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예이는 에버런스 게이트의 내부로 발을 디뎠다.
에버런스 게이트는 그가 살던 올트 마을에 비하면 대단히 번화한 도시였다. 게이트를 넘자마자 짚단으로 만든 집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벽돌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줄줄이 늘어서 골목을 만들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들을 오가고 있었다. 야예이는 감탄하면서도 그 번화함에 질려했다.
밟고 있는 땅조차 적절히 포장되어 있는 이곳에는 산과 들을 헤매며 다니던 그에게 있어 마치 커다란 불모지를 연상시키는 거북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토른 그것을 느끼는지 마는지 얌전히 야예이를 뒤따라왔다. 야예이는 경비병이 가르쳐 준대로 일단 중앙 광장을 찾아갔다. 게이트에서 직선으로 쭉 올라가면 되었기에 중앙광장을 찾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야예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모르가의 약국을 찾았다. 번잡한 광장이었지만 야예이는 예리한 시력으로 곧 모르가의 약국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르가의 약국 왼편에는 경비병이 말한 골목이 있었다.
동시에 광장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야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거의 4일을 넘게 강행군을 한 야예이로서는 목욕도 하고 두발 뻗고 편히 쉬고 싶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시하고 여관을 향해 재빨리 발을 옮겼다.
이노의 여관을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경비병이 우려하던 것에 비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적어도 저 조그마한 간판은 상당한 주의력이 있지 않으면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여관 자체도 다른 건물에 가려져 비밀스럽게 위치하고 있었다.
야예이는 토른을 데리고 이노의 여관으로 다가갔다. 아마도 여관 주인의 이름을 썼을 것 같은 이 여관은 은밀한 위치와는 달리 대놓고 평범한 모습이었다.
야예이는 문을 열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 안에는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13명이 각각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용히 담배를 피고 있는 자도 있었고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평범하게 술잔에 병을 기울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 야예이가 안으로 들어오자 야예이를 주목했다.
야예이는 예리한 시선을 느끼며 이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야예이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바텐더에게로 다가갔다.
느린 걸음으로 중간 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카드 게임을 하고 있던 3명의 남자가 일어섰다. 야예이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한 덩치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 중 한명은 단검을 쥐고 있었다. 뭔가 위협을 느끼는 야예이였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야예이를 둘러쌓다.
“여, 더러운 하프오크 새끼잖아. 너 같은 놈이 올 곳이 아니라고 이곳은 말이야.”
야예이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희망을 가졌는데 역시 이런 녀석들이 어딜 가나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냅다 돌부터 던지고 죽일려고 쫓아오는 것보다는 나으니 야예이는 그러려니 하고 몸을 긴장시켰디.
바텐더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시비를 걸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봐, 빅터. 저래보여도 손님이니 그쯤 해줘.”
“하하. 도르믹. 이런 녹색 찌질이가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겠어. 안 그래?”
빅터가 동의를 구하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껄껄 웃었다. 그들은 끼어들 생각이 없는 듯 했지만 말릴 생각하도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자그마한 이벤트를 보는 기분인 듯 했다. 남자는 이어 말했다.
“우리가 그만큼 마셔줄테니까 이 녀석 손보는 거 정도는 눈 감아줘. 안 그래도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이런 거라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거든.”
빅터의 말에 야예이는 아무래도 적당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대놓고 자세를 취하진 않았지만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섰다. 동시에 토른이 으르렁 거렸다.
“응? 개새끼도 있었나?”
“늑대잖아!”
옆에 있던 흉터의 남자가 처음 시비를 걸어온 빅터의 말을 걸고넘어지며 토른을 경계했다. 토른이 당장이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야예이는 신호를 보내 토른이 뛰어들게 하지 않도록 제제를 했다. 토른은 불만스러운 듯 소리를 냈지만 얌전히 야예이의 지시에 따랐다. 그래도 토른은 여전히 최소한의 경계상태는 유지했다. 대놓고 적의를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가 된 것이다.
토른의 변화를 빅터는 수틀리는 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호. 애완견의 도움 없이도 자신 있다는 말이로군. 어디 그 실력 좀 볼까?”
그러면서 가볍게 나이프를 내질렀다. 급소를 노린 다기 보다는 위협에 가까운 것이었다. 노리는 곳도 배낭끈. 야예이는 살짝 몸을 뒤로 움직여 그 공격을 피했다.
“호. 아주 실력이 없진 않은 걸? 하지만, 테드.”
빅터의 말과 동시에 뒤에서 있던 테드란 남자가 야예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야예이는 도리어 자신을 잡으려는 그의 손을 낚아채 비틀어 제압한 다음 빅터에게 내밀었다.
“크윽.”
테드가 신음 소리를 흘리자 야예이는 좀 더 힘을 줘서 그의 몸을 내리 눌러 빠져 나갈려는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에 이마에 흉터를 가진 남자가 토른에게서 눈을 떼고 야예이에게 덤벼들었다. 야예이는 테드를 빌어 흉터를 가진 남자를 막고 이번에는 비스듬히 얼굴을 향해 질러오는 빅터의 나이프를 향해 주먹을 바깥으로 놀렸다.
내질러 들어오는 빅터의 나이프는 야예이의 방어행동에 의해 야예이의 어깨갑옷을 스치고 지나갔고 야예이는 그 기회를 빌어 오른 주먹을 내질러 빅터의 턱을 후려쳤다. 빅터의 몸이 휘청하고 흔들리더니 곧 무릎을 꿇었다. 야예이는 곧장 다시 덤벼오는 테드를 자세를 나춰 받아내고는 그대로 들어 흉터의 남자에게로 던졌다.
그와 함께 요란히 박수라 울려 퍼졌다. 휘파람 소리와 “쓰러뜨려버려!”같은 외침 소리도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 들은 야예이에게 악의가있다기 보다는 순수하게 이 싸움을 구경거리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예이에게는 그것도 독특한 반응이었다. 야예이는 성장하면서 타인에게 받아본 감정이라고는 받아본 것이라고는 적대뿐이라서 이런 모든 것들이 신선했다.
하지만 야예이는 그런 생각을 하느라 잠간 틈을 보이고 말았다. 테드를 피한 흉터의 남자가 야예이에게 태클을 걸어온 것이었다.
“큭.”
“어떠냐!”
훙터의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 쳤지만 곧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예이가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익!”
그 사이 테드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가 막 야예이에게 주먹으로 덤벼들려는 순간!
“그만둬요!”
청량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야예이를 포함한 여관 내의 모든 이의 이목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끔찍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고결하며 아름다운 목소리에 사람들은 혼이 빨려나가는 것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된 그곳에는 별무리가 이는 것 같은 푸른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빛나는 금빛 머리칼, 새하얀 날개를 가진 여성이 서있었다. 그녀는 네달렉스의 성기사 키엘리니 세스타니엘. 성지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인물을 만나기 위한 여정 중 이 에버런스 게이트에 들른 것이었다.
“여럿이며 한 명을 공격하다니. 그런 저열한 짓은 네달렉스께서 용서치 않으십니다. 신의 벌이 두렵지 않다면 물러서십시오.”
허리춤에 찬칼을 잡으며 말하는 키엘리니가 내는 박력은 그야말로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의 위엄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초월적인 어떤 흐름이 그녀에게 존재했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그녀의 그런 존재에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야예이와 그 삼인도 마찬가지였다.
야예이와 삼인이 떨어지자 키엘리니는 빙긋 미소 지었다. 그녀는 단지 본 것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파악이라도 한 듯 말했다.
“비록 오크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당신들의 기분해소용 대상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프 오크분. 이제부터 당신의 신변은 네달렉스의 검인 저 키엘리니 세스타니엘이 책임지겠습니다. 그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당신은 저의 보호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부당한 일로 당신이 박해받는다면 제가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키엘리니의 확신이 넘치는 말에 여관 내의 사람들은 물론 야예이조차도 얼떨떨했다. 방금 전에 들어왔으면서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야예이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 저기 그렇게 확신할 수가? 만약 제가 저 세분에게 싸움을 걸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에 키엘리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당신이 이유 없이 먼저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네달렉스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키엘리니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엇보다 확고한 믿음과 의지가 깃든 목소리였다. 다른 이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강직함. 그것이 그녀에게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키엘리니는 공허했다.
네달렉스의 의지는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되찾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물게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하지 않은 그녀의 신은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처음의 대답 이외에는 어떤 답도 없었다. 키엘리니는 어떻게든 판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신에 대한 강직한 믿음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면의 공허에 져서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녀의 신은 그 어떤 명확한 의지도 내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것이 신의 뜻에 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억의 상실은 좌의 대가이며,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것은 길고 긴 겨울을 부르는 행위라고 그녀의 신은 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숨겼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거짓말. 정의의 신을 모시는 신도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손에서 신성이 떠나지 않았고 신의 성검인 홀리어벤져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정의를 외쳤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자신이 신의 이름을 대며 정의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비록 불행히 태어난 한 하프오크를 보호코자 함이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키엘리니는 자신을 가장하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사실은 불안했다.
자신이 반드시 옳다는 확신.
얼만 전까지 신앙을 모태로 세워져 있던 기둥이 흔들리자 그녀에겐 이제 공허 뿐 아니라 불안마저 찾아왔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일단 그런 것을 미뤄놓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자신은 아직 네달렉스의 가호를 받고 있었고 그런 이상 그 의무에 충실해야 했다. 키엘리니는 일단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마음먹었다. 법을 수호하며 부당함을 바로잡는 것. 바로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다.
키엘리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하프오크를 바라보았다.
확신에 가까운 이 신뢰를 감당하지 못하는 하프오크는 떨떠름함과 곤란함, 당혹감이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하다. 그는 선량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때가 타지 않은 만큼 순수했다. 산야를 거닐며 사람과의 접촉 없이 자랐지만 그럼에도 분명 누군가 옳은 길로 그를 이끌었을 것이다. 마음 속 깊이 품은 타인과의 관계와의 두려움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이 하프오크를 잘못된 길로 빠뜨리지 않았다.
키엘리니는 그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네달렉스의 성기사로서의 특권은 아니었다. 다른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이런 능력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타고난 것일 것이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이 능력을 싫어하지 않았다. 때로는 사람들의 보기 좋지 않은 면들도 보게 했지만 이렇게 진정 지켜야할 자를 가려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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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군요. 흠흠..
둘 다 파이팅 입니다. 므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