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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B #이제 시작

2008.06.20 11:48

T.S Akai 조회 수:278


   눌러쓴 모자.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머리. 아직은 봄인데도 뺨까지 가린 점퍼의 칼라. 내 어깨위에 놓여진 낡은 기늠냄새가 나는 가죽장갑. 척봐도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살인사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설마, 범──......

  "이런데서 뭐하는거야?"

  생각보다 젊은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남은 또다른 손으로 모자를 벗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말쑥한 생김새를 가진 남자였다.

  "여기 살인마가 나타난다는소릴 못들었어?"
  "아니, 저기, 그게......"

  뭐라고 대답해야될까? 변명을 생각해보는 것과 동시에 등 뒤로 돌아봤다. 재생은 끝나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이런 방해자 때문에 실패인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가지 씨도 먹히지 않을듯한 변명을 생각해내 말했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었어요."
  
  의아한 표정으로 보는 남자. 그는 얼마가지않아 주머니에서 새카만 가죽으로 뒤덮혀진 손바닥만한 수첩을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궁화, 경찰이였다.

  "지갑은 보이면 연락해줄게. 그러니까 연락처가......"
  "괜찮아요. 어차피 안에 든것도 없는데."

  그렇게 대충 둘러댔다. 귀찮은일은 질색이다, 특히 경찰과 얽히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벚꽃지는 가로수를 뛰쳐나왔다. 골목길에는 듬성듬성 가로등만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힘없는 발걸음, 절로 한숨이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방해만 없었으면 볼수 있었을텐데, 범인의 얼굴을. 범인의 목소리를. 범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 생각하지 못했어. 살해현장이니까... 경찰이 잠복해있다는것을. 다음부터는 좀 더 기다려서......
  난 그렇게 생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 아무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갔고,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채 그대로 침대위에 쓰러져 버렸다.




-
  지각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어.
  어째서일까? '추억재생'을 한 후 다음날은 어김없이 지각을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꼭 지각을 하지 않더라도 일어날려고 한 시간의 한두시간 후에 기상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젠 일일히 지각하는데에 신경쓸때는 지나가버린듯한 느낌이 든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왔다. 시각은 8시를 조금 넘긴시간. 교문을 통과해야할 시간은 이미 지났다. 늦어버렸으니 1교시 전에만 들어가면 되겠지. 난 대충 세수만 하고 이빨만 닦은채 세면실에서 나와 거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린이 방송을 보고있는 중학생 남동생이 있었다. 교복까지 입고 등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말꼬리처럼 뒤로묶은채. 저것이 중학생일까 싶지만.......

  "야, 너 지각이잖아. 학교 안가?"
  "흥, 누나가 신경쓸거 없잖아. 뭘 새삼스레."

  어제했던 말은 정정.
  이녀석은 뼛속까지 중2병의 답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으엑 누나, 설마 어제 씻지도 않고 그냥 잔거야?"

  네가 할말은 아니다 이 히키코모리야... 뒷통수의 말꼬랑지를 전부 뽑아버릴라.
  라고 속으로만 말하고선 방으로 돌아가 가방만 주워서 온다. 어차피 지각해버렸는데 그냥 가지말까... 도 생각해봤지만 아침일찍부터 나가셔서 돈벌어오시는 부모님을 생각하자면 그것도 장녀된 입장으로써 할짓이 아닐거 같다. 일단은 학교에 가자.

  "요예랑, 누나는 학교다녀온다. 그러니 너도 대문 잠그고 학교나 가라."
  "남이사!"  
  "남이 아니라 난 네 누나거든여!"

  콰앙!
  먼저 대문을 닫고 나간건 나. 차가운 아침공기보다는 띠꺼운 아침햇살이 먼저 반겨주었다. 봄인데도... 이런 아침은 싫어. 바람한점 없고 구름한점 없는 아침. 햇빛만으로는 그저 인간을 생고기로 만들뿐, 정말로 민폐인 녀석이다.
  주택의 골목은 낮일때와 밤일때의 분위기는 확연히 차이난다. 낮일땐 정도로 안락한 거리가 없는데, 밤만 되면 그렇게 음산해지니. 그래도 이 동네의 취안은 꽤 안전한 편이다. 경찰들이 순찰을 돌아주고, 뭣 하면 동네 오빠들이나 아저씨들이 대신 해주기도 한다. 모두 자신과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놀이터만큼은 누구도 접근하질 않았다.
  어느샌가 도착한 놀이터의 입구. 그리고 가로수. 샛분홍의 벚꽃잎이 쌓여있는 놀이터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그 누구도 들어가게 막아놓은 놀이터 안, 하지만 유감. 이렇게 막아놓지 않더라도 성원동에 사는 모든 주민들은 이 놀이터에 들어가지 않을것이다. 그 이유가 왠지는 모른다. 아주머니들의 수상한 소문도 퍼지질 않았다. 그저 어릴때부터 그렇게 알아왔다. 그렇게 배워왔다. 이 놀이터에는 가까이 가선 안된다. 차라리 저 근처에 있는 놀이방에있는 조그만한 놀이터에서 놀고와라. 부모님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지만 그런 내가 의문을 품지 않은것은 아니다. 한번은 엄마에게 물어본것이 기억난다. 왜 들어가면 안되냐고.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귀신이 나온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했고, 난 그 이야기에 무서워하면서도 사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서야 의문을 가져본다.
  이 놀이터안에는 무엇이 있는것일까?

  "요하랑!"

  가볍게 등을 두들기는 소리.
  낯익은 목소리에 등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혜지가 서있었다.

  "뭐야? 너도 지각이야?"
  "아하, 어제밤에 케이블TV 심야프로가 너무 재밌어서 어쩌다보니......"

  감은 머리가 아직 덜말라 축축하고 꼬불꼬불해져버린 머리를 긁적이며 혜지가 대답했다.
  서혜지, 꽤 이쁘고 귀엽기도 하며 성격까지 싹싹해 중학교 시절부터 남자아이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다. 그래도 이제까지 아무와도 사귀질 않은거보면 장하지... 친구를 잘못만나 이렇게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불량학생이 되어버렸지만, 이런 생활에도 만족하고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게 된다.

  "너 설마..."

  뭔갈 알았다는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혜지.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가늘고 날카롭다.

  "어제도 썼어?"

  굳이 주어를 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그 질문이 뜻하는바를 나는 알고있고, 그녀역시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것을 알고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묘하게 차갑게 느껴졌지만, 그건 그녀 특유의 심문 스타일이니까.

  "응, 써버렸어."
  "정말! 그거 함부로 쓰면 안되는거 알고있잖아! 그렇게 자주 사용하다보면 어떤 반동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그렇게 남발하다보면 이젠 지각하는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거라고. 거기다가 그런 위험한 영상 보면 또 위험한 행동 할까봐......."
  "괜찮아 바보야."

  난 그녀의 뺨을 두손으로 주욱 늘려봤다.
  역시 부드럽고 잘 늘어나는 뺨이다.

  "위험한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테니까."

  두손을 놓자 또 다시 푸딩처럼 원상복귀되는 그녀의 뺨. 아까와는 다른게 있다면 좀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는것 정도일까?

  "요하랑 너, 정말... 위험한짓 하면 알아서 해."
  "걱정하지 말라니까."

  조심스레 팔짱을 껴오는 그녀. 중학교 시절부터 이런 사이여서 더이상 거부감은 없지만, 딱히 연애의 감정을 가지고있는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저 편하고,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날 잘 알고 이해하니까.  

  "우리 애는 몇이나 낳을까?"
  
  그저 농담뿐인 그녀의 물음에 난 농담섞어 대답했다.

  "응... 야구팀 하나 만들정도?"

  살인마가 있다는 벚꽃나무 아래.
  우리는 조용히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
  다행히도 아직 1교시가 시작하지 않을 시간, 10분을 남기고 성원 고등학교에 도착했을때 교문에는 선생님은 물론 인기척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앗싸, 좋은 타이밍인것이다. 아마도 아침회의때문에 선생님들은 전부 교무실로 돌아간것이겠지. 꼭 교문 정문만이 아니라도 학교 안으로 들어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은 화장실에서 감고오지도 않았던 머리를 손질하고... 아휴, 찝찝해. 어제부터 시작해서 정말 찝찝한 일밖에 없다. 뭐, 아침에 혜지와 만난건 불행중 다행이였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는 복도를 거닐어 4층에 있는 교실에 도착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떠들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인사를 하려하자...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슨일이야?"

  눈치가 빠른 혜지가 먼저 묻자, 그녀와 친한 친구중 하나가 혜지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그녀는 나의 눈치를 보는듯 해 보였다.

  "그러니까, 아까 경찰들이 와서 하랑이를......."
  "요하랑 학생이지요?"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
  드라마에서만 봤을법한 뻔한 가죽점퍼를 입고있는 아저씨가 교실문 앞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짐작가는 일은 없다. 만약 있다하면 어젯밤의 일이겠지. 어젯밤이라면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경찰이 무슨 용무일까?

  "하랑아!"

  혜지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무슨일이 있냐는 것이겠지. 아무일도 없어. 신경쓰지마. 그래봤자 사정청취... 정도겠지. 어제일의. 이것 역시 대충 둘러대면 되겠지만.......

  '역시, 사실이였어.'
  '어제 원조교제 같은거 한거 아냐? 쟤 지각하는것도 한두번 아니잖아. 밤늦게 아저씨들 만나고 왔겠지.'
  '아냐아냐. 어제밤 다른학교 아이들과 싸우고 왔다는 이야기가.......'
  '바보야! 그건 아니잖아! 분명 원조교제 같은걸 하는게 분명........'
  '감히 그런 더러운 몸으로 혜지를 만지다니.......'

  모두 무시하고 난 형사아저씨를 따라가기로 했다.

  "나도 따라갈게."
  "서혜지, 넌 여기있어."
  "따라갈거야."
  "네가 상관할게......."
  "성원동 608-1번지에 사는 서혜지 양이지요?"

  또 다른 낯선 남자의 목소리.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훤칠한 키를 한 남자가 가죽점퍼의 남자를 제치고 서있었다. 꽤 큰 키였다. 180중반은 될까? 옆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게 꽤 인상적인 남자였다. 저정도면 어떤 여자라도 홀딱 반해버리겠지. 하지만 나에겐... 그저 그럴뿐인 남자였다.

  "실례지만 혜지양도 같이 가주셔야 겠습니다."

  남자는 차갑지만 정중한 어투로 혜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혜지는 무슨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바뀌어 나에게 손을 잡아왔다. 부드럽고 차가워 기분이 좋은 손.

  "서혜지, 학교에서까지 이러기는 아니다."
  "뭘, 곧 수업이라 볼사람도 없는데."

  난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 둘 천천히 풀어 헤치고서는, 형사아저씨들의 뒤를 따랐다. 복도에 울려퍼지는 구둣소리, 이윽고 도착한곳은 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활용용도를 확인하지 못했던 상담실. 분명 이름만 상담실일 뿐이지, 선생님의 휴게실이라거나 창고용으로 쓰이질 않았겠지.

  "두분 앉으세요."

  훤칠한 키의 남자가 먼저 권했다.
  상담실은 생각대로 아담했고, 생각보다 꽤 깔끔했다. 정리가 잘되는지 먼지하나 없는 환경. 소파는 선생님들이 쓰는것보다 더 푹신푹신해 보였고, 창가에 걸려져있는 커텐은 흡사 이곳이 귀여운 여자아이의 응접실이라는 느낌까지 들게했다.

  "이렇게 모시게된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훤칠한쪽의 남자가 먼저 말했다. 그는 어디서 준비했을지 모르는 커피 두잔을 들고와서는 눈 앞의 테이블에 조심스레 놔뒀다. 마시라는 소리겠지. 혜지는 우물쭈물해하는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생각없이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뜨거워...

  "우선은 전 이런사람입니다."

  그는 테이블위에 경찰수첩을 펼쳐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보여준들 우리들은 잘 모르겠지.......

  "경찰청의 김세연 경감입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금세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소개가 끝난것인지 이내 경찰수첩을 자신의 품안에 집어넣었고, 대화를 시작하기위해 준비하는 눈치였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할려는 찰나에 어째서 같이왔던 검은 가죽점퍼의 경찰아저씨를 상담실 밖으로 내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갑자기 이렇게 불러들여서 뭐라 말씀드릴것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까도 했어요."

  내 말에 그는 당황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는 그저 자비롭다는 듯이 미소지을 뿐이다. 가식적이고 인공적인 미소. 그것이 맘에 들진 않지만, 꽤 어려운 남자다...

  "생각보다 가시있는 분이시군요."
  "그런말 자주 듣죠."

  흐음...
  만족스럽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는 김세연 경감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안든다. 이런 불편한 자리 당장 뛰쳐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수가 없었다. 그는 경찰이고, 나는 학생. 그것 역시 그렇겠지만... 나의 호기심이 용서하질 않았다.

  "간단하게 할말만 해주세요... 수업 들어가야합니다."
  "오늘 두분은 수업 못들어가실 겁니다."

  그의 얼굴에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에 미묘하게 미소가 서려있었지만, 그것에서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마치 석상을 보고있는 느낌. 그런 석상이 턱을 움직이고 혀를 놀려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오늘 두분이 걸어오신 성원동 놀이터 옆 벚꽃 가로수길, 거기서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뭐?

  "시체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용의자는 전의 성원동 놀이터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과 같은걸로 추정됩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온 관절이 절단되서, 검은실이 이어진채요. 마치, 인형처럼."

  혜지 역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이 그곳을 지나간 후 직후에, 범인이 그곳에 시체를 버려두고 갔습니다."

  몸서리치는 전율. 급속도로 내려가는 체온.
  그런말을 하는 그의 입가에는, 평생 볼수없었을거같은 미소가 서려있었다.


 5편까지 써놓았긴 한데 우선은 여기까지.

천천히 올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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