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단편 나락

2022.11.14 21:53

ImImImch 조회 수:25

평범하다.
아니 평범했었다.
좁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나는 떡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7년간 손에 꼽을 정도로 나가보지 못한 나만의 감옥.
이곳에 스스로를 가둔지 벌써7년...
이곳도 언제인가 평범했었다.
내 겉모습과 속모습, 내 인생까지 지극히 평범했었다.

나를 나락으로 데려온게 무엇인가.
나쁜 머리? 술? 도박? 아마...모두 맞다.

꾸르르륵

배가 고프다.
방에서 나가지 않고 노트북만 두들긴지 5일.
배가 고파서 어질어질하다.
굶어서 죽겠다는 굳은 의지는 고작 5일 만에 깨져버렸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해 또다시 죽고싶었으나 죽는다죽는다
해봤자 자살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지는 오래.

현실을 자각하고 5일만에 집을 나서려고 방밖으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먹는다.
대충 배가 찼으나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린다.
그중에서...우연히 수이고등학교 교복을 보았다.
수이고등학교. 내가 자퇴한 곳.

집에 돌아오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여기저기 찐 지방. 떡지고 비듬투성이인 머리와 7년째
면도도 안한 수염. 샤워도 안해서 대놓고 보이는 때들.

7년전엔 달랐다.외모뿐만 아닌 내 처지까지.

수이고등학교 학생을 보았던게 떠올라 서랍을 뒤진다.
몇년이 지난 명찰. 그곳엔 이런 석자가 적혀있었다.
이은혁
학창시절 친구들과 축구하던 나를 회상해보지만... 곧 거울로 보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눈물은 나지 않는다. 운다는건 울 기력이 남아있다는 뜻이니까. 눈물은 메마른지 오래.

그리고 이제...

쾅쾅쾅

올것이 왔다.

"은혁이~ 신체포기각서 써야제?"
"행님 없는가 본디요?"
"마 니 빙시니가? 딱보면 안데이. 이눔 여기 이따 아이가.
마 은혁아 셋 센다잉~ 하나! 둘! ㅅ..."

끼익
문이 열리고 놈들의 면상이 보인다.

보이는 바와 같이 나는 나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이곳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또 1년후
장기 곳곳이 떼인 나는 빚을 다갚고 죽지못해 살고 있다.

나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아 더러워~"
"불쌍해..."
"야 저 쪽으로 가자"
"괜찮으세요?"

걱정과 즉은한 시선.
그리고
경멸과 무시.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어.
나라고 벌레처럼 살고 싶겠어?
죽을래.
죽고 말거야.
무서워.
싫어.
아파.
올라가고 싶어.
죽고싶어.
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죽기 싫어.
아프고 무서워서...못 죽는다고....
그렇지만 나는 안다.
나는 죽어야 된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
"아씨 거지 새끼 이동네에서 몇년이나 쳐돌아다니는 거야...
빨리 자살하고 갈것이지"
죽음.
그것이 두려워 8년을 버텼다.
이제 내 인생을 놓아줄때.

그래...자살하자...

......

하다못해.

의미있게.

의미있는 것을 하나라도 하고 싶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고 내인생이 나락에서 벗어나는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한번이라도 의미있게 살다 가고 싶다.

의미있는 죽음을 맞고 싶다.

길거리를 걷던 내눈에 도로로 달려가는 꼬마가 보인다.

그리고.

빠아앙!

아이를 향하는 트럭.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죽을거라면 의미 있게.

조금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달린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채 도로로 굴러간 공을 향해 뛰었고,

트럭이 충돌하기 직전.

누군가 아이를 밀친다. 그리고--

쾅!

"꺄아악!"
"뭐야!교통사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던 나는 생각한다.

의미있었을까?

한명의 생명을 구했다.

나는 여전히 버러지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희열을 느꼈다.

몸은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지만.

편했다.

누군가 개죽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나같은 놈이 사람을 살렸다.

그거에 대해 너무 기뻤다.

그리고 또한 생각했다.

그때 도박에 손 대지 않았더라면?

...

이 나락에 굴러떨어지지 않았을까.

어차피 쓸데없는 생각이다.

굶주리고 굶주렸던 나는 마지막으로-

8년전 평범하던 나를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나락 ImImImch 2022.11.14 25
1307 산다이바나시-주인, 노예, 사랑 [1] 라온 2016.02.29 862
1306 천로역정 컨셉 #금비은비 [1] 비렌 2014.04.15 885
1305 산다이바나시-겨드랑이, 에로망가, 질내사정 [1] 라온 2012.10.28 5554
1304 흔해빠진 세계관 만화 팬픽 라온 2012.10.28 1915
1303 [멀티노벨「하트헌터」] 5일-1일째(1) 라온 2012.03.16 1380
1302 천로역정 if... - 하늘비 bad end [1] 카와이 루나링 2012.03.13 1689
1301 멀티노블[하트헌터]5일-서장 라온 2012.03.01 1590
1300 사랑은 픽션이다 악마성루갈백작 2011.05.15 1801
1299 "세상에 그 어떤 상황에서 화 안 낼 여자 없어." 악마성루갈백작 2011.05.02 1473
1298 [H.C SS]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3] 心吾 2011.03.24 2478
1297 당신에게 보내는 유서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8 1198
1296 [HC SS] 그렇게 검을 거머쥔다. [4] 사이네 2011.03.13 1224
1295 HC S.S 기억의 단편 [1] 니츠 2011.03.13 1121
1294 기묘한 이야기-Repetition(반복) 번외편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2 1222
1293 [HC SS] 그녀만의 사정 [2] 낙일군 2011.03.11 3150
1292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건 언니야 [2] 악마성루갈백작 2011.03.04 1445
1291 환세동맹-사신의장2막 [3] 사이네 2011.02.28 1083
1290 환세동맹-사신의장1막 막간. [3] 사이네 2011.02.28 1205
1289 귀로(歸路)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2.28 132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