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34
2008.02.11 04:14
달칵,
대충 나이트웨어를 입고 나오자, 마루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더니 귀는 새빨갛게 물들인 채
쿡쿡, 하고 웃는 것이었다.
"아,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는 손을 저으며 일어서서 고개를 돌려 버린다.
"…할 말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지 않고 올라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사실은 왠지 기다릴 수 없어서 재촉하듯 물어 버렸다.
왜일까,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물기가 열을 식혀 주고 있는데도,
체온이 내려가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이 안절부절 못 할 것 같은 기분은 대체 무얼까.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딘가 불안하고, 힘든 기분이었다.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고, 이 앞을 피해야 할 것만 같고,
어째서인지 모를 부끄러움과 조급함이 밀려온다.
조금 전 몸을 보인 것 때문에?
수치심이 일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안절부절 못 할 이유는 없다.
"음, 그러니까… 그…"
천천히 다시 나를 바라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고개를 숙여 버리는 마루,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도
시선이 흔들리고 말았다.
누군가의 앞에서, 이렇게 흔들리며 시선을 피한 적은 없었는데.
잠깐이지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게다가, 왜 숨이 가빠온단말인가,
어딘가 몸이 안좋은 것일까.
열이 나는 것일까, 그렇다면 몸살 같은 것일까?
그런 잔병, 보통은 걸리지 않는 편인데.
"말해라."
왠지 모르게 또다시 마루를 재촉해 버린다.
기다릴 수가 없다. 뭘까, 이 조급함.
"아, 미, 미안. 그냥… 음, 에렐."
말을 멈추더니 침을 크게 삼키고,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마주하는
마루,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똑바로 나를 마주 하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 홍조를 띄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에렐 눈은 무척 예쁘니까. 마주하지 말라던지 그런 말 하지 마."
아,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너무 짧게 얘기해서, 어떤 의미인지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일까.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우연히 운이 없었던 것 뿐이잖아.
분명히 안된 일이고, 힘들었을테지만, 그런게 에렐 탓일리가
없잖아. 그런 바보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아니다, 아직 마루는 모르고 있다.
조금 더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죽지 않으면 되는거잖아? 당당하게 살아있을테니까.
단순한 착각이라는걸 알게 해 줄테니까."
마루는 아직 중요한 것을 모른다,
그들은 그냥 단순히 우연히 어디선가 죽어간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말하고 싶지 않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끊임없이 속삭이듯,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달콤한 유혹처럼,
난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약한 내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난 그 나약함을 버리지 못했다.
어쩔 생각이냐고, 끊임없이 질책하는 나의 외침을 감추고,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어 버린다.
"…좋을대로."
부정하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해 하는 한 구석에는,
기대를 해 버리는 내가 있다.
단지 말 한마디일 뿐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말일 뿐인데도…
난 아직도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일까.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난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눈을 피하지 마."
마루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난 그의 말대로,
눈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언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하루의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과연 무슨 운명일까요 조금 많이 궁금해지는군요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