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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 후지코

벚꽃여우 2017.03.19 20:04 조회 수 : 24

# 01.


"네?"


잉그베이는 포크를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그는 오랫만에 휴가를 받아 그리운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유명한 휴양지 근처의 고급 호텔을 예약하고 그 안에서 여유자적한 휴가 계획을 그릴지도 모르지만, 잉그베이는 직업상 전 세계 곳곳 안 가본 곳이 드물 정도였고 관광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오히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독서에 몰두하는 게 그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돌이켜보면 몇 달 간은 과혹한 임무의 연속이었다. 매일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한시라도 숨을 고를 틈조차 없는 살벌한 일상이었다. 그런 삭막한 과거의 일들을 잠시 동안이라도 잊게 해줄 정도로 요 며칠간의 생활은 잉그베이에게 있어서 굉장히 편안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자신이 들은 말에 대해 머릿 속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아버지?"

"그러니까 너도 슬슬 나이가 다 차지 않았느냐. 네 베필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였나.

그걸 확인한 잉그베이는 아예 식기를 놓아버렸다.


"지금은 협회에서의 일도 있고, 그쪽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 네가 그럴 줄 알고 우리 쪽에서 마침 좋은 집안의 아가씨를 물색해두었단다."

"───네?"

"너도 한 번 쯤 이름은 들어본 적 있겠지. 메르세데스 가문의 장녀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잉그베이는 기가 찬 나머지 자리에서 실례를 무릅쓰고 일어나려고 했다.


"자리에 앉아라, 잉그베이. 아직 식사 시간 중이다."

"그럼 눈 앞에 있는 요리에 집중하시죠. 방금 전의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거라. 너는 우리들의 마음을 모르겠니? 매일 아들을 사지로 보내는 부모 생각도 좀 해보거라."

"마치 절 위해서 그런다는 말씀은 하지도 마세요.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정략 결혼. '이쪽 세계'에서는 그리 드문 얘기는 아니었다.

스웨덴에서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이 근처 동네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이름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마술 세계에 있어서 드물게 아주 오랫 동안 어떤 협회와도 인연을 갖지 않고 다른 집안과의 교류조차 끊어버린 채 살아온 단일 일족이었다. 그 흐름이 비로소 변화를 보인 것은 잉그베이가 태어나고나서부터였다. 그는 단신으로 협회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봉인지정 집행자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아직 협회 안에서의 입지는 좁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신에게는 남들을 웃도는 재능이 있었고, 꾸준한 실적을 쌓다보면 그 자리를 굳건히 만드는 일 또한 가능할 터였다.

올해로 잉그베이의 나이 스물 다섯. 아직 젊은 편이지만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배우자는 언젠가 직접 정하자고 마음 먹고 있었던 잉그베이였다. 아니, 무엇보다 방금 전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대해 잉그베이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메르세데스. 협회 안의 귀족주의 파벌에서 한창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다. 비록 그 역사는 발렌타인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적어도 크고 작은 정치 싸움에는 익숙한 자들이었다. 만약 메르세데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좋은 집안 신랑감 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협회에 있어서 아직 약소자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먼저 혼담을 꺼내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잊으셨습니까? 우리 발렌타인은 아득히 머나먼 고대, 신화가 살아숨쉬던 시절부터 이어져왔습니다. 그 역사를 고작 해야 800년도 안 되는 가계한테 뺏긴다는 것은 발렌타인의 수치요 굴욕입니다."


자신이 말하는 의미를 모르는 두 분이 아닐 것이다.

메르세데스 가문의 혼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즉 잉그베이가 그 집안의 데릴 사위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가문의 역사는 둘째 치고, 메르세데스는 오랫 동안 파벌 싸움에서 살아남은 전투 종족이라면, 발렌타인은 그저 허울 뿐인 종이 장갑이나 다름 없었다.


그 때,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잉그베이. 한 때 내가 몸을 두고 있던 친정 역시 마찬가지로 그 이름이 시작된 것은 300년을 채울까 말까 한 정도였다. 그래도 마술을 행하는 집안에 태어난 몸으로써 다른 집안에 시집 가서 자손을 남길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네가 태어났다는 걸 잊지 말아라."

"두 말 할 것도 없겠지만, 우리들(마술사)은 그 누구라도 예외없이 근원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것이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만약 자신의 대에서 닿지 못한다면 다음 대에, 또 그 다음 대에 넘겨줄 숙명을 타고난 자들인 것이다."


두 분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으나 그 안에는 절실함이 묻어있었다.

그들 또한 잉그베이처럼 젊었을 무렵, 가문의 비원을 이루기 위해 말 그대로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세대에서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잉그베이 역시 지지 않고 이에 맞섰다.


"그것과 이것은 별개입니다. 다른 일족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언젠가 발렌타인의 비술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 역대 당주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너라면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버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잉그베이는 그 뒤에 이어질 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거라, 잉그베이. 이는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발렌타인을 위한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식사 시간은 조용히 막을 고했다.





# 02.


방에 돌아오자마자 잉그베이는 트렁크를 열고 거칠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평소 신중한 성격인 그답지 않은 조잡한 손놀림이었다. 그 정도로 지금 잉그베이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아있는 상태였다.

간만의 휴가는 생각치도 못했던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오빠, 들어가도 돼?"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그베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대신 푹신푹신한 하얀 색 털이 눈에 띄는 개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서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개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 어떤 동물과도 일치하는 구석이 없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포메라니안을 닮았지만, 꼬리는 뱀장어를 연상케 하는 지느러미가 있었고, 앞발 대신 수탉의 날개가 달려있어서 몸통을 지탱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잉그베이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개를 닮은 생물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발을 들였다.


"무슨 일이야, 메릴?"


잉그베이는 살짝 풀어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메릴은 자신이 어린 시절 처음 연성한 합성수(키메라)였다. 다른 합성수는 모조리 처분했지만 메릴만큼은 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상징이였으므로 아직 남겨두고 있었다. 잉그베이는 메릴의 연약한 날개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어린 아이가 동화책에서 본 키메라를 보고 흉내내려고 했던 것일테지만. 자신의 몸통을 지탱하는 것조차 버거워보이는 메릴을 위해 전용 의수를 만들어준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짓곤 했다. 마치 이형으로 태어난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듯이.


"또 일하러 갈 거잖아?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작별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메릴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입 안에서 털뭉치를 하나 토해냈다. 잉그베이는 태연한 기색으로 그것을 헤집었다. 털뭉치 안에는 포춘 쿠키를 연상케 하는 종잇조각이 하나 들어있었다. 잉그베이는 그것이 마술협회에서 온 지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다시 이곳을 떠나서 자신의 직장으로 복귀해야된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감정을 추스리고 본래의 냉정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메릴은 아무 말 없이 잉그베이의 다리에 몸을 비비적 거렸다. 둘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잉그베이는 아무 말 없이 메릴을 끌어안았다.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메릴의 몸은 따뜻했다. 둘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서 미안해."

"아냐...... 나는 이 저택을 벗어나면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걸.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게다가......"


메릴은 기운을 복돋아주려는 듯 자신의 뱀장어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게다가 내가 이 저택에 있어야 오빠가 나를 보러 다시 올 것 아냐?"


잉그베이는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메릴을 내려다보았다.

메릴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약속할게. 반드시 널 보러 돌아오겠다고."

"응...... 잘 다녀와,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잉그베이는 메릴을 안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침대에 올려둔 뒤,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메릴은 묵묵히 자신의 창조주를 배웅했다. 완전히 잉그베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메릴의 두 눈에 커다란 눈물 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메릴은 절대로 잉그베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주인이 슬퍼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언제든지 돌아와 줘. 나는 언제까지라도 오빠를 기다릴 테니까.'





# 03.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맡기며 잉그베이는 다시 한 번 지령의 내용을 확인했다.


'일본의 쿠즈류 시에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감지. 새로운 성배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으로 예상됨. 이를 조사하고 진품에 도달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회수 혹은 완전히 파괴할 것.'


성배.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준다는 만능의 잔을 둘러싼 싸움이 현재 세계 각지에서 다발하고 있었다.

시작은 극동의 어느 마이너한 의식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 의식에 대한 정보가 확산되었다.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걸로 여겨지던 만능의 솥인 성배를 재현하기 위해 모든 마술사들이 기를 썼다. 성배는 올바른 사용자를 선발하기 위해 그들에게 일곱의 자격을 부여한다고 한다. 그를 위해 불려나오는 존재가 바로 영령이다. 영령은 고금동서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죽은 후 신격화된 존재들이다. 그들이 이 시대에 한 번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말 그대로 신화의 풍경이 그대로 재현된다. 때문에 그들이 주변에 끼치는 물리적 피해는 막대한 것이였지만 그 모습에 매료된 마술사들은 보다 신비도가 높은 영령소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성배의 힘을 통해 영령을 부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잉그베이는 그런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는 남자였다. 그는 만능의 원망기에도 큰 흥미가 없었고, 하물며 성배에 의해 소환되는 영령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특별히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잉그베이가 생각하기에 성배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물건이었고, 애초에 다른 가문이 제시한 지름길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분명 성배라는 이름의 무한한 마력 덩어리가 있다면 근원에 도달하는 것도 꿈은 아니였지만, 자고로 마술사라면 독자적인 어프로치로 근원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잉그베이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성배 그 자체에 큰 흥미는 없다. 그러나 성배를 얻기 위해 찾아오는 마술사들과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 그것은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었다. 나아가서 가문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실제로 '성배전쟁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협회 내에서도 한 수 접어주는 기묘한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현대마술학부를 담당하고 있는 로드 중 한 명인 엘멜로이가 그랬다.


'도전해볼 가치는 있을지도 몰라.'


잉그베이는 다시 한 번 성배전쟁에 관련된 보고서를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안에 자신이 찾는 해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 04.


디아도라 포르베지 위그드밀레니아와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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