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Fairly Garden[1-흙의 노무中]
2004.03.07 22:27
"여긴...?"
평범한 도시였다.
늘어서져 있는 빌딩들과 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와 버스들이 오고가는 넓고 커다란 도시.내가 사는곳과는 전혀 다른 그런 도시.수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전혀, 내 기억속에 본적도 없는 도시.
"이런..지하철 역을 잘못 내렸나."
하고 태연히 등을 돌렸을때에는.
저 계단 밑, 그러니까 지옥불이 기다리는 지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저 계단 밑에서 내 영혼을 받으러 온 저승사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눈을 자세히 보니...오호라?목숨을 걸었는걸?
저승사자의 주먹이 얼굴에 작렬하려 할때, 그저 옆으로 살짝 비켜주자 저승사자..그러니까 그 날라리 소녀는 비틀 하고 균형을 잃어버린다.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쪽을 보고서는..(본다기 보다는 째려본다는게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알수없는 소리를 내지른다.
정말로 알수 없는 소리다.'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인가.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 날라리 소녀는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고서는, 이내 훌쩍이길 시작했다.
"이, 이봐.."
식은땀이 흐른다.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내가 울린게 아니라고.그러니까..내가 뭐한다고-!!
"저게 뭐하는거야..?"
"남자한테 차였나...?"
"어쩌면 임신한걸 알아챘을수도..."
여러가지 웅성거림이 들린다.
아아, 그러니까..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하지?그러니까..
"저, 저기..이봐요.일어나라구..."
"아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날라리 소녀가 울부짖는 소리에 관객들 모두가 움찔, 하고 한걸음 물러선다.'아프다'음..아픈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아무레도 그런게 문제가 아닌것 같다.이럴때는 역시...
"저기..미안."
일단은 사과부터 하고.
"정말로 미안한데.."
한숨 돌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잘있어!"
라는 말과 함께.
난 뒤돌아 지하철 안으로 다시 뛰어 갔다.
아무레도 이걸로 난 완벽하게 그녀석에게 '지하철 치한'으로 각인될것 같았지만..뭐, 더이상 만날 일은 없겠지.만나는 기회가 있더라고 내가 피할거야!!
라는 맹세를 하고 지하철에 올라 타고서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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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ly Garden,
Chapter.1 흙의 노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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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낡아버린 대문이 쾅!하고 닫힌다.
이번에 집주인이 새로 페인트칠 했을텐데..또 페인트가 떨어져 여기 저기 페인트 껍질들이 널부러져 있다.뭐, 내가 신경쓸 상황은 아닌것 같지만...
집을 반바퀴 돌아 담장과 건물 사이에 있는 조그만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해는 이미 뉘엇 뉘엇 넘어가고, 저녁은 이미 막 지나가고 있었다.노을도 사라진채 어둠이 찾아오는 거리, 그러니까 집앞 문 앞에서..
쭈그려 있는 그사람을 발견했다.
"아.."
나의 시선을 알아채고서, 알수없는 신음소리를 내는 메이드복 차림의 여자아이.
뻔한 전개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건.
"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약간 망설였는지, 약간 말을 더듬고서는 말을 다시 이었다.
"저, 저기!저녁식사는.."
"돌아가라고 했을텐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진심의 말이 흘러나왔다.그 한마디에, 그녀의 표정은 얼어버렸다.
"저, 녁 식사..를.."
"그런건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본가에 연락해서 데려가라고 할테니까."
이것은, 진심이다.
낡아버린 문에 걸려져 있던 열쇠를 풀고서는, 문을 열었다.
열자 마자 보이는 한적한 부엌과, 왼쪽에는 큰방으로 가는 문이 하나.그 방을 넘어서면 더 안쪽방에 침대가 있겠지.바로 그곳에 몸을 눕히...
툭.
무거운것이, 몸을 감쌌다.
잠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고, 뒤를 돌아봤다.
내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메이드 복장의 소녀.
"더이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고 싶진 않아.."
꼬옥.
안는 그 힘이 그렇게 세게 느껴지지 않는데도..그 힘에는 '의지'라는 것이 담겨져 있는것 같았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돌아가"
차갑게 말했다.
"어, 어떻게 만난..사람인데.."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가"
다시,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내 등 뒤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는 더욱 힘을 줄 뿐이다.
옛날 이야기가 뒤통수를 스쳐간다.
하나, 하나, 하나.하지만 그런것들 보다 더 내 머릿속을 오래 머문것은..'그것'을 버려야 했던 그때.
가지지 못한다면, 증오한다.
"돌아가..라니까!"
팔을 휘둘러 그녀를 떨어뜨리자.힘없이 소녀는 담장의 벽에 쿵, 하고 부딪쳐 버린다.
그런 그녀를..잠시 내려다 보다가 이내 쾅!하고 낡은 나무문을 닫아버렸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훌쩍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니아니, 숨소리 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잊지 않았다.
전화기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본가의 전화번호를 눌렸다.
울려오는 신호음.
달칵, 하고 누군가가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긋히 늙은듯한 아주머니의 목소리.
할머님의 목소리가 아니다.
"저기..거기.."
"아, 진혁 도련님이시군요."
지긋히 늙은듯한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문중의 '개'인가.
"주인마님은 지금 있지 않으십니다."
"없어..?"
"네, 잠시 요양 가셨습니다.언제 돌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요양가신곳으로 연결시켜 드릴까요?"
요양..?
할머님, 또 편찮으신건가..그렇다면 역시 방해하지 않는게 좋겠지만..
"괜찮아요, 할머님 돌아오시면 그때 제게 연락해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그럼.."
달칵.
아무렇게나 수화기를 놓아버린다.
아니, 던져버렸다고 하는게 더 좋은 상황.
개같아.
정말로 개같아.
문중?가문?그따위것..
"뭐가 대수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하지만 의식하지는 않는다.
이 문중 사람이 이 집안의 주인도, 의식하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다면, 증오한다.
몇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가문도, 사람도, 마음도, 부귀도, 가지지 못한다면 증오한다.몇년을 그렇게 살아온것이다.하지만..여자만은 다르다.
그래, 여자도 가지지 못하니까 증오한다.하지만..그 '가지지 못한 것'은 여자가 아니다.아니, 애초에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다.'가질수 없던 것'이였지.현세에서는 가져서는 안되는것을 가졌기에, 난 그것을 버렸다.
피곤이 몰려온다.
고등학교 생활 따위에 적응이 안된 덕분인가...내일은 토요일.학교 보강공사 덕분에 쉬는날.하지만 그래봤자 방학만 줄어들 뿐이다.뭐..나에겐 양보단 질이겠지만.타이밍은 언제나 오늘처럼 좋아야 한다.
괜히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겹치면 곤란하니까...
몸을 침대위에 던졌다.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그저, 자고싶을 뿐이다.
"이오르..이오르..!!"
철컹, 철컹, 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묵직한 쇠사슬이 바닥과 벽을 치며 피부에 맞대어져 간다.
어둠속의 공간, 가라앉은 공기.하지만 그 가라앉은 공기는 한 소년의 비명소리..아니, 울부짖음에 이내 곧 붕 떠올라 버렸다.
"이오르!가, 감히 날 떠나버리다니.."
소년은 어두운 공간속에 쇠사슬에 묶여져 있다.
크고 무거운 쇠사슬에, 양손과 양발이 묶여진채로, 그곳에서 벗어날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하지만, 그 울부짖음은 육중할듯한 한 남자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잠시 폭주를 멈췄지만..
"노무, 흥분하지 마라.이오르는 자신이 있어야 할곳으로 돌아간것 뿐이야.자신을 만들어낸 파더(Father)가 있는곳으로 말이다."
이내 곧 다시 울부짖었다.
"시끄러워!!헛소리 하지마!!감히, 나, 나의 이오르를 가로채다니..!!"
"바보같은 녀석, 이오르에게 파더와 너를 비교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이오르에게 있어서 파더와 너를 비교한다면..분명 네녀석은 눈길 조차 받지 못할것이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나의 이오르를!!돌려줘, 나만의 이오르를!!아무도 건들지 못해!!아무도!아무도 아무도 아무도!!너희들도 그 아이에게 손가락 까딱하지 못하게 하겠어!!"
"불량품인 주제에..."
그 목소리에.
어두운 공간속에서 푸른 빛이 번쩍, 하고..소년은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통증에 점점 익숙해 지는것 같군, 한가지만 말하지.우리들은 너같은 괴물을 만들려고 하질 않았다.몇천만 볼트를 견뎌내는 너같은 괴물을 만들려고 하질 않았어.우리들이 원하는건 완벽하게 만들어낸 '인간'이다.만들어 진 자는 만든 자의 명령에 복종하는..우리는 그런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낼 뿐이다.그럼에 있어서 네놈은...불량품일 뿐이야"
마지막, 그 차가운 말투에.
어두운 공간의 소년은 질렸다는 듯이 다시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곧 그 비명소리를 차츰 사글어 들자....
"닥쳐!!개자식!!"
"넌 연구 샘플로 남아있을 뿐이다.앞으로 나올 너희들의 동생들..죽음까지 내몰아져도 파더의 말에 절대복종 하는 너희들의 동생들을 위해서 넌 남아있을 뿐이다.그런게 아니면..네놈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야"
"이오르!나의 이오르를 내놔!!"
"시끄럽군, 통제반.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그 명령에, 스피커에서 나온 목소리는 간단히 승낙하자.
어둔운 공간에서 소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철컹..철컹..하는 쓸쓸하게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뿐.
소년의 눈에서는, 쓸쓸한 눈물이 흘렀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아무리 혓바닥을 놀리고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처참히 비명을 질러봐도, 처절하게 도움을 요청해봐도 바람소리 하나 나오질 않는다.
이것이.
실패작인 호문 쿨러스..
노무라는 이름의 소년은.
그저 온 몸을 차가운 쇠사슬에 맡기고 몸을 추욱
이번 글은 좀 가벼운 분위기인가 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