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Antares [0.9막] -몰락 귀족 01-

2007.06.03 11:03

히이로 조회 수:208

<지난 줄거리>
거성 안타레스 주변의 작은 행성 이그니스. 크게 두 대륙과 두 섬으로 이루어진 이 행성은 현재 5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미드가르드 대륙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가우, 팔츠, 르베어 3국이 뭉친 트리프헨 연합. 과거 미드가르드 대륙의 패자였던 여제 세리아의 후예지만 지금은 세이넬 섬만을 영토로 유지하고 있는 여왕국 세리아. 이그니스 건국 신화의 유적을 간직한 고제국 다르시온. 크로노아 대륙의 개척자로써 패왕이라 불리었던 초대황제 카이젤리크의 바르디아 제국. 바르디아의 신분차별에 저항하여 일어나 대륙 남부를 점령한 상태로 여전히 제국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발사로크 공화국.
발사로크와 바르디아의 전쟁이 한창일 무렵에 태어나 견습기사가 된 작센 지방영주 필로스 후작의 아들 필립. 메이나 3237년에 벌어진 작센 방어전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발사로크 군의 포위망을 뚫고, 민간인과 잔존 병사를 데리고 탈출한다. 그 후 3년. 정식으로 기사가 되어 나인발트 나이츠의 일원이 된 필립은 몇 배에 달하는 발사로크군과 카세리네 협곡에서 전투를 치른다. 좀처럼 승리를 예상할 수 없었던 전투는 익시드 나이츠 기사단장 하이만의 희생과 여러 변수에 의해 종국에는 제국 측이 승리한다. 그러나 전투도중 심한 부상을 당한 필립은 적의 총지휘관을 사살한 후 의식을 잃어버리는데…….




Antares 0.9막 몰락귀족 01




필립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조용히 병실을 비추는 양초의 냄새를 느끼며 눈꺼풀을 움직여보는 필립. 부러진 팔은 이질적인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어서 자꾸 그의 신경이 가게 만들었다.

“윽!”

몸을 뒤척여보려 하던 그는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는다. 여기저기서 상상하기 힘든 통증이 그를 엄습해 왔기 때문. 그제서야 필립은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발사로크의 상퀼로트와 케클론 중기병단을 격퇴시켰다는 것을 말이다.

“…간신히 살아남았군.”

어둠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천장을 응시하며 필립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몸은 물을 원하는 듯 끊임없이 갈증을 일으켰지만 크게 누군가를 부를 힘도 없었던 터라 그는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푹신한 침대, 안락한 이불 속에 덮여 있는 자신의 몸을 새삼 느끼면서…….






  몇 시간을 잤을까, 주변의 인기척과 말소리에 필립은 다시 눈을 떴다. 처음으로 그가 본 얼굴은 클레이 백작과 그의 부인, 그리고 그들의 딸인 네르바의 모습이었다. 특히 네르바의 경우 아직 전투 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얼굴 여기저기에 멍과 상처, 붓기가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

“…뭐, 이상한 거라도 묻었습니까?”

백작과 그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뜨고 자신들을 쳐다보는 필립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한참동안 침묵 상태가 계속 이어지더니 백작은 갑자기 크게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헤, 헤이딕 부기사단장! 그가, 그가 깨어났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필립에게는 모두가 낯이 익은 얼굴들. 헤이딕 부기사단장을 비롯해 전투를 함께 치른 나인발트, 익시드 나이츠 소속의 기사들이었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팔이나 얼굴에 붕대 하나정도는 감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필립경! 정신이 들었군!”

익시드 나이츠 부기사단장인 헤이딕이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필립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얼마간 주변사람들과 환담을 하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눈동자가 커지고 말았다.

“하, 하이만경…….”

“필립경 다행이군. 무사히 정신을 차려서 말일세.”

한 기사의 등에 업힌 하이만경을 보자 필립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의 온 몸을 붕대로 휘감고 있는 그의 몰골도 그랬지만, 이미 하이만 기사단장의 몸은 예전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붙어 있어야 할 왼쪽 팔은 절단되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팔 역시 팔꿈치 부분 아래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아, 예…….”

“그래도 용케 숨이 붙어서 이렇게 살아남았지. 팔을 못쓰는 것 정도는 앞으로 감수하고 살아야겠지…….”

하이만 기사단장의 말이 병실을 울려 퍼지자 주변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어떤 이는 차마 그의 모습을 응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사들을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이만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필립에게 말을 건넸다.

“어차피 이번 전투 후 기사 갑옷을 벗을 생각이었으니 너무 심각한 표정은 하지 말게. 그런 얼굴은 이번 전투로 죽어간 이들을 위해서 지어야 하지 않겠나.”

“……….”

“난 지금 명목이 없어…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네. 명색이 한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자가 부하들은 모두 전사시키고 혼자만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말이네.”

어느새 침통한 표정으로 바뀐 그가 힘없이 중얼거린다. 자신과 함께 하다 전사한 100명의 기사들을 생각하는지 시간이 갈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모두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강요하던 자신은 비록 불구가 되었지만 이렇게 살아남고,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던 익시드 나이츠 소속 기사들은 전원 사망하였으니…….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하이만 기사단장의 모습.

“하이만 기사단장님…….”

침묵을 깨고 헤이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뒷내용은 그의 얼굴표정이 나타내주고 있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고 그 일을 가지고 자책하지 마시길-

헤이딕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하이만은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하는 듯 했다.

“후우……. 오늘은 자네가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와본 것이네. 나중에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지. 나도 피곤해지는구먼.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네.”

“아, 예. 푹 쉬십시오 하이만경.”

정말로 피곤해 보이는지 힘들게 말을 마친 후, 다시 기사의 등에 업혀 병실을 나가는 하이만 기사단장. 필립을 비롯한 다른 기사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상급자에 대한 예를 갖춘다. 하이만경이 빠져나가고 난 후, 필립의 안부를 확인하러 왔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병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음, 나도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 같군. 오늘은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지. 다음에 봄세.”

마지막으로 헤이딕 부기사단장이 자리를 떠나자, 병실에서 필립 주변을 지키는 이는 처음의 클레이 백작 내외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필립,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다른 기사들 틈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드디어 백작부인이 그에게 말을 건넨다. 필립은 반가운 얼굴로 그녀의 인사에 답변을 하며, 레이디에 대한 적절한 예를 취한다. 그리고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자리를 지키기만 하는 네르바를 바라보았다. 아직 붓기가 가시시 않은 그녀의 얼굴은 평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이상을 풍기고 있었다.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네르바.”

“…………….”

필립이 말을 하자 그녀는 시선을 조용히 내리깔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전투 직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런 것들을 오래 담아둘 성격의 그녀가 아니었기에 네르바가 지금 취하는 행동은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아까는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잘 몰랐지만, 시도 때도 없이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분명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네르바. 몸이 좋지 않은 건가?”

의아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을 거는 필립.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기에 필립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고, 그것은 백작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이 사태로 필립 쪽으로 모두 쏠리게 되었다.

“네, 네르바…….”

“흑…흑…으으…….”

“필립. 너무 놀랄 것 없다. 지금부터 설명할 것이니…….”

딸을 진정시키려는 부인을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클레이 백작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는 네르바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깃들여 있었다. 이런 백작부부의 모습을 본 필립은 뭔가를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물고는 백작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들에게 소식은 들었네. 전투 중에 네르바가 험한 꼴을 당했다는 것을……. 후우, 그리고 자네가 더한 꼴을 당하기 전에 이 아이를 구해줬다는 것 까지도. 우선 자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구먼.”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제가 해야…….”

“아닐세,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정말로 고맙네.”

클레이 백작의 말에 필립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하지만 백작부인까지 거들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시하자, 체념한 듯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고마움을 표시한 후, 백작은 본격적으로 네르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이번 협곡 전투에서 네르바가 겪은 충격이 얼마나 될지 말일세.”

“……….”

“네르바가 유별나게 성격이 거친 편이지만 본바탕은 역시 귀족이고…그것도 수많은 적, 남자들 앞에서 그렇게 희롱 당했으니…….”

딸이 겪었을 일을 상상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백작은 말을 제대로 이어가질 못했다. 백작부인 역시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손으로 훔쳐내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자, 필립은 당시 네르바를 그 지경으로 만든 상퀼로트가 떠올랐다.
라펜드 더 고쿠라는 이름을 가진 놈…….

으드득!

병실내부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필립의 이빨 가는 소리도 물론이었지만, 그가 내뿜은 순간적인 살기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 탓이었다. 심지어는 백작부부와 네르바마저도 그 기세에 눌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네르바의 치료를 담당한 신관이 이런 말을 하더군. 육체적인 부상은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회복되겠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자신이 손을 쓸 수 있는 범위가 아니기에 어찌될 지 예상을 할 수 없다고 말이야.”

“그렇습니까…….”

“덧붙이자면, 어찌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자네가 이 아이를 구해줄 당시가 각인되었는지, 눈 만 뜨면 자네를 찾고, 자네 옆에서 떠나려하지 않는다네. 지금까지 네가 정신을 잃은 동안에도 계속 이래왔다네.”

백작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필립은 자신의 침대 옆에 조그마한 간이침대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한마디로 자신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네르바가 자신의 옆에 붙어있다시피 한 것이었다.

“우으으…….”

필립과 눈이 마주치자 네르바가 우물거린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얼굴이었지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 같은 네르바의 행동. 백작은 그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한 가지 빼먹고 말한 사실이 있었군. 전투당신의 충격으로 네르바는 정신과 기억부분에서 큰 혼란이 있게 된 것 같다고 들었네.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거기다 현재는 언어능력도 상실한 것 같다고 신관이 말하더군. 알아듣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 일세…….”

“네르바…….”

백작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자 네르바의 행동이 이상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타까움과 분노. 필립은 이 두 가지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 채, 네르바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필립과 네르바를 번갈아보던 백작부인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부인, 진정하시게. 필립도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말게. 결과는 비록 이렇지만 자넨 내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 부분만큼은 평생 감사할 것이니 말이네.”

여전히 울고 있는 부인과 눈을 부릅뜬 채, 벽만을 노려보고 있는 필립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는지 백작이 두 사람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네르바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멀뚱멀뚱하게 서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이렇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네. 부인 이만 가도록 하지요. 네르바는…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도 안하니…고생스럽겠지만 자네를 믿겠네 필립. 너무 귀찮게 하지는 않을 걸세.”

“예,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내일 다시 들리도록 하겠네. 그럼.”

말을 마치고 백작내외는 병실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병실은 부상당한 기사들이 가끔씩 흘리는 신음이나 기척을 제외하고는 적막에 휩싸인다. 여전히 네르바는 필립과 거리를 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네르바 이리 와봐.”

필립은 힘겹게 팔을 움직여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쭈뼛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오는 그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는다. 단단한 느낌이 필립에게 전해져왔다. 흔히 알 수 있는 여자의 손이 아니다. 검을 휘두르는 거칠고 투박한 기사의 손. 퉁퉁부운 그녀의 얼굴을 보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는 필립이었다.

“미안하다……. 이 꼴이 될 때까지 난 무엇을 한 건가.”

무겁게 울려 퍼지는 필립의 목소리. 네르바는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얼굴을 필립의 손에 가져다대고 살며시 부비적거릴 뿐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사고 능력이 큰 충격으로 퇴화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그녀였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필립이 정신을 차린 것을 조용히 기뻐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에게 집중된 주변 기사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필립과 네르바는 오래도록 그 자세로 시간을 보냈다.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      *      *




“빌어먹을! 정말 바퀴벌레처럼 질긴 녀석이군!”

화려한 장식의 잔이 날카로운 음색을 내며 산산조각 부서졌다. 밤이 깊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운 촛불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희미하게 작은 불꽃들을 통해 보이는 그 공간은, 대단히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핏빛과도 같은 붉은 빛깔을 위주로 수놓아진 모양의 카펫이나, 주변을 장식하는 박제된 희귀한 동물, 대리석 석상의 모습을 떠나, 보통사람의 방이 아니라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라미르 백작!”

“송, 송구하옵니다. 공작 각하!”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조금도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증오의 감정. 말을 받는 상대는 그 공포를 숨기지 않고 표출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작은 떨림으로 가만히 있지 못했기 때문.

“혹시라도 살아날 가능성을 생각해서 확실하게 놈의 숨통을 끊으라고 내가 자네를 종군시킨게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하지만…놈 주변에 나인발트 나이츠 기사단장과 익시드 나이츠 부기사단장이 단 한순간도 놈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바람에…….”

“지금 내가 무능한 그대의 변명 따위나 듣자고 이러고 있는 것 같나!”

잠시 동안 대화가 끊어진 두 사람사이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의 흐름. 두 사람의 목소리를 상당히 젊은 사람의 음성이었다. 문책을 당하는 그림자가 크게 심호흡을 한다. 나름대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런 라미르 백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작이라 불린 상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흥, 작센방어전 때도 용케 쥐새끼처럼 살아서 돌아오고……이 카세리네 협곡전에서도 살아 돌아오다니. 목숨이 질긴 건 인정 하마 필립.  하지만 이 ‘바르키엘’에게 걸린 이상 네놈의 미래는 여기서 끝이다. 백작! 법무대신과 대신관에게 연락을 취해놓았겠지?”

“예! 놈의 몸이 회복되는 즉시 소환할 것이라고 답변이 왔습니다.”

“크큭……그래, 그래야지. 아비인 필로스부터 네놈까지!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다. 병실에 드러누워있는 동안이라도 남을 생을 즐기기나 하라구. ‘필립 폰 에르네오’, 크하하핫!”

말을 마치자마자 섬뜩한 웃음소리와 광풍이 주변을 휘몰아친다. 라미르 백작이라는 자가 몸을 떨며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은 사이에,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바람은 모든 촛불을 꺼버리고 사라졌다.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지금까지 그가 있던 공간을 잠식한다.

“후우, 후우…이제 돌아가도 되겠군.”

창문이 열려 삐걱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지속되자 백작은 눈을 떴다. 어디론가 사라진 바르키엘 공작이라 불리는 자의 모습. 그러나 이런 일이 매우 익숙했는지, 백작은 신속하게 그 방을 나와 곧장 저택을 빠져나간다.
그 날을 유독, 밤하늘에 별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

난 게르으지 않아 루테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48 雜談. 타심구현자 Part1, 1℃ [5] Lunate_S 2007.06.23 143
847 [몽환록]1장-사망전이-(1-5)[3]完 [4] 울프맨 2007.06.22 132
846 [몽환록]1장-사망전이-(1-5)[2] [3] 울프맨 2007.06.15 149
845 A Tale of a Tub, Plot.1 - Fatal Sign [3] Lunate_S 2007.06.15 231
844 20070605, 夢. [6] Lunate_S 2007.06.06 202
» Antares [0.9막] -몰락 귀족 01- [6] 히이로 2007.06.03 208
842 [몽환록]1장-사망전이-(1-4)[14]/(1-5) [1] 울프맨 2007.05.29 154
841 [단편]어느 하루의 망상-1 [1] Holye 2007.05.21 169
840 20070520, 夢. [6] Lunate_S 2007.05.20 165
839 TO PAST ~ CORD GEAS ~ 오오기 카나메♡비렛타 누우 [1] 주냥이 2007.05.20 302
838 TO PAST ~ CORD GEAS ~ 01 [1] 주냥이 2007.05.19 318
837 TO PAST ~ CORD GEAS ~ 00 [1] 주냥이 2007.05.19 271
836 [다이어울프]#3쌍검의무신론성기사-(2) [2] 왈라키아의밤 2007.05.17 188
835 [다이어울프]#3 쌍검의 무신론 성기사-(1) [2] 왈라키아의밤 2007.05.16 194
834 [다이어울프]#2 어쩔 수 없는 악연 [3] 왈라키아의밤 2007.05.15 162
833 [다이어울프]#1 피안개 피는 곳 [3] 왈라키아의밤 2007.05.15 193
832 [다이어울프-초장]비 내리는날 [5] 왈라키아의밤 2007.05.15 174
831 [월희팬픽]프롤로그-흉안,재래 [4] 왈라키아의밤 2007.05.15 285
830 광란의 협주곡 -Opening- 어둠, 빛, 그리고 어둠. 下 [3] 악마성루갈백작 2007.05.10 220
829 에어 -끝나지 않은 행복-(7.저녀석...인간맞아?) [1] Holye 2007.05.09 176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