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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雜談. 세계를 들고 있던 소녀

2006.08.19 08:07

Lunate_S 조회 수:288

 『소녀가 들고 있던 것은,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기』
  『세계를 들고 있던 것은, 작은 소녀』


 가장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봄』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가 죽었다.

 나는, 작은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웅크린 채로, 그저, 그렇게, 침묵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중학교 때 일이었다.
 부모의 사정에 의해 전학을 자주해야했던 나로서는, 어느 학교에서도 무리에 접촉하거나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무리에 괴롭힘은 당연하게 따라왔다. 이유 없는 폭력과 알 수 없는 조롱…, 동정어린 눈길로 쳐다보지만 도와주지 않는 위선자들, 일신상의 이유라는 핑계로 접촉을 거부하는 어른들─. 그런 것만이 내 중학 시절을 차지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고, 나 또한 어느 샌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아이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타인을 압도하는 박력을 가진 아이였다. 누구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고, 누구한테나 신뢰를 받았지만, 누구하고도 가까워지려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세계와 정반대의 인간이었지만, 단순히 무리와의 관계로 볼 땐,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애의 무관심을 다른 겁쟁이들과 같이 취급했다.


 그 일이 있던 것은 신기하게 시원했던 『여름』날.
 창가에 앉은 내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기에, 나른한 기분에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것이 눈에 집힌 듯, 무리는 또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웃음. 그것은 무리 전체의 동의를 구하는 의지이자, 내 자신을 ‘밑’으로 내려가게 만드는 원동력. 그리고 한편으론, 내게 무리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와서, 무리가 내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행동.
 다음은 벽. 무리에 겨우 속해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들은 무관심으로 벽을 두른다. 무리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거나, 실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반 전체에 공포란 이름에 벽을 쌓는다. 무리를 위한 실행자들은, 내 주위로 다가와 일시적인 벽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조롱. 벽을 만든 실행자들은 도발적인 언사와 위협하는 행동으로 내 반응을 재밌다는 듯이 확인하고, 어느 순간 ‘멸시’와 ‘폭력’이라는 파트로 이어지는 것.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순간이 지나가고, 벽은 나를 조롱하고 있을 때─ 그때 일어난 것은, 결코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하나의 마법이었다.
 밀쳐지고 넘어져, 울음이 터지려던 나를 조롱하던 사내아이한테 그녀는 말했다.

 "너는 그걸 알아야 해. 네가 그 애를 괴롭힌다는 것은, ‘너 또한’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 전체가 숙연해졌다.
 그녀가 반에 풍기는 영향력은, 그 순간 모든 무관심과, 공포와, 모든 벽을 해체했다.

 그것이 단순한 동정이었는지, 나 또는 무리가 자신에게 거슬렸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가졌던 모든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나를 변호했거나 친구가 되었다고 그녀에게 해코지하는 아이는 없었다. 도리어 내가 무리에 간섭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그녀에 영향이며, 나도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아이는 항상 한쪽 눈의 안대를 차고 다녔다. 누구나 궁금해 했지만, 누구도 함부로 물어볼 수 없는 분위기를 가져, 아무도 알 수 없는 목적의 안대였다.
 청명한 『가을』의 가운데에 서서, 지는 노을이 훤히 보이는 학교 옥상에서 함께 누워있을 때─, 그 애가 보여준 안대 속의 세계는, 하얗다 못해 섬뜩한 세계였다. 그것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이유 또한, 당연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 아이의 세상은 언제나 정확했다. 무슨 일에 대해 머뭇거리는 「추측」이 아닌, 확실한 예보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예측」한 것은 어김없이 들어맞곤 했다. 나는 바보같이, 그때까지도, 안대 속 슬픈 세계의 정체를 추측하지도 못했다.
 가끔 그녀의 예보가, 예측이 아니라 미래를 「실측」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일상적인 세계를 살고 있던 나로서는, 그 어떤 비일상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느껴졌기에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곤 했다.

 시간은 흘러만 갔다.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나는 더 이상 전학을 가지 않았고, 그 애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다―이것도 그녀가 예측했던 내용이다, ‘넌 아마 나와 같은 학교에 가게 될 거야’라고─.

 고등학생이 되고서 무리에 상당히 익숙해진 나로서는, 여전히 무리에 접촉하지 않는 그녀가 이상하다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녀 스스로 만족한다면 나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발산하는 박력과 영향력은, 무리가 그녀를 따르게 하는 동기를 이끌어냈다―그래봤자 그 애는 이런 것에도 무관심했지만─.


 그것은 차가운 『겨울』
 어울리지 않게 하얀 비가 눈처럼 내리던 날.

 세상에 경계에 서있는 표정으로 내게 말하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포기인지, 고통인지, 그것도 아니면 평소와 같은 무관심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저기, 있잖아. 난 아마… 아마 곧 죽을 거야. 이렇게 갑자기 말하니 우스울 수도 있겠는데 말야…. 내가 지금까지 한 소리 중에 가장 웃기지 않니? 갑자기 죽는다니, 나도 참."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나도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피하고 있었는지도─. 그녀의 하얀 눈이 홀로 미래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하얀 비를 맞으며, 나는 울었다. 정말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음껏 울고 보니, 그 아이가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는, 죽기 마지막에 내게 웃어보였다.

 "정말…! 그렇게 울면 예쁜 얼굴이 밉게 보이잖아. 이렇게 웃으란 말야─. 자아, 웃어봐. ……내가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 충격적이었어? 사실… 나도 죽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내 죽음은 이미 다가와 버렸는걸─. 그러니깐,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줘…."


 꼬르륵.
 이런 상태에, 이런 기분이라도 인간의 몸은 살아가기를 희망한다니─.
 나는, 작은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는 순간─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쳤던 소녀의 웃음이 보였다. 웃음을 잡으려 뻗은 손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눈앞에 보였다. 그녀가, 내게 전해주라 했던 유품…. 그것을 손에 집고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마주치니 흐릿한 잔상의 피사체가 포커스내로 들어왔다. 거리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치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사진을 필름을 떼고 흔들었다. 찍힌 사람의 형체가 일그러져있었다. 카메라가 고장인가, 하고 사진을 다시 봤을 때, 기묘하게도 사진의 시간이 되감기되고 있었다.
 깨진 머리가 다시 이어지고, 일그러진 몸뚱아리가 기묘하게 붙어지는 장면이 재생되더니, 도로를 횡단하다가 달려오던 차량에 부딪혀 날아가는 사람의 영상이 점차 흑백으로 변했다. 아니, 사진은 필름을 떼지 않은 포티지브 페이퍼의 모습으로, 깜깜한 세상 그대로 굳어져갔다─.

 아…, 너는 「이런 것」을 보면서 살아왔던 거였니──.
 너의 무관심은 이런 것에서 비롯된 거였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각인되었다.
 모든 걸 알아차렸을 때─ 나의 일상은, 어느 샌가 비일상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봐왔던 세계를 찍기 위해서,
 그녀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의 걸음으로 세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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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B로 자폭하고 좌절하고 나서 괜히 분풀이로 써버린 글. [...]

 포커스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거기서 '오빠, 오빠'하던 소녀의 이야기랍니다. 나중에 속편이 나온다면 항시 출연 대기겠군요. [...]

 이번엔 카메라에 관한 내용이 많다보니, 인터넷도 열심히 뒤져보고, 누님한테도 물어보고 그래서 여러모로 많은 정보를 획득. 그래봤자, 쥐 굴에 손가락만 집어넣은 정도지만 말이죠. [...]

 추측이니, 예측이니, 실측이니, 여러모로 알 수 없는 단어가 많았지만(뭐?), 제대로 된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니, '한글파괴범'이라고 불러줘요, 으하하.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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