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Endless Dream - 끝나지 않는 꿈 - 03화
2008.09.22 00:22
"그래서 결국 제대로 이야기조차 못해봤어. 아예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으니까."
그 말에 따르면 소녀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미 이야기를 시작한지 30분 정도가 지났지만 고조된 분위기는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 TV에서 봤던거랑은 느낌이 확 다르다니까. 피부도 좋고.... 빛이 난다는 느낌?"
이쯤되면 끝날 때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 것은 단순한 착각인 것 같았다. 소녀의 이야기는 도무지 끝날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분위기만큼이나.
"아아, 부러워. 난 어떻게 그리 안되나아."
꿈 속에 잠긴 듯한 목소리. 양 손을 모은채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 하지만 그런 소녀에게 되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한 마디 뿐이었다.
"그래서?"
"으, 응?"
"그, 래, 서?"
딱 부러지게 끊으면서 소녀를 노려보는 한 명의 청년. 그 눈빛에 소녀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 그 것 말고 분명히 다른 무언가 할 말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듯한 압박감.
"..... 숙제 안했어."
결국 아젠은 버티지 못하고 실토해 버린다. 청년의 그 눈빛에는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듯.
"에휴... 역시나 그럴줄 알았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드는 청년. 그 모습에 아젠은 가볍게 혀를 내밀며 뒷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아젠, 내가 뭐 많이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30분 정도만 책상 앞에 앉으면 될 것을 왜 안하는거야?"
"에에, 하루 1시간은 앉아있는데?"
"학교 숙제하는 시간은 제하고!"
쿠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이지, 네 성적이 떨어지면 잘리는건 나고 결국 굶는 것도 나란 말이야. 네 말은 결국 공부하러 책상 앞에 앉는 일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잖아."
"거짓말. 아빠 연구 도우면서 돈 받는거 있잖아. 그거만 해고 굶는 일은...."
"그건 등록금이고. 요즘 등록금 비싼거 알잖아."
"전액 장학금 받는다고 했던게 누구더라?"
".... 화낼까?"
도저히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젠의 모습에 결국 토렌디는 목소리를 낮추고야 말았다. 그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젠이 더 잘 알터.
"... 우으... 미안. 잘못했어."
그리고, 너무나 예상대로 아젠은 더 이상 고집피우지 않고 물러났다. 그 모습에 토렌디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도 참, 뻔뻔하구나.
자신의 저런 모습이 화가 났다는 표시라는 것을 아젠이 안 이후부터, 어느샌가 적당히 그 것을 이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하지만 그만큼이나 저 멋대로인 아가씨에게 잘 먹히는 방법이긴 했다. 이상하게 친구들한테는 안 먹히는 방법이긴 했지만.
"흠흠. 뭐, 그래. 다음엔 꼭 해놔."
어쩐지 멋쩍은 느낌에 토렌디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조금 미안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에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간단한 간식이라도 사 들고 와야하나 고민하며 펜을 들어올렸다.
토렌디는 일주일에 2번 아젠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생, 다시 말해서 과외 선생이었다. 아젠의 아버지는 토렌디가 다니는 학교의 교수였고, 그의 연구실에서 보조로 일하던 토렌디가 눈에 들어와 아젠의 과외 자리를 소개시켜 준 것으로 아젠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뭐, 실제로 토렌디의 성적은 굉장히 좋은 편... 이라기 보다 수석이었고, 부탁받은 과목도 이과 계열로 딱히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고, 연구의 보조라고 해도 시간이 아예 안 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 교수의 제안을 별 다른 고민 없이 덥썩 물어버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토렌디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문제는 자신이 아닌 아젠에게 있었다.
ED에 푹 빠져있는 아젠. 어찌어찌 성적은 중간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른다. 자신의 수업도 그리 열심히 듣는다는 느낌은 없었고 좋아하는 것은 수업 시간에 잡담하기. 공부하라고 간단한 숙제를 내 주어도 이런식으로 빼먹기가 일쑤.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젠, ED가 그렇게 재미있어?"
한참 문제를 풀려고 낑낑대고 있는 아젠에게 토렌디는 툭 하고 그런 말을 던졌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던진 말. 하지만 그에 아젠은 당황스러워 할 정도로 과도한 반응을 보여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오빠도 관심이 생긴거야?"
".... 아니, 별로."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젠에게 토렌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러지말고 오빠도 해보는건 어때? 같이..."
"아젠."
조금씩 다시 불이 붙으려는 듯한 아젠에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토렌디는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해."
"응?"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살짝 고개를 갸웃 하는 모습에 토렌디는 조금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언제까지 그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 때문에 정작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에이.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산다 뭐."
토렌디의 말에 가볍게 투덜거리며 눈을 돌리는 아젠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토렌디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실제로 할 것을 안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그렇지만 그 때문에 지금 못하는 일도 많잖아."
"에휴... 오빠도,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어른들처럼 꽉 막힌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게임하지 마라, 집에 일찍 와라,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 된다."
살짝 짜증을 내는 듯한 목소리.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 채 투덜대고 있는 아젠의 모습에 토렌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아, 알았어. 이런 꽉 막힌 이야기는 이제 안할께. 그래도 일단 지금은 공부하자."
일단은 아젠을 달래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이상 이야기하다가는 안 그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공부, 더 망칠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토렌디는 한 발 물러났다.
그렇지만...
'아직은 네가 몰라서 그래. 그 따위건...' 이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못하고 잠겨버린다. 여전히 아젠을 언젠가는 설득하겠다는 생각만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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