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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ntares[0.5막] -Follow me 17-

2006.08.18 20:46

히이로 조회 수:194

필립이 기합을 넣으며 헬무트에게로 접근하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손에 쥔 배틀엑스를 크게 휘두른다. 단순히 휘두른 것뿐인데도 필립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왼쪽 팔을 사용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헬무트는 그런 필립을 바라보다 갑자기 그에게로 달려들 듯 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필립. 상대의 과도한 반응에 꽤나 즐거웠는지 큰 웃음까지 터트리는 헬무트였다.

“하하하하핫!”

“크윽, 저 자식…….”

이빨까지 드러내놓고 웃는 그를 노려보며, 반대로 필립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더 이상 상대에게 농락당하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 손에 쥔 마르니에를 비스듬히 세우고는 상대를 향해 달려드는 필립. 순간적인 그 기세에 헬무트도 웃음을 그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필립의 행동을 주시했다. 하지만…….

“풋,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큭큭.”

큰 소리와 함께 필립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쓰러져 있는 네르바의 몸에 발 하나가 걸린 것이다. 바닥에 몸을 부딪치고, 얼굴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필립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대가 가만히 있었기 망정이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 재빨리 일어나보려고 노력했지만, 통제를 벗어난 그의 왼팔은 끔찍한 고통만 증폭시켜 줄 뿐이었다.

‘빌어먹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한순간의 분노로 상대를 향하여 돌진하려 했던 그의 생각은 이미 싸늘하게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지금 일어난 상황이 냉랭하게 그가 처한 상황을 상기시켜줬던 것이다. 결국 헬무트를 노려보기만 할뿐, 필립은 더 이상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군. 그럼 내가 움직여볼 차례인가?”

헬무트가 목을 한번 돌리자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배틀엑스를 양손에 쥔 상태로, 필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필립이었으나, 미간에 생기기 시작한, 당혹감에 찬 주름까지 사라지게 하진 못했다.




*             *             *





“이제 곧 카세리네 협곡으로 진입한다! 주변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적군은 협곡 내부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하다! 서둘러라! 일분일초가 빠를수록 희생당하는 아군의 수를 줄일 수 있다!”

협곡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대오를 정비하는 나인발트 나이츠 본대. 기사단장 사리크 폰 이디레온경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발사로크군은 자신들의 등장을 모르고 있다. 거기다 후방을 치는 것이기에 전술상으로도 우위를 점한 상태. 하지만 본대가 가세한다 해도 적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것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진격한다! 가자!”

가슴 속에 머무는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듯, 검을 뽑아들며 진격명령을 내리는 사리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톤이 높았다. 그가 소리치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와 말발굽소리. 여기저기 늘려져 있는 적, 아군의 시체를 헤치며 나인발트 나이츠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명심하라! 협곡 내부로 돌입하면 진격 속도를 최대한 늦춰 아군이 설치한 함정에 대비한다! 모두 각별히 조심하라!”

“옛! 단장님.”

달리는 와중에도 목청을 돋우어 주의사항을 전달시키는 사리크. 필립이 보낸 서신에 적힌 대로 협곡 내부에 있을 함정을 생각하며 기사단을 지휘한다. 적의 후미를 치기위해 길게 우회해서 이동했던 강행군. 말은 물론이고, 기사들의 갑옷과 얼굴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있어. 마치 패잔병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다넨 평원에 도착한 직후, 하루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었기에 기사들의 몸은 언제라도 전투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했다.

“으음…저건?”

가장 선두에서 말을 몰던 기사의 눈이 작아졌다. 협곡 입구에서 무언가가 달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으나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는 거침없이 말을 채찍질하며 입구를 빠져나가는 상퀼로트였던 것이다.

“단장님. 어떻게 할까요?”

“음…….”

기사의 외침에 사리크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생각에 잠긴다. 그가 보기에 말을 모는 발사로크군 병사는 꽤나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중요한 명령을 받은 전령일 가능성도 있었고, 만약 그 내용이 지원군 요청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아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저 두 명의 병사를 위해 추격대를 편성한다는 건, 분명 큰 전력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어차피 가서 지원군을 이끌고 오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사리크는 생각했다.

“저것은!”

그냥 무시하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그의 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말을 모는 발사로크군 상퀼로트 뒤에 각각 사람이 한명씩 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지휘관의 복장을 갖춘 상태였고, 나머지 하나는 청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법사였던 것이다. 마법사와 동행해서 전장을 빠져나가려는 지휘관.
직감적으로 사리크는 물론 다른 기사들도 눈 앞에 보이는 자가 거물급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제2중대장! 기사 10명을 차출해서 놈들을 사로잡아라! 여의치 않는다면 사살해도 좋다!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른다! 가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2열까지 나를 따른다! 나머지는 기사단장님의 직속지휘를 받도록! 나를 따르라!”

갑작스럽게 돌진하던 기사단의 내부가 대열을 재편하면서, 10명 남짓한 기사가 부대에서 이탈했다. 그리고는 각자 넓게 산개한 상태에서 예측되는 상대의 진로를 봉쇄해 들어가며 상퀼로트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한편, 병사의 등에 의지하여 피로에 지친 몸을 회복하고 있던 마르셀도 눈을 떴다. 심상치 않은 말발굽 소리와,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의 속도가 더 빨라졌음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마법사님! 큰일 입니다! 적의 원군입니다! 거기다 일부가 우리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난감하게 되었군요. 그런데 왜 날 깨우지 않았습니까?”

“몇 번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서……. 말을 세우고 깨우기도 뭐해서 이대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나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돌파 할 수 있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며 마르셀이 묻는다. 라펜드를 태운 병사는 자신들보다 약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말을 몰고 있었고, 바르디아의 기사들은 몇 명이 넓게 포진한 상태에서 자신들을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외 나머지 기사들은 협곡 쪽으로 전진 중이었다. 서서히 마르셀의 얼굴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헬무트가 이끄는 중앙 상퀼로트군이 기습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 더군다나 라펜드를 이송해야할 자신의 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기사단의 등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편, 마르셀의 물음에 병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해서 도망치는 거라면 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뿐입니다. 뒤따라오는 병사까지 지켜줄 여력은 없습니다.”

“실력은 당신이 더 나은가 보군요.”

“상퀼로트에 소속되기 전, 호들렌 지방의 기병이었습니다.”

마르셀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발사로크에서도 남서쪽 방향에 위치한 호들렌 지방은 예로부터 말이 유명했다. 발사로크가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황실에서 사용하는 말은 이곳에서 진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케클론 중기병단이 창설되면서 승마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 지방의 기병들이 대거 흡수 되었던 것이다. 병사가 한 말의 의미는, 전투능력 자체를 함부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말을 탔을 경우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사들도 기본적으로 승마를 익히기에 여러 명을 상대해야하는 그들로써는 여전히 불리했다.

“이번 명령은 뒤따라오는 상퀼로트 지휘관을 안전하게 후송하는 일입니다. 우리 둘만 무사하다해서 끝날 일이 아니지요.”

“예…알고 있습니다. 마법사님.”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뒤따라오는 지휘관과 병사를 지키려면 죽음을 불사해도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도 사람 일터, 죽는다는 것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상퀼로트. 훈련된 정예 군인이다.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명령을 따르겠다는 의지는 뚜렷했다. 상대의 말에서 그것을 감지해 낸 마르셀은 빠른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속력을 늦춰, 뒤쪽과 거리를 좁혀야겠습니다. 그러는 것이 호위하기는 더 편하겠지요. 효력은 미미하겠지만 전 정령을 소환해 일정 거리의 적을 교란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적은 당신이 막아내 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미천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그들이 탄 말이 속력을 늦추며 뒤따라오는 아군에게로 가까이 붙는다. 라펜드는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고, 그를 고정시킨 채 말을 모는 병사는 기사들의 출연에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마르셀은 이미, 품  속에서 예전에 정령을 소환할 때 썼던 잔을 꺼내놓고 그것에다 조심스럽게 물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말 위에서 하는 일이라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큰일이군.”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얼마 남지 않은 가죽주머니에서 물을 부었으나, 말이 거칠게 달리는 바람에 절반가량의 물이 넘쳐 버렸다. 마법진을 그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하는 소환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매개물은 물까지 줄어버렸으니, 마르셀로썬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의 시선은 우리가 끌어볼 테니, 자네는 최대한 뒤의 분을 보호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게!”

“알, 알겠네!”

마르셀이 소환의식에서 정신을 쏟는 동안, 그를 태운 병사가 라펜드를 데리고 있는 병사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상대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대를 못미더운 눈으로 흘겨보는 병사였지만 곧 시선을 거두고 창을 들어 올려 전투준비를 한다. 이미 산개한 기사들이 가까이 까지 접근해 있었던 탓이다. 마르셀을 흘긋 돌아본 다음, 그는 다른 병사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달려!”

그의 외침과 동시에 라펜드를 태운 말의 채찍질이 격렬해진다. 앞서 달려 나가는 병사의 뒷모습을 본 후, 마르셀을 태운 자는 가장 가까이 접근한 기사에게로 달려들었다. 도망칠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갑자기 달려들자 놀랄 법도 한데, 기사는 자연스럽게 들고 있던 창을 고쳐 세운다.
그 모습을 본 병사는 긴장감에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무기를 맞대게 되면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으아아아아아!”

“무, 무슨 짓이냐!”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병사의 창이 기사의 창과 격돌하려는 찰나, 슬쩍 창을 치우고는 들고 있던 채찍을 기사의 얼굴에 던지는 병사였다. 이번 공격은 전혀 예상을 못했는지, 기사는 갑작스럽게 막혀버린 시야 때문에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는 병사. 하지만 후속으로 달려드는 기사 2명을 보고는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계속 달려. 저놈들은 내가 견제 할 테니.”

싸늘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리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말의 배를 걷어차며 더욱 독려한다. 그때 그들의 양 측면에서 기사가 각각 무기를 뽑아들고 접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르셀의 주변에서 푸른빛이 각각의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르셀이 정령을 소환했던 것이다.
하이만 기사단장의 부대를 상대로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던 마르셀의 정령들. 그러나 열약한 상황에서 쥐어짜듯이 가까스로 소환된 정령들은 이전의 활약상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히이잉~!

“윽, 진정해! 우앗!”

기사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물의 정령이 말들의 눈을 강타한 것이다. 하지만 위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잠시 동안 말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빼고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기사들의 몸을 두 동강 낼 때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자연히 마르셀의 표정도 어두워져 갈 수 밖에 없었다.

“…정령들이 사라졌어…….”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는 마르셀. 단순히 위력만 떨어진 것이 아닌, 힘겹게 소환한 정령들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힘을 다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의 주위에 남은 정령은 하나. 실로 위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게 섯거라!”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기사의 고함소리가 그들의 등을 때린다. 마르셀을 비롯한 발사로크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7명의 기사가 그들의 뒤를 바짝 붙어서 쫓아오고 있다. 더군다나 아군 중 한명은 의식도 돌아오지 않은 상황. 얼마 못가서 따라잡힐 것은 불 보듯 뻔 한일. 마르셀은 초조한 얼굴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기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마법사님! 놈들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습니까!”

“30M정도 뒤.”

“제기랄! 달려! 달리란 말야!”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병사는 연신 말의 배를 걷어찼다. 하지만 지금의 속력이 한계였다. 두 명의 사람이 탄 말의 속도가 기사 한명이 타고 있는 말보다 빠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말을 독려해도……. 달리면 달리수록 좁혀져 가는 거리는 두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고 있었다.
마침내 기사들이 10M내로 들어오자 마르셀이 고함을 지른다. 남은 정령을 이용한 마지막 공격이었다.

“가랏!”

그의 주변을 맴돌던 푸른 물체가 기다렸다는 듯, 가장 선두에서 따라오고 있는 기사를 향해 돌진한다. 마지막 남은 정신력을 쥐어짜냈는지, 마르셀의 정령은 방금 사라진 두 정령에 비해 푸른빛이 더욱 진한 편이었다.
그러나 기사 역시 이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는지, 말의 속도를 서서히 늦추며 창을 움켜쥐고는 다가오는 정령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마르셀의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저 정령까지 분쇄된다면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남지 않게 된다. 결국, 포로로 사로잡히거나 죽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으으으음!”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큰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감는 마르셀. 동시에 기사를 향해 달려들던 물의 정령이 진로를 바꿔 지금까지 이동하던 경로에서 엉뚱한 방향, 수직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속셈이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정령을 바라보며 기사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말을 독려하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선두의 기사가 다시 추격의 고삐를 움켜쥐자, 덩달아 뒤따라오는 기사들도 속력을 올리며 마르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정령으로 인해 간신히 벌려놓은 거리가 별다른 소득도 없이 다시 메워 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마르셀이 감고 있던 눈을 치켜떴다. 비록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표정은 지금까지의 당황함이 전혀 섞이지 않은 냉랭한 모습이었다.

“가라. 지금이다.”

아까 전의 명령과 같은 명령을 내렸지만 그 기세는 사뭇 달랐다.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와 그 속에 스며들어있는 묘한 자신감.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야에서 사라졌던 정령이 빛을 뿜으며 빠른 속도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셀과 라펜드를 추격하는 기사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냉기를 풍기는 정령이 지나가자 기겁을 한다.
그러나 이를 깨닫고 저지하기엔 이미 자신의 사정권 안에서 멀리 벗어나버린 정령. 그렇게 기사들의 머리를 통과하는 정령이 노리는 최후의 표적은 선두에 선 기사,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기사가 타고 있는 말. 그중에서도 다리였다.

히이이이잉!

“우와아아악!”

머리 뒤로 접근한 정령을 알 리가 없는 기사는 연신 말의 엉덩이를 채찍질 하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셀의 혼신의 힘을 다해 소환한 정령으로 앞다리를 부러트리자 그대로 말은 중심을 잃으며 쓰러졌고, 대비를 하지 않던 기사는 그대로 튕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선두의 말이 쓰러지자 뒤따라오던 기사들도 도미노처럼 말에 걸려 쓰러지거나 피하기에 급급했다. 초반에 전원이 산개했을 때와 달리, 포위망이 좁혀지자 무의식적으로 한 덩어리로 뭉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허억…허억…허억…….”

추적해오던 기사들이 뒤엉키는 모습을 바라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르셀. 전신의 감각이 마비된 것과 같은 느낌. 이와 더불어 졸음이 밀려왔다. 마르셀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너져 내리는 눈꺼풀을 움직이며 앞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희미하게 보인 영상을 목격하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런…빌어먹을…….”

그것을 끝으로 마르셀은 정신을 잃은 채 병사의 등에 몸을 맡겼다. 그를 태운 병사역시 앞의 상황을 보고선 악을 바락바락 써대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방을 맡기고 앞서서 도주하던, 라펜드를 태운 말에게 접근한 2명의 기사. 검을 뽑아들고 미친 듯이 휘두르는 상퀼로트를 창 하나로 가볍게 관통시킨 후, 즉시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결국, 병사의 몸에 밧줄로 고정되어있던 라펜드는, 이제는 시신이 된 상퀼로트와 함께 낙마해 버렸던 것이다.

“제기랄!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기사 몇 명이 라펜드를 확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르셀을 태운 병사는 소리를 지른 후 말머리를 돌려 발사로크 국경 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거리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고, 마법사보단 지휘관이 더 거물급이라 예상했던 기사들은 더 이상 마르셀의 뒤를 쫓지 않았다. 결국, 헬무트의 명령을 지키려던 마르셀과 병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평원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나인발트 나이츠 본대는 이미 협곡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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