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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직은 사랑하기 4초전 - 1

2006.01.27 10:50

loveyui 조회 수:206

나와 하연은 학교를 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평범한 한국인 고등학생이니까. 우리와 같은 범주에 드는 수십만의 고교생들이 매일같이 하는 행동이다.

나와 하연의 등교수단은 버스. 학교로 향하는 노선은 네개. 시내 부근에 위치한 학교덕에 노선이 많아서 만원버스는 아직 겪어본 적 없다. 아무래도 쾌적한게 제일이다.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은 나와 하연 뿐. 나에게 너무 힘을 불어넣어 준건지 그녀는 꽤 피곤해보인다. 오뚝이처럼 좌우로 까딱거리는게 꽤 재미있다.

"피곤해?"

"으...긍정. 어젯밤에 너무 무리했나봐..."

감기려는 눈을 다시 열어가며 정신을 차리려고 필사적이다. 대충 예상은 간다. 새벽까지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느라 제대로 자두지 못했던 거겠지. 최근엔 심야에 그런 방송이 많으니까.

"~...정말 강했지...♡"

비틀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두렵다.

거친 바퀴의 회전소리에 차도를 보니 올게 오고 있었다.

"버스다."

"으응으응...타야지...흠냐아..."

만취한 아저씨풍의 목소리다...이런건 참아줬으면 하는데.

버스에 올라타고 교통카드로 요금을 낸다. 잔돈이 필요없다는건 역시 편하다.

정상적인 비프음이 울렸다. 아직 잔액은 충분히 남아있으니 한 일주일 정도는 괜찮으려나.

평소라면 곧이어 들려야 할 또 하나의 비프음이 들리지 않는다. 보통 내가 먼저 타기 때문에 하연이 곧이어 타는데, 왜 들리지 않을까.

신경쓰여서 뒤를 돌아보니 졸린 눈으로 지갑을 찾고있는 하연이 있다.

"지갑...안갖고 온거냐?"

나의 물음에 하연은 졸린 눈 그대로 대답했다.

"아니...이게...있을텐데..."

옷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열어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기사아저씨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어쩔 수 없지만 빨리 처리해 주는 수 밖에.

"일단 내가 낼테니까 올라와."

"우응...미안..."

하연은 보기와는 다르게(?) 성실파라서 이렇게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어젯밤의 타격이 크긴 큰 모양이다. 이대로라면 학교에 가서도 내내 자고있지 않을까.

"안녕. 연유민, 유하연. 아침부터 사이가 좋구나."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왠 어른스런 미녀가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있다. 하연보다 좀 더 기른, 장발의 생머리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러면서 한 손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수첩을 쥐고있다. 자세히 보니 단어장인가.

그정도를 관찰하고서도 내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리기까진 5초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혹시 반장...?"

"정답. 용케 맞췄네?"

이건 꽤 충격이다. 이미지 전환이라곤 해도 이런건...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녀의 말을 믿는다면, 그녀는 우리 반의 반장으로, 이름은 박세하. 지금의 모습으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음. 촌스러운 애였다. 언제나 교칙을 완전준수하는 포니테일에 둥근 안경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랄까. 털털한 성격덕에 누구나 부담없이 지내는 그런 사람일텐데.

"...이거 너무 이미지가 다르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거야?"

"으...그게. 아침에 그만 안경을 밟아버리는 바람에...마침 콘텍트 렌즈가 있어서 문제는 없었지만, 막상 거울을 보니 맨얼굴에 묶은 머리는 안어울리더라고. 그래서 하는김에 머리도 풀고, 손질도 해 봤는데, 어때?"

"어떻다기보다...음..."

어째서일까. 나도 모르게 하연의 눈치를 살폈다. 겨우 손잡이는 잡고 있지만, 확실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음...그래. 이쪽이 훨씬 좋은 것 같아."

"틀렸어."

반장은 손가락 끝으로 나의 가슴을 푹 찔렀다.

"이럴때 여자애에게 하는 칭찬은 '예쁘네'야. 그런 애매한 말로는 오히려 감점이라구."

"그...그런가?"

그렇게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여자 마음을 알 리가 없잖아. 내 주위의 여자라곤...하연 정도 뿐이니까.

"자. 그럼 모범답안대로 다시 해 봐."

"에... 뭐...뭘?"

반장은 다시한번 내 가슴을 찔렀다.

"여자아이에게 하는 칭찬."

아...그런가. 그렇게나 듣고싶은 걸까. 그런게 여자 마음이라면 서비스 정도는 괜찮을까. 하연은 아직 자고 있으니.

"그래...예쁜걸 반장. 보고 놀랐어."

"응. 고마워."

반장은 '어른의 미소'로 답해줬다. 기분탓인가. 왠지 바보취급 당한듯한 느낌이 드는데...

뭐 어때.

아래위로 사정없이 떨려오는 버스의 안에서도 반장의 눈은 손에 쥔 수첩에서 떠나질 않는다.(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나는 멀미가 나는데도.우욱...) 하긴, 본때마다 반장의 손에는 뭔가 공부할 것이 쥐어져 있곤 했다. 하연도 그렇지만 이쪽도 대단한 노력파다.

"지금까지도 공부하는거야?"

"응. 등교시간 꽤 긴데, 아무것도 안하는건 시간이 아깝잖아."

...상위권 인간들의 생각은 따라가기 힘들다.

반장의 성적은 전국급이다. 매일같이 노력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해 줘야겠지. 하연 녀석도 교내에서라면 상위층이다. 나는...?...알면서 묻지 마라.

반장과 하연 모두 성적순으로 보자면 나와는 까마득히 거리가 있는 여자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라는건 고작 성적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나도 이녀석들처럼 공부한다면 그정도는 가뿐하겠지. 오히려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올거다. 기본적으로 머리는 내쪽이 더 좋을테니.

"하연이 좀 봐줘야 하지 않아? 서 있는 것도 위태로워 보이는데."

음...확실히 그래 보이지만 손잡이는 제대로 잡고있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상태는 그 작은 키 때문. 놓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도 목소리를 억눌러, 겨우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낮춘건 정말 반장답다.

한손으로만 손잡이를 잡고 있었던데다 단어를 보느라 이런 돌발 상황에는 대처하지 못하고, 반장의 몸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으로 쓰러지려 했다.

"아...!"

거의 반사적으로 반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본의아니게 그녀를 품에 안은듯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아...고마워."

"아니...뭘."

형식적으로 나눈 딱딱한 대화. 반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지만 나에겐 상당히 타격이 있었다. 멀쩡한 척 서있기는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잠시간의 감촉과 향기로운 샴푸 내음이 떠도는 중이다.

"으...이런 추태를 보이다니...미안해."

"아니. 신경쓰지 마."

본의아니게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이런 별거 아닌 사건에도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다니. 바보같잖아.

그리고 자연스레 내 눈은 하연을 쫒았다. 여전히 손잡이에 매달려 잇는 조그만 소녀. 그런 급정거에서 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건 역시 레슬링으로 단련된 악력 덕분이겠지. 실제로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나와도 비슷한 정도이지 않을까.(혹은 이상일지도)

...아니.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건 그런게 아니다.

"후...정말 나란놈은..."

나에게도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혼잣말. 어울리지 않게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목소리다.

"...그 표정 맘에 안들어."

"응...?"

반장은 다시 도끼눈으로 내 가슴을 찔러댔다.

"사고라곤 해도 나 정도의 미인을 한순간 안았던건데, 뭐야 그 허무한 표정은? 좀 더 기뻐할 순 없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건 반장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거겠지. 생각해보면 평소와 하나도 다를바 없는 말투지만, 고작 머리를 풀고 안경을 벗은 것 만으로 나는 그 말에 거역할 수 없게 된거다.

남자는 단순하다. 새삼스레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네 여왕님...솔직히 좋았다고 해두자고."

"뒤로 빼지마. 제대로 말 해."

찌르기가 정도를 더했다.

"으...꼭 해야 돼...?"

"듣고싶어.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미묘한 대답이다. 어느쪽이든 내가 자폭한다는건 뻔히 보인다.

차라리 명령이었다면 그나마 좀 나을텐데.

"알았어...말할게."

"응. 해 봐."

반장은 나에게로 상체를 내밀었다. 얼굴이 가까이 온다는건...복잡한 기분이 드는구나. 조금만 더 가깝다면 숨결이 느껴질듯한 약간의 거리감이 겨우 나의 이성을 유지해준다.

"난..."

반장의 눈이 깜빡인다. 조금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왠지 멋쩍어 고개를 돌리니, 반장이 볼을 잡고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방금 널 안았을 때..."

...생각해보니 꽤 문제있는 어휘가 아닐까. 그래도 이제와서 되돌릴 순 없다.

"굉장히 조..."

난데없이 뒤에서 '콰당'이라는 낡아빠진 만화의 효과음이 들렸다. 어떻게 된건지 끊어진 손잡이를 꼭 쥐고서, 하연이 쓰러져있다.

"...괜찮냐?"

우선 손을 잡고 일으켜준다. 반쯤 뜬 눈으로 울듯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넘어진 정도로 울거나 하진 않겠지. 애도 아닌데.

"흑...아파..."

...정정하자. 이녀석은 아직 어린애다.

이대로 두면 하연은 물론 나까지 귀찮아진다. 나와는 관계도 없는 일이지만 하연이 울게되면 그건 내 책임이 되어버리니까.

뭐. 간단히 달래는 방법이 있다.

손을 하연의 머리 위에 얹는다. 하연은 조금 습기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이젠 괜찮아?"

"훌쩍...그런가봐"

다행히 조기진압(?)되었다. 하지만 참...머리 한번 쓰다듬어 준걸로 금방 진정되다니...왠지 고양이 한마리 키우는듯한 기분이다.

하연은 다른 손잡이를 잡자마자 다시 잠들었다. ...참 빠르구만...

"절묘한 방해꾼이네."

하지만 덕분에 낯뜨거운 말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반장도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단어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야 그럭저럭 조용해진듯. 하지만 안도감은 길지 않았다. 어느새 버스는 학교에 다다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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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한번 날리고 다시 타이핑 했습니다.

분노의 버닝인지 30분만에 완료군요.(타이핑이 그다지 빠르진 않아요)

pc방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왠지 자괴감이;;;


프롤로그를 올린 뒤에 일주일만에 2편을 올리려고 했었는데...어제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바람에 하루 더 늦어졌군요. 아쉬워요.


에...일단. 여기는 서울입니다.

겨울방학동안 종로학원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잠은 고시원에서 자고요.

제법 힘들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년부터는 또 자취생활일텐데, 연습하는 기분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일단 근황은 여기까지...고.


아직은 사랑하기 4초전. 드디어 본편 진입입니다.

(어제 쓸때는 할 말이 잔뜩 있었는데...지금은 기억도 안나네요;;;)

반장이란 캐릭터는 어떤가요? 등장 패턴을 조금 틀어놨는데, 효과가 어떤지 궁금하네요.

보통이라면 촌스러운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가서야 터뜨려야 효과가 크겠지만, 이런 방식은 어떨까 싶어서 한번 실험해 봤습니다.

...덧붙여 이런 반장이라면 좋다...기보다 무서울거예요;;;


음. 그리고, 버스 손잡이를 끊어버린 하연의 무시무시한 힘... 실제로 끊어지는지는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탄 버스에서 끊어진 손잡이는 본적이 없습니다.


휴우....정말 더는 쓸 말이 없군요;;; 어제 날려버린 글이 아쉽습니다...

그럼 또 한 일주일 뒤에. 4초전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부디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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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전은 프롤로그. 이제부터 본편이 시작됩니다.

에...앞으로 연재분 따라잡을때까지는 하루에 한편씩 올리게 되겠습니다.

사정상 제가 하지 못하면 쥐슬씨가 해 주신다고 하니 안심입니다~

이번에도 뭐...할 말은 후기에 다 있으니...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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