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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B #6

2008.06.22 09:10

빨탕 조회 수:288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면서 확실해지는 모습. 새하얀 백발에 새하얀 원피스, 그리고 새하얀 피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그녀는 천천히 내게 걸어오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귀신은 아니였다. 유령역시 아니였다. 그녀의 미소에서는 인간적인 정이 느껴졌고, 그녀릐 손길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어설펐으니까.
소녀?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가려진 그녀의 백옥 같은 얼굴은 소녀보다는 성숙하고, 아가씨보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키도 어쩌면 나보도 커보일지도 모른다. 그야… 그녀의 온몸은 마치 해골처럼 바짝바짝 말라 있었으니까.

“어서와, 하랑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내 손을 잡았다.
뼈와 가죽밖에 남지않은 손은 차갑다. 그리고 딱딱했다. 부드러운듯해 보였지만, 그 느낌을 뼈밖에 남지않은 손가락이 절실하게 느껴줄수 있을리는 만무했다.

“생각보다 빨리와서 놀랬어.”
“……너는.”

누구야?
그렇게 물어보려했지만 그녀는 그 마른 몸을 내게 안겨왔다. 푸욱, 그녀의 가슴에 내 가슴에 닿았고, 그녀의 입김에 내 뺨에 닿았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코끝을 간지럽혔고, 그녀의 날카로운 손끝이 옆구리를 지나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 품에 얼마나 안기고 싶었는지.”

그녀의 입술이 뺨을 타고, 턱선을 타고, 목선을 타고 쇄골로 내려오며. 조심스레 그 코끝을 가슴에 파묻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미친듯이 두근거린다. 그런 기분을 억누르려 했지만, 멈추지않는 심장은 시끄럽게 달리고 있었다.
그만둬… 이런건, 싫어.

“먹어버리고싶어.”

그녀의 어깨를 힘껏 민다. 그러자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순간 미안하다, 며 사과를 하려 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난 이여자를 모른다. 한번도 보지못했다. 기억속에 남아있지도 않다. 설령 보았다면 이렇게 인상적인 여자를 잊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둘은 초면이다.

“……넌, 누구지?”
“아파라아…….”

질문에 대답해주진 않았다.
그저 그녀는 뼈밖에 남지않은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힘들게 일어났을 뿐이다.

“너무해…….”
“누구냐고 묻잖아.”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서 글썽글썽 눈물이 맺힌다. 약해질순 없지, 난 포기하지않고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 그렇구나. 하랑이는 날 모르지. 미안해, 미안해 하랑아. 너무 기뻐서 그랬어. 이해해줘, 이해해줄거지? 하랑아? 응?”

나는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그저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날 올려다보고있는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이 여자가 이 저택의 주인? 설마. 그녀의 눈에 살기같은건 보이지 않는다. 살인자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 말하자면 언젠가 만나보았던 사촌동생 같은 느낌이였다. 언제나 끌어안기고, 매달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가련한 여동생 같은 여자였다.

“하랑아…….”
“혜지는 어딨어.”

본론부터 들어가자.
난 네가 누구인지 관심없어. 난 그저 혜지를 데리고 돌아갈 뿐이야.

“……혜지?”
“서혜지 말이야. 분명 네가 데리고 갔을텐데?”

난 주머니에서 차갑게 식은 살색 점토조각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땡그랑, 마치 유리조각처럼 바닥을 구르는 점토조각. 나와 그녀는 그것만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건 그녀였다.

“아, 이건 우리집의…….”
“그래, 분명 주인은 너겠지? 그 인형을 혜지에게 보낸건 너겠지? 서혜지 그녀석은 내게 들키지않을려고 인형을 치웠겠지만, 아마도 그 조각이 침대밑에 떨어진것까진 확인하지 못했겠지.”

그녀는 점토조각을 한손으로 주워들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무슨생각을 하는걸까? 가끔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고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긴 한마디는.

“응, 이거 내꺼야. 내 인형들 꺼야.”

그녀는 베시시, 하고 웃었다.
조금은 김이 빠지는 느낌이였다. 피비린내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등 뒤의 참혹한 광경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 앞에 있는 여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웃고있을 뿐이였다.
상상했던것과는 다르다.
나는 좀 더 그녀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저기있지…….”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서 바닥에 주저앉아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소미.”
“소미? 성은?”
“소 미 야.”

뿌우, 조금은 화난듯이 말하는 그녀.

“알았어, 소미야.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
“응! 하랑이가 묻는거라면 뭐든지 대답할거야.”
“혜지는 어딨어?”

내가 다시묻자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잠시만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고 몇초가 지났을까,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는 은쟁반을 구르는 조그만한 유리구슬처럼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는곳은… 등 뒤에있는 방이였다. 시체와 벌레와 피가 난무하는 그 방, 더 이상 들어가고싶지 않은 방.

“정말이야?”
“소미는 거짓말 하지않아.”

그 말이 끝나는것과 동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 뒤로 돌아갔다. 아직 익숙해지지않은 피비린내, 엉덩이와 허벅지, 그리고 발끝의 끈적거림.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방문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섰다.
냄새는 더욱 심했다. 이 방에서 단 한치만 있어도 졸도할것만 같았다. 나는 한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서는 앞으로 전진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인간의 시체, 이것은 여자의 시체. 저것은 남자의 시체. 하지만 척봐도 여자의 시체가 훨씬 더 많았다. 모두가 팔 다리가 잘린채로. 목도 없는채, 그저 몸통만이 천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오래된듯 했다. 벌레가 끼어있는건 기본으로 새카맣게 썩어가는것까지. 참아야된다. 이걸 참지 못하면, 나까지…….

“…우윽.”

참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안나올텐데… 손바닥에 흥건한건 끈적끈적한 침방울 뿐이였다.

“…젠, 장…….”

어딨는거야, 서혜지. 서혜지. 어딨어?
시체의 숲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드디어 도착한 곳에는 수술실처럼 커다랗고 쇠로된 수술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많은 공구들이 있었다. 식칼, 도끼, 전기톱, 저것은 해머. 모든것이 그 한방만으로도 사람을 죽일수있는 흉기들. 그리고 수술대에 다시 누길을 돌리자, 낯익은 소녀가 있었다.

“서혜지!”

잠옷차림은 온데가데 없고 속옷까지 전부 벗고있었다. 그녀의 새하얀 속살과 가슴, 음부가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용케도 주위에 벌레가 몰려들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나는 그녀에게 좀어 다가가 입고있는 교복의 셔츠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그녀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서혜지! 야! 서혜지! 일어나! 빨리 일어나서 여기를 나가야돼!”

그녀는 눈을 뜨지않았다. 온몸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설마? 설마? 나는 그녀의 손을 만져봤다. 차가웠다. 열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코에 손가락을 대봤다. 조금씩 숨을 쉬고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슴에 귀를 대자… 희미한 심장박동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살아있다. 이대로 그녀를 데리고 나가면 된다.
그걸로 된것이다.

“그게 왜?”

낯익은 목소리.
등 뒤를 돌아보자 흰색의 여성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이전에도 볼수없는 퀭한 눈빛이였다.

“소미야, 부탁해. 우리 이대로 보내줘.”
“왜?”

그녀의 손에는 굉장히 이질적인 물건이 들려있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으로는 절대로 들수없는 것이 들려있었다. 커다란 전기톱, 그 전기톱은 그녀의 손짓 하나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엔진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 요란한 소리가 방안에 한껏 울려퍼진다.

“어째서?”
“소미야!”
“그건 인형이여야돼.”

부르르르르르릉, 그 요란한 전기톱 소리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하랑이의 옆에 있어야되는건 나야. 하랑이의 손을 잡을수있는것도 나야. 하랑이의 첫키스 상대도 나여야하고, 하랑이의 첫경험 상대도 나여야돼.”

그녀는 웃고있었다.
일생 보지못했던 쾌활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새하얀 맨발이 피바다를 물들인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가 벌레들의 날개짓 소리를 전부 끊어버린다. 나는 이미 정신을 잃고있는 혜지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그건 인형이여야돼. 넌 그저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못하고 나와 하랑이의 사랑을 그 두눈에 새기면 되는거야───!!”

콰직!
그녀의 전기톱이 허공을 가른다. 그와 동시에 전기톱의 칼날에 닿은 이름모를 그녀의 시체가 절단되었고, 그 절단된 단면에서는 새카만 피와함께 말로 형용할수 없는 액체들이 소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적시며 물들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가 한걸음 내딛는다. 무거운걸 들고있어서 그런지 그 한걸음 한걸음이 힘겨워보였다. 그렇다면, 따돌릴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않은 혜지를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무겁다… 이대로 그녀를 따돌릴수 있을까?

“하랑아”

소미의 목소리.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고쳐잡은채 전력을 다해 시체의숲을 달렸다. 돌아온길이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보이는대로 도망쳤다. 그러다보면 벽이 나올것이고, 그 벽을 따라 도망치면 되는것이다. 그래, 코너에 몰리지만 않으면 된다. 나도 행동의 제약이 있듯이, 그녀도 행동의 제약이 있다.

“어디가.”

냉랭한 목소리.
한숨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자, 천장에 달려있는 시체들을 하나 둘 전기톱으로 잘라가며 다가오는 그녀가 보였다. 새하얀 머리카락, 그것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난 다시 숨을 고르고 달렸다. 이름모를 시체의 어깨가 내 어깨에 부딪힌다. 넘어질뻔 했다… 하지만 아직 달릴순 있다.

“젠장…….”

목숨을 건 레이스.
이것보다 더한 달리기 시합은 없을것이다. 뒤쳐지면 죽는다니, 세상에 이런 달리기 시합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손에 꼽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겠지 아마도.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세계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날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난 행운아인가?

“사랑해 하랑아.”

불행아다.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것일까?
당사자중 하나인 나 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릴정도의 질문이였다.

“사랑해 하랑아.”

귓속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저 멀리 시체를 하나 둘 잘라가며 오고있었다.

“먹고싶어, 하랑아.”

소름이 돋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달릴수밖에 없었다. 혜지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이제까지 봐왔던 그런꼴이 될것이고, 난…….

“하랑이의 입술을 씹어먹고싶어. 하랑이의 볼을 삼키고 싶어. 하랑이의 가슴을 입에 넣고 몇번이고 혀로 굴려 목 뒤로 넘기고 싶어. 하랑이의 손으로 자위하고싶어. 하랑이의 발을 핥고싶어. 하랑이의 머리카락으로 목도리를 만들어 겨울이되면 소중하게 목에 두르고 싶어. 하랑이의 온몸을 핥고 싶고, 하랑이의 온 몸을 뱃속에 넣고싶어. 하랑아.”

머리가, 어지럽다.

“하랑아.”

통로가 보였다. 그곳으로 도망치자. 우선은 이 방에서 나가야된다. 이 방에서 나가서 거실을 지나 다시 복도를 돌아 집밖으로 나와서 다른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이 지옥 같은 저택에서 나간다면 살아남을수 있다. 나의 승리다. 혜지도, 나도, 살아남을수 있다.

“하랑아.”

쫘아아아아악, 복도에 다다르자 신고있는 샌들이 미끄러웠는지 그만 넘어질뻔 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혜지의 얼굴을 보았다.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녀석 어떻게 된거야! 얼른 일어나야 될텐데!

“하랑아.”
“서혜지!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혜지의 뺨을 수차례 때려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는 감감 무소식이였다. 아직도 꿈나라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다. 어쩔수 없지, 이대로 데리고 나가자.
난 복도를 달려 거실로 향했다. 불이 꺼져있는 거실. 불이 꺼져있다 하더라도 대충 길은 기억한다. 그러니까…….

“꺄악!”

발을 디딜려는 순간 넘어져버렸다. 카펫에 걸린것일까? 난 그만 혜지를 땅바닥에 내팽개쳐버리게 되었고, 난 팔꿈치와 무릎의 아픔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숨이 가쁘다. 아무리 체육점수가 좋다하더라도 여자아이 하나를 안고 그렇게 뛰었으니, 지칠만도 하────

“잡았다♡”

콰지이이이익! 마로 머리위에있는 소파의 등받이가 흔적도 없이 날라가버렸다. 등 뒤로 돌아보자, 그곳에는 새하얀 악마가 있었다.

“하랑아.”

그녀가 얼굴을 가까이 한다.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 가득 다가왔을 때,

“하랑아. 키스해도 되지?”

난 아무말도 하지않고 눈을 크게뜨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입에서는 그저 거친 숨만이 뱉어져 나올 뿐이였다. 그녀의 입술 사이에, 뱀 같은 혀가 삐죽 튀어나왔다.

“몇번이고 혀로 농락하고 싶어.”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린다. 그녀의 혀가 뺨에 닿았다. 끈적한 침이 뺨선을 타고 흐르고, 그녀의 따끈따끈하고 끈적끈적한 입김이 코에 닿았다. 어째서일까? 좋은 냄새다.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끝인가? 이걸로 끝난것일까?

“하랑아.”

그녀의 혀끝이 뺨선을 타고 목덜미에 이른다.

“…하앗!”

가벼운 키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 야한 얼굴. 사랑스러워, 하랑아.”

시동이 꺼져있는 전기톱을 왼손에 쥐고, 남은 오른손으로 그녀는 티셔츠 안쪽을 더듬고 있었다. 차가운 손길이 살결에 닿는다. 입밖으로는 자꾸 이상한 신음소리만 내뱉을 뿐이다. 그녀의 날카롭고 차가운 손끝이 내 살결에 닿을때마다, 나는 참을수 없어 온몸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하랑아, 흥분돼?”
“아, 아냐… 읏!”

그녀의 손이 브라도 되어있지 않은 나의 가슴끝을 쥐어잡는다.

“그런데 여긴 이렇게나 딱딱해져 있는걸?”
“…아앗! 으윽…….”

빙글빙글빙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듯이 손끝을 돌리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어금니를 꼬가 깨물어 아무 소리도 입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참고있었지만, 결국 소리는 닫힌 입에서 억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읏, 읏, 읏… 신음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도 이렇게 축축해져서.”

이젠 그녀의 손길이 허벅지 안쪽을 더듬는다. 그녀의 손길은 꽉 끼는 팬츠밖에 입지않은곳은 향해 새하얀 거미처럼 천천히 기어오고 있었다. 안된다, 거기만은 안된다. 거기만은 절대로 안된다. 그곳만은───,

“꺄악!”

난 있는힘껏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허벅지 안쪽에선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걸 신경쓸 시간은 없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쓰러져있는 혜지의 곁으로 물러났다.

“왜!”

알수없다는 듯이, 소미의 절규가 들려왔다.

“하랑이도 좋아하잖아!”

아직도 떨리고있는 내몸을 내려다봤다. 아직도 흥분해서 가라앉이않은 가슴을 내려다봤다. 이제 됐으니까, 그만해라. 하지만 숨은 더욱 가빠졌만 갔고, 날 의지하고있는건 마지막으로 남은 한줄기의 이성이였다.

“아니지?”

그녀가 물었다.

“날 싫어하는건 아니지?”

무너지듯 그녀가 말했다.

“하랑이까지 날 싫어하는건 아니지?”

나는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볼뿐이였다.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대답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묘하다, 아마도 분명 미묘할것이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니까,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 이런기분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섣불리 사랑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안좋았다. 그녀는… 살인마다. 성원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다.

“하랑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한다 해줘. 사랑한다 말해줘.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세상 누구보다더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고.”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넘쳐 흘렀다.

“요하랑───────!”
“거기까지입니다.”

요란한 발소리, 그리고 수많은 인기척.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새카만 그림자. 거실의 불을 켜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고를 덜었다. 순식간에 누군가에의해 거실의 형광들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눈이 부시는걸 참지못하고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잘해주셨습니다. 하랑양.”

귀에익은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역시…
김세연 경감.

“이곳을 의심하긴 했지만 섣불리 집으로 들어올수가 없어서요. 하랑양이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눈을뜨자, 거실은 수많은 경찰들이 둘러싸고있었다. 그들은 전부 품에서 권총을 꺼내 소미를 조준하고 있었고, 그녀는 울음을 멈춘채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놀란 얼굴이였다. 절대로 놀란얼굴이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
“경찰이다.”

김세연경감이 대답했다.

“흉기를 버리고 얌전히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경찰이 협박이라니…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있었다.

“하랑아?”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무슨일인지 영문을 몰라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눈에 눈물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눈물로 말했다. 이게 무슨일이야? 도와줘, 살려줘. 하랑아, 하랑아. 도와줘. 제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을뿐이였다.

“하랑아…….”

그녀가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손에는 전기톱이 들려있는 채로였다. 그녀는 그저 그 흉기를 휘두를 생각없이, 바닥에 질질 끌며 내게로 다가오고있었다.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이제 막 모두의 기대를 안고 땅에 서는 아이처럼. 카펫은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고, 넘어져도. 그녀는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미야…….”
“도와줘, 하랑아.”

그녀는 울컥, 울음을 터뜨렸다.

“도와줘.”

그녀가 두손을 뻗는다. 안길려는 셈일까?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녀는 어쩌면 온기가 그리울 뿐일지도 모른다. 차갑게 식어버린 자신의 몸에 따뜻함과 살을 덧붙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사랑받고싶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두손을 뻗었다.

“하랑아─,”

그녀가 기쁜듯이 뛰어들었다. 그녀의 눈물이 허공에 춤추며 사라져갔다. 아니, 아마도 그럴 참이였을것이다.
그 굉음만 뺐었더라면.

타앙─!
엄청난 불빛이였다. 밤하늘 아래를 전부 밝힐만한 밝은 불빛이였다. 그리고 그 불빛이 거실을 뒤덮는것과 동시에, 눈 앞에 있던 새하얀 여성은 몸을 비틀며 어디론가로날라가 버렸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넘어졌을지도 모르니까. 발 밑을 내려다 봤다. 그곳에는…….

“정반장──!!”

날카로운 김세연 경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 뒤로 돌아보자… 연기를 뿜고있는 총구를 들이댄채로, 정재윤 반장이 새하얗게 질린채 서있었다.

“이, 이건, 그러니까, 경감님…….”
“허가도 없이 발포를 하다니!”

김세연 경감은 그에게로 다가가 총을 빼앗고선 곧바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힘없이 무너지는 정재윤 반장.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다시 소미를 찾아 눈동자를 굴렸다. 아… 눈치채지 못했다. 바로 발밑에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채.

“…앗.”

입밖으로 탄성애 내질러진다. 그리고 난 결국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핏물들이 종아리와 무릎을 적시고 있었다. 따뜻하다, 아직 따뜻하다. 이것은 그녀가 방금전까지 살아있었던 증거다.
사랑을 했었던 증거다.

“…아앗.”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수미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있었는지는 모른다. 눈물섞인 눈동자가 무엇을 봤었는지는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게 있다면… 지금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것은,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였다.

“…우윽.”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을까?
입을 훤한히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는 완성되지 못했겠지. 이것으로 끝이니까. 이걸로 끝났으니까.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두 뺨을 쥐었다. 아직 온기는 남아있었다. 차갑지 않았다. 그녀의 뺨은… 그 무엇보다도 뜨거웠다. 그 뜨거운 뺨에 나는.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그녀도,
사랑을 한 소녀니까.




1화만에 돌아가신 소미양.

저렇게 보여도 설정상 약 29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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