"거기다 미안한 소리지만 형편도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걸. 더더욱 뭔가 부탁이라던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

"..."

설거지를 하면서 소년은 묵묵히 대답했다.

"이 마을에 그것들이 나온것은 분명히 네달전 일일겁니다."

달그락 달그락 접시들이 씻기던도중 서로를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다른 마을쪽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몇명씩 사라지기는 했지만, 두달전부턴 마을 근처를 배회하던 사람들마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짐승이다 연쇄살인범이다하며 경비를 늘리긴했지만 소용이 있을리가 없었죠. 맹수도 정신나간 살인범도 아닌 설마 그런 괴물이 범인이란걸 아무도 생각했을리가 없으니까요.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그리고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았다, 이건가?"

"거, 검사님이라면 분명 놈들을.."

"불가능해."

옆에 놓여져있는 검을 오른손으로 들고서 소녀는 그것을 허공에 겨누어보았다.

"나는 영웅이나 용사같은게 아니야. 아까본대로 내 몸 하나 지키기 힘들어서 매일매일 생사를 넘나들고있어. 오늘도 그 거대한 녀석이 거래를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죽었을꺼야."

"하, 하지만 검사님이 최소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준다면!!"

"보면몰라? 나도 꼬맹이야."

돈뭉치를 그의 품에다가 던지고서 소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그것에 실패한 꼬맹이지."

일직선으로 펴져선 붕대로 묶여져있는 왼손, 남색 롱코트, 그리고 크고 거대한 검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단발머리의 소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검을 가로로 코트의 등뒤에다 갖다대자 갈고리 두개가 덥썩 검을 고정시켰다.

"저, 저기!"

허름한 옷에 가슴에는 소녀가 던진 돈을 얼떨결에 들은채로, 소년은 검사를 따라나온다. 그대로 멈춰선채 고개를 살짝 돌려보는 검사.

"오, 오늘 고마웠습니다."

"..."

그리고 검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저씨."

10m나 되는 절벽 맨 아랫부분 깊숙한 구석, 쇠창살이 늘어져 막고있는 동굴 부근에서 한 소녀가 동굴안쪽 벽에 기대어 누워있는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도 누가 강하게 만들어준거야?"

"그런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냥 궁금하니까."

소녀는 좀더 창살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게나 강한데 이런곳에 숨어있는걸 보니까 마치 쫓겨사는거 같아서."

"꼬마야. 난 여기에 숨어있는게 아니라 갇혀있는거야."

"에? 하지만 이정도 쇠창살, 아저씨정도라면.."

"불가능하지. 왜냐하면 이 쇠창살부터 시작해서 이 동굴전체가 나를 억눌르고 있으니까."

"억눌러?"

"봉인같은거지. 너도 이제 그런 몸을 가졌으니까 손을 이쪽에다 넣어보면 금방 알 수 있을거다."

"손?"

호기심 반, 진심 반, 그리고 따분함으로인한 마음이 소녀의 팔을 자연스럽게 창살너머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족쇄같은 것이 팔을 짓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위험을 감지한 감각이 반사적으로 손을 동굴밖으로 빼게 만든다. 아직도 저린건지 오싹한 감때문인지 심하게 부들거리고있는 오른손, 그것은 실로 불쾌하고 추악한 느낌이었다.

"이제 알았지? 그럼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은 당장 니 집으로 돌아가. 약속은 약속인거다."

"....아저씨 안 힘들어? 이런 곳에서 대체 몇년간이나.."

"시간 계산은 하질 않아서 몰라. 거기다 나에관한 질문은 하루에 하나라고 했잖아. 이제 끝났으니 자던지, 아니면 당장 여길 떠나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마."

"스승은?"

"뭐?"

"첫번째 질문. 누가 강하게 만들어 준거냐고? 그건 아직 대답 안 했잖아."

"너 임마. 피곤하지도 않냐? 내가 처음으로 배려해서 훈련을 일찍 마쳐준거라고."

"그럼 어차피 시간도 남았는데 얘기해줘도 좋잖아."

약속은 약속인 것이다..인걸까? 몇주만 같이있었을뿐인데 그동안 이 애의 호기심과 집착성때문에 고요함을 잃은지도 여러번, 지금 좀 입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마 오늘밤은 매우 시끄럽겠지.

"그 남자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헤에, 역시 스승이 있었어?"

"사건의 발단은 너와 아마 조금 비슷할꺼다. 당시 이 시대는 지금보다도 훨씬 추악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사고로 부모를 잃고서 또 사고로 빌딩위에서 떨어지던 날, 그 남자가 구해준거다. 그리고 살아남기위해서 강해지고 싶다는 내 얘길 듣고, 몇일씩이나 시끄럽게 만드는 나를 보고, 결국 이런 힘을 얻게해준 것이지."

부모를 잃었다. 그 한마디가 순간 소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소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렇구나. 아저씨도 나와 비슷했구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이런 곳에 갇혀있지 않았단거겠지."

"그래서? 아저씨의 스승님은 어떤 사람이었어?"

남자는 슬쩍 힘을 주고있던 눈을 풀며 다시 하늘을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그는 최강의 스승이자, 최강의 검사였고, 최강의 궁사였으며, 최강의 무도가였다. 또한 그는 최강의 총사였고, 최강의 창사였으며, 최강의 책사이자, 최강의 조종사였다."

약간은 말이 빨라진듯한 남자, 그의 하얀 머리가 오늘따라 만월때문인지 소녀의 눈에는 더욱 하얗게 비춰보였다.

"그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긴 하얀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검은 코트에 검은 바지를 입고다녔다. 그를 자세히 표현하기에는 이 밤이 너무도 짧다. 단 한가지 분명한건, 그는 최강이란 것이다. 최강, 그보다 더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환상이라고도 불렸다는 그는 틀림없는 최강의 전사였다."

"....... 그를 존경했구나."

"그래,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자 목표, 그리고 은인이다."

그가 웃었다. 여전히 눈매는 날카롭고 웃음또한 익살스러웠지만 이번엔 뭔가가 다른 느낌이었다. 소녀도 달을 올려다 보았다. 그날 밤의 달은 만월, 구름 한점 가리지 않은 만월의 밤이었다.

"우린....비슷한걸까?"

"그렇다, 비슷한거다."



*        *        *




"!"

반사적으로 목을 옆으로 돌려서 간신히 적의 발톱을 피할 수 있었다. 어느샌가 소녀가 쉬고있던 동굴은 수십마리의 녹색 괴물들로 포위당한 상태였다. 오른발로 도약을 취하며 한바퀴 구른후 착지, 코트뒤에 걸린 검에 손을 잡고 약간 힘을 주자 갈고리가 철컥거리며 열렸다.
자유롭게 해방된 소녀의 두껍고 거대한 칼. 한번에 네마리의 녹색 맹수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을때 소녀가 힘껏 오른손으로 쾅하니 휘두른 검은 그것들의 허리를 모조리 베어버리고선 피의 분수를 튀기게 만들었다.

"큭!"

적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마저 몸뚱이와 같이 한방에 베어버린 검사, 허나 그만한 움직임을 낸만큼 뼈도 맞출줄 모르면서 억지로 아무렇게나 수평인채 응급조치를 취한 왼팔에 크나큰 부담이 가지 않을리가 없었다. 원거리에서 적이 낮의 소녀의 스타일을 따라하며 던진 돌맹이에 얼굴을 퍽하고 맞자 곧바로 데굴데굴 뒤로 구르며 벽에 쿵하니 박은 검사. 마치 에이스 투수가 던진 공에 정통으로 맞은듯한 충격이었다.
부러진 이빨이 하나 땅바닥에 핏덩이와 함께 떨어지면서 왼쪽 눈부근 살이 아예 뜨지를 못하게 만들정도로 크게 부어오른다. 정말로 한쪽 눈을 부어오른 살로 뜨지 못한채, 아픔에 반사적으로 흐르는 눈물. 하지만 적에게 있어서 이것은 너무도 좋은 기회가 아닐리 없다. 이제는 모두들 몽둥이라던가를 하나씩 들고서 조직적으로 달려드는게 소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외, 왼쪽 눈이 떠지질 않아.'

퍼억. 감겨진 눈이 있는 방향으로 휘둘러진 맹수의 몽둥이에 소녀의 얼굴이 튕겨져 나갔다. 다시 구르면서 벽에 부딯칠때, 운도 나쁘게도 가장먼저 박게된것은 뼈가 꺾여진 왼팔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다시 뒤쪽으로 완전히 꺾여져진 팔꿈치 부분에서부터 살을 뚫고 튀어나오는 뼛조각, 일반 사람이라면 그 고통으로 실성해 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여검사는 땅에다 꽂은 칼에 몸을 기댄채로 씩씩거리며 그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사정을 봐주지않고 연이어 돌격해오는 수많은 적들, 지금 상태론 이 모두를 상대로 검을 휘두를만한 체력이라던지 승산따위는 쌀 한톨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변칙적으로 자기 주위를 돌아다니며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검사는 코트안쪽에 걸려있는 또 하나의 무기를 꺼내곤 그것을 갈겨댔다.

투다다다다다다

품속에 숨겨져있던건 미리 준비가 끝마쳐진 서브머신건. 허나 그런것치곤 탄창의 길이며 크기라던게 보통의 것보다는 훨씬 큰것이었다. 위로 뛰어든 맹수의 몸을 마치 종이조각처럼 뚫어선 뒤에 서있는 나무도 펑하니 터뜨리는 탄환, 적들이 아무리 빠르단들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고 또한 적들이 아무리 강하단들 이 폭탄같은 탄환을 막아낼 순 없었다.
멀리서 바위뒤에 숨어있던 녀석들도 눈앞의 방어물이 쾅쾅거리며 산산조각나는 것을 보았을때는 이미 자신의 몸뚱아리도 먹묵은 종이마냥 이리저리 총알에 찢겨진 상태였다.

달칵 툭

그 많은 탄환이 다 달았다는 것을 표하는 증거로 떨어지는 긴 탄창조각, 그것을 신호로 잡은 기회를 놓치지않고 단박에 달려드는 녹색의 맹수들. 몇몇은 칼이라던가 철퇴같은 것을든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드는게, 소녀에게 탄창을 갈아끼울 시간따윈 당연히 내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방팔방으로 그녀를 빙 둘러싼채 동시에 뛰어들어선 무기로 이 또다른 괴물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맹수들, 설사 기적적으로 갈아끼웠다하더라도 확실히 이 모두의 공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선 무리일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철퇴가 그녀의 뇌를 박살내려할때, 소녀는 검을 손에쥐었다.

빠각!!

그렇게 바위가 떨어져 깨진듯한 굉음과 함께 소녀의 두꺼운 검이 한번 휘둘러졌다. 도저히 소녀의 몸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볼 수 없을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강하게 휘둘러진 이 묵직한 검은 그대로 적들의 무기와 함께 몸과 머리, 어깨등등 진로에 놓여진건 무엇하나 가라지않고 단박에 베어버렸다.
잘려진 몸조각이 기압차인지 뭔지로 피를 쏟으면서 빙그르르 돌아떨어진다. 잘려진 몸과 무기가 떨어진다. 핏줄기가 쏟아져 퍼부어진다. 강한 통증을 느낀 왼손이 부들부들 요동을 치고 소녀는 부어오른 왼쪽 뺨과 이마로인해 오른쪽 눈만을 매섭게 뜬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헉. 헉."

"검..사."

"?!"

목소리. 굵은 남성목소리를 지닌 그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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