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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4)[2]

2006.08.13 10:20

울프맨 조회 수:177

‘소연이 위험해!!!’

그러나. 맹렬한 기세 그대로 방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갈 것만 같았던 영준은 정작, 문 앞에 서자 멈칫거리며 주저하기 시작했다.

영준에게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무기가 없었다.

방안에 있는 상대가 누구 던 간에, 운동신경 제로에 또래의 아이들보다 체력도 떨어지는 영준이 맨주먹으로 당해낼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아무 대책 없이 방안으로 뛰어든다는 말 자체가 영준에게 있어 자살행위와 같은 것.

영준은 무심코 손에든 손전등을 내려 보곤 피식하고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 광선검 따위가 되어 줄 리가 없지.....’

무기가 아니라면 손에 들고 있어봐야 짐밖에 되질 않기에, 품안에 손전등을 조심스럽게 챙겨 넣은 영준은 심호흡을 하며 문고리를 살며시 잡았다.

하지만, 영준은 쉽게 손잡이를 돌릴 수 없었다.

이미 손바닥을 가득 적신 땀 때문에 미끌거리는 것도 그랬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

바로 문을 열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막연한 무언가가 영준의 옷소매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준은 이를 악물었다.

‘웃기지마! 열지 않아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건 마찬가지야!’

[덜컥]

마치 심장의 고동과도 같은 손잡이가 열리는 소리.

이젠,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젠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그런 체념이 영준을 오히려 용감하게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열려던 문을 오히려 발로 힘껏 걷어차 버린 영준.

그 요란한 소리에 소연의 소파 앞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깜짝 놀란 듯 움찔 거리는 모습이 영준의 눈에 똑똑하게 들어왔다.

‘소연을 구하지 않아도 돼! 시선을 돌릴 수 있으면, 시간만 끌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야!’

방안은 어두웠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영준의 눈에 그 광경은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잠시 주춤하던 상대의 그림자는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성큼성큼 영준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다!’

이제 남은 것은 도망치는 것 뿐.

눈앞의 적과 대적할 수단이 없는 영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대로 방문을 나가 상대와 소연의 거리를 최대한 떨어뜨린 후, 아까 확인한 비상벨을 누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영준의 생각보다 빨랐다.

영준이 막 등을 돌리고 달아나려는 모습을 보이자, 성큼성큼 다가오던 그림자는 태도를 바꾸어 영준을 향해 맹렬하게 몸을 날린 것이었다.

‘!’

영준은 급히 밖을 향해 뛰쳐나가려 했지만, 상대의 우악스러운 손이 먼저였다.

“컥!”

목이 격하게 졸리는 느낌.

상대는 영준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방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끌어당기는 힘은 생각보다 강하진 않았지만, 목이 졸린 상태라 영준은 조금씩 힘을 잃고 방안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안돼!!!’

끌려 들어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

영준은 지독한 공포와 절망에 발버둥 쳤다.

그리고 바둥거리는 영준의 손에 차갑고 묵직한 무언가가 잡혔다.

그것은 아까 영준이 눈여겨보지 않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물, ‘꽃병’이었다.

그저 방안을 장식하는 작은 꽃병이라 영준의 눈에 들어오지 조차 않은 물건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무기였다.

게다가 영준에겐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여유 따윈 없었다.

손에 잡히는 즉시 영준은 팔을 뒤로 젖혀 뒤의 상대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런 어둠속에서는 마구 휘두르다 보면 한 대 정도는 맞을 게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영준은 휘두르던 손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퍼석 하고 꽃병이 던져지는 소리가 영준의 머릿속을 하얗게 매웠다.

“멍청하구나.”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겨우 이 까짓 걸로 나를 상대하려고 했단 말야?”







방이 환하게 밝혀진지 한참이 지났지만, 영준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의 두뇌는 안전장치가 있어서, 그 사람이 허용 가능한 용량외의 충격을 수용하게 되면 정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적절하게 사고를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영준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영준의 머릿속은 아직도 요단강을 건너고 있다고 해야 할까....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상황에, 어둠속의 공포, 최종수단의 무력화, 가능성의 종말...... 이 일괄된 모든 상황은 영준에게 절망과 공포. 그리고 죽음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결국 영준은 소위 말하는 ‘주마등을 본다’라는 사태가 영준의 머릿속에선 생방송으로 생생하게 중계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그리고 다인은 그런 멍해빠진 영준을 가만 놔둘 만큼 마음씨가 곱진 않았다.

“일어나! 자식아!”

하얀 의사 가운을 팔꿈치까지 걷어 부친 다인의 우악스런 손이 영준의 안면으로 향했고, 영준의 코로부터 망치로 호두를 깨는 듯한 듣기 좋은 감촉이 다인의 손에 전해졌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영준은 자신의 코를 움켜잡고 바닥을 굴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오. 드디어 정신이 들었나. 동생?”

동생. 이라는 다인의 한마디. 그리고 그 한마디에 영준은 비로소 눈앞의 상대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영준의 눈앞에 있는 것은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20대 중반의 여성.

그녀는 막대사탕의 꼬다리 같은 플라스틱을 이빨로 질겅질겅 씹으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영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생은..........누가 동생이라는 거야. 그리고.....”

영준은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코를 매만지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깨우려면 좀 얌전한 방법 좀 쓰지 그래? 이러다 코 없어지겠다.. 이게 몇 번째야...”

“훗.”

다인은 영준의 항의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람을 깨우는 방법이라면 전문가인 내가 더욱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그리고 너의 코에 대해선 안됐지만, 몇 번째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건 나는 한번밖에 안했다는 거야~ 게다가 사촌동생도 동생은 아니겠니?”

“아아... 그러세요........”

영준은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함을 깨달았다.

민다인. 그녀는 큰외삼촌의 장녀로 영준과는 사촌간의 관계에 있었다.

영준의 어머니가 5남매 중 막내였고, 다인의 아버지가 5남매 중 장남이자 영준에게 큰외삼촌뻘이었으니 영준과 다인의 나이 차이가 10년 가까이 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단, 막대사탕 꼬다리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저 여성의 뇌구조는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영준이라 해도 분석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일 정도였으니..... 나이는 20대 중반이 다돼가면서도 정신연령은 아직도 초딩.

세상을 ‘재미있는 일, 재미없는 일.’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나누는 단순한 뇌구조를 가진 다인이 어떻게 의대에 합격해서 이 병원의 실습으로 와있는지는 영준에겐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그나마 다인이 있는 덕분에 돈 없는 영준이,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임시적으로 소연을 요양도 시키고 한 것이었지만.......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아직까지 얼얼한 코를 매만지며 적의가 가득 실린 목소리로 영준이 물었지만, 다인은 너무나 간단한 한마디로 영준의 혼을 빼버리고 말았다.

“장난치러.”

‘..................’

“겸사겸사 소연도 보러 왔고.”

‘보통은 환자를 보러오고 겸사겸사 장난도 치는 거 아닌가.....’

영준은 내심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라는 속담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었다.

다인이 장난을 치러 오는 바람에 영준은 생명의 위기까지 느끼지 않았던가.

결국, 사정을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병원일이 지루하고 답답해서 바람을 쐬러 나온 다인의 눈에 영준이 있는 구병동이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 시간까지 영준이 불을 안 켜놓은 것이 신기했던 다인은 잠을 자면 놀래켜 줄 양, 안자면 이유라도 물어볼 생각으로 구병동으로 향했고, 소리 없이 조용히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었다.

덕분에 영준은 중대한 착각에, 목숨의 위기까지 느끼고 나름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될 정도의 상황까지 이르게 될 정도였다.

“어쨌든, 그 시간 까지 불 안 켜놓은 니 잘못이야.”

결론은 영준이 모두 뒤집어쓰는 다인의 명쾌한 주장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무서웠다고.”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진짜야. 요 며칠 새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 돌고 있어서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

이상한 소문이라는 말에 영준은 바닥에 어지러이 널린 화병조각을 치우던 손을 잠시 멈췄다.

다인의 평소 성격을 봐선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다소 긴장이 풀리긴 했다 해도 영준의 입장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어둠속의 괴인이 적이 아닌 다인인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적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고, 앞으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물론, 다인은 영준의 의사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이 근처 병원들은 요즘 도둑이 들어서 다들 쉬쉬하고 있다고...”

‘뭐야.....고작 도둑이었어....?’

잔뜩 긴장하며 사고회로를 가동시키고 있었던 영준은 의외의 결과에 맥이 풀렸다.

하긴, 다인이나 영준이나 어디까지나 평범한 시민. 이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이야기 자체를 기대하는 것이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평소엔 형광등과 같던 다인이 웬일로 영준의 그런 낌새를 눈치 챘는지, 안색을 바꾸며 말을 돌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도둑이면 쉬쉬 할 것 까지 있겠니? 도난당하는 물건이.... 아니 물건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게 좀 말하기 그런 거라서...........”

“뭔데?”

병원에서 훔쳐갈 만한 물건은 돈. 혹은 약품. 보통 그런 물건들은 신고의 대상이지 쉬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쉬쉬할 정도라면 병원의 검은 돈이라던가, 비리 장부 정도겠지만, 지금의 영준은 그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없었기에 조금 시큰둥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나 다인의 입에서 나온 하나의 단어는 그런 영준의 반응을 일시에 무너뜨리고도 남는 것이었다.

“시체. 요 며칠 새 병원마다 시체가 없어지고 있어.”

‘!’

“참 이상하지....? 그걸 가져가서 뭐에 쓸데가 있다고... 그것도 감쪽같아서 요즘은 간호사나 실습생들끼리 시체가 걸어서 집에 가는 건 아니냐고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니까.”

‘시..........체라고......?’

다인이 한 얘기는 지금 영준이 처한 상황과 그다지 큰 연관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영준이 있는 곳도 병원. 그리고 보통 사람이 시체를 훔치는 일 따위는 상식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영준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아! 그리고.............. 아까 깜빡했는데. 소연이 보고 기억났다.”

“또 뭔데?”

“너도 그렇고 소연이도 그렇고... 너희 학교는 왜 이렇게 많이 다치냐? 우진인가... 걔도 여기 입원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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