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A→B #5

2008.06.21 08:59

빨탕 조회 수:262

은 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꿨는데도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뭐, 그런건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다.

“으응…….”

아직은 완전히 떠지지 않는 눈과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팔을 뻗어 바로 옆에서 자고있을 혜지의 온기를 더듬었다. 손끝은 이불자락은 건너 그녀의 살결에 닿고,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려는 찰나.
허전하다는것을 느끼고 눈을 뜨자, 침대 바로 옆에는 아무도 없없었다.
벌써 일어나서 다른걸 하고있는 것일까? 하긴, 나야 ‘재생’때문에 피곤했고 그녀는 평범한 하루일과를 하고있는 도중이였으니까. 갑자기 낮잠 자기에는 무리였을까? 그렇다면 지금쯤 일어나서 요리를 하고있다거나 다른걸 하고있겠지.

“으… 서혜지.”

이상하다. 그녀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기적조차 없었다. 아니, 그보다 저녁이 되어버렸는지, 해는 뉘엇뉘엇 져가고 있는것인지… 커튼이 쳐져있는 창문사이로 새빨간 오렌지빛 저녁놀이 비치고 있었다.
정적이 감도는 방. 나는 눈을 뜨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방안을 돌아다녔다. 아직 내 몸에는 그녀의 향기가 남아있었다.

“서혜지.”

두번째로 불러보지만 대답은 역시 들려오지 않았다.
우선은 부엌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싱크대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화장실일까? 샤워실? 둘 다 불이 꺼진채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간것일까?
무슨일이이지? 나는 가방에서 내 휴대폰을 꺼내어 기억속에 있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익숙한 그녀의 컬러링. 볼레로다. 그녀는 그저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 볼레로를 컬러링으로 지정해놓았다.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는동안 이거라도 들으면서 조금망 기다려달라는 의미였을것이다. 뭐,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가 전화할때마다 볼레로의 첫음절이 모두 끝나기도 전에 통화를 받았지만…….
빠른 피아노의 템포음.
그녀의 벨소리이자 나의 컬러링곡,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월광소나타의 3악장이 방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휴대폰까지… 놓고 가버린것인가. 나는 우선 소리가 들리는쪽으로 찾아가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자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튜닝된 휴대폰이 진동과 램프를 깜빡이며 노래하고 있었다.
오늘만큼… 이 피아노곡이 무시무시하게 들린적은 없을것이다.

밖으로 나간것일까? 그렇다면 신발장의 신발들을 확인해보면 안다. 어차피 그녀가 신는 신발이라고 해봤자 전부 내가알고있는 것일 테니까. 언제나 쇼핑은 나와 함께 갔으니까. 대부분은 알고있을것이다.
샌들, 구두, 운동화. 사놓고 발아파서 신지않는다고했던 힐. 내가 선물해주어서 아껴쓴다는 단화. 신발장에 있는 모든 신발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남겨져 있었다. 즉, 혜지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간것일까? 다시 부엌을 확인해본다. 마찬가지다. 방으로 돌아와 책상밑을 확인해본다. 이런데 있을리가 없지. 아까 소홀했던 화장실과 샤워실에 각각 들어가봤다. 생각한대로 아무도 없었다. 설마 세탁기라거나 이런데에 들어가있는건 아니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아직 꺼지지않은 월광소나타의 음이… 수없이 반복되서 울려퍼진다.

“어디로 간거야…….”

오른손에 들려져있는 그녀의 휴대폰을 있는힘껏 꽉 쥔다. 안좋은 예감이 든다. 베토벤의 피아노가 비웃듯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마와 등에서 땀이 촉촉하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초조해 하고있다, 난 지금 더없이 초조해 하고있다. 아까까지만해도 그녀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녀의 향기가 내 몸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창문으로 나간것일까? 있을수 없다. 여긴 5층이다. 아무리 그래도 보통사람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정도의 높이가 아니다. 그것도 가녀린 여자아이의 몸이래서야… 절대로 불가능하다. 차라리 세탁기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더 믿겠다.

“돌아오겠지…….”

그래, 요하랑.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어쩌면 혜지는 내가 모를사이에 샌들을 하나 사놓았고, 그 샌들을 신고 어딘가로 나갔을수도 있다. 그래, 저녁식사거리를 사러갔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라는 식객이 하나 늘었으니 반찬이 모자라다거나. 아니면 좀 더 좋은 요리를 한다거나. 그런 이유로 근처에있는 마트같은곳에 쇼핑을 하러갔을수도 있다. 그래, 난 그럼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침대에서 그녀의 향기에 취해 계속 누워있으면 된다.
하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핸드폰을 쥐고있는 오른손의 떨림. 마치 경고하는듯 했다. 난 지금 여기서 이러고있을때가 아니라고, 움직여서 그녀를 찾아라고. 그녀의 휴대폰이, 그리고 거기에 맞닿아있는 내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현관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우선은 현관 밖으로 나가보자. 그러면 이 방에서 보지못한 또 다른 광경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다시 현관문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잠금장치도 멀쩡히 달려있고, 손잡이도 멀쩡히 달려있다. 다른거라면…….

“체인이 걸려있지 않아.”

그 말은 즉슨 결국에 그녀는 나갔다는 이야기다. 문단속이 철저한 그녀다. 집에있을때도 두 열쇠를 모두 걸어잠그고 체인락은 물론 걸어놓고, 밖으로 나갈때는 체인락은 풀어놓겠지만 손잡이와 위에있는 열쇠는 분명히 걸어잠근다. 그럼…….
덜컹, 스르르륵. 현관문은 힘없이 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봄날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차갑게 식어버린 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인기척은 없었다. 그저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계단과 움직이지않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눈앞에 들어올 뿐이다. 그리고 덩그러니… 잠겨있지 않던 현관문은 무슨일인지 모른다는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혜지는 현관문을 잠글시간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신발도 신지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들기 전 보았던 잠옷차림 그대로 이 현관문 밖으로 직접 나간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나는 다시 조용히 현관문을 닫으려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느낌이 틀렸다. 말하자면, 소리가 틀렸어. 열때보다 좀 더 가볍고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까지는 모래가 껴서 그런가? 혹시 궁금해 현관문 주변을 확인해보자… 문 밖에는 예상치도 못한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수첩이다.
새카만 가죽으로 뒤덮힌 낡은 수첩이다.
대략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봐왔던 경찰수첩과는 다른 수첩. 언뜻보면 같아보이지만 경찰수첩보다는 작고 얇았다. 경찰수첩보다 더 휴대하기 용이할듯한 수첩. 난 그 수첩을 주워 펼쳐보았다.
종이는 일반 다른 수첩과는 다를바 없었다. 조금 오래돼 노랗게 변질된것만 제외하면 꽤 쓸만한 수첩이였다. 뭐라도 적혀있을까? 속표지를 넘기고 조그만한 목차 페이지를 넘기고 처음으로 볼펜으로 써져있는 글을 읽었다.

「놀이터에서 아버지를 죽였다.」

나는 두눈을 의심했다.

「등에서부터 먼저 찔렀다. 아버지가 아파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몸을 몇번이고 다시 찔렀다. 피범벅이가 됐다. 아버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새하얀 셔츠가 도화지같아 즐거웠다.」

글씨쓰는게 서툴렀을까?
그렇지 않으면 받침대없는 메모장에 아무렇게나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글씨는 여기저기 삐뚫어져 있었고, 낡아보였다. 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다음장으로 넘겼다. 빈페이지, 숨을 다시 넘기고 다음페이지로 넘겼다. 빈페이지… 수첩의 속종이에 비추는 글씨를 보아 유추해서는 다음페이지부터 또 다른 글이 있는듯 했다.
이번 일기의 글씨는… 좀 더 성숙한듯한 느낌의 글씨였다.

「성원동 놀이터에 앞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나를 경계하지 않는거 같았다. 집으로 데려와 온몸을 절단하였다. 이걸로 인형만들기 준비 오케이다.」

수첩의 주인은… 인형만들기라 칭하고 있었다.
다음장을 넘겼다. 이번엔 곧바로 일기가 쓰여져 있었다.

「벚꽃길을 걷다 맘에드는 인형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나의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는 눈치다. 기뻐해줘서 다행이야, 기뻐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컬렉션이 되지 못했을텐데. 나는 오늘 너무 기뻐서 집에있던 피아노를 드디어 연주하게 되었다. 밤과 어울리는 ‘월광’을 연주했다. 잘 하진 못하지만 앞으로도 연습할거야. 그래야───」

일기는 다음장으로 넘어가게 되어있었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네차례가 오니까.」

소름이 끼쳤다.
눈으로 확인하지 앉아도 셔츠속 내 피부의 털은 모두 곤두서 있겠지.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을거 같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건드릴거 같다. 누군가가 갑자기 내 팔목을 잡고 끌어당길거 같으며,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러 올거같았다. 마치 등 뒤에서 누군가가 각목이나 몽둥이로 내 후두부를 크게 때릴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뒤돌아본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혜지의 방이 있었다.
커다랗게 씌여진 ‘네 차례가 오니까’. 그 다음장에는 의미모를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인형을 만들자. 너에게 바칠 인형을 만들자. 네가 기뻐할 인형을 만들자. 네가 기뻐할 그림을 그리자. 아빠가 좋아한 그림을 그리자. 그렇다면 넌 웃어주겠지.
………웃어주겠지?」

딴─ 따다다다다다다 따 따다 딴─,
익숙한 멜로디. 왼손에 등 뒤에서 들려온 벨소리는 나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볼레로, 느릿하지만 정열적인 그 음을 따라 난 내 휴대폰을 들어 수신자의 번호를 확인했다. 확인되지 않은 번호, 설마!

“혜지니!?”
“유감이군요.”

낯익은 목소리.
김세연 경감이였다.

“혜지양에게 무슨일 있습니까?”
“…아, 아뇨. 그게…….”

어떻게 대답해야될까? 너무 당황스럽다. 혜지의 일도, 수첩의 일도. 뭐라고 말해야될지 모르겠다.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 도중인데도, 내 입은 아무말이나 골라 말하고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군요. 새로운 정보가 있어서 전화해 봤습니다.”

새로운 정보?
내가 어떤 정보냐고 되묻자 그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어제 살해된… 김예은양은 부검결과 쇼크사로 확인되었습니다. 관절을 절단한 흉기로는 지금은 전기톱이 가장 유력할거 같군요. 거기다 저희 수사팀이 그녀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모두 조사해본 결과, 아주 흥미로운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뭐죠?”

빨리말해.
난 지금 급해.

“…인형입니다. 구체 관절 인형. 관절이 구체로 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든 인형이죠. 그녀의 집에있는 쓰레기봉지를 확인해본 결과 피해자와 똑 같은 모습을 한 인형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구체 관절 인형? TV에서나 보던 그 눈이 커다란 인형 말인가?
설마, 설마 설마 설마.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묻고 아무말도 하지않은채 원룸의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선은 부엌에 있는 쓰레기통부터, 어제까지 쓰다남은 음식쓰레기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봉투에 있을까? 현관에 놓여져있는 쓰레기봉투를 확인해보았지만 역시 인형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금은 지쳐버렸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저앉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촘촘이 짜여져있는 우든바닥. 그 나뭇결을 따라 시선이 따라간곳은… 침대 밑이였다.

“설마…….”

침대밑에 손을 집어넣어 본다.
이상하게만치 깨끗했다. 먼지한톨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먼지 대신… 딲딱한 무언가가 손에 쥐어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살색 점토조각이였다.

“우선은 인형을 감식반에 감식을 의뢰했으니 곧 있으면 결과가 나올겁니다. 그럼 범인은 곧 붙잡히겠죠… 하랑양? 하랑양? 듣고있습니까?”
“이봐요, 경감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마저 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가슴마저 두근거린다. 두려움? 공포? 그런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 내뱉고 있는 말은 한치의 오차도없이 아주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18년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된 유일한 용의자, 그 9살난 딸이 살던 집을 아시나요?”
“네, 물론 알고있습니다. 자료가 남아있으니까요. 하랑양의 집과 아주 가깝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건 왜…….”
“당장 말해주세요.”

이를 꽉 깨물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찾아가려 합니다.”

나는 입고있는 그대로, 바로 어깨위로 교복셔츠를 한장 걸치고선 산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해는 이미 져있었다.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있었다. 어제밤과는 다른 느낌이였다. 하늘엔 새하얀 달이 떠있었고, 그 주위엔 별빛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달빛만이 강하게 날 내려다볼 뿐이였다.
스페어 키로 혜지네 원룸을 잠그고, 김세연 경감이 말한대로 성원동 주택가 놀이터 바로 옆에있는 벚꽃길까지 한숨도 쉬지않고 내달려왔다. 벚꽃길에 인기척은 없었다. 그저 어제의 놀이터와 마찬가지로 통행금지라는 테이프만이 붙여져 있었을뿐, 다름이 없었다. 만약 다름이 있다면… 어제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연분홍 벚꽃잎이 있다는것이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벚꽃길로 가지말고 오른쪽으로 언덕을 보면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전화대로 그곳에는 나무가 우거진 언덕길을 올라갈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흙길이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이미 잡초둘이 무성해진 길. 하지만 똑바로 볼수가 있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사람이 다닐수가 있을정도의 길이였고, 그 길은 언덕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그 언덕길로 발을 내딛는다. 처음에는 어설픈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가면갈수록 그 계단의 경계가 무너져 결국엔 오르막길이 되어가고 있었다. 윽… 혜지네 집에서 손전등이라도 가지고 올걸. 한밤중의 언덕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이 달빛마저 가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얼만큼 올라왔을까? 나무들이 걷히고 달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을때에는, 내 기억속 한번도 보지못했던 고 양관(高 洋館)이 정체를 드러내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창으로 만들어진 담과 대문은 이미 녹슨지 오래였다. 순수함과 청초함을 나타내기 위해 칠해진 새하얀 페인트는 대부분이 벗겨져 있었고, 침입자를 막는 철창은 어느샌가 녹슬어 여기저기 부스러져 있거나 꺾여있었다. 사람이 살지않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었야했던 정원은 역시 이름모를 잡초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정원으로 한발자국 움직여본다. 설마 함정같은건 없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고, 손잡이에 손을 댔을 때… 수상하다는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깔끔해.”

오래된 양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잡이가 굉장히 깨끗했다. 마치 최근에 새로 단 느낌, 그렇지 않으면 이 저택이 만들어지고나서 이제까지 아주 잘 관리되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자인거 같지만…….
이 집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양관의 현관문을 노크 하나 없이, 인사 하나 없이 아무렇게나 열었다. 먼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깔끔한게 기분나쁜 정도다. 눈 앞에는 끝없는 복도가 이어져있었다. 원래는 초가 꽂혀져야 있어야할 벽면촛대는 날카롭게 서서 침입자를 노려볼 뿐이였고, 이상하리만치 느껴지지않는 인기척은 내 목덜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보자. 나는 복도를 거닐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을 무렵 난 모퉁이를 돌아 커다란 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아니, 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더 작지. 말하자면 거실이였다.
아기자기한 사각 테이블이 있고, 잘 정리된 부엌이 있었다. 가지런히 놓여져있는 식기가 있었고, 여러가지 가전제품도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는건 확실해 보였으며, 수도가 나오는 것 역시 확실한거 같았다.
이런 낡은 집에 사람이 아직도 살고 있었나? 나는 나름 감탄하며 거실을 빙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에는 내가 들어온것과는 또다른 복도가 보였다. 저쪽으로 가면 또 뭐가 있을까? 나는 이끌리듯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방금전까지 걸어오던 복도와 다를바 없는 복도, 다른게 있다면 눈이 익숙해져서일까? 그렇지 않은것일까? 방으로 들어갈수있는 방문들이 몇 개가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방문이 세개, 오른쪽으로 방문이 두개. 이런 집구조가 어디있는가? 마치 감옥같았다. 조그만방이 연속으로 다닥 다닥 붙어있는 것이 벌집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래, 이제까지 본 영화에 따르자면 감옥이 붙어있는 복도의 가장 끝에는… 제일 잔인한 범인이 홀로 독방을 쓰고있는곳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은 넓었고, 언제나 그곳은 다른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래, 바로 저방처럼.
난 복도 끝에있는 문을 바라보며, 그것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다다랐을 때, 난 나도 모르게 입과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맡았던 냄새, 지독하디 지독한 피비린내. 아무리 닦아내도, 아무리 지워내도 없어지지 않는 이 냄새는 이미 아무것도 없을 내 위장을 자극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난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손목을 돌렸다. 시원하게 열리는 방문,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피비린내.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생되어있지 않겠지.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현되어있지 않겠지. 나는 어둠속에서 방의 풍경을 확인하기위해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한발을 내딛었을 때.

“…뭐야?”

구역질을 할것만 같은 냄새. 신발밑창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액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알수있었다. 발밑으로 기어나오는 벌레들, 그리고 방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핏물.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파리. 어둠에 더욱 익숙해진다, 그 광경에 더욱 익숙해진다. 그리고 방의 풍경을 확인하였을 때.

“…악───!”

나는 터져나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몇번이고 토악질을 해댔다. 이젠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을텐데, 쉬지 않고 몸 밖으로 뱃속 내용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위장마저 쏟아내고 싶다. 입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완전히 비어버리고 싶다. 목이 아프다, 목을 절단해버리고 싶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잃고…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철퍽, 하는 기분나쁜 액체가 엉덩이에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보지않겠어.
더 이상은 싫어.
이런건… 더 이상 싫어.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입은 침범벅이였다. 방금전 헛구역질을 한 탓이겠지. 코는 콧물이 범벅이였다. 구역질을 하다가 멈추지 않고 나온 탓이겠지. 눈은 눈물 범벅이였다. 무서워서 울고있었다. 두려워서 울고있었다. 목이 끊임없이 아파왔지만 목메어 울고있었다. 하지만 운다고 지워지진 않겠지.
도살장처럼 도살된 인간들의 시체가, 운다고 해서 지워질리가 없다. 나는 이를 깨물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수 없는 현실에 목메어 울었다. 하지만 다시 이를 깨물었다. 울순 없다, 내겐 할일이 있으니까. 나보다 울보인 그 녀석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난 그녀를 찾기 전에는… 마음놓고 울수 없다.
우선을 일어나자.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안쪽 허벅지로 끈적끈적한 핏덩이들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좋지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신경쓰지 않고 혜지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등을 돌렸는데…….
복도 끝 저기.
새하얀 인영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

어둠속에 빛나는 새하얀 그림자. 그 그림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짓고 있었다. 유령일지도 모른다. 귀신일지도 모른다.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까지 새하얗게 새어버린 처녀귀신일지도 모른다.

“…씨이.”

나는 눈물을 닦고,
다시 풀어지는 다리를 가까스로 지탱하고선 소리를 질렀다.

“넌 또 뭐냔 말이야!!”

복도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그 여자는 입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어서와.”

새하얀 여성.
그녀는 이 세계에서 더 이상 볼수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랑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따스함이 너무 이 분위기와는 맞지않아.
나는 눈물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일단은 써놓은겁니다. 혹시 도배라 생각하신다면 일단은 사과.[...]

월광 3악장이 벨소리로써 어울리냐는 이야기에대해서는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