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르시아 제 1 부 2 화 - Give & Take 2
2004.03.11 15:21
제 2 화 Give & Take - 새로운 일상의 시작 (2)
- 동시각. 용미 제 3 아파트 1018호.
"의외로 눈치가 빠르군요. 피를 먹는 늑대씨."
온통 피에 젖은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앉은채로 유쾌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눈앞에서 창을 꼬나쥐고 있는 상대를 올려다 봤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붉은 머리의 사내, 크림슨 울프는 적의를 가득담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흥. 등잔밑이 어둡기야 어둡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바로 맞은편 집에서 용케도 그들에게 눈치채이지 않았군. 쥬라. 거기에, 이미 내가 여기로 올 것을 눈치채고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긴건가. 허상따위를 세워놓다니. 그야말로 너 다운 짓이군."
그의 말에 쥬라는 그 붉은 눈을 번뜩이며 웃음을 터뜨린다.
"쿡쿡... 칭찬의 말씀 감사드려요. 신의 대행자님."
"망측한. 신의 대행자는 마슈드님뿐. 나는 마슈드님의 수족에 불과하거늘."
완전히 노출된 적의. 크림슨 울프의 적의를 한 몸에 받으며 쥬라의 허상은 피에 젖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특별히 말은 필요없지 않나요? 그보다도 몇일 후에 벌어질 제가 준비한 최고의 '쇼'를 즐겨주셨으면 하네요."
"......쇼라고?"
크림슨 울프의 반문에 쥬라는 한 손을 들어 허공을 어루만지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
"파멸의 쇼. 저 저주스러운 애송이 도련님의 세계를 철저히 파멸시킬 파멸의 쇼에요. 당신은 여기에서 그걸 구경하시지요. 후후... 후후후후..."
그 순간 크림슨 울프는 깨달았다. 실내의 마나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덫인가."
조소를 보내오던 쥬라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흩어짐과 동시에 그곳을 기점으로 넓다란 거실 전체에 걸쳐 마술진이 드러났다.
그것은 본 크림슨 울프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것에 대한 지독히도 짧은 감상을 읊을 뿐이었다.
"......쳇."
.
.
.
오랫만에 등교한 학교는 그저그랬다.
요전의 좀비 사건으로 희생되었는지, 학생수는 상당히 줄어있었고, 심지어 교사도 몇 명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없어도 학교는 움직였다.
실종된 교사의 수업은 현재로선 자습처리가 되어있지만서도, 이제 연말이고 내년이면 새로 선생도 오겠지.
다행히도 3학년의 수능은 이미 끝난 상태니 수업이 자습이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고.
이제 내일이면 12월에 접어든다.
몇몇 안면 있는 녀석들은 일부러 방학전에 복학 했지! 하면서 나를 놀려대곤 했지만 애시당초 복학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실제로 난 복학하여 이 자리에 앉아있다. 마침 자습시간.
사립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 청수 초중고는 타 학교에 비해 상당히 학생들의 자유가 존중되는 학교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별히 수업이 없이 자습일 경우 마음대로 운동장으로 나가 놀아도 무방하다.
이사장과 교장의 방침이 [스스로하지 않는 공부에는 의미 없다] 라는 것.
훌륭한 방침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명문대가는 학생이 20%. 지방대가 60%. 재수생이 20% 라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미 명문고로서의 존망이 위험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매년 이 학교의 경쟁률은 상당히 높다.
어찌보면 왠만한 명문대만큼 경쟁률이 높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옆자리의, 전학 첫날부터 엎어져 자는 수아녀석을 못자게 괴롭히다가 그래도 녀석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대로 자빠져자는 통에 그것도 곧 질려버렸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답답해진 터에 유라녀석이 잘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뭔가 문제나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건만.
따라서 일단은 녀석을 찾아보기로 했다.
유라가 배정된 반은 아까 교무실에서 슬쩍 확인을 해뒀다.
2학년 7반. 바로 옆반이군.
7반이라면 아마 첫시간이 담임 시간일텐데. 지금쯤 자기소개를 하고 있지 않을까.
열심히 자습하는 학생들, 혹은 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뒤로 6반의 뒷문을 열고 나가 7반 교실 앞문의 유리창을 통해 교실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어렴풋이 말소리도 들려온다.
"유라 학생은 프랑스에서 왔대요∼ 유라가 이름이고, 마커딘이 성인데요∼ 서양에서는 초면에 이름으로 부르면 큰 실례니까 다들 성으로 불러주도록 해요∼"
......나는 이 학교에서 저 여자가 제일 두려워. 고딩을 유치원생 혹은 초딩 다루듯 하는 여자.
영어교사였던가. 이름은 까먹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그 다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자아∼ 그러면 모국어로 인사 부탁해요오∼"
"................................................................"
가...... 갓 댐!!!!
모국어라고!? 프랑스어라고!?
그걸 저 녀석이 알리가 없잖아!!!
유라에게 프랑스어로 인사할 것을 강요(?)한 영어교사의 눈망울은 호기심으로 가득차있었다.
저... 저 눈 빛... 우리 교실에 처음 수업하러 들어와서 맨 처음에 다짜고짜 날 지목하고 '친구 이름이 뭐에요?' 라고 묻고는 특기가 뭐냐길래 순간적으로 배알이 꼴려서 두들겨 패는거. 라고 답했더니 '어머! 무술하는구나아! 어디어디! 시범 좀 보여주세요∼ 광현 친구∼' 라며 내게 무술 시범을 보일 것을 강요(?)했다.
결국 난 떨떠름하게 무술 시범을 보였고, 일광이 녀석은 배가 터져라 웃었던가.
결국 웃어대다가 저 여자 눈에 띄여버린 일광이 녀석도 불려져서 결과적으론 나와 둘이서 대련(이라기보다는 몽키 쇼에 가까웠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을 하게 되었지.
카악-! 어쨌든간에 저 여자는 절대로 피해야할 요주의 인물이야!
어떡한다... 어떻게 한다... 이대로두면 궁지에 몰린 유라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갔다간 저 여자에게 순간적으로 타겟팅당할 것이 틀림없어.
지금은-
1. 일단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2. 여교사의 주의를 어떻게든 끌어본다.
3. 유라를 믿어보자!
...뭐하는거냐! 지금 이딴거 할때가 아니야!
잡념을 떨쳐내고 앞문을 벌컥 열어 교실에 들어섰다.
그 순간 내게 용서없이 일제히 꽂히는 수많은 시선들.
느닷없는 불청객에 모두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저 악마같은 여자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응? 무슨일이에요? 광현 친구?"
"아... 음... 어... 저기... 교,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 부르셨거든요. 지금 당장 오라고 하시던데요."
누가 들어도, 아니 원숭이가 들어도 거짓말인게 뻔한 대사.
그것을.
"어머. 그럼 갔다와야겠네! 광현 친구 고마워요∼"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는 그녀는 내옆을 지나쳐갔다.
그리고 교실문을 나가기 직전.
"자, 그럼 친구들∼ 옆반 친구들도 수업 없는 것 같으니까 같이 놀도록 해요오∼ 그럼 선생님은 잠시 다녀올게요∼"
지금이라면 확신해. 저 여자, 틀림없이 원숭이 이하야.
외모야 원숭이라고 하면 실례가 될 정도의 비교적 깔끔한 외모를 지니긴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녀는 원숭이 이하로도 충분해!
아무튼 그녀가 나가자마자 교실은 시장바닥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유라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하는 여학생들 & 남학생들. 혹은 밖에 나가 놀 채비를 하는 학생들하며.
아직 유라의 위기는 끝나지 않은 듯, 학생들은 용서없이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아아... 도대체가. 어딜가도 눈에 띄는 녀석이니. 피곤할 수 밖에.
그보다도 내게 속았다는 것을 안 7반 담임이 돌아오기 전에 유라를 구제하고 이 교실에서 탈출하는게 급선무다.
그러나 이미 십여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유라는 패닉상태에 빠져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하고 있을 뿐.
...정말이지 저러고 있으면 칼들고 싸울때의 이미지가 전혀 없단 말이야.
어찌되었든 그녀를 둘러싼 학생들을 억지로 가르고 들어가 유라의 손목을 덥썩 잡고 끌어당겼다.
"바보 녀석. 일단 따라와."
"과, 광현?"
다행히도 그녀는 별다른 저항없이 내 손에 이끌려 인파를 헤치고 나를 따라 왔다.
다행이지. 무척이나. 만약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저항했으면 마치 전신주를 끌어당기는 거랑 똑같은 꼴이 날 뻔했으니까.
아니면, 그녀가 반사적으로 손을 당기기라도 했으면 나는 처참하게 반대편의 창문을 부수고 날아갔을테지.
아아. 고맙다. 유라. 네가 여기 온 이래로 이만큼 고마웠던 적이 없었을거야.
...뭐, 일주일 전의 그 건은 별도로 하지. 그거야 비상사태였으니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에서 말이지.
돌발적인 내 행동에 7반 학생들이 얼어붙어 있는 틈을 타 교실을 빠져나와 교정으로 향했다.
예전에 르 브란으로 날려버린 교장이 아끼던 소나무는 처참하게 부서진 몰골 그대로였다.
주변 풍경과 상당히 언밸런스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나무를 처분하지 않는 이유는, 교장이 이 나무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 학교에는 교장이 애착을 가지고 돌보는 것들이 많았지.
뒷교정의 연못의 잉어들이라던가. 그 옆의 초대 교장의 동상이라던가. 교내 원예부의 화단에 심어놓은 꽃들이라던가.
처음에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그런 것들에 모종의 테러를 하곤 했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보복 혹은 처벌이 없었기에 그게 오히려 더 꺼름직해서 더 이상 테러행위를 하지 않게되었다던가.
아무튼 이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뭔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학교다.
역시나 좀비 사건 이후로 학생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또 수업을 담당할 교사들도 몇명인가 실종된 탓에 꽤 많은 수의 학급이 자습이 되었는지,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1, 2, 3학년의 학생들이 뒤섞여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풍이 자유로운 건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도라는게 있지 않나?
뭐어, 나도 실제로 그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동안을 걸어 당도한 곳은 학교 뒷교정의 연못가.
교장의 배려인지, 느긋하게 연못이나 보며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보내라는 듯, 연못가에는 몇개인가 벤치가 놓여져 있었다.
근처에 사람들도 별로 없고. 일단은 수업 끝날때까지는 여기에 대피해 있는게 좋겠지.
그 여자가 지금쯤이면 교장실에 가서 내가 거짓말 했다는 것을 눈치챘을테니까.
한동안은 그 여자 눈에 안띄게 잘 숨어지내는 수 밖에.
일단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유라는 벤치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선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왜......"
한참을 날 내려다보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왜? 아니, 왜 그러고 서있냐고 묻고 싶은건 나야.
"................왜.............. 프랑스를 모르는 거야.............................................."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진심어린 살의가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그 눈빛에 제압당해, 그다지 미안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제발 부탁인데, 그 눈빛은 수아 녀석한테 돌려줘. 사실, 네 이곳에서의 설정을 만든건 수아 녀석이니까!
그리하여, 그녀가 진정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곧 1교시도 끝나갈 무렵.
"있잖냐.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있으라구. 너라는 녀석이 눈에 많이 띄긴 하지만서도, 계속 얌전히 있다보면...... 응? 왜 그래?"
옆에 앉은 유라에게 위로 비슷한 말을 꺼내던 중, 느닷없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뒤로 홱 돌아섰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얼굴에 약간 여드름이 난 학생이 서있었다.
약간 길이가 긴 스포츠 머리를 하고는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꼬두' 인 듯, 그렇게 머리카락이 길게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검은 뿔테 안경. 뭐, 간단히 말하자면 꽤나 친근감이 가는 평범한 외모의 남학생이었다.
얌전히 앉아있던 유라가 갑자기 일어나 자신을 쏘아본 탓에 상당히 놀란 듯, 그는 그저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간단히 물었다.
"뭐냐? 너."
뱃지 색깔로 봐선 1학년. 초면부터 반말로 나가도 상관없겠지. 뭐, 애시당초 3학년이 되었든, 어른이 되었든 난 초면부터 반말까고 나가기야 하지만.
그런 내 질문에 그는 질문으로 맞섰다.
"아, 저기요. 교무실이 어딘가요? 고등학교는 처음이라..."
교무실이라고? 위치 관계적으로... 교문을 들어서면 운동장.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건물. 교무실은 본관건물에 있고...
여기에 오려면 반드시 본관건물을 가로질러 와야 되는데.
이 녀석은 뭘 어떻게해서 본관건물을 지나쳐서 뒷교정에서 교무실을 찾고 있대?
뭐, 가르쳐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곧 교실로 돌아가야 할테고.
"따라와. 안내해줄테니까."
"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 아니. 그렇게 솔직하게 감사받으면 쑥스러워지는데.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본관쪽으로 향했다.
유라는 나와 그가 얘기하는 동안 줄곧 그를 경계하다, 내가 걸어나가기 시작하자 내 옆으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경계는 풀지 않는다.
...묘하군. 이 녀석이 처음보는 사람 경계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좀 지나치지 않나?
그렇게나 유라가 열심히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그 녀석은 그 사람좋은 미소를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뭔가 떨떠름한 안내를 마치고 녀석을 교무실에 들여보내자마자 안에서는 선생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야 이 자식! 남 우석!! 지금이 몇신데 이제서야 오냐? 복학 신청을 냈으면 그 날부터 정상 수업이야 임마! 아무리 병을 앓았다고 해도......"
묵념. 자, 그러면 나도 용건은 끝났으니 바로...
"어머. 광현 친구. 교무실에 용건이라도 있어요오∼?"
......이런 바보같을데가! 교무실의 바로 옆이 교장실이잖아!
운도 억수로 없지. 조금 전에 속여넘긴 7반의 담임이 마침맞게 교장실 문을 열자마자 거기에 서 있던 날 발견한 것이었다.
최악이다. 정말로 최악이야.
"아, 맞다. 광현친구."
으윽. 왔다... 분명히 자신을 속인것에 대해 보복이...
"좀 전에는 고마웠어요∼ 교장 선생님도 참 급하셨나봐요∼"
응? 무슨 소리야?
내 의문에 묻지도 않은 걸 떠벌이는 여교사.
"저기 있죠. 저 부서진 소나무. 저거 이제야 치우실 결심을 하신 모양이에요오∼ 그래서 교내 기물 담당인 저를 부르신거에요∼"
......교장 선생님... 나... 이제야 당신의 위대한 학생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그렇게 마음속으로 교장에 대한 감사의 말을 던지고는 대충 여교사에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괜히 더 오래 머물렀다간 [모국어] 건을 저 여자가 떠올릴지도 모를일이니까.
우리들의 교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갑자기 유라가 날 불렀다.
"광현. 조금 전의 그 남자."
남자? 아아. 조금전에 내가 안내해 줬던 녀석 말인가?
"어. 걔가 왜?"
내 반문에 그녀는 사뭇 진지한 눈 빛으로 말했다.
"보통 인간이 아니야. 마나의 파장만으로 따지면 광현과 거의 엇비슷한 정도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다, 일부러 자신의 마나를 과시하는 건지, 무의식중에 그런건지는 몰라도, 그 파장의 제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다음에 그 남자를 또 만나면 충분히 경계하도록 해."
그 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글쎄에. 그 녀석 뿐만이 아닌걸. 적어도 이 학교내에만 우리를 제하면 최소한 3, 4명. 그리고 이 일대 전체로 본다면 대략 20여명에 가까운 숫자의 '능력자'들이 모여있어. 능력이야 다들 들쭉날쭉이지만."
수아였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그녀는 계단난간에 걸터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유쾌한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수아와는 반대로, 유라는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르 시아. 그건 무슨 뜻이지?"
그 질문에 수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고는 난간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유라의 질문에 답했다.
"말 그대로의 뜻이야. 자신의 힘에 자각을 가진 녀석들과 자각이 없는 녀석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폭탄더미 한 가운데 서 있는거나 마찬가지지. 자신의 힘에 자각이 없는 녀석들이 언제 각성해서 폭주해댈지 모를 일이고. 자각이 있는 녀석들이 어느순간 다짜고짜로 덤벼들지 모를 일이고 말야."
음... 그건 조금... 아니, 상당히 심각한데.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그런 나의 질문에 수아 녀석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 덤벼들면 후려쳐내는 거고, 얻어맞으면 몇배로 두들겨준다. 그게 광현 오빠의 좌우명 아니었던가?"
음.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자각이 없는 녀석들의 경우에는 얘기해서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나는 마법도 못 쓰는 상태고, 너도 일단은 인간의 몸이라 상처가 완전히 다 나아버린 것도 아니고. 유라도 이전의 그 건으로 만전의 상태도 아니고. 이 상태로 적들만 계속 불어나면 불리한건 우리라고. 아직 쥬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말야."
내 그 의견에 유라가 답했다.
"나쁘진 않지만, 자각이 없는 인물을 어떻게 식별해?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음......
그 말에 할 말을 잃고 생각에 빠진 내 귀에 수업 시간 종료를 알리는 차임이 들려왔다.
별 달리 뾰족한 수도 나오지 않기에, 우리는 그대로 교실로 향하기로 했다.
어찌되었건, 교섭을 해볼 첫번째 대상은 좀 전의 안경녀석. 남 우석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녀석이 되겠지.
겨우 조금은 일상적인 생활을 되찾았나 싶었는데 말야. 가면 갈 수록 문젯거리가 늘기만 하네...
제 2 화 Give & Take - 자매 (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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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광현군. 내용이 정리가 안된다는 문젯거리가 늘기만 하는구나.[끌려간다]
- 동시각. 용미 제 3 아파트 1018호.
"의외로 눈치가 빠르군요. 피를 먹는 늑대씨."
온통 피에 젖은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앉은채로 유쾌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눈앞에서 창을 꼬나쥐고 있는 상대를 올려다 봤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붉은 머리의 사내, 크림슨 울프는 적의를 가득담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흥. 등잔밑이 어둡기야 어둡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바로 맞은편 집에서 용케도 그들에게 눈치채이지 않았군. 쥬라. 거기에, 이미 내가 여기로 올 것을 눈치채고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긴건가. 허상따위를 세워놓다니. 그야말로 너 다운 짓이군."
그의 말에 쥬라는 그 붉은 눈을 번뜩이며 웃음을 터뜨린다.
"쿡쿡... 칭찬의 말씀 감사드려요. 신의 대행자님."
"망측한. 신의 대행자는 마슈드님뿐. 나는 마슈드님의 수족에 불과하거늘."
완전히 노출된 적의. 크림슨 울프의 적의를 한 몸에 받으며 쥬라의 허상은 피에 젖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특별히 말은 필요없지 않나요? 그보다도 몇일 후에 벌어질 제가 준비한 최고의 '쇼'를 즐겨주셨으면 하네요."
"......쇼라고?"
크림슨 울프의 반문에 쥬라는 한 손을 들어 허공을 어루만지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
"파멸의 쇼. 저 저주스러운 애송이 도련님의 세계를 철저히 파멸시킬 파멸의 쇼에요. 당신은 여기에서 그걸 구경하시지요. 후후... 후후후후..."
그 순간 크림슨 울프는 깨달았다. 실내의 마나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덫인가."
조소를 보내오던 쥬라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흩어짐과 동시에 그곳을 기점으로 넓다란 거실 전체에 걸쳐 마술진이 드러났다.
그것은 본 크림슨 울프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것에 대한 지독히도 짧은 감상을 읊을 뿐이었다.
"......쳇."
.
.
.
오랫만에 등교한 학교는 그저그랬다.
요전의 좀비 사건으로 희생되었는지, 학생수는 상당히 줄어있었고, 심지어 교사도 몇 명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없어도 학교는 움직였다.
실종된 교사의 수업은 현재로선 자습처리가 되어있지만서도, 이제 연말이고 내년이면 새로 선생도 오겠지.
다행히도 3학년의 수능은 이미 끝난 상태니 수업이 자습이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고.
이제 내일이면 12월에 접어든다.
몇몇 안면 있는 녀석들은 일부러 방학전에 복학 했지! 하면서 나를 놀려대곤 했지만 애시당초 복학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실제로 난 복학하여 이 자리에 앉아있다. 마침 자습시간.
사립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 청수 초중고는 타 학교에 비해 상당히 학생들의 자유가 존중되는 학교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별히 수업이 없이 자습일 경우 마음대로 운동장으로 나가 놀아도 무방하다.
이사장과 교장의 방침이 [스스로하지 않는 공부에는 의미 없다] 라는 것.
훌륭한 방침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명문대가는 학생이 20%. 지방대가 60%. 재수생이 20% 라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미 명문고로서의 존망이 위험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매년 이 학교의 경쟁률은 상당히 높다.
어찌보면 왠만한 명문대만큼 경쟁률이 높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옆자리의, 전학 첫날부터 엎어져 자는 수아녀석을 못자게 괴롭히다가 그래도 녀석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대로 자빠져자는 통에 그것도 곧 질려버렸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답답해진 터에 유라녀석이 잘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뭔가 문제나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건만.
따라서 일단은 녀석을 찾아보기로 했다.
유라가 배정된 반은 아까 교무실에서 슬쩍 확인을 해뒀다.
2학년 7반. 바로 옆반이군.
7반이라면 아마 첫시간이 담임 시간일텐데. 지금쯤 자기소개를 하고 있지 않을까.
열심히 자습하는 학생들, 혹은 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뒤로 6반의 뒷문을 열고 나가 7반 교실 앞문의 유리창을 통해 교실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어렴풋이 말소리도 들려온다.
"유라 학생은 프랑스에서 왔대요∼ 유라가 이름이고, 마커딘이 성인데요∼ 서양에서는 초면에 이름으로 부르면 큰 실례니까 다들 성으로 불러주도록 해요∼"
......나는 이 학교에서 저 여자가 제일 두려워. 고딩을 유치원생 혹은 초딩 다루듯 하는 여자.
영어교사였던가. 이름은 까먹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그 다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자아∼ 그러면 모국어로 인사 부탁해요오∼"
"................................................................"
가...... 갓 댐!!!!
모국어라고!? 프랑스어라고!?
그걸 저 녀석이 알리가 없잖아!!!
유라에게 프랑스어로 인사할 것을 강요(?)한 영어교사의 눈망울은 호기심으로 가득차있었다.
저... 저 눈 빛... 우리 교실에 처음 수업하러 들어와서 맨 처음에 다짜고짜 날 지목하고 '친구 이름이 뭐에요?' 라고 묻고는 특기가 뭐냐길래 순간적으로 배알이 꼴려서 두들겨 패는거. 라고 답했더니 '어머! 무술하는구나아! 어디어디! 시범 좀 보여주세요∼ 광현 친구∼' 라며 내게 무술 시범을 보일 것을 강요(?)했다.
결국 난 떨떠름하게 무술 시범을 보였고, 일광이 녀석은 배가 터져라 웃었던가.
결국 웃어대다가 저 여자 눈에 띄여버린 일광이 녀석도 불려져서 결과적으론 나와 둘이서 대련(이라기보다는 몽키 쇼에 가까웠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을 하게 되었지.
카악-! 어쨌든간에 저 여자는 절대로 피해야할 요주의 인물이야!
어떡한다... 어떻게 한다... 이대로두면 궁지에 몰린 유라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갔다간 저 여자에게 순간적으로 타겟팅당할 것이 틀림없어.
지금은-
1. 일단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2. 여교사의 주의를 어떻게든 끌어본다.
3. 유라를 믿어보자!
...뭐하는거냐! 지금 이딴거 할때가 아니야!
잡념을 떨쳐내고 앞문을 벌컥 열어 교실에 들어섰다.
그 순간 내게 용서없이 일제히 꽂히는 수많은 시선들.
느닷없는 불청객에 모두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저 악마같은 여자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응? 무슨일이에요? 광현 친구?"
"아... 음... 어... 저기... 교,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 부르셨거든요. 지금 당장 오라고 하시던데요."
누가 들어도, 아니 원숭이가 들어도 거짓말인게 뻔한 대사.
그것을.
"어머. 그럼 갔다와야겠네! 광현 친구 고마워요∼"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는 그녀는 내옆을 지나쳐갔다.
그리고 교실문을 나가기 직전.
"자, 그럼 친구들∼ 옆반 친구들도 수업 없는 것 같으니까 같이 놀도록 해요오∼ 그럼 선생님은 잠시 다녀올게요∼"
지금이라면 확신해. 저 여자, 틀림없이 원숭이 이하야.
외모야 원숭이라고 하면 실례가 될 정도의 비교적 깔끔한 외모를 지니긴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녀는 원숭이 이하로도 충분해!
아무튼 그녀가 나가자마자 교실은 시장바닥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유라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하는 여학생들 & 남학생들. 혹은 밖에 나가 놀 채비를 하는 학생들하며.
아직 유라의 위기는 끝나지 않은 듯, 학생들은 용서없이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아아... 도대체가. 어딜가도 눈에 띄는 녀석이니. 피곤할 수 밖에.
그보다도 내게 속았다는 것을 안 7반 담임이 돌아오기 전에 유라를 구제하고 이 교실에서 탈출하는게 급선무다.
그러나 이미 십여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유라는 패닉상태에 빠져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하고 있을 뿐.
...정말이지 저러고 있으면 칼들고 싸울때의 이미지가 전혀 없단 말이야.
어찌되었든 그녀를 둘러싼 학생들을 억지로 가르고 들어가 유라의 손목을 덥썩 잡고 끌어당겼다.
"바보 녀석. 일단 따라와."
"과, 광현?"
다행히도 그녀는 별다른 저항없이 내 손에 이끌려 인파를 헤치고 나를 따라 왔다.
다행이지. 무척이나. 만약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저항했으면 마치 전신주를 끌어당기는 거랑 똑같은 꼴이 날 뻔했으니까.
아니면, 그녀가 반사적으로 손을 당기기라도 했으면 나는 처참하게 반대편의 창문을 부수고 날아갔을테지.
아아. 고맙다. 유라. 네가 여기 온 이래로 이만큼 고마웠던 적이 없었을거야.
...뭐, 일주일 전의 그 건은 별도로 하지. 그거야 비상사태였으니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에서 말이지.
돌발적인 내 행동에 7반 학생들이 얼어붙어 있는 틈을 타 교실을 빠져나와 교정으로 향했다.
예전에 르 브란으로 날려버린 교장이 아끼던 소나무는 처참하게 부서진 몰골 그대로였다.
주변 풍경과 상당히 언밸런스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나무를 처분하지 않는 이유는, 교장이 이 나무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 학교에는 교장이 애착을 가지고 돌보는 것들이 많았지.
뒷교정의 연못의 잉어들이라던가. 그 옆의 초대 교장의 동상이라던가. 교내 원예부의 화단에 심어놓은 꽃들이라던가.
처음에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그런 것들에 모종의 테러를 하곤 했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보복 혹은 처벌이 없었기에 그게 오히려 더 꺼름직해서 더 이상 테러행위를 하지 않게되었다던가.
아무튼 이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뭔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학교다.
역시나 좀비 사건 이후로 학생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또 수업을 담당할 교사들도 몇명인가 실종된 탓에 꽤 많은 수의 학급이 자습이 되었는지,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1, 2, 3학년의 학생들이 뒤섞여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풍이 자유로운 건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도라는게 있지 않나?
뭐어, 나도 실제로 그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동안을 걸어 당도한 곳은 학교 뒷교정의 연못가.
교장의 배려인지, 느긋하게 연못이나 보며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보내라는 듯, 연못가에는 몇개인가 벤치가 놓여져 있었다.
근처에 사람들도 별로 없고. 일단은 수업 끝날때까지는 여기에 대피해 있는게 좋겠지.
그 여자가 지금쯤이면 교장실에 가서 내가 거짓말 했다는 것을 눈치챘을테니까.
한동안은 그 여자 눈에 안띄게 잘 숨어지내는 수 밖에.
일단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유라는 벤치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선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왜......"
한참을 날 내려다보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왜? 아니, 왜 그러고 서있냐고 묻고 싶은건 나야.
"................왜.............. 프랑스를 모르는 거야.............................................."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진심어린 살의가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그 눈빛에 제압당해, 그다지 미안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제발 부탁인데, 그 눈빛은 수아 녀석한테 돌려줘. 사실, 네 이곳에서의 설정을 만든건 수아 녀석이니까!
그리하여, 그녀가 진정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곧 1교시도 끝나갈 무렵.
"있잖냐.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있으라구. 너라는 녀석이 눈에 많이 띄긴 하지만서도, 계속 얌전히 있다보면...... 응? 왜 그래?"
옆에 앉은 유라에게 위로 비슷한 말을 꺼내던 중, 느닷없이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뒤로 홱 돌아섰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얼굴에 약간 여드름이 난 학생이 서있었다.
약간 길이가 긴 스포츠 머리를 하고는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꼬두' 인 듯, 그렇게 머리카락이 길게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검은 뿔테 안경. 뭐, 간단히 말하자면 꽤나 친근감이 가는 평범한 외모의 남학생이었다.
얌전히 앉아있던 유라가 갑자기 일어나 자신을 쏘아본 탓에 상당히 놀란 듯, 그는 그저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간단히 물었다.
"뭐냐? 너."
뱃지 색깔로 봐선 1학년. 초면부터 반말로 나가도 상관없겠지. 뭐, 애시당초 3학년이 되었든, 어른이 되었든 난 초면부터 반말까고 나가기야 하지만.
그런 내 질문에 그는 질문으로 맞섰다.
"아, 저기요. 교무실이 어딘가요? 고등학교는 처음이라..."
교무실이라고? 위치 관계적으로... 교문을 들어서면 운동장.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건물. 교무실은 본관건물에 있고...
여기에 오려면 반드시 본관건물을 가로질러 와야 되는데.
이 녀석은 뭘 어떻게해서 본관건물을 지나쳐서 뒷교정에서 교무실을 찾고 있대?
뭐, 가르쳐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곧 교실로 돌아가야 할테고.
"따라와. 안내해줄테니까."
"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 아니. 그렇게 솔직하게 감사받으면 쑥스러워지는데.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본관쪽으로 향했다.
유라는 나와 그가 얘기하는 동안 줄곧 그를 경계하다, 내가 걸어나가기 시작하자 내 옆으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경계는 풀지 않는다.
...묘하군. 이 녀석이 처음보는 사람 경계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좀 지나치지 않나?
그렇게나 유라가 열심히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그 녀석은 그 사람좋은 미소를 결코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뭔가 떨떠름한 안내를 마치고 녀석을 교무실에 들여보내자마자 안에서는 선생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야 이 자식! 남 우석!! 지금이 몇신데 이제서야 오냐? 복학 신청을 냈으면 그 날부터 정상 수업이야 임마! 아무리 병을 앓았다고 해도......"
묵념. 자, 그러면 나도 용건은 끝났으니 바로...
"어머. 광현 친구. 교무실에 용건이라도 있어요오∼?"
......이런 바보같을데가! 교무실의 바로 옆이 교장실이잖아!
운도 억수로 없지. 조금 전에 속여넘긴 7반의 담임이 마침맞게 교장실 문을 열자마자 거기에 서 있던 날 발견한 것이었다.
최악이다. 정말로 최악이야.
"아, 맞다. 광현친구."
으윽. 왔다... 분명히 자신을 속인것에 대해 보복이...
"좀 전에는 고마웠어요∼ 교장 선생님도 참 급하셨나봐요∼"
응? 무슨 소리야?
내 의문에 묻지도 않은 걸 떠벌이는 여교사.
"저기 있죠. 저 부서진 소나무. 저거 이제야 치우실 결심을 하신 모양이에요오∼ 그래서 교내 기물 담당인 저를 부르신거에요∼"
......교장 선생님... 나... 이제야 당신의 위대한 학생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그렇게 마음속으로 교장에 대한 감사의 말을 던지고는 대충 여교사에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괜히 더 오래 머물렀다간 [모국어] 건을 저 여자가 떠올릴지도 모를일이니까.
우리들의 교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갑자기 유라가 날 불렀다.
"광현. 조금 전의 그 남자."
남자? 아아. 조금전에 내가 안내해 줬던 녀석 말인가?
"어. 걔가 왜?"
내 반문에 그녀는 사뭇 진지한 눈 빛으로 말했다.
"보통 인간이 아니야. 마나의 파장만으로 따지면 광현과 거의 엇비슷한 정도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다, 일부러 자신의 마나를 과시하는 건지, 무의식중에 그런건지는 몰라도, 그 파장의 제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다음에 그 남자를 또 만나면 충분히 경계하도록 해."
그 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글쎄에. 그 녀석 뿐만이 아닌걸. 적어도 이 학교내에만 우리를 제하면 최소한 3, 4명. 그리고 이 일대 전체로 본다면 대략 20여명에 가까운 숫자의 '능력자'들이 모여있어. 능력이야 다들 들쭉날쭉이지만."
수아였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그녀는 계단난간에 걸터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유쾌한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수아와는 반대로, 유라는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르 시아. 그건 무슨 뜻이지?"
그 질문에 수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고는 난간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유라의 질문에 답했다.
"말 그대로의 뜻이야. 자신의 힘에 자각을 가진 녀석들과 자각이 없는 녀석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폭탄더미 한 가운데 서 있는거나 마찬가지지. 자신의 힘에 자각이 없는 녀석들이 언제 각성해서 폭주해댈지 모를 일이고. 자각이 있는 녀석들이 어느순간 다짜고짜로 덤벼들지 모를 일이고 말야."
음... 그건 조금... 아니, 상당히 심각한데.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그런 나의 질문에 수아 녀석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 덤벼들면 후려쳐내는 거고, 얻어맞으면 몇배로 두들겨준다. 그게 광현 오빠의 좌우명 아니었던가?"
음.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자각이 없는 녀석들의 경우에는 얘기해서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나는 마법도 못 쓰는 상태고, 너도 일단은 인간의 몸이라 상처가 완전히 다 나아버린 것도 아니고. 유라도 이전의 그 건으로 만전의 상태도 아니고. 이 상태로 적들만 계속 불어나면 불리한건 우리라고. 아직 쥬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말야."
내 그 의견에 유라가 답했다.
"나쁘진 않지만, 자각이 없는 인물을 어떻게 식별해?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음......
그 말에 할 말을 잃고 생각에 빠진 내 귀에 수업 시간 종료를 알리는 차임이 들려왔다.
별 달리 뾰족한 수도 나오지 않기에, 우리는 그대로 교실로 향하기로 했다.
어찌되었건, 교섭을 해볼 첫번째 대상은 좀 전의 안경녀석. 남 우석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녀석이 되겠지.
겨우 조금은 일상적인 생활을 되찾았나 싶었는데 말야. 가면 갈 수록 문젯거리가 늘기만 하네...
제 2 화 Give & Take - 자매 (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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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광현군. 내용이 정리가 안된다는 문젯거리가 늘기만 하는구나.[끌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