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Maid no Maiden#11 - Avenger

2005.02.27 04:40

T.S Akai 조회 수:189



“오라버니.”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린다.로텐부르크의 저택의 입구에 서있는 금발의 소녀.그녀는 입가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서는 벌레를 쳐다보는 거만한 눈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오늘 자정, 로텐부르크의 저택, 바로 여기에 마차를 세워두겠어요.그 마차를 타고 발렌타인의 성으로 오세요.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죠?만약 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영원히 빠져들것만 같은 새카만 늪이 있었다.

“로텐부르크의 아가씨들의 목숨은 없다고 생각하시죠.”
“엘자.그런짓 하면 안돼!”
“어째서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도…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가슴속,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이녀석은 왜 그런말을 하는걸까?어째서, 그때의 일을 아직도 담고있는것일까?그래, 알고있다.내가 그 녀석들과…어머니를…죽인것을……

“엘자!!”
“변명은 듣지 않겠어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 위선자.”

그러고서는 등을 돌렸다.
그러자, 마부석에 앉은 마부가 조심스럽게 내려와 아가씨가 다시 올라탈 마차의 문을 직접 열어주었다.

“오라버니.오늘 자정에 결판을 내는거에요.나와, 당신의 목숨을 걸고.”

그말을 남기고, 엘자는 마차에 올라타 버렸다.그리고 마부가 마부석에 앉고, 그가 고삐를 당기자 마자 마차는 로텐부르크 저택을 돌아가고 있었다.
예상 외의 손님은…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자정이다.자정에 이곳으로 다시 오며는 마차가 있고, 그것을 탄다면 발렌타인성으로 갈수있다.그리고, 그녀는 결판을 내자고 했다.무슨 결판을?난 동생에게 잘못한 것 따윈 없다.아니, 오빠로써 그 구실을 못한것이라면 잘못이다.하지만 그런걸로 결판따위를 낼 엘자도 그렇게 속좁은 여성이 아니다.
어떨까.자정이 되면 나가야될까.당연하다.비록 엘자가 로텐부르크의 아가씨들을 죽인다는 협박을 하지 않아도 가야한다.어떻게든 가는수 밖에…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저택으로 돌아갔다.현관의 계단을 밟고 커다란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발렌타인의 엘자와 너무나도 비슷한 금발의 아가씨가 있었다.
막셀 폰 로텐부르크……

“아, 아가씨…”
“손님은 돌아가셨나요?민?”
“아아, 예…저기, 그게…저를 보시더니 볼일은 끝났다고 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적당히 둘러댄다.
지금으로써는, 내가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밝히면 안된다.그것은…내가 피묻은 검을 쥐었던 그 새벽이후로의 맹세다.

“그렇다면 민은 오늘 자정이 되면 나가야 되겠군요.”
“예, 오늘 자정에 나가야…예?”

설마!

“아가씨, 그걸 어떻게!!”
“베냐민 드 발렌타인.7년전 피의 발렌타인 사건때 행방불명된 발렌타인 가(家)의 소공작.”

그녀는 너무나도 상세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볼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였군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었다.속인게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다.이건 그냥, 정체가 탄로난 자의 말로일것이다.
그렇게 말한 아가씨는 등을 돌려 천천히 저택의 홀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저기, 아가씨.”
“무슨일이죠?”
“그럼 저는…해고인가요?”

그것은 정체를 들켰다는 위화감에서 오는 발언이였을까.어찌되었든 난 그녀에게 그렇게 자신없게 말해버렸다.그리고 그 물음에 금발의 아가씨는 잠시 멈칫, 하고서는 계단의 난간에 손을 대고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제가 왜 민을 해고하지 않으면 안되나요?”

그러곤 다시 등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소공작이든 아니든, 민은 민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하아…”

왠지 피곤해질듯한 기분.뭐, 그정도는 이 저택에 고용될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런일로 피곤해질지는 추호도 생각치 못했다.여자들 사이에 끼어서 살다보면 시끄러운 것은 매 한가지인데…(어릴때 메이드누나들의 품에서 자랐다보니 충분히 느끼고 있다)
현재 시각은 아직 정오가 되기 전.곧 있으면 점심식사를 해야되는데, 어떨까.오늘이 처음 일인 내게는 도저히 이런 일에 적응이…

“아, 저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보니, 그곳에는 흑발을 늘어뜨린 한 메이드 소녀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었다.
밀렌양이다.

“저기…”
“아, 장보러 같이 가자고?”
“에…”

끄덕, 하고 대답한다.
뭔가 굉장히 서먹한 사이인 것 같지만, 뭐.그 쎄실이라는 여자아이말로는 이게 정상이라니…별수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와 밀렌이라는 아가씨는 현관문을 열고 로텐부르크의 저택이 있는 언덕을 내려가 시장으로 향했다.


점심때라서 그런지 시장은 나름대로 복잡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색다른 기분.장보는 것이라…가끔 성의 메이드 누나들이 장보러 갔다오는걸 구경한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식구가 식구였는지라…마차 하나를 꽉 채우고도 남았었는데.지금은 장바구니 하나라니…뭐, 보자…식구가 5명이니까, 뭐.한가족 먹을만큼만 사면 되는건가?

“저기…”

옆에서 걷고있던 밀렌씨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더니만 쑥쓰러운듯이 두손으로 장바구니를 건넨다.

“물건은 제가 살게요…그러니까 짐은 그, 그쪽이…”
“이름은 민이에요.”
“민씨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앞에있는 채소가게에 잠시 멈추고서는 유심히 채소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어제의 아가씨의 말에 따르자면, 이 밀렌이라는 여자아이가 로텐부르크 저택의 주방장일까?어쩌면 그렇기에 직접 재료를 사러온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 나 역시 채소집 앞에 섰다.
그녀는 몇 개의 채소를 고르자, 이내 곧 내가 들고있는 장바구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어 버렸다.

“저기…밀렌양?”
“가요!”

갑자기 덥썩, 하고 내 손목을 잡고서는 또 어디로 가버린다.질질 끌려가는 듯한 느낌.

“저, 저기!밀렌양.일단은 이 손 놓고….”
“아……”

툭.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 손목에서 벗어난다.그다지 갑갑하지는 않았지만, 끌려간다니…

“미, 미안해요…”
“아아, 아뇨.미안할것 까지는…”
“그게, 평소에는…레아언니랑 같이 와서…미안해요……”
“아, 아뇨.미안할거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등을 살짝 떠민다.

“어서 가야죠.저택에 굶주린 사람들이 셋이나 된다구요.”
“…아아……”

그녀의 등을 떠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장을 거닌다.
그리고 다음으로 도착한곳은 정육점이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야아, 아가씨 안녕.오늘도 건강해 보이는구나?”

헤헤헤, 라고 겸염쩍은듯이 웃고있는 그녀를 내려다 본다.그러고보니, 이 여자 나보다 키가 많이 작네.레아씨가 나보다 조금 작고, 쎄실은 나보다 심하게 작다고 하면…밀렌은 나보다 많이 작은건가.뭐, 심하게 작은것보다는 나으니……

“옆에있는 남자애는 애인인가?”
“아앗!”

‘아니에요~’라며 손을 휘휘 젓는다.나 역시 ‘아니에요~’라며 손을 휘휘 젓는다.

“흐음, 로텐부르크 저택의 신입생인가?”
“아아, 네에.이름이 아무레도…민 리코스트라고 했어요.”

밀렌양이 그렇게 말하자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얼굴좋은 식육점 아저씨는 뭔가 알수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나라에는 더 이상 금발이 없을텐데…자네는 금발이로군?”
“아, 이건…베레니스에서 왔어요 베레니스에서.”

적당히 말을 둘러댄다.
그러자 밀렌양이 살짝 나를 쳐다봤지만, 뭔가 의문점이 생긴것일까?뭐.그때 변명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장을 모두 보고나서 로텐부르크의 저택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던 때였다.

“저기…민씨.”
“네?”

밀렌양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한테 듣기로는 민씨는 프랑크에서 만났다던데…그럼 프랑크사람이 아닌가요?아니, 베레니스가 고향이고 프랑크로 이주한건가?”
“아아, 비, 비슷한거에요.”

대충 둘러댄다.
덥다.여름으로 넘어가는 봄의 계절은 너무나도 덥다.

“…그러고보니, 민씨.”
“네?”
“민씨도 주인님이랑 똑 같은…금발이네요.”

하늘에는 구름이 없는데도 바람이 불고있었다.뭐, 구름하고 바람하고는 그다지 관계가 없던가.바람이 불면 구름은 떠나야 하니까.하지만 구름은 바람을 원망하진 않겠지, 떠나야 하는게 구름이니까.
쓸데없는 생각만 했다.

“그러고보니 그렇네요.아가씨도 금발이고, 나도 금발이고…”

그 이야기는 어제, 내가 잠들어 있는척 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민씨, 난 말이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금발이 참 좋아요.”

그녀는 미소 가득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그 미소는 아침에 만난 ‘또다른’ 금발의 소녀와는 다른, 수줍어 하는듯 했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해맑은 미소였다.

“어릴때 말이죠.금발을 가진 어느 친절한 아저씨한테 도움받은적이 있어요.그 뒤로부터 금발만 보면 친해지고 싶어졌어요.”

그 목소리는, 그 눈빛은 아까와의 거리낌과는 달리.자신의 자랑거리를 이야기 하는 어린애와도 같았다.
검은 흑발이 여름이 다가서려는 언덕에 조금씩 흩날린다.뭐, 개인적으로 저런 새카만 흑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단아한 색이기도 하니…

“그러니까, 민씨”

그녀가 말했다.

“말 놓아요…그러니까, 저한테는 말놓는쪽이 더 좋아요…”

그 얼굴은 묘하게 수줍어 하기도 했으며, 너무나도 순수했다.

“…응, 그래도 좋다면.말 놓을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침묵의 밤이였다.
불이 모두 꺼진 밤, 거실의 홀로 나왔을 때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밤, 12시가 다되가려 한다.그녀의 전언으로는 자정에 이 저택 입구에 있는 마차를 타며는 발렌타인성으로 갈수있다고 했다.

커다란 창문앞에 선다.그리고 조용히 커다란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현관문을 바라본다.저곳을 지나고 마당을 밟아 대문으로 향하면, ‘집’으로 가는 마차가 있다.그리고, 그 마차를 타면 ‘집’으로 갈수 있다.

달빛이 걸린 그림자를 밟는다.
그림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밟혔는대도, 짓눌리는대도 비명소리 하나 지르지 않는다.그림자는 말이 없다.그것이 아무리 신비로운 달빛이 걸린 그림자라고 해도……

“민.”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은 달빛이 비추는 창문.그것을 무시하고 뒤로 돌아보자, 아침에 보았던 똑같이 아가씨가 계단의 난간에 손을 기대고 서있었다.다른거라면, 그녀는 지금 잠옷바람일까나.

“무슨일인가요, 아가씨.”
“가는건가요?”
“네.”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다녀오세요.”

돌아올지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이건 명령이에요.”

그렇게 말했다.
조용히 그녀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달빛만이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을 비추고 있었다.오페라 극단의 스포트 라이트는 나와 그녀만을 비추고 있었다.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눈앞에 있는 금발의 여성에게 머리깊이 숙이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가씨.”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달빛을 등지고, 현관을 향해 걸었다.

발렌타인 성으로.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