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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22

2008.01.28 03:40

미에링 조회 수:197



"어, 아직 자는거 아니었어? 아까 피곤해 보이던데…"

2층의 청소를 마치고 잠옷으로 쓸만한 옷가지를 챙겨서 1층의
거실로 내려오니 마루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 서재로 올려두지 못해 정리를 하지 못한 채 거실 한 구석에
두었던 책중 한 권인 모양이었다.

"마음대로 봐서 미안.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잠깐 봤어."

그는 사과를 했지만 그다지 책을 보는 것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책을 거칠게 다룬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건 비단 책 뿐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아버지도 그랬듯이 나도,
서재는 언제나 손님에게도 공개하는 편이기 때문에 책을 보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책이 더 필요하다면 서재에서 찾아라."

보고 있던 책을 덮으려다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을
드는 마루에게 들고 내려온 옷을 건네 준다. 책을 들려다 만 애매한
자세로 그 옷을 받아 드는것을 보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내 옷 중에서 가장 거대한 것으로 골랐다. 편하게 입어라."

그리고, 마루가 웃었다.

"아하핫, 거대한…"

"틀렸나? 어마어마한 쪽이 나은건가."

마루가 좀 더 크게 웃었다.
마루가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아하하하, 아니, 틀렸다기보단 뭐랄까… 그냥 큰 것 정도로 말하는
  쪽이, 아하하…"

"……그렇군."

틀린 적은 이제까지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유달리 웃는 것 같은 느낌,
괜히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 버린다.

"입어라. 편하게."

그렇게 마루 앞의 탁자에 옷을 던져 주고 부엌으로 들어와 버렸다.
무엇이었을까, 무안함? 부끄러움? 모르겠다. 이제와서 말 하나
어색하게 한 걸로 그런 느낌이 들 리가 없는데.

부엌에 들어온 김에 마실거라도 간단하게 마련해 볼까…

그다지 이런저런 재료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커피 한 잔 정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밤에 마시는 커피는 선호하지 않으셨지만,
난 즐겨 마시는 편이기도 했다.

정리해 두었던 찻잔을 꺼낸다. 바이올렛의 꽃 무늬에, 가장자리의
은 테두리. 같은 디자인의 컵 받침, 그리고 세트인 티스푼.
스푼 하나의 손잡이에 나 있는 흠집이 매번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옛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어 두자.


예전에 볶아서 넣어 두었던 커피를 꺼내어, 급한대로 그릇에 놓고
대충 부수었다. 여과 천은 새것으로…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붓자 살짝 부풀어 오르는듯한 알갱이들,
한번 더 물을 붓자 거품이 일어난다.

그렇게 뜨거운 물을 붓기를 다섯 번…
천을 헹구어놓고, 커피를 컵에 따른 뒤 버터를 한 조각씩 띄운다.

버터 커피. 집이 조금 식은 것 같아서, 속을 따뜻하게 하는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해 보았다.

컵을 쟁반에 얹어 들고 나가자, 마루는 지금 막,



"…아."

"엑."

내가 준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으려는 중이었다.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당당하군."

마루는 다급히 옷으로 상의를 가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그가 놓치고 간 그의 옷을 방 안으로 넣어 주고 돌아섰다.


"쿡…"


우스운 것일까, 재미있다고 할까,
왠지,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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