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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Chains -1-

2006.03.20 00:38

삭구 조회 수:160

Chains.

Chain  n.
1.쇠사슬
2.(고랑, 족쇄 따위) 묶는 것, 구속하는 것.
3.(~s) 속박, 구속; 감금
4.(a ~ of) 연쇄, 연속, 일련(一連)

고요히 모든 것이 잠든 밤. 아무도 거닐지 않고
오직 보랏빛 달빛만이 저무는 밤을 지켜볼 때에
터벅터벅 힘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있다.

뭔가 자꾸 마음이 답답해지고,
온 몸이 축 처진 상태가 요즘 늘 계속되고 있다.
괜히 쓸데없는 잡생각만 자꾸 떠오르고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이 마시고 싶은 둥 느지막하게 마음이 둥둥 뜨고 있다.
(실제론 한 병? 아니, 몇 잔만 마셔도 필름이 끊기기 일쑤다.)

집까지 서늘한 긴 골목길. 낮에도 사람이 다니는 걸 거의 본적이 없다.
가끔은 정말 여기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정도이다.
활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고요한 적막과 묵묵히 바라보는 저 하늘의 둥근 달만이 이곳의 모두이다.
그렇기에 난 이 동네가 마음에 드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긴장과 고민에 둘러싸인다.
뾰족한 바늘이 조금만 스쳐도 펑! 하고 터 저버릴 것 같은
머릿속 잡념을 잠시나마 그림자 사이로 감출 수 있는 이곳이 말이다.
어느 누구도 날 찾지 않고, 나도 누군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곳.

대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었다.
아마도 또 엄마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굶고 다닐까 싶어
한 상 가득 밥을 차려 놓았으리라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드리운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밖은 조용했고,
째깍 거리는 시계소리만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눈을 감는 순간 편안해 진다. 깊고 깊은 향연의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

꿈을 꾼다. 그래 분명 꿈이다. 먼발치에 익숙한 집의 모습과
지금보단 훨씬 젊어 보이는 엄마가 내 옆에 서 있다.
단지 다른 것은 주위가 온통 새빨갛다는 것 뿐.
집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점점 시야는 검붉은 색으로 칠해져갔다.
끼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는 순간 익히 알고 있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영원히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지옥의 장면들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생생하게 비쳐 왔다.
아아. 아버지. 분명 아버지였다.
단지. 찐득한 검은 핏물에 잠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우릴 바라보지도 못할 뿐.
순간 고개가 부자연스럽게 턱! 하고 꺾이며
붉게 물들어 비어있는 눈이 나와 마주쳤을 때 난 눈을 떴다.

난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냥 무작정 토해내기 시작했다. 음식물 따위가 아니라.
모든 걸 그저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모든 것을.
실컷 토해내고 물 한 컵을 마시니 이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옴을 느꼈다.
시간은 새벽 2시. 한 시간 조금 넘게 잔 것이다.
제기랄. 무심코 욕을 내 뱉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가 아니라 내가 미워질 것 같았기 때문에.
아.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제길.

어제와 같은 길목. 오늘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멀리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 챙 넓은 모자에 검은 로브. 꼭 사제 같아 보이는 옷차림에 난 순간 멈춰 섰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달빛도 그의 주위는 비추지 않는다.
그 모습에 난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순진한 두려움과, 두 번 만날 이는 아닐 것이란 마음이.

집에 들어간 시간은 12시 똑같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선 얕은 잠에 빠진다.

또 꿈을 꾼다. 어제와는 또 다른 꿈. 잃어버렸던 사람의 얼굴…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사람. 오빠. 그의 웃는 얼굴이 비춰온다.
자상하고 따뜻했던 사람. 눈물이 맺혀 온다. 벌써 10여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처럼.

허나 희생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이란 이름은 한없이 옅어져 갔다.
누군가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 그런 게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두 모녀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벅찬.
이 세상은 지옥이라는 걸 어린 나이에 깨달으며 매일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 나날들.
누구도 도와주는 이 없었다.
그리고 난 그 도움이라는 것이 도리어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여겼다.
외로웠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슬프고 힘들면 아예 슬픔이라는 걸 잊는다 했던가.
눈물도 웃음도 사라진다. 아니,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이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 체념하기에 이른 거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어느 날이었다. 눈을 뜨니 온통 주위가 어두웠다. 아무것도 없다.
있을 수 도 없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나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창문에는 서늘한 달이 휑하니 떠있다.
갑자기 한기가 불어오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니 차가운 거울 속에 얼굴이 비춰 보인다.
부스스한 머리에 맹한 눈. 모르는 얼굴이다. 알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더럽고, 원망스러웠다. 거울 속 그녀에게 있는 힘껏 고함치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럴 힘조차 없었고,
주린 배를 배신할 수 도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차가운 달을 그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려보았다.
그리곤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혹은 달에게서.
‘너나 나나 마찬가지구나.’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앙상한 손이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가리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입술엔 미소가 묻어 나왔다.
그날도 배는 텅 비었지만 부족함 없이 푹 잘 수 있었다.
그 커다랗고 환한 달도 나와 동류라는 것이 기쁜 마음에.

짹짹. 지져 기는 새들의 노래에 살포시 눈을 떴다.
좋은 꿈이었다. 그때는 아팠을지 몰라도 지금은 단순한 추억거리에 불과하니까.
햇살을 맑고. 10월, 가을의 시원한 바람도 만족스럽다. 몸도 가볍다.
오늘은 정말 즐거운 일이 가득할거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일이.

느긋하게 아침을 먹던 중이었다. TV를 키니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3시경 모 모텔 근처에서 납치사건이 일어나.......”
“하아. 요즘 자주 저러네. 밤에 무서워서 다니겠나. 어제 그 사람도…”
검은 로브의 남자. 늦은 밤.
“에잇.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간 겁이 났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뒤틀린 믿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물 컵이 기우뚱하며 찰랑거리던 물을 뱉어낸다.
“진짜. 오늘은 기분 좋은 아침이었는데 말이지.”
투덜거리며 그릇을 치우고는 어머니의 단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집을 나왔다.
심호흡을 하고는 한 번 더 다짐 한다.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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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입인사 차원에서 옛날에 한번 썻던 구상을 다 뜯어 고쳐서 올려 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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