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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57

2008.06.22 12:44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97

"으응..."

작은 신음 소리.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막 정신이 든 것인지 잎새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깨어났어?"

".... 고마워."

내 물음에 잎새는 사이에 있을 대화를 모두 생략해 버린 뒤 그런 말을 건넸다.
아마도 자신이 병원에 와 있는 것을 알고는 상황을 눈치 챈 것이겠지.

하지만 난 도저히 그 감사를 그대로 받아줄 수가 없었다.
애시당초, 그 건강하던 잎새가 저렇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이니까...

"미안해."

그렇기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잎새를 힘들게 한 것.
그 것도 모른 채 잎새를 원망했던 것.
지나치게 늦게 알아챈 것.
그 외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아니야."

하지만 잎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이전과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예전에 본, 강했던 잎새의 모습 그대로였다.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

".... 많이 변했네."

잎새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아려오는 가슴에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잎새는 혼자서 힘들어 했던 걸까?
그렇게 말 없이 내 곁을 떠나가게 될 때까지 얼마나...

스스로를 탓한다.
그 기간이 얼마이건, 그 사이에 있었을 잎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
잎새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피식 웃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요즘, 나 말고 만나는 사람 있나봐?"

".... 뭐?"

"헤에. 역시 그렇구나..."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에에, 아무리 남자같이 굴었어도, 나도 여자다? 그 정도 감은 있다고."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잎새는 그렇게 답했다.

"너라면, 그 때 이후로 방에 틀어박혀서 세상 다 산 것처럼 궁시렁 댔겠지. 하지만 지금 보니까 표정이 밝아. 응. 그래서 넘겨 짚어 본거야."

말문이 막혔다.
잎새의 말 그대로였다.
난 에렐을 만나기 전 까지 틀림없이...

"바보. 넌 옆에서 보면 다 보여. 그런 것도 모를까봐?"

".... 미안."

말문이 막혔다.
너란 여자는 대체...

"왜 미안해 하는거야?"

"그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잎새 역시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경 쓰지 마. 널 차버린 것은 나니까. 그렇지?"

"... 하지만..."

하지만 그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잎새는 손가락을 들어, 그 말라버린 손가락을 들어 내 잎술에 대었다.

"이제 그만, 더 이상 말 하는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실례야."

잎새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웃는 얼굴은 웃는 것 같지 않았다.
잎새가 나에 대해 잘 알 듯이, 나도 어느 정도는 잎새에 대해 알 것 같았다.

".... 미안해."

"사과 하지 말래두."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쿡쿡 하고 웃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으려니 잎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자아, 그럼 이제 깨어났으니 넌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지?"

".... 무슨 소리야? 지금 몸도 안 좋으면서. 좀 더..."

"어허. 아니라니까."

잎새는 짐짓 훈계하는 듯한 투로, 장난하는 듯한 말투로 내 말을 끊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만 돌아가. 부모님께 연락하면 될 일이기도 하고...."

"잎새야..."

"... 그리고..."

무언가 작게 중얼거린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
하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혼자 있고 싶어...' 라고...

"... 응..."

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몇 번이고 다시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있는 것은 오히려 잎새를 힘들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갈께..."

"응. 그래."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아도, 잎새는 이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저, 침대 시트를 움켜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 미안해."

한번 더 사과를 건넨다.
나의 작은 혼잣말이 잎새의 귀에 들어갔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마음만은 전해지기를..
그러기를 바라며, 병실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운 듯 하면서도 무거운...
그런 복잡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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