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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호랑이와 할머니

2004.05.08 22:56

느와르 조회 수:856 추천:1

어버이날이 다가기 전에 황급히 써서 올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호랑이와 할머니

정확히 닷새하고 반나절을 굶었다. 하얗다 못해 퍼렇게 내린 눈 때문에 사슴은커녕 토끼새끼도
찾아보기 힘들어서 뱃가죽이 등가죽이랑 붙어버릴 지경이었다. 지겨운 눈. 지겨운 눈. 지겨운 눈.
홧김에 옆에 있던 나무를 후려쳤지만 발톱자국만 남을 뿐, 넘어가지는 않았다. 젠장, 배만 불렀으면
이 까짓 나뭇가지야 단박에 넘겨버릴 수 있는데.

-크허어어어어어엉!

배가 고파서 그런지 울음소리가 뱃가죽을 울린다. 대가리를 박고 있던 꿩 새끼들이 파다닥하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짜증이 나서 눈을 튀기고 나무에 발톱을 마구 긁어대다가 지쳐서 눈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버렸다. 젠장. 배고파.

-지금 같아선 정말 쥐새끼라도 잡아먹겠군.

숨을 내쉴 때마다 콧김에 날린 눈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드러난 땅에는 고개를 숙인 새싹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우라질. 이 조그만 것도 살겠다고 날뛰는데 산중제왕(山中帝王)인 이 몸이 비루먹은
개새끼마냥 배 깔고 있어서야 폼이 안 살지. 대충 주위의 눈을 긁어모아 새싹을 덮어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정말 토끼라도 잡아먹어야겠군.

-흠?

문득 눈보라 사이로 무언가의 냄새가 실려 왔다. 곰이나 사슴은 아니다. 이 계절의 산에서 맡아
보기는 조금 드문 냄새. 이거……아마…….

-사람냄새로군.

사람이란 놈들은 영악하기가 그지없어서, 목욕하러온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서 마누라 삼고, 불쌍한
구미호들한테서 있는 단물 없는 단물 다 빼먹고 쫓아내고, 부럼 깨물어 도깨비 방망이를 훔치고,
심지어는 자기들의 어린아이를 쇳물에 집어넣어 종을 만들기도 한다.
이 겨울에 산을 돌아다니는 놈들은 분명 나무꾼 아니면 사냥꾼일터. 놈들은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영악한 놈들이니 조심해야지. 발톱을 돌에 갈아 확실하게 날을 세우고 사람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마의 王자를 잘 보이게 고개를 세우고, 꼬리를 휘둘러 지나온 길을 닦는다.
이 몸은 산중제왕. 대가리가 달린 것들은 대가리를 땅에 박고, 꼬랑지가 달린 것들은 꼬랑지를 다리사이로 만다.
날개 달린 놈들은 깃이 뽑혀라 달아나고, 눈깔 달린 놈들은 개구리보다도 크게 되는데, 저 건방진 사람이란 놈들은
이 몸을 봐도 속여먹을 생각뿐이니. 대갈통을 바숴서 헛된 지랄 못하게 할 수밖에. 보통 때라면 구린내
나고 질겨빠진 사람 고기는 입에도 안대겠지만, 배때기에서 청개구리가 울어 제끼는 마당에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다.

-크허어어어어어어어엉!

사람냄새가 지척이기에 있는 힘껏 울어주고 풀숲에서 튀어나갔다. 눈에 보이기만 하면 이 몸의 앞발을
벼락같이 휘둘러 두 동강이를 내줄 속셈이었는데. 어째 도끼 든 놈도, 활 든 놈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냄새는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 구멍 안에 오돌 거리는 할망구한테서 나오고 있었다. 쭈그러붙은
손마디에 골짜기 투성이 얼굴에는 검버섯이 잔뜩 피었다.
젠장, 저딴 건 정말 질겨 빠져서 먹기도 버겁다고. 나는 벌벌 떠는 할망구한테로 천천히 다가가며 소리쳤다.

-할망구! 이 추운데 얼어 뒈지려고 작정했어?

“아, 아이고! 산주인 나리! 제발 잡아먹지만 말아주시우…….”

이 몸의 목소리가 조금 크셨는지 냅다 엎드려서 손바닥만 비벼댄다. 앙상한 팔모가지에 너덜거리는
삼베옷만 겨우 걸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면 화도 안 난다. 할망구 앞에 털퍽 주저앉아서 으르렁거리자
새파랗게 질려서 고개를 든다. 그 얼굴을 보니 아가리만 벌어도 팩하고 고꾸라질 것 같아서 이빨을 감추고 조용히 말했다.

-이 몸은 늙은 건 안 잡아먹어. 질겨빠져서 맛이 없거든.

“저, 정말이시우?”

-아아, 그래. 할망구는 꼬라질 보니까 내가 안 잡아먹어도 곧 황천 갈 텐데 뭐.

할망구는 살았다는 표정이지만 나는 기운이 다 빠져서 그 자리에 다시 드러누웠다. 젠장, 고목나무만 좋겠군.
이 할망구가 겨울바람에 얼어 뒈지면 그건 다 이 나무 놈 꺼지. 괜시리 화가 치밀어서 고목나무를 날려버릴까
했지만 할망구 놀라 자빠질까 그만 두었다. 어차피 내 힘만 빼는 짓이지. 젠장.

“산주인 나리는 참 몸이 크시구랴. 쇤네의 너덧 배는 되시겠수.”

고목나무 안에 쭈그리고 앉은 할망구가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말라비틀어진 몸뚱아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오돌거리는 꼴이라니. 이 몸은 배가 고파서 돌아가실 지경이지만 이 금빛 모피 때문에 춥지는 않다.
나는 비척대고 일어나서 고목나무 앞을 막아섰다.

-이 몸이 바람이 막아줄 테니까 고마운 줄 알아.

“고, 고맙수. 산주인 나리.”

-고마울 것 없어. 이 몸이 방귀라도 크게 뀌시면 할망구는 담배연기 맡은 모기 꼬락서니 실테니까.
염병. 배고프니 담배가 더 땡기누만.

“쇤네가 쌈지를 챙겨오긴 했는데 태우시겠수?”

고개만 쓰윽 돌려서 고목나무 안을 들여다보자 할망구가 품에서 쌈지를 털어 내밀었다. 저런 개새끼
콧구멍만 한 양이라니, 한번 태울 것도 모자라겠구만. 나는 혀를 차고는 허리춤애서 담뱃대를 뽑아들었다.
할망구는 호랑이 담뱃대를 처음 봤는지 자글대는 주름이 펴질 정도로 눈을 떴다.

“그게 산주인 나리 담뱃대유? 대통이 무슨 화로만하구랴.”

-할망구들께 쥐방울만한 거야. 이 몸은 사람들 담뱃대는 귀이개로 쓰신다구.

쌈지의 담배를 털어넣고 재우면서 중얼거리자 할망구는 이빨이 다 빠진 입을 벌리며 웃었다. 역시 무슨
짐승이든 웃는 모습이 낫지. 이 몸은 내 송곳니를 보고 오줌을 지리는 너구리새끼들의 우는 얼굴보다는,
이 몸의 王자를 뽑아버리겠다고 건방 떨며 덤비는 곰탱이들의 웃는 얼굴이 더 좋거든. 나는 근처의
바위로 느긋하게 걸어가 발톱을 바위에 튀겼다. 튀는 불꽃을 담뱃대에 대고 깊이 빨아들인다. 아, 젠장.
아직도 배는 끔찍하게 고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살 것 같군.

“맛있으시우?”

-아아, 눈 내리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한 대도 못 피웠거든.

“배고프시다고 하셨지? 곶감이라도 드시려우?”

할망구가 놀라는 얼굴이 내리는 눈송이보다 작아지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 챘다. 담뱃대가
중간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아마 10리 정도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이 몸의 꽁지가
빠지면 그건 이 몸의 王자가 찌그러지는 것만큼이나 개 같은 꼬락서니겠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저 말라비틀어져서 바람만 불어도 꺾어질 할망구가 지금 “곶감”이라고 말했다구!

-할망구! 지금 그, 그, 그……고, 고, 고, 고, 고, 고, 곶감이랑 같이 있냐?

멀리서 고개를 끄덕이는 할망구의 모습을 보니 다시 오금이 저려왔다. 젠장, 그 빌어처먹을 곶감이라는
개자식의 냄새는 알지도 못하는데. 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거냐! 저 좁아터진 고목나무 안에 숨어있지는 않을 텐데.

“산주인 나리! 혹시 곶감이 무서우시우?”

-이런 우라질 염병할 쭈그렁바가지 할망구야! 그럼 안 무섭게 생겼나! 울던 아이도 뚝 그 친다는
곶감이란 놈이랑 붙으면 이 몸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한다구!

어디야? 어디 숨은 거냐! 이 곶감이라는 놈은! 정신없이 주위를 돌아보며 수상쩍은 걸 찾고 있는데
할망구는 껄껄 웃으며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 손에 뭔지 새까만 걸 들고 있다.

“산주인 나리, 이리 와보시구랴! 곶감은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고, 곶감이란 놈이 안 무섭다구?

“그렇수! 어서 오시구랴!”

할망구는 겁은 많아 보였지만 미친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곶감이 안 무섭다니, 의외로
저 할망구 강심장인지도 몰라. 내가 조심스럽게 고목나무 곁으로 다가가자 할망구는 대뜸 손에 들고 있던 시꺼먼 것을 내밀었다.

-뭐, 뭐야. 할망구?

“이게 곶감이우.”

절대로 뒷걸음질 안쳤다. 산중제왕인 이 몸은 싸움을 하기 전에 도망갈 뿐이지, 절대로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근데 왜 세 발짝이나 뒤로 움직이는 거냐, 머저리 같은 발모가지야.

-고, 곶감이라고? 이게?

“그렇수. 감으로 만든 곶감이우. 산주인 나리가 겁먹을 만큼 무서운 게 아니라우.”

할망구는 안심하라는 듯이 말하고는 곶감이라는 시꺼먼 것을 입안에 넣어보였다. 이빨이 다 빠진 아가리로는
오물거리기만 하는 게 고작. 하지만 곶감이란 놈이 밟아도 끽소리도 못할 놈이란 건 확실했다.

“보시우. 무서운 게 아니지요?”

-아아, 그렇군. 그게 진짜 곶감이라면. 젠장, 우리 고조부께서는 고작 그거 때문에 웬 도둑놈의 새끼랑 비명횡사 하신건가.

기가 차서 말이 다 안 나온다. 나는 입을 가리고 웃는 할망구를 뒤로 하고 눈밭으로 걸어가 담뱃대를
집어서 다시 고목나무 앞으로 돌아왔다. 그 앞을 막아서며 슬쩍 얼굴을 바라보자 주름투성이 눈가에
조금은 괜찮은 표정이 보이기에 담배연기를 눈밭으로 내뿜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할망구. 여긴 어떻게 왔어?

“무슨 말씀이시우?”

-그렇잖아. 산 아래에 흉년은 벌써 다섯 해나 들었고, 눈은 그치지도 않고 펑펑 내리고 있지. 집구석에
가만히 처박혀서 자식새끼들이랑 나란히 굶어 뒈지는 게 좋을 텐데 뭐 하러 이런 산골짜기까지 기어 올라왔냐고.

할망구는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로 말을 할 기색도 아니기에 재를 조금 털어낸 담뱃대를
어금니 사이에 끼우고 내가 말했다.

-할망구 아들놈이 여기다 할망구를 버리고 간 거지?

“……산주인님은 잘 아시는구랴.”

-그런 건 멍청한 곰탱이들도 알아. 늙어빠진 할망구가 혼자서 여길 기어올라 올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할망구 자식들이 여기다가 버린 거지?

할망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란 놈들은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짓을 하지 않는다. 흉년이 들면 애는
굶겨죽이고, 부모는 내다버린다. 까마귀도 어미한테 먹이를 물어다주고, 고슴도치란 놈도 지 새끼는 혀로 핥는다.
하지만 사람이란 놈들은 배가 고프면 지 핏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지 부모를 내다버리는 새끼들을 이해할 수는 없어.

“산주인 나리는 자식이 있으시우?”

-아직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생기겠지.

“굶는 자식을 보면 제 살이라도 뜯어 먹이고 싶은 게, 어미의 심정이라우. 새끼의 새끼들도 배를 곯아서
싸리비처럼 말라가는데 어찌 이 늙은 것이 그걸 축낼 수 있을까. 쇤네는 그 꼴을 보기 싫어서 일부러
벽에 똥을 칠하고 방구석에 오줌을 지렸수.”

주름투성이 볼을 타고 쓸쓸한 눈물이 갈라져 흐른다. 갑자기 담배 맛이 모두 죽어버려서 담뱃대를 입에서
뗐다. 예전에 상처투성이 몰골로 덤비던 암컷 늑대랑 싸운 적이 있었다. 피투성이에 다리까지 부러진
꼬락서니였지만 눈에 독을 품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통에 수염도 뽑히고, 등에 이빨까지 박혔었다.
열을 받아서 아가리를 찢고 배때기를 갈라놓았더니 시뻘건 새끼들이 배안에 5마리.
그 어미 늑대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낸 후에야 등의 상처가 다 나을 수 있었다. 자식가진 어미란 그런 것 들이다.
지 목숨엔 상관 안 해도 자식목숨에는 눈이 시뻘개져 달려드는 그런 것들. 지 새끼를 지키려고 내 발톱에 등을
내주는 사람의 어미들이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사람이란 놈들은 배가 곯으면 그런 건 까맣게 있고 살기에만 급급하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었기에 놈들만 쓸 수 있는 말이다.

-할망구.

“…….”

조용히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 말라비틀어진 몸은 고목나무 구석에 얼어붙어가고 있고, 힘없게 꿈틀거리는
눈꺼풀은 다시 뜨기는 힘들어 보였다. 가슴이 아주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나는
담뱃대를 고목나무 앞에 내려두고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 나왔다. 뒤로 물러나 눈밭에 무릎을 꿇고 절한다.

-담배 고맙소. 할망구. 내 능력은 별거 없지만 적어도 관에는 넣어드리겠소.

할망구가 화로만 하다던 대통에서 담뱃재를 떨어내고 허리춤에 꼽았다. 몰아치는 눈발은 애를 쓰면서 내
눈을 가리려 들지만 산중제왕인 이 몸의 눈을 가릴 수 있는 건 눈물이 아니면 피뿐이다. 버릇없는 눈송이들아.
숨을 들이쉬고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질렀다.

-크허어어어어어어어어엉! 크허어어어어어어어어엉!

메아리치는 산봉우리가 눈을 무너트린다. 산천초목이 진동하며 자신들의 몸에 묻은 하얀 솜을 떨어트린다.
잉어야, 얼어붙은 호수를 깨고 튀어라. 봉황아, 눈을 녹이며 날아라. 그리고 빌어먹을 곰 영감태기야, 귀청을
터트려 버리기 전에 썩 내 앞에 나타나라.

-좀 닥치지 못하겠냐! 이 얼룩무늬 애송이가!

눈을 헤치고 나타난 스무 척 곰 영감의 쩌렁거리는 목소리가 눈밭을 뒤집었다. 나는 씨익 웃고는 바지춤을
걷어 올렸다. 오냐, 이 영감탱아. 산중제왕이신 이 몸을 애송이 취급하다니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나.

-영감! 향이랑 병풍은 없지만 오늘이 영감 제삿날인줄 알아!

-너야말로 아직 상주가 없는 걸 후회하게 될 꺼다!

사냥꾼들의 화살이 수도 없이 박혔던 상처투성이 가슴 판을 벌리고 달려오는 영감태기. 나는 사납게 웃으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날 저녁, 마당에서 얼은 손을 불며 오줌을 누고 있던 농사꾼 고씨는 새까만 밤을 밝히며 다가오는 인광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 사, 사, 사, 사…….”

-산주인이다. 대가리랑 배때기에는 똥만 찬 무식한 놈아.

곰발톱자국을 가득 찍고 어둠속에서 나타난 집채만 한 호랑이의 모습에 고씨는 자기가 눈 오줌위에 주저앉아
버렸고, 호랑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할망구. 할망구 자식 놈은 할망구보다 못하군. 적어도 할망구는 오줌은 안 깔아 뭉겠는데 말이지.

“어. 어이구, 산주인 나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집에는 배를 곯는 자식새끼들이 다섯 놈이나…….”

-놈, 자식이고 오줌이고 많이도 싸지르는구나.

호랑이는 피식 웃더니 입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고씨 앞에 내던졌다.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자기 목 떨어지는
소리인 것 마냥 핼쑥해져서 움츠리는 고씨. 하지만 호랑이가 던진 물건을 확인한 그의 눈은 놀람을 담아 커졌다.

-상복을 입고 네 어미의 장례를 치러라. 봉분을 쌓고 비석을 세워라. 움막을 짓고 삼년상을 지내라. 내가
말한 것을 하나라도 빼 먹는다면……

목덜미에 느껴지는 호랑이의 인광이 마치 칼날 같이 느껴져, 고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멈춰버린 오줌줄기가
다시 새어나올 지경. 호랑이는 천천히 말을 끝맺었다.

-……내 다시 한 번 산을 내려와 네놈의 목덜미를 물어죽이리라.

말을 마친 호랑이는 눈을 밟으며 사라져가고 고씨는 오줌 범벅이 된 무릎으로 기어 호랑이가 던진 것에 다가갔다.
이백 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곰 고기. 그리고 새까만 곰 가죽에 쌓여있는 내다버린 노모의 싸늘한 주검.
고씨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식어버린 노모의 뺨을 만졌다. 주름투성이의 늙은 뺨에는 말라붙은 눈물이 한자국
이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그 입술은 웃고 있다. 고씨는 그 가녀린 몸을 힘겹게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어, 어머니……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으윽, 어머니!”

차가운 눈밭에서 식어버린 노모의 주검을 안고 우는 아들. 가족들을 모두 깨우고, 마을사람들까지 모두
깨워버린 그 통곡소리는 멀리, 멀리 메아리를 타고 퍼져 산중제왕의 귓가까지 아련하게 들려왔다…….




2004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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