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단편 [HC SS] 그렇게 검을 거머쥔다.

2011.03.13 17:00

사이네 조회 수:1224

귀찮은 건 싫다. 그녀가 죽은 후로는 언제나 그랬다. 귀찮은 건 싫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괴롭고... 경우에 따라서 마음도 아프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다. 귀찮은 사정도 많지만 어쨌든 귀찮은 게 싫었다. 오로지 그 귀찮음을 마다할 수 있을 때는 오로지 한 때... 마물을 베어 죽일 때...

그 때만큼은 그 어떤 귀찮음도 만회할 수 있었다. 적을 베어서 죽인다. 그것은 사랑하던 유키에 대한 추모, 그리고 그녀의 목적이던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계승. 그를 위해서 성별이 바뀌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붉은 도신을 자랑하는 검을 거머 쥔 체 마물을 베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물을 베고 죽이고, 가르고 잘라내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언제나 허무. 허무하다. 나른하다. 귀찮다. 이렇게 마물을 베어도 그 어떤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로 유키에에 대한 공양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법소녀로써 마물을 벨 때에만 나는 지독한 권태에서 벗어 날 수 있다.

 

"하지만..."

 

혼자 활동하던 내게 내려진 합동임무, 거기서 알게 된 다른 네 명의 마법소녀. 그 들은 유키에처럼 마물과 싸우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밝고 티 없으며 무구하기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녀들이지만 그녀들도 유키에와 다를 것이 없었다. 여차하면... 더럽혀지게 되는...

 

"한심해..."

 

나는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방안에서 유키에의 유품인 작야일심도를 끌러 안은 체 그렇게 중얼 거렸다. 어두운 방안 이것만 붉은 도신만은 은은한 붉은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피라도 원하는 것인 지, 복수를 바라는 것 인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유키에가 죽은 그 이후 나는 이 도와 떨어져 본 일이 없다.

상념을 잊기 위해 고개를 저어 보지만 떨어져 나갈리 없는 것들이 머릿속을 매운다. 소녀들의 비명, 원치 않은 관계에서 온 절망과 비통함.

그동안 내가 한 것은 무력하게 다른 소녀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멍청함과 무력함.

말없이 작야일심도를 들어 어둠이 자리 잡은 방 한켠을 향해 겨누어 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원수라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귀찮은 건 싫었는데."

 

마냥 그렇게 귀찮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가슴 가득히 차오른다. 그것은 소녀들을 더럽히는 마물에 대한 분노. 그렇게 더럽혀져 죽음을 스스로 택한 유키에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체 관망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자신에 대한 증오.

 

"이번만은... 이번 만큼은 누군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단 한번 만났던 소녀들이다. 그저 그 뿐일 수도 있다. 이제 팀 따위 이루지 않고 전처럼 혼자 해나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이 마물에 더럽혀져 치욕을 당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더러운 인간이다.

몸이 더렵혀지지 않았을 지 모르나 마음만은 이 방만큼이 다 어둡고 더럽고 추잡하고 무겁다. 이것을 어찌 씻어 낼 수 있을까.

 

"이번엔, 유키에처럼 죽게 만들 지 않을 거야..."

 

물론, 그렇게 약한 소녀들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마물이란 그런 추잡한 족속인 것이다. 욕망에 더럽혀진 그런 것이다. 그런 일을 계속 당하다간 이 소녀들도 언제 절망에 빠져 죽음을 택할 지 모른다.

 

"내가, 지켜내자."

 

강하게 손잡이를 거머쥐고 그렇게 다짐한다. 그것에 호응하듯, 붉은 도신이 더욱 붉게 빛나는 것 같다. 그 빛에 호응 하 듯, 다짐 하 듯 나는 이렇게 입을 연다.

 

"나는, 올곧은 하나의 마음을 품고 어둠을 가르는 검이 될 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8 나락 ImImImch 2022.11.14 25
1307 산다이바나시-주인, 노예, 사랑 [1] 라온 2016.02.29 862
1306 천로역정 컨셉 #금비은비 [1] 비렌 2014.04.15 885
1305 산다이바나시-겨드랑이, 에로망가, 질내사정 [1] 라온 2012.10.28 5554
1304 흔해빠진 세계관 만화 팬픽 라온 2012.10.28 1915
1303 [멀티노벨「하트헌터」] 5일-1일째(1) 라온 2012.03.16 1380
1302 천로역정 if... - 하늘비 bad end [1] 카와이 루나링 2012.03.13 1689
1301 멀티노블[하트헌터]5일-서장 라온 2012.03.01 1590
1300 사랑은 픽션이다 악마성루갈백작 2011.05.15 1801
1299 "세상에 그 어떤 상황에서 화 안 낼 여자 없어." 악마성루갈백작 2011.05.02 1473
1298 [H.C SS]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3] 心吾 2011.03.24 2478
1297 당신에게 보내는 유서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8 1198
» [HC SS] 그렇게 검을 거머쥔다. [4] 사이네 2011.03.13 1224
1295 HC S.S 기억의 단편 [1] 니츠 2011.03.13 1121
1294 기묘한 이야기-Repetition(반복) 번외편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3.12 1222
1293 [HC SS] 그녀만의 사정 [2] 낙일군 2011.03.11 3150
1292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건 언니야 [2] 악마성루갈백작 2011.03.04 1445
1291 환세동맹-사신의장2막 [3] 사이네 2011.02.28 1083
1290 환세동맹-사신의장1막 막간. [3] 사이네 2011.02.28 1205
1289 귀로(歸路) [1] 악마성루갈백작 2011.02.28 1322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