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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그녀의 이름은 르시아 - 1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도 비만온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양, 무한정 쏟아내려오는 이 비에는 제 아무리 나라고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기껏 세탁해놓은 옷을 햇빛이 들기에 내 놓았더니 고작 10분도 안되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다시 빨게 된것에 이어 벌써 2주째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지방의 어딘가에선 홍수피해가 났다는 뉴스가 간간히 들려오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그저 바깥에서 빨래를 말릴수가 없어 방안에서 말리는 바람에 항상 방안이 눅눅한 상태라는 것 뿐.
말도 안된다. 11월말의 장마라니. 눈이 온다면 신빙성이라도 있다.
드디어 지구가 미쳤나보다. 눅눅한 방안을 빠져나와 거실쪽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매일 아침의 [예의 그것]이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내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발꿈치 내려찍기. 가라데에서는 줄곧 카카토 오토시라는 이름으로 쓰이며, 태권도에서도 흔히 보이는 그 기술. 상당한 유연성과 파워, 정확성을 요구하는 그 집약적인 킥이 내 정수리를 향해 날아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처럼] 왼쪽으로 피했다. 그러면 분명 상대는 습관대로 왼쪽방향으로 빙글돌며 위협적인 손등치기를 날려온다. 역시나 나는 그것조차 [언제나처럼] 허리를 숙여 피하고 상대의 발목을 다리로 후린다.
상대역시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것을 피하고는 맹렬한 기세로 내 안면을 향해 정권을 날린다.
그에 질세라 나 역시 상대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로의 코 바로 1cm 앞에서 멈추는 두 주먹.
잠시간의 대치 후, 이윽고 한쪽눈에 안대를 한 여성이 주먹을 거두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야. 귀여운 내 동생아."

만면에 환하게 띄운 미소. 나는 그에 톡 쏘듯 답한다.

"아침 인사로 대련하는 남매는 아마 이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을거요. 괴물같은 누님."

내 이 말의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누나는 호탕하게 깔깔 웃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엌쪽으로 향했다.
이쯤되면 으레 그 이른바 [심부름]이라는게 시작된다.

"아침 운동도 끝났으니 밥을 먹어야지? 광현아~"

"......"

나가기 싫다. 솔직히 지겹게 비만 주룩주룩 내리는 바깥에 나가고 싶겠는가.

"야 이 놈의 새끼!! 이 광현!! 얼른 못 튀어갔다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우산을 든채 바깥이었다.
지가 나가기 싫으니까 날 시키는 주제에!
나는 그렇게 투덜투덜 대며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 당도한 나는 그 다음 순간 경악했다.

'뭘 사가야 되는지 묻지 않았다...!'

뭐어, 흔히 있는 일이다. 대충 사든, 사오라는거 사든, 형편없는 누이의 요리솜씨가 좋아질리가 없다.
아아 나의 존경스런 누이, 무도인 이 선희씨. 당신은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
마음속으로 그런 한탄의 메시지를 내뱉으며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찬거리를 골랐다.
계산하며 나는 또 다시 경악해야만 했다.

'제... 제길...! 심부름 값도 안 받았다...!'

이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언제나 심부름 값은 칼같이 받던 나였으나, 오늘은 어쩐일인지 심부름 값을 받는 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도망쳐 나오는데만 급급했다. 역시 이 놈의 비가 내리면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내 돈으로 내야했다. 그나마도 부족했지만, 평소 안면이 있는 슈퍼 아저씨는 그냥 덤이라고 가져가랜다.
당신이 성인 군자요. 그 누구의 누이와 비교하면 말이지.
그리고 다시 쏟아지는 비에 진절머리를 내며 우산을 펴고는 집으로 향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학교를 안 가게 된 나에게 있어선 이게 내 일과의 전부였다.
그 이외엔 밖에 나올 일도 없다.
길가엔 온통 교복을 걸친 남녀학생들이 바쁜듯한 발걸음으로 요 앞의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저번달까지만해도 다니던 학교다.
그다지 추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꼴에 또 미련이라도 생긴건지 그들의 뒷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그런 자신이 바보스러워져 집으로 향하려는 내 등을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비... 그쳤어. 광현아."

"?"

그러고보니 어느샌가 비는 그쳐있다. 참고로 우산을 쓰고 있는건 길거리에 나 혼자 뿐이다.
우산을 접는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이런 상황에 빠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세간에서는 이런 상황을 [뻘쭘하다]라고도 하는 듯 하다.
내게 비가 그친것을 알린 상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동창생인 유화였다.
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직 학교에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별로..."

"......"

"그럼 잘 지내라."

나는 그 말만 남기고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마치 학교에 미련을 가진 내 마음을 들킨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리고 그 바로 다음 순간에 이 빌어먹을 비는 다시금 내리기 시작했다. 그다지 우산을 펴고 싶은 기분도 안 들기에 그냥 그대로 걸어갔다. 아파트의 입구께에 다다랐을 무렵, 시야의 한쪽켠에 파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털? 아니. 머리카락이다.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흠뻑젖은 푸른 머리카락. 그리고 한점 흐트러짐 없는 칼날 같은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쪽 방향이다.
붉은색 머플러로 반쯤 얼굴을 가려 인상을 자세히 알수는 없었지만, 체형을 보아선 여자였다...만.
지나치게 수상한 인물이라는게 문제다. 허리춤에 찬 크기가 다른 두개의 칼. 아무리 봐도 짝퉁이라고는 봐주기 힘든 광택을 내는 칼날. 입고 있는 복장도 뭔가 특이하다. 거기에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부동의 자세로 남의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용케도 경비 아저씨한테 안 걸리......

"에이! 이 녀석! 이번엔 여기냐! 거기서!"

완전히 걸렸구만.
일순 약간 당혹한 듯한 표정을 하곤[잘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녀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쪽을 향했다. 그러나 다시금 시선을 이쪽을 향했다.
아니. 이쪽이 아니다. [나를] 보고 있다. 터무니 없는 괴물이.
순간 그녀의 몸 전체에서 늑대의 형상을 한 오오라가 보인 듯한 착각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사라졌다.
뒤늦게 온 경비아저씨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는 다른곳으로 달려가는게 보였다.
나만 본게 아닌 이상 헛것을 봤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니, 어쩌면 경비아저씨와 나만 헛것을 봤을지도......

"준열 엄마, 그거 봤어요? 그 칼 찬 미친 여자요!"
"봤어요, 봤어요, 어쩜 좋아요. 대체 경비아저씨는 뭘 하는 건지... 그런 명백히 수상한 사람이 새벽부터 이 근처에 어슬렁 거리는데... 경찰을 불러야 할까봐요."
"됐어요, 됐어요. 경찰들이 와서 뭘한다고요. 그 여자 정말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걸요."
"그래도 그렇죠 애들이 이 근처에서 노는데.......!"
"그렇겠네요 그럼....."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저 녀석. 바보 아닌가?
동네방네 다 돌아다니면서 있는대로 사람들 눈에 띄인 모양이다.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걸로 확실해졌다.
어느새 비의 기세는 더욱 강해져, 근처에 사람들은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빗소리에 멀미가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를 너무 맞은건가. 눈앞의 광경이 어른어른거리고 있었다.
아아, 얼른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보다도 무서운 누님의 철권이 나를 오랫만에 다듬어 줄지도 모를일이다.
서두르자.
그 순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발차기를 안면에 클린 히트당하고 나는 뒤로 벌렁 자빠졌다.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코를 감싸쥐고 방금전에 내 머리가 위치했던 곳을 바라봤다.
자세히보니 허공에 허연 다리가 하나 비죽이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난 저것에 맞은 듯 싶다.
그 다리가 또 다시 허공으로 쑥하고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금발을 가진, 기형적으로 긴 귀를 가진 여성의 얼굴이.

*캐릭터 이름 어느정도 아는 카루나 군은 네타바레 금지! `ㅅ’[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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