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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H.C SS]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2011.03.24 00:04

心吾 조회 수:2478

  끔찍한 밤을 겪고 온 뒤, 나는 욕실 안에 틀어박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몸을 씻었다. 몸 곳곳에 남아있는 기분 나쁜 느낌을 씻어내기 위해, 피부가 불어터지고 새빨개질 때까지, 몇 번이고 타월로 문댔다. 하지만 남는 것은 심하게 밀려 벗겨져서 따가워진 피부와, 밑도 끝도 없는 비참함.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불쾌한 느낌.
  문 밖에서 민한 오빠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대답 대신 샤워 호스의 물을 더욱 세게 틀고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억눌렀다. 오빠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오빠는 마법과도, 그림자 세계와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반인일 뿐이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오빠가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오빠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한다.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나에게 기꺼이 쉴 곳을 제공해 준 오빠에게, 내 삶의 전부가 된 오빠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지금의 내가 마법소녀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빠 덕분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 개운하다. 물이 너무 따뜻해서 그만 졸아버렸어."

  빨개진 몸 위에 가운을 입고 욕실을 나섰다. 부드러운 가운임에도 불구하고 벗겨진 피부가 쓰라렸지만, 오빠 앞에서 인상을 찡그릴 수는 없었다.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 스쳐지나가려는 내 손을, 오빠의 손이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세현아. 나 좀 봐."

  그리고 대꾸할 틈도 없이 오빠가 날 돌려 세웠다. 걱정이 가득해보이는 두 눈. 그 눈을 차마 마주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흘깃 바라보자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는 오빠의 시선에 놀라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그 침묵이 부담스러워, 나는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오빠를 마주 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두 눈동자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키는 나보다도 훨씬 크면서, 무서울 것 하나 없어보이는데도, 오빠는 어째서인지 두 눈 가득 물기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창피하게…."
  "사랑해, 세현아."
  "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떤 전조도 없이 튀어나온 말을 듣는 순간,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딱히 로맨틱한 상황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오빠의 말은 내 마음 속에 파고들어 크게 울리기에 충분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난 언제나 네 편이니까. 못 미더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네가 쉴 곳이 되어줄게. 그러니까……."
  "오빠……"

  오빠의 말이 내 마음 속에 따스하게 스며든다. 그래. 오빠와 함께라면, 오빠가 곁에 있다면…
  나는 가볍게 한 걸음 걸어가 오빠 품에 안기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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