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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3

2008.10.22 18:40

azelight 조회 수:291

 탬퍼는 마차를 몰고 있었다.
 한적한 겨울의 도로다. 에버런스 게이트에서 포장한 이 길은 유료도로이긴 했지만 돈을 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이 도로가 아니라면 마차를 타고 갈색 산맥을 넘는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걸어 다니는 가난한 여행자들이나 수도사들이라도 이렇게 잘 포장된 도로가 있다면 거친 갈색 산맥을 오가는 것보다 한결 편하게 에버런스 게이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탬퍼 자신은 이렇게 마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의 일생은 투쟁이자 전쟁! 언제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육체를 단련하는 것도 투쟁의 미덕이기도 한 것이다.
 로딘과 둘이서 떠돌던 시절에야 이런 도구 따위는 사용하지 않고 제 발로 걸어 다녔지만 마법사인 낸시가 파티에 들어온 후로 마차를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마법사란 자들은 대부분 골방에서 틀어박혀 있는 일이 잦기 때문에 낸시의 체력으로는 탬퍼나 로딘의 이동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루하군.”

 탬퍼는 하품을 쩍 하며 말했다. 그의 연륜과 위엄이 있는 외모를 모조리 깎아 먹는 행동이었지만 어차피 보는 이들도 없는데 무슨 상관일까. 탬퍼는 수염을 헤치고 턱밑을 긁고는 다시 하품을 했다.
 어제 몰아치던 눈보라도 끝나고 지금은 쌓인 눈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싸늘한 도로였다. 도로의 주변은 엉망진창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도로에까지는 피해가 미치지 않은 상태였다. 가끔 폭풍이 불고나면 부러진 나무기둥들에 의해 도로가 막히곤 한다는 데 그런 면에서는 다행한 일이다. 물론 탬퍼의 입장에선 그만큼 몸 쓸 일이 줄어들어서 좀이 쑤셔지기만 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탬퍼의 심심함을 알아챘는지 낸시가 포장마차의 입구를 걷고 마부석으로 나왔다. 손에는 책 한권이 들려있는데 탬퍼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아마 전번 마을을 나올 때 산책이겠지. 탬퍼는 그렇게 납득하고는 다음번에 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야만적이다 싶을 만큼 비대한 근육으로 무장한 탬퍼지만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그는 성직자였고 가장 단순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모호한 신의 의지를 지상에 체현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지식이 필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인 낸시가 주로 읽는 책들은 간혹 불경했지만 충분히 그에게 지적 즐거움을 줄만한 것들이었다.

 “이제 곧이네요.”

 낸시는 탬퍼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하얀 입김이 입가에 서리는 것이 싸늘해진 겨울 날씨를 표현하는 듯하다.

 “그렇네. 저 산등성이 끝을 돌면 에버런스 게이트지.”
 
 탬퍼는 낸시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시답잖은 대화는 무시했겠지만 낸시랑 함께하게 된 이후로는 적당히 맞장구도 쳐주는 경지에 까지 오를 수 있었다. 언제나 도전적인 낸시는 그것이 위협적인 체구와 강력한 팔뚝, 호전성을 지닌 탬퍼와 우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금방 몰두해버리는 꿀꿀한 로딘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냉정한 입장에서 보자면 낸시의 성격은 엄밀히 뛰어난 마법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탬퍼나 로딘이야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란 생각보다 개성이 큰 직업이 아니다. 애초에 마법이란 것 자체가 근원적인 욕구와 관련되어 있는 이상 마법사가 추구해야하는 바나 그것들을 추구할 수 있는 추구자의 정체성은 단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욕구란 기본적으로 힘이다. 고결한 진실이던 파괴적인 폭력이던 혹은 꿈과도 같은 환상이건 마법사란 보다 큰 힘을 추구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것은 마법사 자신이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공통된 항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낸시는 까만 종이에 찍힌 하얀 점처럼 독특했다.
 그녀는 비상한 재능을 지녔고 마법이란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마법사와 같은 목록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마치 같은 출발선을 가졌지만 약간 비틀어진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마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가진 자원을 확장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진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낸시에게는 구도의 욕구가 없었다.
 마치 헛도는 바퀴와 같은 인생인 것이다. 만약 그녀가 원했다면 훨씬 빠르게 강력한 마법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위치라는 칭호도 훨씬 빨리 얻었을 거고 지금처럼 모험 따윈 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낸시는 그렇지 못한 존재였고, 그녀의 스승인 그런 낸시의 존재를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낸시의 스승인 엘리엔은 어떻게든 낸시에게 힘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고자 여행을 떠나보냈지만 결국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다만 낸시에게 엘리엔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를 주었으니 아주 실패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만. 결국 에일렌이 원하는 사양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으니 성공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니었다.
 그런 낸시의 성격은 어느 순간에나 쉽게 드러났고 오히려 진지했던 탬퍼와 로딘을 허술하게 만드는 일에도 연신 발휘되었다. 적극적이면서도 무방비하며 어느 면에서도 완전무결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욕적인... 탬퍼와 로딘이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종류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물론 탬퍼와 로딘은 그런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낸시에게 휘둘렸다. 애초에 그녀라는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 것임에 틀림없다.

 “에버런스 게이트에 도착하고 나면 스승님이 계신 란고스까지는 이틀이군요. 아, 설레네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낸시는 4년 만에 돌아가는 란고스가 점차 가까워져 오자 기분이 들뜬 것 같았다. “흐흐흥.”하고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낸시를 두고 탬퍼는 묵묵히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마차의 안에 들어있는 로딘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긴 했지만 탬퍼는 그냥 정면을 주시했다.
 그때 탬퍼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거친 털옷을 입고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 겉보기에도 선량한 여행자들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모험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았다. 탬퍼는 그들이 산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탬퍼는 낸시에게 의견을 물을 생각인 듯 말했지만, 낸시는 대답하지 않고 천막 안으로 들려다보며 로딘을 불렀다.

 “로딘. 이리 좀 나와 보세요.”

 낸시의 부름에 로딘이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는 천막을 들춘 상태 그대로 전방을 주시하더니 곧장 답변해왔다.

 “누군가가 공격하고 있군. 공격자는 아마도 혼자. 위치를 봐서는 어쩌면 공격당하고 있는 무리 쪽이 의외로 매복자일 가능성도 있겠어. 무장정도를 보아서 산적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딱 인 것 같군. 그리고 아마 습격자는 정의의 사자이거나 현상금 사냥꾼 정도가 아닐까? 아니면 정부의 의뢰인 정도이거나.”

 “내 생각도 그렇네.”

 탬퍼는 로딘이 같은 결론을 내리자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도와줄 건가요?”
 
 “그래야겠지. 혹시 저기 공격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을까?”

 탬퍼의 요구에 낸시는 완드를 꺼내들고 집중했다. 그녀는 곧 완드를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경사 위의 바위 턱으로 사람 한명이 숨어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뭔가 비상한 힘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어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겠네요.”

 “그래도 뛰어나군. 명사수야. 전황을 읽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군.”

 로딘은 날카로운 눈매를 빛나며 산적들을 공격하는 인물을 평가했다. 하지만 곧이어 낸시의 핀잔이 들어왔다.

 “구경만 할 일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은 위치와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곤 해도 저 정도 수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구요.”

 “음! 그건 그렇지. 가자!”

 낸시가 말하자마자 탬퍼가 호탕하게 소리치며 말을 몰았다. 이미 산적들 역시 저격자의 위치를 눈치 챈 듯 낸시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격자에게 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그들은 모험가 셋을 태운 마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마차가 충분히 산적들에게 가까워 졌을 대 탬퍼는 마차를 세웠다.
 동시에 탬퍼와 낸시, 로딘은 말없이 마차에서 뛰어내렸고 각자 행동을 취했다.
 우선 낸시가 흐느적거리는 동작으로 완드를 휘둘렀다.
 완드로 부터 옅은 갈색 빛이 흘러나오더니 하늘거리는 천 장막처럼 움직여 산적들에게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산적들이 픽픽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잠이 드는 것을 확인한 낸시는 완드를 놀려 그 장막들을 모아 구체로 만들어 멀리 던졌다.
 이 갈색 구체에 맞은 자들이 잠에 취해 너부러지자,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산적들이 놀라서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바위에 몸을 은폐하고 있던 누군가가 늑대 울음소리를 내고 재빨리 몸을 움직여 산의 능선을 넘어갔다.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한 나무 같이 보이는 자였다.

 “멈춰라!”

 동시에 우레 같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의 힘을 가득 채운 탬퍼의 외침은 그가 적대하는 모든 자들의 마음속에 공포를 움트게 했다. 사기가 높다면 모를까. 단 한명에게 농락 당한데다가 마법의 힘을 본 그들은 손쉽게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분노가 쌓여있었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저항하려고 했다.
 물론 탬퍼와 로딘에게 있어 두려움에 몸의 움직임이 한 발짝 씩 늦어지는 훈련이 덜 된 산적 몇 명을 해치우는 일은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남은 산적들을 제압했다.
 제압된 산적들은 낸시의 신비스러운 힘에 의해 잠들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다.

 “결국 그는 찾지 못했군요.”

 낸시는 잠들어 있는 산적들을 밧줄로 묶으며 말했다. 탬퍼와 로딘이 묶인 산적들을 들어 차곡차곡 마차 안에 쌓았다. 20여명이나 되는 산적들이 비좁은 마차 안에 짐짝마냥 들어찼다.

 “순식간에 물러난 모양이더군. 저들이 우리를 기습했다면 우리라도 쉽게 이길 수 없었을 건데 말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는 걸.”

 로딘의 말에 탬퍼가 툴툴거렸다.

 “우리는 결코 이 따위 산적 놈들에게 지지 않아. 로딘. 하지만 그 정체불명인 녀석도 나름 무례하군. 기왕 도와줬다면 얼굴 정도는 내밀어야 우리가 감사해할 것 아닌가? 거기다가 그 정도의 무용. 비록 활쟁이긴 하지만 분명 쓸만 할 텐데 말이지.”

 아무래도 탬퍼는 산적들과 싸우던 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했다. 전신의 사제이면서 투쟁을 중시하는 탬퍼에게 있어 강한 무력은 중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20여명이 넘는 산적들에게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더라도 단신으로 덤벼든 자를 만나보지 못하는 것은 꽤나 아쉬울 만 했다. 하지만 낸시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감사의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그가 누구건 간에 굳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에버런스 게이트에서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특히 그에게서 독특한 자연의 냄새가 났으니 마음먹고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마법과는 다른 이질 적인 기운을 느꼈던 낸시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다면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한적한 유료도로를 지나가는 이가 적은 이상 나중에 관문에서 경비병들에게 그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각 여관에서 최근에 방문한 손님을 수소문해 보아도 좋고 말이다.
 
 “자, 그럼 어서 출발하도록 하죠. 그가 누구던 간에 인연이 있다면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낸시는 활기차게 말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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