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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장편] 쿵후보이 친미 3-1

2006.03.17 11:53

풀피리 조회 수:199

친미가 동림사의 요센도사 밑에서 수행을 시작한지 어느세 2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한
참 자란 잡초가 동림사를 뒤덥고 있던 초가을에 시작한 수행은 이제 울긋불긋한 단풍물이 든 낙엽이 하
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들어서 절정에 달했다.

친미는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고된 수행을 견뎌내야 했다. 이제 어리기만한 친미는 아니었지만 아직 15
세 소년의 몸으로는 견디기 힘든 수련들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친미의 수행의지는 더욱 더 불타 올랐다.



"도사님, 주무십니까?"



벌써 해가 중천이었지만 요센도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요 사이 들어서 요센도사는 늦게까지 자는 경
우가 많았고 일어난 후에도 법당에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미를 제자로 들어간지 벌
써 2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술에 절어 살았고 밤 늦게까지 법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젊
었을 적에는 대림사 최고 고수였을지는 몰라도 이제 그는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그래도 친미의 수행을 지켜볼 때 만큼은 술에 취한 기색 따윈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수행에 한참 집중
해야할 친미로서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깨우길 포기한 친미는 간단하게 절간을 청소한 후에 산을 내려왔다.

사실 친미가 오기 전 동림사는 거의 폐허나 다름 없었고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저번 마
을에서 외국 선원들을 혼ㄴ줬던 일 이후로는 마을 사람들이 가끔 음식과 술을 조금씩 쌓가지고 오기는 하
고 있었지만 그것 만으로는 둘이 생활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었다.

게다가 동림사에는 요센도사와 친미 뿐이어서 다른 절 마냥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센도사
는 그저 술이나 타령했지 다른 스님들 처럼 텃밭을 일구거나 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친미가 아침마다 항구마을에 내려가 일을해서 먹을 것을 구해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선이 항구에 도착했는지 저잣거리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이제 막 짐을 내리기 시작하려 하는지 소 일거
리를 찾는 일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친미도 일거리를 맡기 위해 잽싸게 달려가려던 찰라였다.



"친미? 너... 친미 맞구나!"



누군가 친미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친미는 누구인가 해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정말 뜻밖에도 반
갑고 보고팠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얀?"



수수하지게 차려입었지만 조금은 수줍은 듯한 미소가 예쁜 아이. 대림사에서 수행을 하던 때에 인근 마을
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것을 친미가 구해주었던 소녀였다.

친미는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피웠다. 그녀는 마을에서 가
져온 듯한 사과를 지개 바구니에  한가득 담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지라 얀의 수줍은 미소가 이리도
고와보일 수가 없었다. 친미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와-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대림사 사람들은 별일 없지?"

"응, 모두 건강해. 그런대 정말 반갑다..."



대림사 사람들은 요즘 한참 바쁘다고 했다. 하기사 마을 농장에 일손이 부족해 대림사의 사람들이 대신 도
와주어야 했으니 한참 추수기인 요즘이 가장 바쁠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친미는 요즘 많이 바쁜가봐? 대림사를 떠난지 두달이 넘도록 연락 한번 없고. 난 친미가 보고싶었
는데..."

"미... 미안..."



친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얀의 부드러운, 조금은 새침한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친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혹여나 겉으로 드러날까 하는 생각에 얼른 화재를 돌렸다.



"무거워 보이는데 내가 좀 도와줄께."

"응? 배에서 짐을 내리려던거 아니었어? 이러다간 자릴 빼앗길텐데..."

"괜찮아, 괜찮아. 오늘 하루정도는 쉬어도 돼."



얀이 한사고 만류했지만 친미는 기어이 지개를 대신 들쳐맸다. 사과는 재법 묵직해 보였지만 어찌된 일인
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곁에서 얀이 지켜보고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저잣거리에는 유난히 사람이 붐볐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오늘은 더 붐비는 것 같은데?"

"응, 오늘 외국 상선이 왔다나봐. 서양에서 실어오는 물건들은 하나 같이 신기한 것들이니까... 꼭 사려는
사람이 아니어도 구경꾼이 많이 몰려들거든."

"그래... 외국 상선이라."



갑자기 두달전 요센도사와 친미를 습격했던 외국 선원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녀석들이 아주 혼쭐을 내주
긴 했었지만 그들의 더러운 수법에 친미도 크게 낭패를 볼 뻔한 적이 있었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언젠가
복수를 하러 올지 모른다며 요센도사가 친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오늘 외국 상선 얘기를 듣
자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친미는 조용히 얀에게 일렀다.



"항구마을에서는 조심해. 외국인들은 중국인들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으니까. 얼마 전에도 그것때문에 크
게 싸운 적이 있거든. 물론 그때는 요센도사님이 아주 혼쭐을 내서 쫒아버리시긴 했지만 말이야."



지개 바구니에 담겼던 사과를 시장 상인에 넘기자 정오가 다 되었다. 상인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예정보
다 훨씬 늦은 시간에 받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친미로서는 그동안 얀과 밀렸던 담소를 나눌 수 있어서 즐
겁기만한 시간이었다.



"배고프지 않니? 오늘 도와준 보답으로 점심은 내가 살께."



얀의 제안에 친미는 히죽 웃었다.



"그, 그래도 될까? 실은 나 무척 배가 고팠었거든 헤헤헤..."



오히려 얀에게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항구 일거리도 놓친 마당에 마땅히 점심을 때울 방법
이 없었다.



얀을 따라 들어간 곳은 부둣가의 가까운 국수집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다른 음식점을 몇 군대나 돌아다
녔지만 하나같이 사람이 붐벼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국수집도 사람은 많았지만 요행히도 일어서는 자리가
있었다.

북적이는 국수집에는 유난히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외국 상선이 도착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외국어가 서툰 점소이가 진땀을 흘려가며 주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 까지 했다.



"정말 외국인이 많은데?"

"응... 그래도 괜히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걱정이야."

"설마..."



손님이 많이 부비는 탓에 주문한 국수는 꽤나 기다린 후에야 나왔다. 친미는 아침도 그런체 산에서 내려온
터라 배가 몹시 시장한 터였다. 국수 한 그릇을 단숨에 비우고 막 국물을 한모금 들이키려던 순간이었다.



차르륵-



국수집 문에 걸린 발을 해치며 키 큰 외국인이 들어왔다. 일전에 봤던 외국 선원들과는 다른 묘한 복장의
매우 균형잡히고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눈에 띄는 사내였다. 곧고 똑바른 몸에 안정적인 걸음걸이는 꼭 무
술을 연마한 사람을 연상시켰다.



"해군이야."



누군가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그 외국인은 해군들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처음 들어온
외국인 뒤로 험상궂은 사내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하나 같이 힘깨나 쓸 법한 거한들이었는데 친미가 왠지
이들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앗차!'



친미는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얼른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 뒤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필시 두달전에
싸웠던 바로 그 외국 선원들임에 분명했다.



'맙소사. 저 녀석들이 또 복수하러 온 것인가? 하필 이런 때에... 얀도 같이 있는데 휘말리기라도 하면 큰일
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왠지모르게 자꾸 키 큰 외국인쪽으로 시선이 갔다. 아무래도 전에 당했던 녀석들이 자신
들 힘만으론 부족하겠다 생각했는지 실력 좋은 동료를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친미, 혹시 아는 사람들이야?"



얀이 옆에서 속삭였지만 혹시 걱정하게 될까봐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자리를 얼른 떠
야 할 모양이었다. 전에는 둘을 상대하는데도 벅찼는데 만약 여기서 싸움이라도 난다면 얀을 보호하면서 싸
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일어날까? 슬슬 도사님도 일어나셨을 때가 됐고... 이제 가서 수련해야해."



친미는 얀을 이끌고 외국인에 눈에 띄지 않도록 슬그머니 국수집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녀석들은 아직 친미
를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무사히 저잣거리까지 나온 친미는 얀과의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우연치 않게 만
나서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담소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긴 했지만 마지막에 그 외국인들을 발견하면서 기
분을 망치고 말았다.

돌아가는 친미에게 얀은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친미, 힘내! 계속 응원할테니까."



동림사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오후가 되어서였다. 어느새 일어난 요센도사가 정좌를 한체 친미를 기다리
고 있었다.



"늦었구나. 수련을 개을리 하는게 아니냐?"



역시나 꾸중을 듣고야 말았다. 하기사 원래대로라면 점심이 되기전에 돌아와서 수행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
나 친미는 기분이 상해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것보다 요센도사님. 글쎄 마을에서 그 녀석들을 봤다니까요? 두 달전에 싸웠던 그 외국인 선원들 말이에요!!"



친미의 얘기를 듣고 요센도사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래서 저 녀석들에게 미행을 당했다 이거구나?"

"예엣?"



놀란 친미가 돌아보니 전의 그 외국인들이 이미 절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너, 너희들은..."



바짝 긴장을 한 친미가 맞서 싸우기라도 할 듯 자세를 취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선 목소리에 또다시 흠
칫 놀라고 말았다.



"해이 해이, 그만 둬. 우리는 싸우려고 온게 아니니까."



뒤를 돌아보자 법당 구석에 전에 국수집에서 봤던 키 큰 외국인이 느긋히 기대고 서 있었다. 분명 기척을 느
끼지도 못했는데 어느틈에 저기까지 가 있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친미가 손등으로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동림사에는 무슨 일이냐!"

"목소리좀 낮추지? 소년."



그 외국인은 냉정하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목소리 만큼은 부드러워서 적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되지 않
았다. 하지만 차갑게 빛을 뿜는 두 눈이 결코 방심해선 안될 사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먼저 내 소개부터 하지. 난 딕 스테이너다. 전에 내 동료들이 추한꼴을 보였다고 해서, 사과를 하러 왔지."

"사과를?"

"후후후... 물론 그 밖에 용무도 있긴 하지만."



스테이너가 가벼운 몸짓으로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워 뚜벅뚜벅 걸어왔다. 전에 봤던 것 처럼 매우 안정
적인 걸음걸이였다. 분명 이 자는 무술을 연마한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그 밖에 용무라니?"



친미가 바짝 긴장해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용무라는건 바로..."



뭐라 말하려던 스테이너가 느닷없이 친미에게 주먹을 날렸다. 실로 굉장한 속도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주먹
이 친미의 코앞까지 날아왔지만 바짝 긴장을 하고있던 친미는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첫
공격은 진짜가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어 피한 친미의 안면을 스테이너의 강력한 주먹이 강타
했다.



"커헉!"



눈 깜짝할 사이에 얻어맞은 친미는 그대로 붕 하고 공중으로 날아 법당 구석에 쌓아둔 잡기들 위로 우당탕 떨어
지고 말았다.



"너, 이게 무슨..."



스테이너의 비겁한 수에 화가 치민 친미가 몸을 일으켜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강력한 충격에 눈 앞이
어찔어찔하고 다리에 맥이 탁 풀려 몸을 재대로 가누질 못했다.



"방금 그건 내 도전장이다. 듣기로 너희 둘은 여기서 무술을 연마한다던데... 어때? 한번 붙어보지 않겠나? 물론
이건 치졸한 복수 따위가 아니다. 단지 너희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겨뤄보고 싶을 뿐이야."



스테이너는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고 느긋히 팔짱을 끼었다. 더 이상 적대 의사 같은 것 하지 않을 거란 태도였
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친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멋대로 절 안에 들어와서 기습을 하더니 복수 같은게 아니
라니!

친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다잡으며 몸을 곧추 새웠다.



"이게... 복수 같은게 아니라고?"



친미가 이를 으드득 갈며 말했다.



"후후후, 내가 좀 거칠었나? 미안하군."

"뭐야?!!"

"무술을 연마 했다길래 난 또 민첩하게 피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형편없이 얻어맞을 줄은 나도 몰랐
다고. 생각 보다 실망인데?"



스테이너의 조롱에 친미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너 이자식!!!"



친미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어 정권을 날렸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재대로 속도가 붙지 못한 일격이었다.
스테이너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피해내고는 비틀거리는 친미의 다리를 살짝 걸어 넘어뜨렸다. 그 바람에 친미는
또 다시 법당 바닥을 굴러야 했다.



"제, 제길..."



친미가 이를 갈며 다시금 덤벼들려 했지만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요센도사가 가로막았다.



"그만 해라. 넌 이미 졌어."



요센도사의 냉정한 한 마디가 이미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친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도...도사님..."



요센도사는 그런 친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스테이너를 똑바로 노려봤다.



"수고스럽게도 먼 곳에서 왔지만 그만 돌아가게. 여긴 당신만한 고수가 없어."

"!!!!"



요센도사의 말에 친미는 크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설마 저 요센도사님이 저 외국인보다 약하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스테이너가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에 보아왔던 요센도사의 실력이라면 스테이너 정도는
분명 제압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당사자는 친미의 예상을 깨고 의외의 저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부님!!!!"



친미의 고함소리가 법당안에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사부님! 왜 그렇세요, 예?! 사부님 실력이면 저 깟 녀석 쯤은 문제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확실히 요센도사는 그 표정이 전과 달랐다. 언제나 여유있던 고수의 얼굴이 아니라 지금은 몹시 괴로운 듯한,
그리고 왠지 침통한 분위기였다.



"그만 하거라 친미. 인정 할 것은 인정해야한다. 지금은 스테이너를 이길 수 없다."



요센도사는 분노해 해는 친미를 점잖게 타이르고는 다시 스테이너를 응시했다.



"보아하니 저쪽 얼간이들 하고는 다르게 얘기가 통할 것 같은데. 이쯤해서 돌아가주지 않겠나? 익곳에는 이미
너 만한 고수가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저 뒤에 그 얼간이들을 두들긴게 당신 아니었나?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혹시 겁이
라도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는거냐?"



스테이너의 모욕적인 말에 친미가 분노했다.



"웃기지마! 요센도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사부님! 뭐라고 말씀좀 해 보세요. 예?! 저런 녀석은 충분이 이
기실 구 있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이러시는 거예요?!!"

"이봐 소년. 졌으면 그냥 구석에 처박혀 있어. 끼어들지 말고..."



스테이너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하지만 친미의 기세는 꺽일줄을 몰랐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자네보다 뛰어난 무인은 없어. 그러니까 겨뤄 볼 필요도 없단 말이야."

"이봐, 영감. 난 싸움을 좋아할 뿐이지 망나니같은 놈은 아니야. 그런데 당신의 지금 태도는 정말 마음에 안드
는군. 싸우기도 전에 포기라는 건가?"



사실 스테이너는 정말 복수같은걸 하려고 동림사에 온 것이 아니었다. 같이 온 녀석들은 그저 안면이나 튼 사
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비록 냉정하고 난폭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의 말처럼 불한당 따위가 아니었다. 다만
강한 상대가 있다고 하면 겨루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내질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두 달전에 두들겨 맞
고 쫒겨난 저 녀석들의 말을 듣고는 이번에 동림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군. 쓸때없는 걸음을 했어."



스테이너는 실망이라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차가운 눈빛이 같이 온 외국 선원들을 향했다.



"너희들... 정말 저런 형편없는 것들에게 당한거냐?"



스테이너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집어먹은 선원들이 긴장한 듯 일제히 변명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아, 아냐! 정말 저 늙은이는 강하다니까?? 이상한 기술로 우릴 꼼짝도 못하게 했다구!!"

"맞아! 저 녀석 괜히 싸우기 싫어서 그러는게 분명해!"

"저 술주정뱅이 늙은이가 일부러 저러는거야! 스테이너! 저 녀석들 정말 강한 놈들이라구. 이대로 그냥 가버릴
꺼야?"



스테이너는 기분나쁘다는 투로 법당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뭐가 고수란 말이냐. 저건 완전 겁쟁이 노인에 초짜 꼬맹이일 뿐이잖아. 젠장... 돌아 가겠어."



그렇게 법당 밖으로 나서려는 찰나였다. 어느새 달려온 친미가 스테이너를 가로막고 섰다.



"이 자식, 나 하고 겨루자!! 내가 도전을 받아 들이겠어!!"

"친미!!"



친미의 돌발 행동에 요센도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은 분하지도 않으세요!? 왜 자꾸 약한 모습보이시는거에요!!!"

"친미! 그만 두지 못하겠느냐!!"



요센도사가 전에 없던 화가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친미는 듣지 않았다.



"기새 좋은 소년이군. 좋아... 하지만 이대로는 너하고 안싸워. 지금 넌 실력이 형편없거든?"

"뭐... 뭐야??"

"잘 들어. 한달의 시간을 주마. 한달 동안 연습할 만큼 연습해. 정확히 한 달 뒤에 마을에서 싸운다. 알겠지?"

"지금 당장 싸워!!"



친미가 이를 뿌드득 갈았지만 스테이너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 달 후다. 친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미의 복부에 스테이너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하고 복부를 강타당한 친미가 그대로 문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욱...우우욱."



극심한 통증에 친미는 점심에 먹었던 국수가닥을 몽땅 토해내고 말았다. 시큼한 위액 냄새가 코 끝을 파고들었다.



"기억해 두라고."



차갑게 내뱉은 스테이너는 그렇게 동림사를 떠났다. 다른 외국 선원들도 돌아가면서 각자 조롱하는 말을 친미에
게 던졌다.



"제...젠장...."



어찌나 강하게 얻어맞았는지 내장이 죄다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고통보다도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진
자신을 향한 분노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 형편없이 당한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고 너무나 억울했다.



"웩...웨엑..컥컥..."



입가에서 피비린내가 감돌았다. 아까전 일격으로 내장이 상한 모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토악질을 해대니 이제
조금씩 멎는 것 같았다.

친미는 고통스러운 배를 움켜쥔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요센도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런 친미를 측은하게 바
라보고 있었다.



"사부님..."



왠지 모를 분노가 솟아 올랐다. 분노, 배신감, 실망, 충격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휘몰아쳤다. 친미는 자신이 어째
서 이렇게까지 분노하는지 몰랐다. 단지 싸움에서 진것일 뿐인데... 단지 사부가 그것을 인정한 것일 뿐인데 어째
서 이렇게 분한 것일까? 이렇게 분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일까?

친미는 가슴이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뭐라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도리처럼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듯 했다.



"사부님..."



뜨거운 눈물이 친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친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저 침통한 표정의 요센도
사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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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진정한 리얼액쑌의 로망이 시작되겠군요. 원작과는 내용도 좀 달라지고(기본틀은 비슷하지만) 설정도 조금 다
르게 했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에 바꿔봤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

재미있게 읽으시고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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