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환세동맹-사신의장2막

2011.02.28 23:09

사이네 조회 수:1083

인간이외의 존재가 보인다고 해서 무언가 특별해 지는 것은 아니다.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이계의 존재가 찾아온 다거나 세계를 구할 운명이 된다거나 악마랑 계약을 맺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 인간 한시유는 그렇게 21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확고하고 절대적인 [공포]

어렸을 적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도무지 지구상 생물체라고 여길 수 없는 검은 괴물에게 쫓겨 죽기 전까지 몰렸던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공포.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자신을 구해 준 소녀에 대한 [선망]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친구인 카르에게 들었던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 있을 지 모른다는 이야기. 그리고 오늘 눈앞에서 사람을 향해 거대한 낫을 휘둘러 생을 거둬버린 기억 속의 소녀의 닮은 여성.

그리도 두려워했던 사람을 해치는 사람 이외의 존재와 그렇게나 만나고 싶었던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의 존재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인파들 사이로 두 눈에 똑똑히 보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마치 날개처럼 펄럭이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걷는 여성의 뒷모습. 그리고 지금도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여성의 키만큼 거대한 크기의 낫이 선명하게 두 눈에 새겨진다.

그러자 온 몸을 감싸고도는 한기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한기? 아니 한기가 아니다. 이런 건 아마... 전율... 무섭다. 저 무시무시한 병기의 위력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괴물을 단 몇 분 만에 조각 조각 갈라 땅바닥을 기게 만든 폭력의 상징 같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저 낫으로 사람을 베어버린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걸음을 재촉한다. 따라가서 무엇을 어쩌려는 것인 지 모른다. 아니, 다르다. 확인하고 싶다.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적어도 차에 치인 사람의 사인은 그녀의 낫에 베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묻고 싶다. 어째서 사람에게 그 낫을 휘둘렀는지를...

밤의 시간은 흐르고 달은 차오른다. 공기는 차가워지지만 숨은 거칠다. 아직은 3월 초 밤이 되면 차가운 공기가 더 몸을 감싸이는 시기... 그러나 몸만은 뜨겁다. 땀이 흘러 턱 밑으로 흐른다. 안쪽에 입은 옷이 끈적끈적 몸에 늘러 붙는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니 인적이 점점 드물어지고 어둠이 더 짙게 깔린다. 오로지 등만 바라보고 왔기 때문이겠지. 놓쳐버릴 듯 놓쳐버릴 듯 발걸음을 재촉한 끝에 도달한 곳은 어둠만이 자리 잡은 작은 골목. 어른 두 명이 서면 꽉차버릴 숨 막힐 공간, 가로등 등빛조차 들지 않는 장소, 낮이라고 해도 빌딩 그늘 아래 어둠을 품을 공간의 그 막다른 길에 서서 한숨을 쉰다.

 

"사라...졌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분명 이 골목길로 들어갔는데 어둠이 깔린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은 어둠만이 날 맞이하고 있을 뿐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귀신은... 귀신이란 건가?"

 

확실히 사람들 사이를 통과 하 듯 움직인 그녀다. 여기서 사라지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져 온다. 뭐, 헛것 봤다고 치면 되겠지. 카르의 말에 오늘은 민감해져 있었을 뿐이다. 얼른 집에가서 자고 내일도 강의를 들으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귀신은 아닌 거 같은데?"

 

바로 그 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돌린다. 그리고 숨을 삼킨다. 골목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을 등지고 선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어두운 공간에 한 쌍이 되어 빛나는 잿빛과 붉은색 눈동자가 불길한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호오? 내 목소리까지 들리는 건가?"

 

마치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것은 그저 공포심. 그 눈이 마치 내 모든 것을 헤집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반걸음 뒷걸음질 친다.

 

"뭐, 그리 겁내지 말라고. 별로 잡아먹거나 할 건 아니니까 말이야."

 

마치 어린애 달래듯 나긋나긋하게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도 무섭다. 마치 맹수 앞에 서 있는 것 같이...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진정해라. 고작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잖아 한시유!

 

"넌, 대체 누구지?"

 

겨우 떨지 않고 한 말이라곤 그 한마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 글쎄. 아무도 아니다라고 하면 정답일까?”

 

라는 대답을 해온다. 아무도 아니라고? 자신이 누군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어쩐지 낯설지 않은 대답이다. 어디선가 들은 기분이 들었다.

 

"뭐, 일단 소개라기엔 부족하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인간의 아이."

 

붉은 입술을 움직여 입꼬리를 위로 올려 미소를 만든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 미소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마치 얼음으로 된 송곳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한기가 든다.

 

"뭐, 여기까지 잘 따라와 주었어. 네겐 용건이 있거든. 상당히 중요한..."

"그전에,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다."

 

떨지 않고 내가 한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무엇이 궁굼하니?하고 묻는 것 같은 행동.

 

"사람을 왜 죽였지?"

"사람을 죽였다고? 내가? 말도 안 돼는 소리하지 마."

 

풋,하고 비웃어버린다. 뭐야 그럼 좀 전에 내가 본 건 다 환영이냐? 분명히 횡단보도에서 노인 한분을 베어버린 주제에.

 

"얼버무리려 하지마! 분명히 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영감님을 그 낫으로 베어버리는 걸!!"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외쳐버렸다. 상대는 사람을 죽이는 귀신인데. 이런 어두운 골목길에서 단 둘 뿐인데 이런 소리를 잘 못 했다간 나도 죽임당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서야 공포심에 숨이 멎는다. 그러나 내 말에 그녀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놀란 듯이 바라본다.

 

"이봐, 인간의 아이. 너 설마 [집행]이 보였던 거야?"

"무슨 소리야! 집행이라니?"

"내가 사람에게 낫을 휘두르는 거 말이야!"

 

몰아붙이듯이 갑자기 다그쳐 온다. 그러나 이번엔 밀리지 않는다. 뒷걸음치지도 않는다.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그래, 분명히 봤어. 그게 뭐 어쨌다고?"

"크크큭... 아하하하. 운이 좋은데 나.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갑자기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낄낄 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뭐지 이 녀석, 차가운 한기를 흩뿌리는가 싶더니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는 듯도 하고 이번엔 갑자기 막 웃기 시작한다. 종잡을 수가 없다.

 

"이봐 인간, 너 내 종이 되라."

"하아?"

 

이건 뭔 헛소리래? 왠 종이 되라는 거지?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와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체로 빙긋 웃으며 당당하게 선언한다.

 

"내 부하가 되란 말이야."

"아니, 잠시만 이봐. 일단 난 네 정체도 모르고. 네가 물어 봐야 할 건 널 왜 따라 왔냐 뭐 그런 거 아니야?"

"흐음, 그래? 그럼 너 날 왜 따라 왔지? 설마 반했나?"

"......"

 

이 녀석 이상하다. 좀 전까지 느껴지던 긴장감과 전율 같은 게 전혀 들지 않는다. 뭐냐 이 녀석.

 

"아니, 그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흐응~ 그래 인간의 아이. 뭐가 그리 궁금하지?"

"일단 그 호칭 좀 바꿔주겠어? 인간의 아이라니. 난 엄연히 한시유라는 이름이 있다고."

 

조금 기분이 나빠져서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내가 보기엔 인간은 다 똑같은데? 남자,여자,어른,아이 모두 다 내겐 인간일 뿐이라구."

"어쨌든 이름이 있으니 이름으로 불러 줘."

"흐음, 좋아 시유 뭐가 궁금한데?"

 

살짝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기지게를 켠다. 내 말 같은 건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마치, 넌 길바닥에 널린 돌멩이입니다.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만 꾸욱 참고..

 

"좀 전에 영감님은 왜 죽였어?"

 

그것부터 묻는다. 그렇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귀신. 그런 그녀가 낫을 휘두르자 차가 달려와 노인을 치어버렸다. 무슨 인과인지는 모른다. 그저 내가 보기엔 그녀가 낫을 휘둘렀기에 노인이 죽은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 지 않는다. 그런 내 물음에 그녀는 심드렁하게.

 

"별로, 죽인 거 아닌데."

"거짓말 마! 분명에 내 눈으로 봤다고 아까도 말 했잖아!"

"하아, 이래서 인간이란."

 

한숨을 한번 푹하고 쉰다. 뭐냐 대체 왜 저렇게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숨기려 하지 않는 지 점점 기분이 나빠진다.

 

"잘 들어, 그 영감님은 그게 천운이었어. 죽을 때가 돼서 죽은 거뿐이야. 나는 그래. 죽을 날이 된 사람 곁에 나타나 그 죽음을 지켜보는 게 일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내가 낫을 휘두르는 것은 [끝을 알리는 행위.] 그것을 집행이라고 하지."

"무슨 소리야... 죽을 날이 된 사람에게 나타나? 무슨 저승사자나 사신이라도 되냐?"

 

내가 이죽거리자 그녀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쉰다. 이번엔 길고 좀 더 무겁다.

 

"이래서 인간이란..."

"뭐야, 너도 그래 봐야 귀신이잖아?!"

"흐음, 다르지 달라. 난 그런 흔해 빠진 거랑은 다르거든?"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가며 비웃는다. 마치 이해 못 하는 학생을 두고 핀잔을 주듯이...

 

"그럼 넌 대체 뭐야? 귀신이 아니고 저승사자 같은 것도 아니면 대체..."

"흐음, 잘 들어 인간. 난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 이 세계 그 어디에도 존재하는 끝. 죽음이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밝게 빛난다. 특히나 붉은색 눈동자의 눈빛은 마치 피를 연상시켜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뭐... 뭐가 죽음이라는 거야?"

"흐음,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주지. 그러니까. 정령이라고 하자. 응, 이게 더 쉽겠네. 죽음의 정령. 알겠어?"

"모르겠어."

 

딱 잘라 그리 답한다. 무슨 소린 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만...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 날 구해 줬던 소녀가 마지막에 자신을 그리 소개했었다. 역시 이 여성은 그 때의 소녀 일까?

 

"흐음, 이래서 인간이란. 이해 범주를 넘으면 모르겠다.로 일관해버리고. 하여간 이러니까 불의의 사태 같은데 약한 거란 데 말이야.""뭐 좋아. 일단 네가 죽음의 정령이라고 치자. 그럼 그 때 날 왜 구해 준 거야?"

 

노인을 죽인 것은 그녀가 죽음의 정령. 에이, 저승사자 같은 거라고 치자. 그래서 죽인 게 아니라 죽을 때 된 사람을 인도하러 온 거였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어째서 그 때 날 살린 것일까? 왜 괴물을 죽인 걸까? 그러나 내 질문에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소린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널 본 적이 있다고?"

"10여 년 전에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괴물에게 쫓겨 죽을 뻔한 걸 네가 구해 줬잖아! 그 때도 네가 그리 말했다고. 자신은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눈치다. 왜인지 모르게 서운하고 억울한 기분이 든다.

 

"미안하지만 난 죽음 그 자체와 같거든? 아니 이렇게 설명하면 어렵고.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막 죽잖아? 10여년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어? 내게 사람 얼굴 같은 건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거랑 같거든. 하지만..."

 

잠시 말을 마치고 그녀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 짓는 것은 대화하며 몇 번 봤지만 이런 따뜻한 미소는 처음이다. 왜인 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용케 잘 자랐네. 축하해. 한시유."

"시... 시끄러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한걸음 더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며.

 

"그러니까 내 종이 되라. 빚진 게 있으면 갚아야지."

 

라며 씨익 웃는다. 좀 전까지 느껴지던 따뜻한 기분이 싸그리 날아간다. 뭐냐 갑자기 종이 되라니. 법치국가 대한민국에 노비 따윈 없다고!

 

"이..이봐 종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야."

"흐음, 뭐 이게 매번 귀찮단 말이지. 이런 설명하는 거. 인간은 이해 범주를 넘으면 모르겠다. 아니면 설명해라거든. 아아, 귀찮다."

 

그렇게 중얼 거리고는 나를 지나쳐 막다른 골목에 등을 기대고 서서 하품을 해댄다. 정말 무지 귀찮은 모양이다.

 

"뭐, 일단 네가 오해한 거부터 해명하건데. 아까도 말했듯 이 난 죽을 날 될 사람을 찾아가 죽음을 언도하는 게 일이라고."

"그 뒤는...? 여..염라대왕에게라도 데려가나?"

"뭐 사후세계는 너희들의 종교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르니까 그만 둘래 복잡해지니까. 어쨌든 그게 내 첫 번째 일이고..."

 

그리고는 나를 스윽 올려다보며.

 

"두 번째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 사람의 생명을 죽여서 으음...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그래, [혼]이라고 하자 그걸 강탈하는 놈들을 쳐 죽이는 게 또 다른 일이지."

 

...모르겠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죽을 때 아닌 생명을 죽여서 혼을 빼앗는다고? 그걸 가져가는 녀석을 죽인다고?

 

"뭐, 너도 어렸을 적에 왠 괴물에게 쫓겨 죽을 뻔 했다며? 아마 그 때 그 괴물에게 죽었으면 혼이 먹혔을 거야. 그게 그런 놈들의 힘이나 양분 같은 거거든. 그런 짓을 하는 괴물을 죽여버리는 게 내 두 번째 일이지."

 

완전히는 모르겠지만 얼추 감이 온다. 즉, 그거다. 인간을 죽이는 괴물을 죽인다는 것. 그렇다면 카르가 말한 그 귀신도 잡을 수 있는 건가?

 

"저기, 그럼 요즘에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밀어 죽이는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알아? 그 녀석도 네가 없애 주는 건가?"

"흐음, 아구구..."

 

갑자기 검지로 미간을 꾸욱꾸욱 누르며 고개를 흔든다. 뭐야 기세좋게 말해 놓고 정작 귀신 이야기를 꺼내자 귀찮은 모습을 보인다.

 

"뭐, 나도 그거 때문에 골치라고... 아직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10명 넘게 죽어버리는 바람에 명부가 엉망진창이 돼서 골치아파."

"그럼 네가 쓰러트리면 되는 거잖아! 그게 네 일이라며!"

"그럴 수 있음 진작에 잡아 죽였지. 그게 안돼니까 여기 있는 거라고."

 

늘어지게 한숨마저 쉰다. 그리고는 숨을 들이키고.

 

"잘 들어 시유. 이 세상에는 일반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르는 세계가 있어, 예를 들면 귀신의 존재. 그리고 또 예를 들어... 인간의 혼을 먹는 [악마]"

"악..마?"

"네가 어렸을 적에 만난 괴물이 어떤 녀석인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의 혼을 먹고 힘을 키우는 건 악마라고 지칭한다고 생각해 둬."

"혼을 먹고 힘을 키운다고? 뭐... 뭐야 그게 그럼 막 계약해서 소원을 들어주고 혼을 받아가고 막 그런 거야?"

"...그거랑은 조금 다르네."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무언가 생각하는 눈치다. 자신이 아는 것을 나에게 설명하기 쉽게 하려는 배려일까?

 

"길게 설명하면 복잡하니까 요점만 말할 게. 악마는 사람을 죽이고 혼을 빼앗아. 그리고 먹지. 요즘에 이 일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아마 악마의 짓일 거야."

"그럼 네가 잡으면."

"문제는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 지금은."

"에? 어째서?!"

 

어렸을 적에 만났던 그런 괴물 같은 것이 내가 사는 지역을 누비며 밤마다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것은 무섭다. 너무나도 무섭고 무서워서 밤에 길에 나가기도 두려운 사실. 그런데 눈앞의 그녀가 그런 괴물을 쓰러트리는 존재라면... 그렇다면 그녀에게 맡겨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어째서... 어째서? 그 때는 날 살려줬는데 지금은 왜?

 

"대체... 왜 안됀다는 거야?"

"잘 들어 시유. 나는 죽음의 정령이야. 죽음은 어떨 때 나타난다고 생각해?"

"죽음이 나타날 때?"

"사람이 죽게 되는 한 순간이야. 그게 끝나면 그곳에서 사라지지... 남는 건 인간의 감정들 뿐 나는 또 다른 사람의 생을 거두러 가지 않으면 안 돼."

"그럼... 지금 나랑 대화하는 넌 뭐야?"

 

당연한 의문, 죽음의 정령이라는 그녀가 사람의 생명을 거둔다면 쉬고 있을 시간 같은 건 존재 하지 않는다. 지금도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간다. 그런데 그녀가 여기 있다면 지금은 아무도 죽지 않게 되는 건가?

 

"좋은 질문이야. 칭찬해 주지. 일단 잘 들어. 난 죽음의 정령이라 언제나 단 한 순간만 그 장소에 나타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나를 자신의 주변에 얽어 묶을 수 있는 인간이 있지. 아주 아주 드물고 희소하지만 그런 인간이 태어나거든. 이름하여 [죽음의 동반자]랄까?"

 

기분 나쁜 이름이다. 죽음의 동반자라니 언제 어디서나 죽음을 몰고 다니는 건가?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한 경지인가?

 

"기분 나쁘네... 죽음의 동반자라니 불길하기도 하고..."

"그래?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나를 이 자리에 묶어 두는 건 한시유 너거든?"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그녀는 미소 짓는다. 장난기 섞인 놀리는 듯 한 또는 야유나 나의 무지를 탓하는 것 같은 미소.

 

"뭐... 뭣?!"

"그러니까, 난 일게 귀신이 아니라서 아무 영능력자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같은 인간에게 자주 보일 일도 없거든? 그런데 그런 나를 두 번이나 만난데다가 날 이 자리에 못 박아버리게 하는 건 죽음의 동반자로서 소질을 가진 너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무슨 소리인 지 잘 모르겠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녀의 말을 정리하면 그녀는 죽음이다. 죽음은 어디 한 장소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일어나는 현상에 가깝다. 그런 현상인 그녀를 내 곁에 둘 수 있는 것... 내 눈, 지금까지 귀신이 보이는 정도의 눈이라고 생각했는데 터무니없다.

 

"요약하자면 내가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죽음이 일어나는 장소에 있어야 해. 하지만 악마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가 순리에 맞지 않는 죽음이기에 내 영역이 아니라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고 악마를 죽일 수도 없어."

"그래서... 내게 뭘 바라는 거지?""네가 그 악마를 찾아, 나를 데리고. 그러면 내가 악마를 죽여 버릴 수 있지. 깨끗하게 제거해버리고 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도 일어나지 않아."

 

엄지손가락으로 목가를 휙-하고 그어 보이며 그녀는 미소 짓는다. 아아, 이 무슨 불길함인가. 어찌되었든 그녀가 죽음의 정령이라 한다면 그 죽음의 정령에게 쫓기는 입장이 된다고 상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녀의 행동에 일체 장난기 같은 것도 섞여있지 않겠지. 그녀는 악

마... 어렸을 적 나를 죽이려 했던 그런 괴물을 만난다면 그 때처럼 가차 없이 사지를 갈라 베어 죽일 것이다.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귓가에 맴돈다. 그녀를 데리고... 악마를 찾아라라고? 나보고 그런 괴물을 또 찾아가란 말인가?

 

"나보고... 사람을 죽이는 그런 악마를 찾아가란 말이야?"

"응, 그러면 내가 깨끗하게 죽여준다니까? 나쁜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웃기지마..."

 

조용하고 그러나 확실하게 나는 그렇게 내뱉는다. 웃기지마라. 내가 왜 이런 일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거지? 애초에 이 눈 따위. 귀신을 보는 아니 죽음을 본다고 했던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눈을 가진 게 무슨 잘 못이라고 죽을 지도 모르는 일에 끼어들라는 거야?

 

"흐음, 별로 개그 한 기억은 없는데. 이상한 인간이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해야 하지? 어렸을 적에 한번 본 걸로 충분하다고 그런 괴물은!"

"겁나냐?"

 

한 쪽 입꼬리만 치켜 올려 웃는다. 명백한 비웃음. 도발일까? 하지만 그래 솔직히 말해주마.

 

"겁나. 무섭다고! 그 때도 네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확실히 죽었다. 그런데 또 그런 일에 휘말리라고? 고작 이 눈 때문에?!"

"헤에, 자기가 겁나고 무서운 건 아는데 남이 어떻게 되던가는 상관없는 거네? 인간답군. 칭찬해 줄까?"

손뼉을 짝짝짝하고 치며 웃는다. 그것은 명백한 조롱. 비웃음. 냉소. 모멸... 하지만 괜찮다고. 이미 그런 것에는 익숙하니까.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이야기하든 상관없어. 난 다신 그런 괴물과 만나고 싶지 않아."

 

어렸을 적 기억에 각인 된 괴물의 기억이 꿈틀꿈틀 일어나는 것 같다. 도무지 생물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모습하며 심장에 혼까지 얼어붙게 하는 듯한 공포감이 들어온다. 무섭다. 그것이 죽음의 공포라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무섭다. 그런 것과 결코 얽히고 싶지 않다.

 

"흐응~ 뭐 곱게 말해서 안 들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는 등을 기대던 벽에서 몸을 때고 조용히 내게로 한걸음 내딛어 온다. 그녀의 오른손에 철그럭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키보다 큰 거대한 낫이 흔들린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넌 여기서 죽어라."

"뭐...뭐?!"

"죽으라고, 여기서. 아직 네 명줄은 더 남은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뭐. 나를 볼 수 있는 인간은 아주아주 위험해서 살려두면 어딘가 다른 놈에게 이용당하다가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할 지 모르니까."

 

그렇게 한걸음 더 다가온다. 조용히 나는 한걸음 물러난다. 괜찮다. 뒤는 대로다 이대로 뒤로 물러서면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 이 녀석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패닉을 일으키며 도망가 봤자 나만 이상한 놈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여기서 죽을 수는...

심장이 얼어붙는 다는 표현이 있다. 너무나도 끔찍한 공포에 심장마저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그리 표현할까? 하지만... 그런 표현은 글러 먹었다. 지금 내 심장은 그 어떤 때보다 강하게 뛰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아아, 왜 그녀를 따라 여기까지 왔을까? 그냥 모른 척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내 역할은 순리와 운명에 따라 죽음을 내리는 것. 그것을 방해 하는 자는 제거 대상이지. 지금은 어떨 지 몰라도 네가 살아 있음으로 오는 불안 보다 여기서 널 죽여 없애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 돼. 그러니까 얌전히 여기서 죽던가 내 종이 되라."

 

스윽...하고 어느 세인지 그 거대한 낫이 내 뒷덜미에 닿는다. 아아, 눈앞에는 죽음의 정령.. 그리고 더 이상 뒷걸음질 치면 낫에 목이 베어질지 모른다.

 

"자아, 어찌할 테냐 한시유? 여기서 죽을 테냐? 아니면 나의 종이 될 거냐?"

 

나직한 선언. 퇴로의 차단. 선택의 강요. 이대로 그녀에게 죽임당할 것인가...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를 찾아 갈 것인가의 선택인가... 어느 쪽도 싫다... 어느 쪽도 싫다고... 누가... 누군가 좀 살려줘...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문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눈앞의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심에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아아... 그런가 이게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건가...

 

"죽기 싫어."

"그럼 내 종이 되라. 그럼 적어도 쉽게는 죽지 않게 해주겠어."

"흐음, 언제부터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가 죽을 날도 안 된 사람의 목숨을 빼앗게 되었지? 협박치고는 정석이다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내 뒤... 골목길 입구에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붉은 머리카락... 그에 지지 않는 진홍빛의 눈동자. 검붉은 슈트차림의 미남자.

 

"카..카르?"

"이런 시간에 여자랑 데이트라니 너 답지 않은데 그래? 그런데 여자는 좀 가려가며 만나지? 이건 꽝이잖아?"

 

언제나처럼 가벼운 말투로 그렇게 말을 걸어온다. 이 녀석... 이 녀석도 죽음의 정령이 보이는 건가?

 

"넌 또 뭐야?"

"지나가던 이 녀석 친구."

 

내 옆에서서 엄지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웃는다. 저 죽음의 정령 앞에서서 너무나도 당당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무섭지도 않은 건가? 이런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정령이?

 

"꺼져, 너에겐 용무 없으니까."

"나도 네게는 용무 없어. 사람을 끝으로 인도했다면 얼른 사라져버리지 왜 여기에 남아서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할 일이 남아서 체류해야겠거든, 그러려면 이 인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방해 말고 꺼져."

 

미간을 좁혀 인상을 쓰며 험악하게 입을 연다. 화가 났다는 게 명백히 들어나는 표정과 목소리. 그냥도 무섭지만 화를 내니 더 무섭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죽음의 정령 앞에선 카르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어보인다.

 

"어차피 너, 시유를 죽일 수도 없잖아. 그게 룰 일텐데? 죽음의 정령은 명부에 따라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네 녀석... 일반인이 아니구나!"

"뭐, 그렇다고 해주지. 그러니까... 너야말로 얼른 네 갈 곳으로 사라져라."

"...내가 그러면 예 그렇습니까?라고 갈 줄 알았냐!!"

 

휘익하고 낫이 움직인다. 좁은 골목이기에 가로로 휘두르는 게 아닌 세로로 베어 긋듯이 움직이는 낫. 이대로면 카르는 반 토막 나고 만다. 안 돼!

 

"카르!!!"

"호들갑 떨지마."

 

놀라서 고개를 돌리며 카르를 불러 외친 후 나를 맞이한 광경에 깜짝 놀라버린다. 마치 사람이 하늘을 난다면 이만큼 놀랄까 싶다. 카르는 손가락으로 거대한 낫의 날을 잡고 서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크기만 봐도 정상이 아니다. 무게 역시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무게 같은 건 없다는 듯 그것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정말 무슨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기에 더욱 놀라고 만다.

 

"너... 정체가 뭐야?"

"이 녀석 친구라니까?"

 

죽음의 정령 역시 이를 으드득 갈며 카르를 노려본다. 상당히 의외인 모양이다. 분함과 화남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 아니면 원래 그런 걸 감추지 않는 성격이거나...

 

"헛소리하지마, 일반인이 내 낫을 어떻게 받아! 아무리 [계약]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죽음이다.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을 텐데!"

"너야말로 헛소리 하지마. 아직 죽을 날도 안 된 사람을 죽일 수도 없는 입장 일 텐데?"

"칫.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와서..."

 

죽음의 정령은 낫을 거두며 카르를 노려본다. 나라면 그대로 다리가 풀려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적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카르는 그것 역시 선선히 받아낸다.

낫에서 손을 놓자 그 거대한 이형병기는 마치 어둠에 녹듯이 안개처럼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양손이 비자 죽음의 정령이 양손바닥을 짝!하고 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꺼운 매우 두꺼운 낡은 양피지 책. 하드커버에 갈색으로 변색 되어있는 책에 제목조차 붙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을 열심히 뒤적거리다가 죽음의 정령은 희미하게 웃는다.

 

"헤에, 뭐야. 너 인간도 아니잖아?"

"그게 뭐 어쨌다고?"

 

엥? 인간이 아냐? 카르가 인간이 아니라고 이거야 말로 무슨 소리지? 인간이 아니면 뭐라는 거지?

 

"선선히 인정하는군. 옆에 인간 친구가 동요할 텐데?"

"괜찮아. 이대로 너랑 계약하게 두는 거 보단 나으니까."

"자기 땅은 자기가 지키시겠다?"

"알면 사라지시지."

"하, [이단심문국]에서 밀고 들어오면 너도 토벌 대상인데?"

"그전에 내가 정리해. 안 되면 혈족을 동원하던 [로얄]에 보고하던 내가 할 문제야. 여긴 내 땅이자 내 영지.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통치한다. 그러니까 이만 네 갈 길로 사라져라."

"어이없네. 그럼 자기 땅 단속이나 잘하지 어줍잖게 악마가 나타나서 내가 손을 쓰게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사라져라. 인간이나 네 놈들이나 똑같다니까!"

 

무슨 이야기인 지 하나도 모르겠다. 카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가 안돼는 판국에 땅이 어쩌고 토벌이 어쩌고 혈족이 어쩌고...

 

"궁금한 건 나중에 알려 줄게 시유. 일단..."

 

내가 카르를 지긋이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카르는 부드럽게 웃는다. 그리고는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도망가자."

"뭐?"

 

분명... 어두운 밤거리의 뒷골목에서 나는 죽음의 정령을 자처하는 여인과 카르를 만났다. 그리고 카르가 날 끌어안았고 도망가자고 한 것 까지 기억한다. 아니 그 다음 내가 뭐?하고 한마디 물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기억이 끊어 졌는 지...

 

"으아아아아아악!!!!"

"소리지르지마. 밑의 사람들이 눈치 챈다고."

 

하늘에 떠있다. 꿈꾸냐고? 아니, 진짜 말 그래도 문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다. 차도를 달리는 차들이 마치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처럼 작아 보인다. 인도를 왕래하는 사람들 역시 개미만큼 작아 보인다. 차가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춤을 춘다. 대체 얼마나 높이 날고 있는 걸까? 빌딩으로 치면 10층 이상은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날고 있는 거지...?"

"날아? 무슨 소리야. 우린 있잖아... 떨어지고 있다고..."

 

갑자기 사물이 작아진다. 점점... 점점 차들도 사람도 커진다. 지면도 커진다. 커져간다... 커진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떨어지는 건가?!

 

"으아아아아악!!"

"이 악물어! 혀 깨물지 말고!"

 

높은 빌딩의 옥상이 쿵!소리를 내며 카르가 발을 딛고 조금 늦게 나 역시 발이 닫는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지?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하다고? 아니 대체 카르 이 녀석 뭐 하는 녀석이지?

 

"다시 한번 뛴다."

"아니 잠시만 기다려!"

"머뭇거리면 죽음이 뒤 따라 온다고!"

 

휙~! 하고 귓가에 울리는 바람 소리. 반짝반짝 빛나는 네온사인 빛깔이 지상을 밤하늘 인양 물들인다. 그리고 십 수 미터 높이를 도약하는 카르. 이 녀석... 정말 인간이 아닌가? 아니... 인간이 아니겠지. 도움닫기도 봉도 없이 인간이 이렇게 높게 이렇게나 멀리 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차가운 밤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난다. 아니... 카르의 말이 정확하다. 하늘을 나는 게 아니다 뛰어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원래 내가 있던 장소에서 점점 멀어진다. 점점...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게 뛰기를 십수회 반복했을 때 도착한 곳은 넓은 정원이 있는 거대한 저택의 정원. 이곳에서도 얼른 벗어나지 않으면 누군가 나타났을 때 도둑 같은 것으로 몰려 낭패다. 얼른 다른 곳에 가야하는데...

 

"도착."

 

그 말과 함께 카르는 나를 놓아버린다. 그 덕에 흙바닥에 철푸덕하고 쓰러져버린다.

 

"야! 임마 최소한 말을 하고 놓아야할 거 아냐!"

"더러운 남자를 품에 안고 여기까지 와준 걸로나 감사하시지?"

 

그러더니 저택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어이 이봐. 집주인이 나오면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야! 주인이 나오면 어쩌려고?! 얼른 여기서 나가야지!"

"...뭔 헛소리야. 너도 여기 와봤잖아? 내 집이라고."

 

이제야 조금 기억이 난다. 밤이라 어두워 잘 몰랐지만 분명 서민의 주택 따위는 비웃는 듯한 악취미적은 크기의 저택은 카르의 집이다.

 

"뭐해? 안 들어 올 거야?"

 

거대한 문을 열며 카르가 말한다. 완전히 불 꺼진 저택이 마치 유령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카르가 연 현관문 안에 자리 잡은 어둠이 언제라도 나를 삼킬 것 같다. 아니... 진정해라 한시유. 모두 다 내 망상이다. 어둠은 사람을 삼키지 않는다. 여긴 유령집도 뭣 도 아니고 친구의 집이다. 괜찮다.

 

"그럼, 실례할 게."

 

그렇게 나는 그의 집에 한걸음 내딛는다...

 

-◇-

카르에게 안내 되어 응접실로 향한다. 단순한 응접실인데 내 방보다 훨씬 커서 살짝 주눅이 든다. 방 안에 장식 되어있는 도자기며 벽에 걸린 액자며 모두 잘은 모르겠지만 조화롭게 꾸며진 걸 보고 있노라면 고가로 보인다. 아쉽게도 이런 것을 보는 재주 따위는 없다.

혼자 응접실에 앉아 얼마 간 있자니 쟁반에 머그컵 두 잔을 들고 카르가 들어온다. 어느 새 갈아 입었는 지 편해 보이는 검은색 셔츠에 바지를 입은 모습이다. 선이 가늘어서인 지 호리호리한 몸매가 나타난다.

 

"마셔, 핫초코야 몸이 따뜻해 질 거야."

"...여기까지와서도 초코냐?"

"단맛이 좋거든."

 

호로록, 하고 머그컵을 기울여 핫초코를 마시는 카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평소와 다름없는 카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이 아님을 긍정한데다가 여기까지 올 때 보였던 말도 안돼는 도약과 착지 능력은 정상의 범주를 가볍게 초월해 있다. 뭐... 이미 악마가 있다고 들었고 죽음의 정령도 만난 판국에 더 놀랄 것도 없다.

호로록, 하고 나 역시 머그컵을 기울여 핫초코를 마신다. 단맛이 혀끝을 타고 전해져 온다. 따뜻해서 일까? 아니면 그 단맛 때문일까 왜 인지 차분해 진다.

 

"많이 놀랐겠군.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설마 네가 [죽음의 동반자]였다니 깜짝 놀랐지 뭐야?"

"죽음의... 동반자...?"

"뭐 이미 그 정령에게 들었겠지만. 그녀는 죽음이라는 이 세상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현상]같은 거야. 그런 현상인 그녀를 자기 주변에 얽어서 묶어 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를 부르는 게 죽음의 동반자."

"그래서 뭐가 좋다는 거야. 난 이런 능력 바란 적도 없고 일상생활에 쓸모도 없고. 차라리 손에서 불이라도 나오거나 몸에서 전기라도 뿜거나 눈에서 빔이라도 나가거나 하는 게 유용하겠어."

"흐음... 그래?"

 

내 농담을 듣고 카르는 진지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 거린다. 아니 농담이라고. 딱히 초능력 같은 능력이 있다고 해도 어따 써먹을 건데. 쫄쫄이 타이즈 입고 슈퍼히어로 같은 거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아무래도 지식이 없어서 그렇겠지. 죽음의 동반자는 말이지. 죽음이란 현상을 보고 얽을 수 있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죽음을 네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거거든."

"뭐...뭐?"

"말 그대로 말이야. 죽음을 얽어 묶는다는 건 사역한다. 기른다랑 통하는 부분이지. 길들일 수만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걸?"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 카르... 오늘 겪은 일만해도 복잡해 죽겠는데 누구든 죽일 수 있다니...

 

"뭐, 네게 그럴 마음은 없는 거 같아 다행이지만."

"당연하잖아. 내가 사람을 왜 죽이냐?"

"아아, 정말 다행이야. 만약 네게 그럴 마음이 있으면 나도 널 죽여야 할 지 모르니까."

 

한순간 말문이 막힌다. 카르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직시한다. 너무나 곧은 눈빛을 뿜는 한 쌍의 붉은 눈동자에 꽤 뚫릴 것 같다.

 

"뭐, 이런 이야기보다도..."

 

손에 쥐고 있던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카르는 살짝 미소지어 보인다.

 

"내게 묻고 싶은 게 많겠군."

"아아, 그래. 그 정령도 말했고 나도 좀 전까지 겪어 본 일로 느끼는 거지만... 너 정말 인간이 아니구나?"

"맞아, 인간은 아니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카르는 내 물음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너무나도 쉽게 인정하니 기운이 빠진다.

 

"그럼... 넌 뭐지?"

"놀랄 텐데?"

"...놀라겠지. 아니 오늘 겪은 일만으로도 놀랄 노자인데."

"후회하지 않겠어? 지금 내 정체를 알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고."

"괜찮아. 어차피 악마에 죽음의 정령이란 것도 봤는데. 마법사나 뭐 그런 거라도 안 놀라겠다."

 

마법사... 그럴 듯 한데? 마법사라면 그렇게 뛰어다녀도 마법이라고 해버리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뭐 지금 같은 과학시대에 웃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흐음, 마법사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까도 말했 듯이 난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다...?"

"응,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입을 다문다. 침묵의 무겁게 응접실 안에 내려앉을 즈음 카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난, 흡혈귀다."

"........"

 

아, 이거 웃어야하나. 흡혈귀라니... 뭐 그래 악마나 죽음의 정령 같은 거도 있다는데 흡혈귀라고 없을라고.

 

"이야 대단한데 카르. 박수 쳐줄까?"

"진지하게 들어, 나 진짜 흡혈귀 맞다니까."

"그래, 막 사람의 피를 마시고 그러는 그거지? 머리카락도 눈동자고 붉다고 해서 그런 농담하는 거 아냐. 그럼 뭐야 네 집은 흡혈귀성이냐?"

".....후우, 이래서 인간이란."

 

카르는 작게 한숨을 쉰다. 좀 전까지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말을 중얼 거린다. 미묘한 데자뷰다.

 

"잘 들어, 난 흡혈귀야. 너보다 한 200년 가까이 더 살았고. 이 저택을 기점으로 이 일대를 영토로 삼은 영주급 흡혈귀다."

"........"

 

점점 가관이다. 이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녀석 잡아다가 정신병원에라도 보내야하나. 하지만 친구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니아니 잠시 잠시만 진정하자 진정진정...

 

"아니...저기, 뭐냐 농담이라고 생각지 않으려는데 왜 자꾸 농담 같냐?"

"네 목덜미라도 물어뜯고 피라도 마셔야 인정할래?"

".........."

 

침묵이 다시 응접실에 내려앉는다. 카르의 말에 일절 농담기도 묻어 있지 않다. 이 녀석 진심이다.

 

"미안, 이해가 잘 안돼서."

"뭐, 별로 이해까지 바라지 않지만."

"그런데 내가 널 흡혈귀라고 소문내면 어쩌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내려면 내도 상관없어. 그 때는 피를 전부다 빨아 마시고 이 저택 부지 어딘가에 묻어버리면 되는 거거든. 거기다 이런 소리 믿을 사람도 없잖아?"

"...협박 소름돋네..."

 

어디까지 진심인 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신 할 수 있다. 내가 카르를 흡혈귀라고 떠들어 본들 언덕 위의 하얀집. 그러니까 정신과 병원엔 끌려가는 건 카르가 아니라 나다.

 

"어쨌든. 그래 네가 흡혈귀라고 치고 다음 질문인데. 죽음의 정령이란 거 대체 뭐야?"

"흐음, 그건가... 그건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죽음의 정령이야. 그런데 여자 모습일 줄은 몰랐는데. 난 좀 더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나를 쫙하고 노려본다. 뭐... 뭐야 왜 날 그리 쳐다보는 거야?

 

"왜... 왜?"

"죽음이란 성별도 나이도 다 무의미하고 개성도 없는 현상이야. 그런 죽음의 정령이 여자애 모습이라는 건 그녀를 볼 수 있는 능력자. 즉 네 영향을 받은 거지. 변태네? 죽음의 정령을 그럼 미소녀로 상상하다니."

"트...틀려 임마!!"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치지만 카르는 여전히 눈을 반쯤 뜬 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모르겠군. 죽음의 정령의 모습은 네가 상상하거나 어쨌든 무의식 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반영 될 텐데. 그런 미소녀라는 건 평소에 뭘 생각 하는 거야 네 녀석.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아니 그러니까 난 아무것도 생각 안했고 무의식이니 어쩌니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눈에 보인 모습 그대로인데!"

"아윽, 소름돋아. 뭐 다른 대상을 그렇게 여성화 한다면 이해하겠어. 그런데 상대는 죽음의 정령인데 그걸... 우와. 진짜 변태다. 사신의 이미지를 미소녀화 했네?"

"그런 적 없다니까.. 하아..."

 

이 녀석에게 말려들지 말자 이런 식으로 페이스를 말려 들어버리면 정작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어이 카르."

"왜 변태."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알려준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 있다는 거... 그거 설마 [악마]냐?"

 

내 질문에 카르는 조용히 머그컵을 기울여 핫초코를 마신다. 그리고는...

 

"악마인 지 원귀인 지 뭔지는 몰라. 그런데 사람을 상하게 하는 혼령의 종류를 싸그리 묶어서 [악마]라고 부른다는 건 알지. 악마란 여러 가지야. 태초부터 기록 되어있는 성서나 전승에 나오는 것이 [악마], 인간의 공포, 두려움, 상념들이 형태를 이룬 것을 [괴물] 그리고 살아생전 원한으로 인간을 죽이는 [원귀] 편의상 싸잡아 [악마]라고 하지. 공통점도 있어. 인간을 죽이면 강해져."

"강해...진다는 건?"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의 말이야 강해져. 생명력이 끈질겨 지고 능력이 향상 되지."

"하하... 그거 참..."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진즉에 인류는 멸망했을 지도 모른다. 당장 지금 이 도시에 돌아다니는 악마하나에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그런 악마가 여럿이 계속 활동한다면 그 역시도 속수무책으로 인류는 살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있는데 잘도 인류가 번성했군."

"뭐, 그건 그런 악마를 사냥하는 사람이 있거든."

"악마를 사냥한다고?""그래, 뭐 일단 악마를 사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있으면 불편하니까. 일단 내 입장에서부터 말해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숨을 들이키고 카르는 입을 열었다.

 

"난 이 일대를 영지로 삼는 흡혈귀야. 그런데 악마가 나타나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지. 그러면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집에서 나오지 않아. 피를 마시기 힘들어져."

"...잠시만.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는데..."

 

그렇다. 이건 물어둬야 할 지 모른다. 그는 흡혈귀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의 피를 마신다. 그로 인해... 사람을 죽인다.

 

"너... 사람을 죽여 본 적 있...어?""아니, 사람을 왜 죽여?""피를 마시잖아. 빨아 먹으면 죽는 게..."

"우리도 위장개념은 있거든? 사람 몸에 피가 양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거야? 거기다 피를 마시는 건 주식으로 먹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라고 설명해 줄게. 사람 한명을 전부다 빨아서 먹을 필요는 없단 말이야. 주기적으로 일정양만 먹으면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그래서 나처럼 사람들과 섞여 사는 흡혈귀들도 꽤 된다고."

 

뭔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사실은 흡혈귀라서 밤마다 사람에게서 피를 빨아 마신다던가 하는 건가 그건 정말 무서울 수밖에 없다.

 

"흐음, 그 뭐냐, 소설 보면 인간을 식량이라고 생각하는 흡혈귀도 있고 그런다던데."

"뭐 늙고 나이 많은 흡혈귀 중엔 그런 녀석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 혈족들은 안 그래."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믿어 줄 수밖에 없다. 그는 친구이고 오늘도 나를 구해 주었다.

 

"어쨌든 이야기를 돌리자면, 흡혈귀는 자기의 영역이 소란하면 좋을 게 없거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적]을 끌어 들일 수도 있고."

"적?"

"그래, 적. 뭐랄까. 옛날 옛적부터 인류의 수호자를 자칭하는 돌아이집단이 여럿 있어서. 악마가 창궐하면 그걸 죽이기 위해 나타나기도 하거든, 그런데 문제는 그 놈들에게 있어서는 나 같은 흡혈귀도 배제 대상이라 일단 나타나면 싸우던지 도망가던지 둘 중하나거든."

"싸운다면..."

"죽이기 위한 싸움이야. 그 때가 되면 나라도 상대를 죽여야 할 지 모르지."

 

조금 상념에 빠진 듯 그늘 진 얼굴로 그렇게 말해 오는 카르를 보고 있자니 왠지 조금 안 타깝다. 그는 인간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아마 인간도 죽이리라. 그럼에도 같이 알고 지낸 1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까 안타깝다.

 

"자자, 뭐 적은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걱정해 봤자고, 일단 나는 이 일대를 내 영역으로 삼은 흡혈귀야. 내 땅에서 내 허락도 없이 누군가 악마를 끌어 들였거나 여기에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단 말이지."

"헤에, 인간을 보호해 주는 거잖아 그건."

"흐음, 뭐 그렇게 될 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귀찮게 내 땅에 적이 들어오는 거야. 그 중에 가장 꼴도 보기 싫은 집단이 [이단심문국]이라고 있지."

"뭔데 그건?"

"뭐, 성직자 집단이라고 할까? 카톨릭에 해당하는 바티칸교황국에서 떨어져 나온 놈들인데. 광신도 집단이랄까. [신의 적은 최후의 하나까지 멸하라.]라는 게 슬로건인 모양이더군. 일단 인간이 아니면, 인간이라도 마법이라던가 악마랑 계약했다던가 하여간 그런 인간을 보면 모조리 죽여 버리는 놈들이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놈들하고는 섞이고 싶지 않아."

머엉- 지금 내 기분을 말로 설명하라면 이것뿐이다. 아니 이건 또 대체 무슨 소리야. 바티칸? 그 로마 쪽에 있는 그 바티칸? 교황님이 있는 그 바티칸?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이 있다고? 무슨 엑소시스트도 아니고 그런 게 진짜 있나?

"막 성수 가지고 다니고 십자가로 사람 때리고 기도하고 막 그런 놈들?"

"그럼 귀엽지. 요즘은 현대병기도 손에 넣어서 악마를 숭배하는 사교집단에게는 로켓런쳐도 쏟아 붓는다고."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너도 이해가 안 돼지? 나도 이해가 안 돼. 왜 그러고 살지?"

 

내가 이해가 안 돼는 건 그런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무슨 테러집단도 아니고 현대 병기로 무장하고 일반인을 죽인다니. 대체 무슨...

 

"어쨌든 그런 놈들이 나타나기 전에 내 선에서 얼른 악마를 잡아야 하거든. 그래서 오늘도 네게 일러 뒀지 조심하라고 당부할 겸 그리고..."

 

잠시 말을 삼키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미끼겸."

"엥?"

"미끼, 악마는 인간의 혼을 힘으로 삼는데 영적 능력이 높은 인간은 더더욱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거든 그래서 영적 능력이 있는 인간을 찾으면 먼저 죽이려고 하지."

"헤에, 그렇구나."

"응, 그래서 널 도시에 풀어 두면 분명 나타날 지도 모르니까 뒤에서 슬쩍 미행을 했는데 왠 죽음의 정령과 조우해서 나한테서 채가려고 하는 거야."

"헤에, 그러네 그건 큰일이었겠다. 카르."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까 그 전에 내가 데리고 도망친거지."

"...아하하, 뭐야 날 도와준 게 그런 사정이 있었어? 조금 감동했었는데. 아하하, 야 이 자식아!!!"

나도 모르게 탁자에 올라가 카르의 멱살을 틀어쥔다. 울컥하고 화가나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버렸다.

"미끼? 진심으로 한 말이냐."

"네가 미끼라고 했지만 네가 걱정 되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계속 네 뒤를 따라갔어, 카페에서 해어진 후로. 넌 모르겠지만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야. 그런 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그러다가 악마가 나타나면 제거하게 되면 더 좋은 거고."

"...날 걱정한 거냐?"

"벼, 별로 걱정까지는 아니지만 원래 네가 좀 칠칠치 못 하니까 조금 마음 쓴 거야."

 

조용히 멱살을 잡았던 것을 놓고 탁자에서 내려와 앉는다. 뭔가 되게 미안한 일을 한 거 같다. 카르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난 그냥 돌아다니다가 심야에 악마와 만나면 꼼짝없이 죽는다. 그런 나를 걱정해서 카르는 미행해 주었다. 내 근처에 악마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르의 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짐에도 나를 걱정해 내 옆에 붙은 것이다.

 

"흐음, 그럼 내게 바라는 건 그거겠네? 심야에 횡단보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

"아니, 그렇게 위험해 노출 시킬 생각은 없어. 가능한 돌아다니지마. 네가 집에 돌아가면 나도 다른 곳을 둘러보며 악마를 찾아볼 생각이었거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답한다. 평소에 아니꼬운 녀석이라고 생각 했는데 이럴 때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흡혈귀 던 어떻던 심성이 고운 친구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다시 죽음의 정령과 마주쳐도 그냥 도망쳐버려, 괜히 위험한 일에 끼어들려 하지말고,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뭔가 방법이 있어?"

"지금은 없어."

 

이번에도 딱 잘라 그리 말한다. 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아무런 방법도 없다면서 자기가 해결하겠다니....

 

"어이, 아무리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무턱대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곤란한데.."

 

"으음, 악마가 나돌아다니는 건 알지만. 그걸 추적할 방법은 없거든. 뭐 이게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짜지."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가... 하긴 나도 오늘까지 그런 건 생각지도 못 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는 눈치 채고 있었을 텐데...?

 

"흐음, 정말 악마의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야?""뭐, 조금은 그리 생각했지만 확신은 아니었는데 오늘로 확실해 져버렸네. 귀찮게 됐지."

 

정말 귀찮다는 듯이 깊게 한숨을 쉰다. 후우, 귀찮은 건가... 나는 오늘 하루에 일 년은 늙은 기분이다. 대체가 말이지 내가 죽음의 동반자라는 둥 악마라는 둥 뭣보다. 눈 앞에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1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가 흡혈귀라는 것도 모두 놀라운 사실이다.

카르가 흡혈귀라는 건 좀 더 이야기 해보고 싶지만. 더 이상 파고들면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것 같으니 일단 그만 두도록 하자.

 

"어쨌든 밤이 늦었으니 너 자고 가라."

"에?"

"말 그대로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이미 심야라 악마가 활동할 시간인데 너 혼자 돌아다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아니, 그래도 어린애도 아니고 집에도 혼자 못 갈 정도는 아닌데?"

"악마에게 나이는 의미 없어. 일단 찍히면 일반인은 죽는 거라고. 자연제해 비슷한 거니까 정말 운 없으면 죽는 거니 위험을 자처하려하지 마."

 

머그컵을 크게 기울여 마지막 남은 핫초코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카르는 그렇게 말 해온다. 운이 없으면 죽는다.인가... 하긴 악마랑 만나고 안 만나고는 순전히 운의 문제다. 그것에 어떤 의지가 개입되고 아니고도 아니니까.

단지 집에 가는 길에 운이 없다는 이유로 죽는다라... 무지 억울하겠지. 아니 억울할 수밖에.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도 밖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한기가 들며 무서워졌다. 장난치고 할 때가 아닌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런 것이다.

어린애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아무것도 상관없이. 심야에 횡단보도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죽는 그런 일이다.

 

"...기분 나쁘네."

"뭐? 왜? 우리집 침대는 내가 이렇게 말하기 그렇지만 고급이고 대우도 잘 해줄 텐데 자고 가라는 게 어때서?"

"아니, 그런 뜻이 아냐. 그냥 좀 부조리하다 싶어져서."

"부조리?"

"그래, 부조리. 자연제해 같은 거라고 해도 운의 문제라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게 단순히 운의 문제로 치부하는 게 좀 그래서 그래. 미안, 좀 지치네. 오늘은 신세질게."

"잘 생각했어, 뭐 흡혈귀 저택이라고 겁낼 거 없어. 별로 남자 혈액은 맛이 없으니까 안 빨거든."

"...상기시키지 마라."

 

나는 그렇게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여기는 흡혈귀 저택이지. 응접실을 나가면 막 좀비라도 돌아다니진 않겠지 설마.

 

-◇-

어두운 천장을 눈에 세긴 체로 머엉하니 누워있다. 몸이 왠지 무겁다, 푸근하고 푹신푹신한 침대에 파묻히듯이 누워서 커튼사이로 들추는 달 빛을 응시한다.

카르가 내준 2층의 방. 어디의 호텔에 비해도 결코 부족함 없을 것 같은 넓은 방에 적당히 자리 잡은 가구들과 커다란 침대. 방에 딸린 욕실에서 적당히 씻고 카르에게 빌린 파자마를 입고 침대에 누워서 계속 이렇게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뭔가 지치는 하루다.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력을 깎아 먹었다고 할까? 1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는 자기를 흡혈귀라고 하지. 도시에는 악마가 돌아다닌다고 하지. 놀래도 너무 많이 놀랍다.

그런 거 치고는 어째 무덤덤한지도 모르겠다. 순응력이 이렇게 좋았나, 나? 아니면 단지 사고가 지금 상황에 따라가지 못 하는 걸까.

눈을 감고 잠을 자려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운데, 정신만은 날카롭게 다듬은 칼처럼 예리하다. 묘한 상황이다.

침대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찾아 전원을 켜보니 시각은 11시 42분. 조금만 있으면 이제 날짜도 바뀐다.

이대로 잠들면 새로운 내일이 오고 악마가 도사리는 밤은 지난다. 뭔가 가슴 한 켠에 욱신하고 시려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무겁다, 무언가 무거운 돌이라도 얹어 놓은 것 같아서 몸을 웅크리고 이를 악문다.

아아, 밖에서는 누군가가 악마에게. 내가 어렸을 적 만났던 그런 괴물 같은 것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을 지 모르는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이렇게 태평하게 누워서 자신만의 안전을 찾아도 옳은 걸까?

옳다. 타인을 위해서 왜 내가 위험을 감수해야하지? 남들과 다른 눈을 가져서? 어렸을 적 괴물과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런다고 사람의 목숨이 두 개가 되지도 세 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갑자기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은 그저 이렇게 웅크리고 밤이 지나길 바라며 벌벌 떨면 되는거다. 괜찮다 한시유. 그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않아. 비난 할 수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남들이 널 탓하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한시유.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 보지만 가슴 속의 욱신거림이 무언가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겁다. 계속 무겁게 나 자신을 짓누른다.

["헤에, 자기가 겁나고 무서운 건 아는데 남이 어떻게 되던가는 상관없는 거네? 인간답군. 칭찬해 줄까?"]

죽음의 정령이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기가 겁나고 무서운 건 아닌데 남이 어떻게 되던가 상관이 없냐고...

부조리하다곤 생각한다. 옳지 않은 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게 잖아? 내 목숨이 몇 개나 돼? 그런 괴물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어? 내가 무슨 힘이 있냐고. 죽음의 정령이 보인다고 그게 뭐 어쨌는데? 그것만으로 위험에 발을 밀어 넣으라는 거야? 싫단 말이야 그런 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고 겁에 떤다. 이 밤에 거리를 배회하는 악마를 두려워하며, 그저 카르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으면 디는 거다. 나는 그러면 되는 거다.

눈을 꼬옥하고 감는다. 일순간 찾아 온 어둠. 괜찮다. 나는 괜찮아. 악마가 이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해치거나 하지 않아. 죽음의 정령도 여긴 없어. 아무도 내게 위해를 가하지 못 해. 그러니까 괜찮아. 어떻게든 눈을 질끈 감는다, 마치 세상을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노력하듯이...

 

"시유 자?"

 

갑자기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분명 카르다.그 목소리에 놀라 온몸이 긴장한다. 손바닥이 끈적거려서 보니 땀이 흥건하다. 뭐야 이거. 설마 공포에 떨기라도 했다는 거야 나? 내가 그랬단 거야?

 

"흐음, 자나보네. 일단 나 다시 밤거리로 나갈 거야. 절대로 나오면 안 돼. 여기는 안전하니까. 잘 자고 아침에 보자."

 

대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그렇게 카르는 말을 마친다. 문너머로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바보 같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 거리고 바보 같다. 다 큰 어른이 이불 속에서 벌벌벌 떨고 있다니, 한심하고 허탈해서 웃음이 나온다.

 

"바보 같은..."

 

정말이지, 나는 바보 같다. 너무나도 바보 같다. 이렇게, 이 밤을 넘긴다고 해서 이렇게 공포에 쫓기지 않을 리 없다. 다시 다음날 밤이 지나도 악마가 밤거리를 활보한다면 이렇게 계속 공포에 떨어야한다. 그건 싫다. 살아도 산 게 아냐...

지긋이 둘러 본 방안에 그득하게 차버린 어둠을 눈으로 훑어보며 양팔을 끌어안는다. 그 어둠이 마치 어렸을 적 나를 위협했던 괴물 같아서... 그것이 무서워서... 그리고 달빛에 눈을 돌린다. 그 어둠을 가르는 푸르른 달빛에...

 

-◇-

"바보 같다 정말..."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그렇게 중얼 거린다. 넓고 긴 복도에 울리는 것은 내 발소리 뿐. 넓은 저택에 오로지 나 뿐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카르의 가족은 외국에 있다는 말만 들었고 이 저택에 카르 말고 다른 사람을 본 일은 없다.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런 거보다...

 

"얌전히 이불을 둘둘말고 덜덜덜 떨기만하면 되는데 나도 정말 바보 같군."

 

그렇다, 바보 같은 것이다. 스스로 악마가 도사리는 도시로 나가려고 하고 있다. 왜냐고? 나는... 죽음의 정령을 찾을 것이다. 세계에 죽음은 넘친다. 누구든 상관없이 사람이 죽을 때 그 근처에 내가 있다면 그녀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죽음의 정령...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 그녀를 찾자. 그녀를 찾아 그녀의 종이 되는 거다. 그러면 이 거리를 누비는 악마를 없앨 수 있다. 더 이상 공포에 떠는 밤을 지내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 액정에 푸른빛으로 떠오른 시각은 1시 12분... 이미 자정을 넘긴 심야. 내일 강의는 빠져도 상관없다. 그녀를 찾아서 악마를 없애는 거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이 길고 긴 밤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문을 열고 저택 정원을 걸으며 그렇게 다짐했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쳐도 내 안의 괴물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를 어렸을 적 죽이려 했던 그 괴물의 공포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끊기 위해서라도, 이 도시에서 활개치는 악마를 없애야한다.

 

"가자."

 

스스로를 응원하듯, 스스로를 다독이듯.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카르의 집을 나섰다.

------------------------------------------------------------------------------------------------------------------------------------------------------------------------------

어째 상당히 무덤덤덤한 주인공.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8 나락 ImImImch 2022.11.14 25
1307 산다이바나시-주인, 노예, 사랑 [1] 라온 2016.02.29 862
1306 천로역정 컨셉 #금비은비 [1] 비렌 2014.04.15 885
1305 산다이바나시-겨드랑이, 에로망가, 질내사정 [1] 라온 2012.10.28 5554
1304 흔해빠진 세계관 만화 팬픽 라온 2012.10.28 1915
1303 [멀티노벨「하트헌터」] 5일-1일째(1) 라온 2012.03.16 1380
1302 천로역정 if... - 하늘비 bad end [1] 카와이 루나링 2012.03.13 1689
1301 멀티노블[하트헌터]5일-서장 라온 2012.03.01 1590
1300 사랑은 픽션이다 악마성루갈백작 2011.05.15 1801
1299 "세상에 그 어떤 상황에서 화 안 낼 여자 없어." 악마성루갈백작 2011.05.02 1473
1298 [H.C SS]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3] 心吾 2011.03.24 2478
1297 당신에게 보내는 유서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8 1198
1296 [HC SS] 그렇게 검을 거머쥔다. [4] 사이네 2011.03.13 1224
1295 HC S.S 기억의 단편 [1] 니츠 2011.03.13 1121
1294 기묘한 이야기-Repetition(반복) 번외편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2 1222
1293 [HC SS] 그녀만의 사정 [2] 낙일군 2011.03.11 3150
1292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건 언니야 [2] 악마성루갈백작 2011.03.04 1445
» 환세동맹-사신의장2막 [3] 사이네 2011.02.28 1083
1290 환세동맹-사신의장1막 막간. [3] 사이네 2011.02.28 1205
1289 귀로(歸路)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2.28 132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