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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벚꽃여우 2017.04.05 07:17 조회 수 : 65

 위그드밀레니아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류층이 될 수 없는 타락한 비주류 중소 가문들이 연합한 일족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디아도라 포르베지 위그드밀레니아를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하여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와 영국 정부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 하면, 구 IRA 조직을 흡수한 용병 회사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고, 심지어 연예 프로덕션의 운영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디아도라라는 인물의 수완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쯤 되면 만약 그녀가 애니메이션 제작 산업에 한몫 나서고 있었다고 해고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잉그베이가 디아도라와 알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아종 성배전쟁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100%라는 무적의 생환율을 달성한 위인이었다. 이번에 잉그베이가 향하는 일본의 쿠즈류 시에서 새로 발견된 성배를 둘러싼 싸움에도 디아도라는 참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잉그베이는 성배전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디아도라에게 몇 가지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녀로부터 협력 관계를 맺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녀의 제안은 성배전쟁에 있어서 초보 입문자나 다름없는 잉그베이로써는 더할 나위 없었다. 같은 룬 마술을 전공하는 몇 안 되는 마술사라는 공통되는 면모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지금.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이 드문 영지에서 둘은 동시에 영령소환을 행할 예정이었다. 지면에 각각 자신들의 유파에 맞는 2개의 마법진, 그리고 룬을 새기면서 잉그베이는 자신의 왼쪽 손등을 쓰다듬었다. 이 마을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성배전쟁의 참가 자격이자 마스터로써의 증표인 3획의 령주를 부여받았다. 되도록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의식하고 있었지만, 잉그베이는 내심 긴장한 상태였다. 영령은 평범한 마술사가 다루기엔 지나치게 영격이 높은 존재였다. 사후 사람들에게 숭배받는 영웅을 마술의 힘으로 제어한다는 사실이 잉그베이에게는 영 탐탁찮게 느껴졌다. 그들을 단순한 싸움의 도구로 치부하기에 영령은 제대로 된 인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마법진을 그리는 잉그베이의 손에 약간의 주저가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 뿐만은 아니었다.


 그런 잉그베이와는 대조적으로 디아도라의 손놀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몇 번이나 성배전쟁에 참가한 전적이 뒷받침되는지 동작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침의 테이블에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른다는 착각조차 방불케 했다.

 잉그베이가 그 모습을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자.


 빙긋.

 디아도라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차를 따라주었다.


 "제법 능숙하시군요.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빌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차가 담긴 종이컵을 건네받은 잉그베이는 그것을 순식간에 입 안에 털어넣었다. 마술사로써는 다소 경계심이 부족한 모습이었으나, 이는 그와 디아도라 간의 신뢰를 반증하기도 했다. 뜨거운 차는 잉그베이의 목구멍을 타고 순식간에 흘러내려갔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의식으로 괜찮은 걸까요?"

 "사실 의식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요는 강한 의지. 때로는 제대로 된 주문도 없이 강한 의지만으로 서번트를 소환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그게 사실이라면 놀랄 일이었다.

 본래라면 영령을 부르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자금을 필요로 했다. 그게 이렇게 간단한 공정만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니 새삼 성배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물건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마술사는 형태부터 들어가는 생물이니까. 가장 자신에게 걸맞는, 가장 익숙한 '틀'에 자신을 맞춰서, 자기 암시를 강화하는 것이 마술의 기초지? 기초를 충실히 하는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동감입니다. 아무래도 어떤 영령을 부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황을 좌지우지할 테니까요. 신중함을 기울여서 나쁠 건 없겠죠."


 이런 자세야말로 잉그베이가 디아도라라는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이었다.


 "...그런 당신은, 소환에 필요한 성유물을 이미 구한것 같은데. 괜찮겠어? 좀더 강력한 영령의 성유물을 원한다면, 내 커넥션을 동원해줄수도 있지만."

 "그 제안은 기쁩니다만, 강력한 영령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이 아니라는 건 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서번트는 소환자와 가장 가까운 영혼의 형태를 지닌 자가 불려나온다고 하죠. 저는 이대로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뭐, 그렇게 말하는 나도 인연소환쪽이 더 상성이 좋았고. 그럼, 시작할까."

 "네."


 10연 가챠 하지마루요


 두 사람은 뒤돌아서서 서로 등을 맞대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미리 짜놓은 타이밍에 맞춰 소환에 필요한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위의 마력이 용솟음치면서 마법진 안에서 흐릿하게 사람의 형상을 띈 무언가가 나타났다.


 "묻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부른 지휘관입니까."


 잉그베이는 소환이 성공한 달성감을 느끼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서번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것은 한 때 영국군이 착용했던 붉은 제복으로 몸을 감싼 여자였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초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습은 병사나 군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눈동자에 깃든 강하고 뚜렷한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잉그베이는 여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합니다. 제 이름은 잉그베이 바티드 랑그레이 발렌타인, 당신을 소환한 마스터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신의 클래스와 진명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번 성배전쟁에서 버서커의 클래스로 참전했습니다."


 담담한 그녀의 대답에 잉그베이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팅게일─────크리미아의 천사로 유명한 그 여인? 아니, 하지만 버서커라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크림 전쟁에서 그 이름을 떨친 간호사들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당시 여성의 몸으로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직업인 간호사가 된 그녀는 전시 위상상태 개혁에 착수했다.


 "그럼, 앞으로 당신을 버서커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걸로 괜찮습니까?"

 "글쎄요. 관심은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는 어디죠?"

 "환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제 건강상태는 올 클리어 수치를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정밀검사가 필요하군요. 진단 기기는...... 없으니, 근처 병원을 빌리도록 하지요."


 버서커는 두말 않고 잉그베이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질질 끌고 갔다.


 "아니, 잠시만 기다─────!?"


 당황한 잉그베이는 저항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손길은 성인 남성의 완력을 가볍게 웃돌고 있었다.

 근력과 체력에 어느 정도 자신 있던 잉그베이로써도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의 괴력이었다.


 "멈추세요, 버서커! 일단 이쪽의 전력을 확인하는 게 우선────"

 "저항은 무의미, 무가치합니다. 얌전히 치료를 받은 뒤, 침대에서 절대안정을 취하도록. 물론 환자의 모든 행동은 제가 직접 감독, 관리합니다."


 잉그베이는 전신으로 그녀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잉그베이는 어느새 발로 지면을 질질 끌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버서커의 팔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 하자.


 "............"

 "─────?!?!?!?!!?!"


 버서커는 태연한 얼굴로 아예 잉그베이를 들어안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작은 여성한테 공주님 안기를 당한 잉그베이는 울상이 되어 디아도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진정해주실까, 나이팅게일 여사. 환자는 아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당신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우선은 여기서 이야기를 좀 나누지 않겠어?"


 상황을 파악한 디아도라가 다가와서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돌진하는 버서커를 향해 설득을 시도했다. 디아도라의 뒤에는 처음 보는 소녀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그녀의 소환에 응한 서번트인 걸까?


 ".....영령이란 건, 다들 저런 것? 조금 흥미는 있는데......"


 얼핏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소녀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비단결 같았고, 달빛을 반사해서 투명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현대적인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디아도라가 미리 준비해준 복장인 듯 싶었다. 그러나 인종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외모였다. 유럽계가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황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홍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껴있었다.

 버서커는 디아도라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고민한 뒤에 말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에 진료를 하도록 하겠어요. 물론 당신도."


 디아도라의 뒤에 서 있던 소녀의 모습을 한 서번트는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엣, 나도? 아니, 분명히 나는 약화되어 있지만, 딱히 병에 걸린 건 아니......"


 소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버서커는 매서운 눈초리로 말을 잘라버렸다.


 "비전문가는 입 다무세요. 야전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이 절대적입니다."

 "아니, 여기는 야전병원이 아니......" "입 다무세요!"


 낮은 총성에 깜짝 놀란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강제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 때야말로 잉그베이와 디아도라 동맹에 절대적인 군림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P.S.


1. 서번트가 마스터는 커녕 진행자의 말조차 듣지 않아!? (울먹)

여러모로 최강입니다......


2. 아직아직 소환씬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걸로 겨우 반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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