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르시아 프롤로그 제 3 화 Classmate - 1
2003.12.29 06:53
제 3 화 Classmate - 1
축 늘어져 바닥에 늘어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수아 녀석은 역시나 예의 그 속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이 정도로 용서해주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도 별로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이내 수아는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내게서 눈을 떼고 마치 처음 눈치 챘다는 듯, 내 옆에서 안절부절하며 서서 날 내려다보는 유라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얘가 왜 여기 있어?"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아 녀석은 화를 바락 내며 말한다.
"이런 바보! 내가 추적자한테 쫓기고 있는데 추적자를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거야!"
".........................................아."
거의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 묵묵히 나와 수아를 번갈아 보던 유라가 입을 연 것이다.
"에? 뭐라고? 확실히 말해봐."
"......소리 지르지말아. 시끄러워."
조용히 풍겨져 나오는 살기.
유라의 선명한 붉은 눈은 수아 녀석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 소리 안 지를게."
...쫄았군.
수아의 그 말과 함께 유라의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낯설은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 만져보는 유라.
매일매일 이 꼴이라면 견디기 힘들다. 정말이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수아에게 자초 지종을 설명했다.
쥬라에게 조종되던 유라의 영혼을 봉인에서 해방했다.
어떻게 해방한건지는 모른다.
...라는 것을 간단히 수아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수아 녀석은 잠시 내게 의혹의 시선을 내게 보내다 이내 뭔가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잠깐. 그나저나 유라는 분명 우리 말을 모를터인데 어떻게 우리 말을 하고 있는거지?
"유라... 라고 했던가. 그나저나 너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아는거냐? 직접 나한테서 지식을 빼낸 것도 아닌데."
"........................................................어."
과연. 쥬라에게 조종되는 동안은 쥬라가 취득한 정보나 지식을 공유했던거군.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들리지 않을 듯한 그녀의 설명을 듣고 왠지 모르게 납득했다.
그나저나...
"그 칼. 어떻게 안되냐? 누나가 와서 보면 틀림없이......"
그래. [보통의 누나] 라면 기겁을 하겠지. 하지만 무도인 이선희씨라면...
"틀림없이 가지고 싶어할걸.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잘 숨겨 놓는게 좋을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라가 뭔가를 중얼거리자, 그 거대한 검과, 늘씬하게 잘 빠진 도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악세사리처럼 그 모습을 바꿨다.
그것 참 꽤나 편리하군.
그 때, 제 멋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수아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또 기억이랑 기록 조작해야 겠네~?"
"아... 어. 그야 그렇지."
......그거야 그렇지만. 제발 그런 말 하면서 그런 즐거운 표정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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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행복감이란! 갑자기 여동생이 둘씩이나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정말 그렇죠! 언니!"
"............................"
제멋대로 신난 두 여자와 그 사이에서 멋쩍게 웃는 유라.
잘들 논다. 도장에서 돌아온 누나는 갑자기 하루만에 생겨버린 두 여동생 사이에서 행복 그 자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방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세 여자들이 떠드는 꼴을 보다 왠지 모를 짜증이 울컥 나 버린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위에 길게 누웠다.
...옛날 누나가 프랑스 여행때 한달가량 신세졌던 집의 막내딸이 유학을 왔다는 설정이라.
터무니 없는 설정으로 남의 기억을 조작하는군. 무도인 이선희씨는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탄적이 없다구.
즉, 외국에 나간적은 단 한번도 없음.
오늘 아침 느닷없이 우리의 생츄어리에 침범해 온 사악한 이교도들에 의해 외국의 외자도 모르고 살던 나의 누이는 졸지에 럭셔리하게도 프랑스에 무려 한달씩이나 여행을 갔다 왔다.
아무튼 이걸로 이 집의 방 4개도 다 차게 되었군. 그러고보니 누나가 이 집으로 이사 오자고 했을땐 둘이 살건데 뭐하러 방이 4개씩이나 있는 집을 사느냐고 반박했었지.
아무튼간에...
"어라? 그러고보니 누구 한명 더 있지 않았나?"
누나의 목소리.
"글쎄요오?"
수아의 목소리.
...그래. 이걸로 거의 확실하게 내 존경스러운 누이의 메모리 뱅크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버렸다.
사악한 이교도들. 단란한 남매사이를 갈라놓다니. 천벌 있으리라.
문득 유라에게 베였던 팔을 들어보았다.
수아의 마법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처. 마나의 힘.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솔직히 말해 너무 피곤하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둘씩이나 느닷없이 우리 집에 살게 된것도 그렇고,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이겠다느니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쥬라하며. 신경쓰이는 일도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저녁을 먹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개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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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오오오?!"
"응. 학교."
아침부터 이것들이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거야. 수아야 원래부터 인간으로 변했을 때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유라 녀석은 또 어느틈에 우리 학교 교복을 구한건지, 둘이 나란히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무슨 헛소리냐!!"
내 반박에 수아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어제 유라 설정 만든거 기억안나? 유학이잖아. 유학. 유학을 왔는데 학교를 안다니면 이상하잖아. 언니가 이상하게 생각해."
"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유라야 그렇다쳐도 너는 뭐냐!"
내 질문에 수아는 너무 당연한걸 묻는다는 듯, 씩 웃으며 답했다.
"그야~ 집에만 있어도 심심하고~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왠지 예상된 답이기도 했다.
"쳇. 멋대로들 하라구. 니들이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든 어차피 학교도 안가는 나랑은 하등의 상관이 없네요!"
그렇게 말하고 거실의 소파에 거칠게 앉은 나를 유라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광현씨는...? 이 세계에서의 광현씨 나이면 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
"......사람한테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거야. 아무튼간에 학교에 갈거면 후딱 가! 전학 첫날부터 지각하는건 별로 좋지 않다."
"...응."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라가 내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탓이었겠지.
나는 현관쪽으로 걸어나가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 뉴스를 보았다.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5시30분 경 서울시 용미구의 모 고등학교에서 3구의 시신이 순찰중이던 학교 수위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상태입니다. 현장의 유순하 기자에게 연결하겠습니다. 유순하기자?]
[예. 이곳은 현장인 용미구의 모 고등학교 교내의 운동장 한켠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장에는 이렇게 끔찍한 양의 혈흔이 남아있으며, 피해자의 신원은 새벽 일찍 등교한 이 학교 학생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측은 시신에 뭔가의 동물의 치흔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잖아. 정확히는 내가 다녔던 학교지만. 세상 참 험악하구만. 도대체가 정체 모를 맹수가 버젓히 새벽부터 남의 학교안에 돌아다니고.
왠지 모를 짜증이 머리 끝까지 확 올라온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집안은 조용했다.
충분히 잤을텐데 또 다시 잠이 왔다. 잠이 올땐 자는게 상책이지. 적정 수면 시간은 7 ~ 8시간. 그런 세간의 기준에 따라가다보면 몸만 망가지니까.
사람은 졸릴땐 자야 된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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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꿈이란걸 꾸었다.
학교에 다니던 때의 꿈.
흔히 있는 학교의 괴담따윈 믿을게 못된다며 몇몇 학생들을 선동해서 함께 그 괴담을 규명하기 위해서 밤의 학교로 향했다.
[마의 제 3 어학실]
몇년전에 이 교실에서 학생이 한명 실종된 사건 이래로 폐쇄되었던 교실이다.
나는 그 때까진 괴현상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하는 초자연적인건 일절 믿지 않는 주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이래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게 되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가. 내 친구 성 일광이. 허공에 먹히듯 눈앞에서 사라져간 것이었다.
내 옆에 있던 유화가 비명을 질렀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내가 허공에 먹혀가는 그의 손을 잡으려하자, 그는 내 손을 뿌리쳤다.
대체 왜? 허공에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기 직전, 그는 고개를 젓고는 웃어보였다.
언제나의 그 쾌활한 미소를.
그게 내가 본 어린 시절부터의 주먹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게 된 것 역시 그날 부터였다.
띵동-
누군가 온 모양이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유화가 서 있었다.
어째서인지 울고 있다.
흐느끼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광현아... 쓸쓸해...... 쓸쓸해애... 아파... 너무 아파... 제발... 나를......]
내가 뭐라 답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만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쓸쓸해... 나를 혼자두지 말아줘... 제발... 아파... 마음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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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야!! 장 유화!!"
"마나쇼크!!!!!"
"유... 후꺅!!!"
"이제 작작 좀 일어나아! 지금 초~ 비상 사태라고!"
"크...으으으... 갑자기 뭐야... 남은 잘만 자고 있는데."
내 불평에 수아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헤에~ 그러셔? 여자나오는 꿈이라도 꿨네보네~ ...유화야!! 알라뷰~ ......라니 원. 욕구불만이야?"
"................................."
잠결에 유화라고 부른 기억은 확실하게 있지만 알라뷰라고 한 기억은 전혀 없네요.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도 안나지만. 그보다도...
"초~ 비상 사태라고 했냐? 너 같은 녀석이 하나 더 나타나기라도 했냐?"
"......저 상자를."
언제부터 있었는지, 심각 그 자체의 표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던 유라가 말했다.
[폭동 발생] 이라.
[......이 폭동은 오늘 오후 4시경, 용미구의 모 병원 영안실에서 오늘 오전 5시 30분에 옮겨진 시신 3구가 도난된 직후, 인근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들의 주장등은 일절 밝혀지지 않은 상태며, 이들은 이성을 잃고 있으며, 행인들을 닥치는대로 습격하고 있습니다. 경찰측에서는 이들이 환각성 약물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이들의 진압에 나서고 있습니다. 용미구의 시민 여러분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폭동이네. 우리랑 별 상관없잖아. 집에만 얌전히 처박혀 있으면 될 일이고."
내 말에 유라가 나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관계있어. 내 언니가."
"네 언니? 쥬라라고 했던가. 그 여자가?"
".........인형술사 쥬라. 저 사태는 언니가 일으킨 거야. 틀림없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건지... 이건 아무리봐도 무슨 광신도 집단이...
"......내 언니의 주 특기는 생명체의 조종. 특히 시신의 조종에 있어서는 그녀를 따라올 자는 없어."
시신의 조종?
씁쓸한 표정으로 유라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영혼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나도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였어... 시체나 영혼 없는 존재를 조종하는 것... 적어도... 지금 이 세계에서 저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렇다면... 설마. 저게 다 시체고 저것들을 다 쥬라가 조종하고 있다는거야?"
그 내 질문에 답한 것은 유라가 아닌 수아였다.
"정확히는 쥬라가 중개역으로 만들어놓은 레버넌트가 움직이게하고 있는거야. 사자(死者)의 왕. 레버넌트가."
최근에는 도대체가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만 일어나는군. 정말이지.
"그래서. 그건 뭔데?"
"시신에 술사가 자신의 마나를 모두 전이시켜 만든 좀비야. 술사의 육신은 가사상태에 빠지지만, 레버넌트의 능력은 그만큼 높아져. 그 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하급 좀비들을 다량으로 지배할 수 있지. 하지만, 이 경우에는 술사의 능력뿐만이 아닌, 레버넌트로 만들 시신의 마나적 포텐샬이 높아야 돼."
"좀비라면... 산 송장을 말하는건가?"
영화 같은데서 본적이 있다. 이성없이 살아있는 존재의 피와 고기를 본능적으로 원하는 존재.
"맞아. 생명을 잃은 시신에 자신의 마나파장을 전염시켜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그들의 손에 살해당한 시체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나파장에 전염되어 그들과 똑같은 좀비가 되고말아. 그 숫자는 술사의 능력과 레버넌트의 선천적인 마나적 포텐샬에 좌우돼."
전염이라. 그러고보니 그랬었지. 마나라는 녀석은 강한 전염성과 전이성을 가진다고.
"......그럼. 저것들이 계속 늘어난다는거야?"
나는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대로를 가득 메운 폭도들. 귀에 거슬리는 헬기의 프로펠러의 구동음과 함께 점차로 화면은 그 뒤를 비추었다.
끝도없이 밀려드는 폭도들. 대충 어림잡아도 500명은 족히 넘어보인다.
그 광경을 보던 유라가 말했다.
".........이대로면 내일 아침 무렵이면 이 도시, 서울시 전체인구가 좀비가 될지도 몰라. 언니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언니가 택한 레버넌트도 상식 밖의 괴물...... 최대 5천만인의 인간을 좀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에 수아가 씩 웃으며 답했다.
"레버넌트를 죽이면 돼. 저들에게 마나를 공급해주는 것은 녀석이니까."
잔챙이 신경쓸것 없이 왕만 잡으면 끝난다는건가. 하지만 그 왕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그... 뭐냐. 레버넌트는 어디에 있는데?"
"학교."
즉답.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학교라고? 왜 학교에?"
내 질문에 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갔을 때, 비정상적인 마나의 파장을 느꼈었거든. 학교의 어딘가에선가 퍼져나오고 있었지만, 마음껏 박살내고 싸우기엔 아무리 공간 대체 결계를 써도 한계가 있고. 아침이라 사람들 눈도 많기도 하고, 파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고해서 일단은 그대로 돌아왔는데... 설마 이런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어."
...마음껏 박살내고 싸워?
"그나저나... 저 좀비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언뜻보아 무질서해 보였지만, 대충보아도 어딘가를 목적지로 삼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는 바로 이곳.
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쥬라의 말이 떠올랐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그녀의 말이.
그것을 보던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있는 곳을 들켜버린 것 같네... 광현 오빠한테서 직접 오빠의 기억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를 얻었으니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였겠지만. 하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언제까지고 숨어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놈들의 왕의 목을 따는 수 밖에!"
수아의 말에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라.
설마 나도 가는건가?
...나도 가는거군. 나를 보며 연신 웃어보이는 수아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나는 내 운명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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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한산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흔히 보이던 들고양이 한마리 조차 보이질 않는다.
마치 거리가 죽은듯 조용했다.
기분나쁜 정적. 실로 한달만의 등교길의 정경이었다.
굳게 잠겨 있는 교문을 낑낑거리며 겨우겨우 넘었다.
내 뒤를 따라 유라가 가볍게 몸을 날려 2m는 될성 싶은 교문을 훌쩍 넘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학교 운동장에 발을 딛는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학교 건물로 부터 지독하게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
그리고 마치 집회라도 하듯 운동장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좀비들.
우리 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한 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굳었다. 공포. 이런 공포는 10년전의 그 날 이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좀비들. 생각보다 그 움직임이 빨랐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못 한채 바로 눈 앞까지 닥쳐온 좀비를 지켜볼 뿐이었다.
축 늘어져 바닥에 늘어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수아 녀석은 역시나 예의 그 속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이 정도로 용서해주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도 별로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이내 수아는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내게서 눈을 떼고 마치 처음 눈치 챘다는 듯, 내 옆에서 안절부절하며 서서 날 내려다보는 유라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얘가 왜 여기 있어?"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아 녀석은 화를 바락 내며 말한다.
"이런 바보! 내가 추적자한테 쫓기고 있는데 추적자를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거야!"
".........................................아."
거의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 묵묵히 나와 수아를 번갈아 보던 유라가 입을 연 것이다.
"에? 뭐라고? 확실히 말해봐."
"......소리 지르지말아. 시끄러워."
조용히 풍겨져 나오는 살기.
유라의 선명한 붉은 눈은 수아 녀석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 소리 안 지를게."
...쫄았군.
수아의 그 말과 함께 유라의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낯설은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 만져보는 유라.
매일매일 이 꼴이라면 견디기 힘들다. 정말이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수아에게 자초 지종을 설명했다.
쥬라에게 조종되던 유라의 영혼을 봉인에서 해방했다.
어떻게 해방한건지는 모른다.
...라는 것을 간단히 수아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수아 녀석은 잠시 내게 의혹의 시선을 내게 보내다 이내 뭔가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잠깐. 그나저나 유라는 분명 우리 말을 모를터인데 어떻게 우리 말을 하고 있는거지?
"유라... 라고 했던가. 그나저나 너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아는거냐? 직접 나한테서 지식을 빼낸 것도 아닌데."
"........................................................어."
과연. 쥬라에게 조종되는 동안은 쥬라가 취득한 정보나 지식을 공유했던거군.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들리지 않을 듯한 그녀의 설명을 듣고 왠지 모르게 납득했다.
그나저나...
"그 칼. 어떻게 안되냐? 누나가 와서 보면 틀림없이......"
그래. [보통의 누나] 라면 기겁을 하겠지. 하지만 무도인 이선희씨라면...
"틀림없이 가지고 싶어할걸.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잘 숨겨 놓는게 좋을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라가 뭔가를 중얼거리자, 그 거대한 검과, 늘씬하게 잘 빠진 도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악세사리처럼 그 모습을 바꿨다.
그것 참 꽤나 편리하군.
그 때, 제 멋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수아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또 기억이랑 기록 조작해야 겠네~?"
"아... 어. 그야 그렇지."
......그거야 그렇지만. 제발 그런 말 하면서 그런 즐거운 표정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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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행복감이란! 갑자기 여동생이 둘씩이나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정말 그렇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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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신난 두 여자와 그 사이에서 멋쩍게 웃는 유라.
잘들 논다. 도장에서 돌아온 누나는 갑자기 하루만에 생겨버린 두 여동생 사이에서 행복 그 자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방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세 여자들이 떠드는 꼴을 보다 왠지 모를 짜증이 울컥 나 버린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위에 길게 누웠다.
...옛날 누나가 프랑스 여행때 한달가량 신세졌던 집의 막내딸이 유학을 왔다는 설정이라.
터무니 없는 설정으로 남의 기억을 조작하는군. 무도인 이선희씨는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탄적이 없다구.
즉, 외국에 나간적은 단 한번도 없음.
오늘 아침 느닷없이 우리의 생츄어리에 침범해 온 사악한 이교도들에 의해 외국의 외자도 모르고 살던 나의 누이는 졸지에 럭셔리하게도 프랑스에 무려 한달씩이나 여행을 갔다 왔다.
아무튼 이걸로 이 집의 방 4개도 다 차게 되었군. 그러고보니 누나가 이 집으로 이사 오자고 했을땐 둘이 살건데 뭐하러 방이 4개씩이나 있는 집을 사느냐고 반박했었지.
아무튼간에...
"어라? 그러고보니 누구 한명 더 있지 않았나?"
누나의 목소리.
"글쎄요오?"
수아의 목소리.
...그래. 이걸로 거의 확실하게 내 존경스러운 누이의 메모리 뱅크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버렸다.
사악한 이교도들. 단란한 남매사이를 갈라놓다니. 천벌 있으리라.
문득 유라에게 베였던 팔을 들어보았다.
수아의 마법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처. 마나의 힘.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솔직히 말해 너무 피곤하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둘씩이나 느닷없이 우리 집에 살게 된것도 그렇고,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이겠다느니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쥬라하며. 신경쓰이는 일도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저녁을 먹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개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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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학교."
아침부터 이것들이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거야. 수아야 원래부터 인간으로 변했을 때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유라 녀석은 또 어느틈에 우리 학교 교복을 구한건지, 둘이 나란히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무슨 헛소리냐!!"
내 반박에 수아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어제 유라 설정 만든거 기억안나? 유학이잖아. 유학. 유학을 왔는데 학교를 안다니면 이상하잖아. 언니가 이상하게 생각해."
"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유라야 그렇다쳐도 너는 뭐냐!"
내 질문에 수아는 너무 당연한걸 묻는다는 듯, 씩 웃으며 답했다.
"그야~ 집에만 있어도 심심하고~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왠지 예상된 답이기도 했다.
"쳇. 멋대로들 하라구. 니들이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든 어차피 학교도 안가는 나랑은 하등의 상관이 없네요!"
그렇게 말하고 거실의 소파에 거칠게 앉은 나를 유라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광현씨는...? 이 세계에서의 광현씨 나이면 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
"......사람한테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거야. 아무튼간에 학교에 갈거면 후딱 가! 전학 첫날부터 지각하는건 별로 좋지 않다."
"...응."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라가 내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탓이었겠지.
나는 현관쪽으로 걸어나가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 뉴스를 보았다.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5시30분 경 서울시 용미구의 모 고등학교에서 3구의 시신이 순찰중이던 학교 수위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상태입니다. 현장의 유순하 기자에게 연결하겠습니다. 유순하기자?]
[예. 이곳은 현장인 용미구의 모 고등학교 교내의 운동장 한켠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장에는 이렇게 끔찍한 양의 혈흔이 남아있으며, 피해자의 신원은 새벽 일찍 등교한 이 학교 학생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측은 시신에 뭔가의 동물의 치흔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잖아. 정확히는 내가 다녔던 학교지만. 세상 참 험악하구만. 도대체가 정체 모를 맹수가 버젓히 새벽부터 남의 학교안에 돌아다니고.
왠지 모를 짜증이 머리 끝까지 확 올라온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집안은 조용했다.
충분히 잤을텐데 또 다시 잠이 왔다. 잠이 올땐 자는게 상책이지. 적정 수면 시간은 7 ~ 8시간. 그런 세간의 기준에 따라가다보면 몸만 망가지니까.
사람은 졸릴땐 자야 된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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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꿈이란걸 꾸었다.
학교에 다니던 때의 꿈.
흔히 있는 학교의 괴담따윈 믿을게 못된다며 몇몇 학생들을 선동해서 함께 그 괴담을 규명하기 위해서 밤의 학교로 향했다.
[마의 제 3 어학실]
몇년전에 이 교실에서 학생이 한명 실종된 사건 이래로 폐쇄되었던 교실이다.
나는 그 때까진 괴현상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하는 초자연적인건 일절 믿지 않는 주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이래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게 되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가. 내 친구 성 일광이. 허공에 먹히듯 눈앞에서 사라져간 것이었다.
내 옆에 있던 유화가 비명을 질렀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내가 허공에 먹혀가는 그의 손을 잡으려하자, 그는 내 손을 뿌리쳤다.
대체 왜? 허공에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기 직전, 그는 고개를 젓고는 웃어보였다.
언제나의 그 쾌활한 미소를.
그게 내가 본 어린 시절부터의 주먹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게 된 것 역시 그날 부터였다.
띵동-
누군가 온 모양이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유화가 서 있었다.
어째서인지 울고 있다.
흐느끼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광현아... 쓸쓸해...... 쓸쓸해애... 아파... 너무 아파... 제발... 나를......]
내가 뭐라 답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만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쓸쓸해... 나를 혼자두지 말아줘... 제발... 아파... 마음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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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야!! 장 유화!!"
"마나쇼크!!!!!"
"유... 후꺅!!!"
"이제 작작 좀 일어나아! 지금 초~ 비상 사태라고!"
"크...으으으... 갑자기 뭐야... 남은 잘만 자고 있는데."
내 불평에 수아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헤에~ 그러셔? 여자나오는 꿈이라도 꿨네보네~ ...유화야!! 알라뷰~ ......라니 원. 욕구불만이야?"
"................................."
잠결에 유화라고 부른 기억은 확실하게 있지만 알라뷰라고 한 기억은 전혀 없네요.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도 안나지만. 그보다도...
"초~ 비상 사태라고 했냐? 너 같은 녀석이 하나 더 나타나기라도 했냐?"
"......저 상자를."
언제부터 있었는지, 심각 그 자체의 표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던 유라가 말했다.
[폭동 발생] 이라.
[......이 폭동은 오늘 오후 4시경, 용미구의 모 병원 영안실에서 오늘 오전 5시 30분에 옮겨진 시신 3구가 도난된 직후, 인근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들의 주장등은 일절 밝혀지지 않은 상태며, 이들은 이성을 잃고 있으며, 행인들을 닥치는대로 습격하고 있습니다. 경찰측에서는 이들이 환각성 약물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이들의 진압에 나서고 있습니다. 용미구의 시민 여러분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폭동이네. 우리랑 별 상관없잖아. 집에만 얌전히 처박혀 있으면 될 일이고."
내 말에 유라가 나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관계있어. 내 언니가."
"네 언니? 쥬라라고 했던가. 그 여자가?"
".........인형술사 쥬라. 저 사태는 언니가 일으킨 거야. 틀림없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건지... 이건 아무리봐도 무슨 광신도 집단이...
"......내 언니의 주 특기는 생명체의 조종. 특히 시신의 조종에 있어서는 그녀를 따라올 자는 없어."
시신의 조종?
씁쓸한 표정으로 유라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영혼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나도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였어... 시체나 영혼 없는 존재를 조종하는 것... 적어도... 지금 이 세계에서 저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렇다면... 설마. 저게 다 시체고 저것들을 다 쥬라가 조종하고 있다는거야?"
그 내 질문에 답한 것은 유라가 아닌 수아였다.
"정확히는 쥬라가 중개역으로 만들어놓은 레버넌트가 움직이게하고 있는거야. 사자(死者)의 왕. 레버넌트가."
최근에는 도대체가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만 일어나는군. 정말이지.
"그래서. 그건 뭔데?"
"시신에 술사가 자신의 마나를 모두 전이시켜 만든 좀비야. 술사의 육신은 가사상태에 빠지지만, 레버넌트의 능력은 그만큼 높아져. 그 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하급 좀비들을 다량으로 지배할 수 있지. 하지만, 이 경우에는 술사의 능력뿐만이 아닌, 레버넌트로 만들 시신의 마나적 포텐샬이 높아야 돼."
"좀비라면... 산 송장을 말하는건가?"
영화 같은데서 본적이 있다. 이성없이 살아있는 존재의 피와 고기를 본능적으로 원하는 존재.
"맞아. 생명을 잃은 시신에 자신의 마나파장을 전염시켜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그들의 손에 살해당한 시체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나파장에 전염되어 그들과 똑같은 좀비가 되고말아. 그 숫자는 술사의 능력과 레버넌트의 선천적인 마나적 포텐샬에 좌우돼."
전염이라. 그러고보니 그랬었지. 마나라는 녀석은 강한 전염성과 전이성을 가진다고.
"......그럼. 저것들이 계속 늘어난다는거야?"
나는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대로를 가득 메운 폭도들. 귀에 거슬리는 헬기의 프로펠러의 구동음과 함께 점차로 화면은 그 뒤를 비추었다.
끝도없이 밀려드는 폭도들. 대충 어림잡아도 500명은 족히 넘어보인다.
그 광경을 보던 유라가 말했다.
".........이대로면 내일 아침 무렵이면 이 도시, 서울시 전체인구가 좀비가 될지도 몰라. 언니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언니가 택한 레버넌트도 상식 밖의 괴물...... 최대 5천만인의 인간을 좀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에 수아가 씩 웃으며 답했다.
"레버넌트를 죽이면 돼. 저들에게 마나를 공급해주는 것은 녀석이니까."
잔챙이 신경쓸것 없이 왕만 잡으면 끝난다는건가. 하지만 그 왕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그... 뭐냐. 레버넌트는 어디에 있는데?"
"학교."
즉답.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학교라고? 왜 학교에?"
내 질문에 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갔을 때, 비정상적인 마나의 파장을 느꼈었거든. 학교의 어딘가에선가 퍼져나오고 있었지만, 마음껏 박살내고 싸우기엔 아무리 공간 대체 결계를 써도 한계가 있고. 아침이라 사람들 눈도 많기도 하고, 파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고해서 일단은 그대로 돌아왔는데... 설마 이런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어."
...마음껏 박살내고 싸워?
"그나저나... 저 좀비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언뜻보아 무질서해 보였지만, 대충보아도 어딘가를 목적지로 삼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는 바로 이곳.
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쥬라의 말이 떠올랐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그녀의 말이.
그것을 보던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있는 곳을 들켜버린 것 같네... 광현 오빠한테서 직접 오빠의 기억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를 얻었으니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였겠지만. 하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언제까지고 숨어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놈들의 왕의 목을 따는 수 밖에!"
수아의 말에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라.
설마 나도 가는건가?
...나도 가는거군. 나를 보며 연신 웃어보이는 수아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나는 내 운명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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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한산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흔히 보이던 들고양이 한마리 조차 보이질 않는다.
마치 거리가 죽은듯 조용했다.
기분나쁜 정적. 실로 한달만의 등교길의 정경이었다.
굳게 잠겨 있는 교문을 낑낑거리며 겨우겨우 넘었다.
내 뒤를 따라 유라가 가볍게 몸을 날려 2m는 될성 싶은 교문을 훌쩍 넘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학교 운동장에 발을 딛는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학교 건물로 부터 지독하게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
그리고 마치 집회라도 하듯 운동장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좀비들.
우리 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한 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굳었다. 공포. 이런 공포는 10년전의 그 날 이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좀비들. 생각보다 그 움직임이 빨랐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못 한채 바로 눈 앞까지 닥쳐온 좀비를 지켜볼 뿐이었다.
여동생이 생기고~ 더군다나 학교까지 따라붙을려 하는 어느정도 안정된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군요. 괴무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