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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19

2008.01.18 23:57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185

에렐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어느샌가 스르르 눈을 감아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에렐의 모습은 아직도 그대로.
그렇기에 에렐의 모습은 쓰러지는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에렐의 모습을 살핀다.

조용하면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쓰러졌다기 보다는 피곤해서 잠든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갑작스럽게 쓰러져 잠들 정도면 대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고 있던 코트를 벗는다.
새하얀 에렐의 긴 코트.
그 코트를 주인에게 돌려준다.
담요를 덮어주듯, 그러게 에렐에게 돌려준다.
에렐은 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도 뒤척이지 않고 잠들어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에렐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소파에 앉는다.
내 몸의 무게 때문일까?
소파의 쿠션이 조금 기운 것 같다.
에렐의 몸이 슬쩍 내 쪽으로 넘어온다.

툭, 하고 에렐의 머리가 어깨에 닿는다.
하지만 에렐은 여전히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지간히도, 깊게 잠든 모양이다.

“대체 어제, 뭘 했던거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곁눈질로 에렐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쉰다.
대문 바깥으로까지 날 마중나왔던 에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몸 상태도 좋지 않으면서 내 몸에 대해 신경 쓰던 모습이 떠오른다.

에렐에게 있어, 어제는 과연 어떤 날이었던 것일까?
단지 우연일지도,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에렐에게도 어떠한 변화가 있던 것이었을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늘이 찾아왔어도, 답은 여전히 멀어보인다.

하지만, 어쩐지 무언가가 조금은 변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곁눈질로 에렐의 모습을 바라본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흘러내린다.
조금은 혈색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파랗게 질려있는 듯한 입술은 자그맣게 열려있다.
색색거리며 잠든 에렐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내 귓가에 와 닿는다.
미동조차 하지 않은채, 에렐은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잠시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치워보려 하다가 손을 멈춘다.
아무래도 실례겠지?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잠을 깨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내린다.

“□□□”

에렐이 무언가 중얼거린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말.
아마도 에렐이 살던 고향에서 쓰던 말이겠지.

잠들어 있는 에렐이 중얼거리는 말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굉장히 좋은 말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잠들어 있는 에렐의 표정은 평화로웠으니까.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잠들어 있는 에렐을 깨울 수가 없었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은 채, 에렐의 숨소리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며,
그렇게 어깨를 빌려준다.

동화 속의 공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차가운 면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에렐의 모습은 틀림없는 동화 속의 공주였다.

“잘 자요. 하얀 공주님.”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한 인사.
하지만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에렐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과연 어떤 말을 꺼낼까?
그 것을 상상해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렇게, 에렐이 깨어나는 순간까지 한 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
저녁이 다 되어, 잠든 에렐이 깨어난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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