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돌아온 아젤입니다.
폭풍의 탑부토 나온 4연작은 동생 왈.
그냥 처음부터 써 라고 해서 첨 부터 쓰기로 하고 딴 거 올립니다.
그럼 재미있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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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절벽 위에서서 자신이 걸어야할 길을 내려다보는 한 하프 오크가 있었다. 오른 편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늑대가 함께 하고 있었다.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늑대는 무엇 하나 재촉하지 않고 얌전히 있을 따름이었다.
하프 오크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묵묵히 거세지기 시작하는 눈발을 맞으며 그는 이제 백색이 된 갈색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야예이. 이제는 고향을 떠나 떠돌이가 된 하프 오크였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는 처음부터 용납 받지 못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폭력과 흉폭함, 분노, 굶주림.
한 무리의 오크들이 작디작은 오튼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고, 한 여성이 원치 않는 잉태를 했다. 차마 뱃속의 아이를 어쩔 수 없던 그녀는 아이를 낳긴 했지만 결코 키울 수 없었다. 흉물스러운 괴물의 아이였다. 자신을 윤간한 오크의 피를 이어받은 저주받은 아이였다. 그래서 버렸다. 유산시키거나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자비이거나 혹은 모성의 표현이었을 거다.
어쨌든 야예이는 죽임 당하지 않고 버려졌다. 갈색 산맥 깊숙한 곳,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말이다. 마침 지나가던 갈색산맥의 레인저 에크로반이 없었다면 그는 결국 짐승들에게 물어뜯기거나 굶어 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늙은 레인저의 손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다.
야예이는 그의 이름부터 모든 것을 에크로반으로부터 받았다. 거친 자연으로부터 살아남는 생존 기술. 가장 험한 산을 넘고 무성한 원시림의 수풀을 거침없이 헤쳐 나가며, 어떤 위험에도 맞설 수 있는 임기응변, 거기에 자연과 대화하며 동물들과 소통하며 그로부터 색다른 힘들을 이끌어 내는 능력들 까지.
그런 의미에서 에크로반은 야예이의 은인이자 스승이며 아버지였다.
야예이는 에크로반으로부터 본래 부모로부터 받아야할 사랑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갈색 산맥의 짐승들이었다. 오크를 증오하는 아래 마을까지 그는 갈 수 없었다. 어릴 적 사람들과의 교류를 동경해서 마을의 근처까지 내려가 본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돌팔매질을 당하며 쫓겨났고 그 때의 일들은 이젠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뇌리에 흉터를 남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예이는 마을 사람들이나 자신을 버린 친모를 원망하진 않았다. 야예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에크로반은 그에게 숨김없이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가르쳐 주었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고통스러웠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숲의 짐승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으니 적어도 그는 외롭진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과의 교류는 여전히 그에게 있어 동경이었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책을 보며 글을 익히고, 목공예품을 만들며 자신의 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그렇게 작은 교류가 생기고, 거기서 발전해서 친구가 되고, 그 친구로부터 또 다른 친구를 사귀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최후까지 사람들의 틈으로 섞이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상상은 상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스승님.”
야예이는 이제는 존재치 않는 에크로반을 불러보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3일 전 그의 스승인 에크로반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가 언제까지나 걷고 달리고 싶어 했던 숲을 영원히 달릴 것이다. 숲의 처녀가 자신의 품으로 그를 받아들여 주었을 테니 말이다.
야예이는 흘러내리려고 하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설산의 정상에 서서 갈색 산맥의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떠나야 할 옛 터전이었다. 자신을 근처 마을 사람들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주던 에크로반이 사라진 이상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추억이 담긴 오두막과 숲을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처 없는 여정은 아니었다.
에크로반은 그의 죽음 후 한 서신을 그의 친우인 마법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야예이는 지금 브리잔드 백작령을 향해 길을 걷고 있었다. 갈색 산맥을 넘어가야하는 험준한 길이지만 야예이는 레인저였고 산을 타고 대지를 걷는 자였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이 거친 산속을 홀로 헤매고 다니던 그였다.
야예이는 망토를 고쳐 메고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한 마리의 늑대, 토른이 뒤따른다.
영험한 힘을 가진 그 늑대는 레인저로서의 첫 발을 디디며 자연을 이해하고자 했을 때 그의 동지가 되어준 존재였다. 일반적인 늑대보다 훨씬 커다란 몸집과 영민한 지능을 지닌 그는 야예이의 단 한 명뿐인 동료이자 친우였다.
야예이는 바로 곁에까지 따라붙는 토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지금에 와서 야예이의 유일한 버팀목이 바로 이 토른이었다. 야예이는 그의 존재에 감사하며 미소를 보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왠지 폭풍이 불 것 같았다. 어둔 잿빛으로 물든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도 굵어지고 바람은 더욱 세차진다. 매섭게 불기 시작하는 눈보라를 뚫고 야예이는 발을 디뎠다.
눈을 맞으며 낸시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스승의 명령으로 여행을 떠나고 네 번째로 맞이하는 눈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 4년이나 흘렀구나.’라며 속으로 감탄한 다음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고 있는 곳은 ‘금은보화’하는 이름의 여관이었다. 여관하고 무슨 상관일까 싶은 이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이름이기도 했다. 굳이 떠올려 본 이유는 단지 낸시 자신이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잡화점에서 이런저런 물품들을 보충하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왠지 심심했다. 묘하게 적막한 거리도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고 낸시는 생각했다. 죽은 듯이 조용한 도시였다. 하얗게 하얗게 쌓여가기 시작한 눈은 더욱더 그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낸시는 뿌드득뿌드득 눈을 밟으며 여관에 도착했다. 여관의 문을 열 때쯤 제법 커다란 눈송이들이 미풍에 흩날리며 춤추고 있었다. 잠시 그 눈발에 시선을 주던 낸시는 왼손으로 짐이든 봉투를 지탱하곤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여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온기와 유등의 주황빛 불꽃이 그녀를 반겼다.
“왔느냐?”
중후한 목소리가 낸시를 맞이했다.
“네. 다녀왔어요.”
낸시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관 문과 가까운 원형탁자에 근육질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맨손으로 바위도 부술 만큼 강건한 근육이 양모로 만든 옷 아래에서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고 예리한 눈매는 찌를 듯이 낸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반백이 된 머리를 뒤로 넘긴 그의 외모에 길게 기른 수염이 중후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탬퍼. 전쟁신이자 투신인 다고스의 재가사제인 그는 낸시의 두 동료 중 한명이었다. 나이만큼의 경험과 연륜, 전투능력으로 그는 파티의 리더이기도 했으며 현역으로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실력과 육체를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말 그래도 나이가 장식인 인간이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다.
그는 식사를 하고 있었던지 보통 사람은 4명쯤 모여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분량의 음식을 시켜놓고 먹고 있었다. 과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덩치를 생각하면 어울리는 양인 것 같기도 하다.
“로딘은요?”
낸시는 또 한명의 동료가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탬퍼에게 물었다.
“로딘은 수주했던 의뢰의 결과를 알리러 갔다. 금방 돌아올 거야. 머리만 내주면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탬퍼는 그렇게 말하고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낸시는 그 옆에 앉아 탬퍼가 시킨 요리들의 일부를 뺏어먹기 시작했다. 탬퍼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낸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아, 맛있네. 뭐 어때요.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저도 체력 보존 좀 할 필요가 있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많은데 쪼잔 하게 굴지 말아요.”
낸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놀렸다. 탬퍼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더니 식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둘이 거의 접시를 비울 때 쯤 40대 초반의 남자가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로딘이었다. 눈에 젖은 그는 “따뜻하군.”이라고 감상을 말하곤 낸시와 탬퍼에게로 다가왔다.
“다녀왔다. 그새 현상금이 제법 올랐던 걸. 이걸로 당분간 돈 걱정은 덜었을지도 모르겠군.”
“하긴 닥치는 대로 해치고 다녔으니까요. 그래도 덤으로 한 일치고는 제법 돈이 된 모양이네요. 얼마 정도던가요?”
로딘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낸시가 말했다. 탬퍼는 묵묵히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500정도 하던데. 그보다 대충 의뢰목록들을 받아왔는데 말이지.”
로딘은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원형탁자 위에 펼쳐 보였다. 그 곳에는 빽빽하게 일의 내용과 금액이 적힌 종이도 있었고 현상금 전단도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에 할 만한 일을 의논해보자는 뜻으로 가져온 듯했다.
“흠,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중요한일?”
“음?”
로딘과 탬퍼가 낸시의 말에 각자 반응해 왔다.
“저는 이번에 브리잔드 변경백령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승급 말이냐?”
탬퍼는 낸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예측을 했는지 그렇게 물었다. 하긴 낸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승급 시험이라는 것에 대해서 노래를 불러왔었다. 애초에 이 여행 자체가 그녀의 스승이 마법사로서의 자질을 시험해보고자 보낸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네. 아직 저는 어프렌티스이니까요. 제대로 된 위치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있고요. 4년이나 힘냈으니 슬슬 스승님도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낸시는 애매하게 말했다. 엘리엔은 그녀에게 스스로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돌아오라고 했었었다. 순전히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성장한 부분이 자신의 눈에 들지 않으면 승급은 없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말이다.
낸시는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자신은 한결 능숙해지고 노련해졌다. 적어도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자하는 의미에서도 스승님을 방문할 필요가 있었다.
“하긴 네가 위치가 된다면 우리로서도 여러모로 편해질 수도 있겠지.”
로딘은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탬퍼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음! 나도 찬성이네. 강함이란 상시 추구해야 할 일. 위치라는 직분을 얻는 것도 그 추구의 일환이니 말일세.”
누가 전쟁신의 재가사제가 아니랄까봐 호전적으로 말하는 탬퍼는 다시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낸시는 두 명이 동의하자 양손을 모아쥐며 기쁜 듯이 웃었다.
“그럼 결정되었네요. 당장 출발할 준비를 하도록 하죠.”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하는 낸시를 보며 로딘은 어깨를 으쓰여 보였다. 그에 탬퍼가 로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아들을 보러 돌아가지 않아도 되나? 안 본지 5년이 넘은 것 같은데 말이야.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어야하는 법이라네.”
아무래도 낸시가 스승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에 탬퍼는 언젠가 단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는 로딘의 아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때는 갓난 아기였지만 지금 이라면 제법 컸을 것이다.
“아냐. 아마 내 얼굴도 기억 못할 텐데 뭐.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맡겨뒀으니까 괜찮아. 아, 나도 준비해둬야겠어. 자네도 서둘르게. 안 그러면 잔소리를 들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곤 로딘도 위층으로 올라갔다. 탬퍼도 원형탁자에서 일어나 로딘의 뒤를 따랐다.
키엘리니 세스타니엘. 세상에 몇 존재하지 않는 고결한 세레스티얼의 피를 이어받은 자이자 정의의 신이자 단죄자의 신이며, 법의 신이기도 한 네달렉스의 성기사로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만큼 고결하고 아름다운 자였다.
그녀의 허리에는 가장 신심 깊으며 지혜로운 성기사만이 받을 수 있다는 단 여섯 자루 뿐이 홀리어벤져가 메어져 있었고, 금을 녹인 듯 옅은 빛을 내는 금색 머리칼과 별빛을 뿌리는 푸른 눈동자는 그녀의 성검만큼 고결했다.
키엘리니의 존재는 이 네달렉스의 신전 중 하나인 크리븐에 거하는 모든 사제들과 성전사들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키엘리니에게는 자신의 신앙과 사람들이 보내오는 믿음과는 관계없이 깊은 허무와 불안함이 존재했다.
성스러운 피를 이었기에 수명의 유무가 불투명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긴 시간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각했을 때 이미 이 신전에서 다른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키엘리니가 이 크리븐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왔었다는 사실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 신전에 뚝 떨어진 존재였다. 정확히는 발견되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기에다 키엘리니에rps 사제들에게 발견도기 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그 사실은 키엘리니를 깊게 짓누르고 있었다.
사제들은 그것 또한 신의 뜻이라며 받아들이고 살아가라고 했지만 키엘리니는 그럴 수 없었다. 이 신전에서의 시간이 시작된 후부터 이어져온 긴 불안함과 공허함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점차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키엘리니는 그 공허함을 신앙과 신전에 거하는 자들과의 친분으로 메워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것은 결코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의 고결함과 놀라운 직관은 사람과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진실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그럴수록 매섭게 공허와 불안함은 자신의 마음속을 채워나갔다. 마치 잃어버린 기억이 자신을 되찾을 것을 명령하듯이...
키엘리니는 더 이상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외쳐져 나오는 이 소리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 공허와 그 불안감이 너무나도 거대해져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정의로운 신에게 이 고독과 불안을 탄원했을 때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죄의 대가이며, 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긴 겨울을 불러들이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키엘리니는 당혹스러워 했다.
네달렉스는 그녀의 현재가 죄의 대가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삶은 속죄인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네달렉스는 오직 그녀으 과거가 죄라고 알려줬을 분이었다.
키엘리니는 고민해야 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기억을 찾아야 할 것인가? 그녀의 신은 그녀에게 과거의 기억이란 긴 겨울을 다시금 불러들이는 일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비록 자신의 마음이 고독하고 공허하더라도 영혼과 마음을 받친 신앙마저 져버리고 되찾을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녀는 너무나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시 한 번 네달렉스에게 청원하고 싶었던 키엘리니는 쉬지 않고 기도에 몰두했지만 네달렉스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키엘리니는 자신의 내면에 절망이 뻗쳐 들어옴을 느꼈다.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던 그녀는 결국 과거를 되찾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이 네달렉스에게 거역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 깊이 가책을 받았지만 이미 스스로를 막을 수 없었다. 내면의 갈망은 키엘리니 자신을 좀 먹고 있었다. 만약 더 이상 이를 외면한다면 키엘리니는 자기 자신에게 파멸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떤 단서도 없었다.
자신의 기억과 관련된 그 어떤 단서도 말이다.
실망한 체 긴 복도의 회랑을 키엘리니는 걸었다. 종종 그 길을 이용하며 사색에 빠지던 그녀는 고민할 일이 있자 습관적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그때 사제장 엘리우스가 키엘리니에게 말을 걸어왔었다.
“키엘리니양. 당신이 찾고자 하는 기억의 단서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엘리우스의 목소리가 키엘리니에게는 신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 정도로 키엘리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것들이 절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면의 무언가가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마음이 차가운 물 밑으로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
엘리우스는 그 절박한 키엘리니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아니, 신전의 대사제들뿐만 아니라 거주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기억이 없는 키엘리니를 보살핀 부모 같은 존재였으며 동시에 친구이자 신봉자였다. 그들은 언제나 키엘리니를 관심있게 지켜보아 왔었다. 그렇기에 키엘리니가 자신의 과거를 두고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엘리우스는 키엘리니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네달렉스에게 메달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네달렉스는 마음 없는 법의 신. 정의의 신이기도 하지만 죄인에게는 가차 없는 단죄자다. 그런 존재가 비록 자신의 신도라고 할지라도 우는 소리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자애 없는 신이며 오로지 하나 밖에 모르는 존재였다.
그것에 대해 엘리우스가 키엘리니에게 뭔가를 말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전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네달렉스가 만든 규율이었다.
그런 마음 없는 신이었기에 한때 그 자신의 사자로부터 도전받았던 때도 있었다고 전승에서는 전해진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고 아는 자라면 고작 대사제들 중에서도 몇 명에 한하는 이야기였기에 키엘리니는 아마 모를 것이다. 동시에 지금의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엘리우스는 키엘리니에게 말했다.
“제가 아는 친구에게 한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녀는 그 마녀를 직접 보았다고 했었죠. 그리고 그 마녀는 자신을 찾아온 자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만 대답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엄청난 예지력을 지니고 있어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므로 신들이 그녀에게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녀라면 키엘리니양에게 과거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단서를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우스는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키엘리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만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단서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던지라 절망적인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신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마치 시험인 것처럼.
여기서 그녀가 더 이상 과거로 손을 뻗지 않는 다면 그녀는 아마도 이겨내는 것이겠지. 하지만 손을 내민다면 진정 신의 계시대로 긴 겨울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깊게 몰려 있었다.
이야말로 진정 타락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키엘리니는 도저히 이 기회를 외면할 수 없었다.
“부디 알려주세요.”
키엘리니는 결국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타락의 순간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키엘리니는 자신의 페가수스인 루그리스에 안장을 얹고 제국의 브린자드 변경백령으로 출발했다. 떠나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괴로움이 가득했다. 신을 거역하고 있다는 두려움과 괴로움, 자신을 구해준 사제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 그리고 신앙과 믿음을 가진 자로서 스스로의 갈망에 패하고 말았다는 자학감.
키엘리니는 그 모든 것을 눌러버리고 기억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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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리플레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글이군요.
폭풍의 탑부터 해서 그 쪽 계열 글이기는 했지만요. 프흐.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