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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5)[2]

2007.06.15 20:32

울프맨 조회 수:149

“오늘은............ 어제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비장한 각오를 담아 말하는 희연.
그런 그녀의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 차갑고 섬뜩한 금속성이 밤하늘을 울렸다.
전신에 달빛을 가득 머금고 빛을 뿜어내는 찬란한 은빛의 검......... 아름답고 황홀한 그 궤적에 얼마나 많은 희연의 작품들이 쓰러져 나갔던가................
희연이 능력자로서 활동한 이후로 만났던 몇 안 되는 적들 중 가장 어리지만 가장 강력한 상대.
소년, 기륭이 영준을 밀어 젖히고 도도하고 위압적인 시선으로 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잣말인지 영준에게 속삭이는 것인지 희연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입술을 작게 달싹인 기륭은 그의 곁을 지나쳐 희연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서기 시작했다.
바닥을 붉은 빛으로 수놓은 피의 호수는 소년의 발이 수면을 때릴 때마다 그 몸을 부르르 떨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코, 찰박이는 소리 따위는 절대 일으키지 않았다.
1미터는 족히 될 법한 장검을 들고 자연스러운 보폭으로 물 위에서조차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는 그 모습에 희연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미 한번 경험한 바 있었지만 15세가 채 안되어 보이는 이 소년의 능력은 희연으로서는 그 한계를 짐작 조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어제의 격전 때도 녀석은 자신의 모든 실력을 보인 것이 아니지 않던가................!

‘잘못되면...................... 죽는다...’

어제처럼 시체에게 모든 것을 맞기고 안전한 장소에 있었던 것도 아닌, 직접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마치 철창 밖에서 구경하던 맹수 앞에 무방비로 노출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한 공포가 그때까지 자신만만했던 희연에게 조금씩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이 그녀의 가슴속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을 때, 기륭은 피의 호수를 벗어나 마른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디뎠다.
아마도 싸움 중에 자신의 순백색 도포에 피가 튀어 얼룩이 지는 것을 우려해서 한 행동인 듯 했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이로군.”

그것이 그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기륭이 희연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기륭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으려 한 희연. 하지만 희연은 그 질문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살의가 희연의 전신을 향해 쇄도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 따위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 이제 그만 죽어라.”

‘이제 그만 죽어라’ 소년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도망을 권유했던 어제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제의 강기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위협용이었다면, 지금의 그것은 상대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무언의 의지가 느껴지는 살기였던 것이었다.
진정 기륭은 희연을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 알아챈 희연이 뭔가 대응을 강구해보기도 전에 한줄기 빛과 바람이 그녀를 스쳤다.

“아아악!!”

이상을 느낀 순간 급히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일격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한 공격.
희연은 깊은 상처를 입은 허벅지를 보며 공포로 치를 떨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이제 다리를 다친 이상 더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피가 뿜어져 나오는 허벅지의 상처를 손으로 눌러 지압하면서 남은 손으로 방울을 든 희연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흔들어 대었다.
바로 병원에 배치한 모든 시체와 숨어있을 동료들을 부르는 신호였다.
물론, 시체는 기륭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최소한 동료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엔 충분할 것. 역전의 순간까지 버티기 위해 희연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려는 것이었다.
허나 기륭은 그런 것을 잠자코 보아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애당초 희연이 자신의 일격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던 기륭에게 희연이 공격을 피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흔히 할법한 ‘그걸 피하다니’,‘대단 하구나’ 따위의 말을 입에 담는 대신 그는 묵묵히 손끝에서 은빛 빛줄기를 뿌려댈 뿐이었다.
희연이 방울을 흔듦과 동시에 이어진 기륭의 두 번째 검격.
그의 명도가 한줄기 빛의 창이 되어 희연의 가슴으로 쇄도해오기 시작했는데 그 기세와 위력이 처음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맹했다.
물론, 희연은 그 공격을 보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다.
단지, 다가온다는 폭압적인 살기만으로 공격이 들어온다는 것을 느낄 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하는 찰나의 순간 희연의 뺨에 뜨겁고 따스한 액체가 튀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피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또 다시 은빛 섬광이 그녀의 안면을 향해 번뜩였다.
어디가 어떻게 공격을 당하는지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로 깊숙한 부상을 입는지를 파악할 시간도 그녀에게 주어지지 못했다.
하나의 상처를 느낀 그 순간 새로운 상처가 생겼고, 새로운 상처를 느끼면 다시 새로운 상처가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단칼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목과 얼굴, 가슴을 가리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야........’

영준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지만, 분명 싸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붓이라도 되는 양, 낙서 하듯 막무가내로 휘두르고 있었고, 전의를 상실한 상대는 소년의 거침없는 휘갈김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마치 TV속 예술프로에서 미술에 심취한 화가가 거칠고 열정적으로 물감을 뿌리며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연상되는 그런 광경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이 휘두르는 것은 붓이 아닌 흉기였고, 뿌리는 것은 물감이 아닌 시뻘건 선혈이었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지는 대상은 캔버스가 아니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이었다.

‘말려야하지 않을까..........’

방금 전까지의 절망적인 상황도 잊은 채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한 영준은 곧 고개를 저었다.
영준은 눈앞의 사태를 말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희연이 많은 무고한 이를 해치고, 자신의 친구도 죽게 한 악한 인간이라는 점도 그 이유이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준에게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소년이 적이 아닌 것을 감사히 여길 뿐, 그런 소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영준이 구태여 나설 필요도 없이 소년은 공격을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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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에 짬을내어 쓴 것을 올립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시험기간에는 자꾸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걸까요--;;후후
앞으로 남은 시험은 두과목! 하지만 그 두과목이 보스급이라는 거.........ㅠ.ㅠ
시험이 끝나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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