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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준의 말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밤하늘을 맴돌 뿐, 시간이 흘러도 주위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위는 영준이 옥상에 막 올라왔을 때와 같은 정적. 오직 고요뿐, 영준이 기대하는 구세주도 희연을 위기로 몰아넣을 대위기도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다름 아닌 영준이었다.
최후의 무기, 비장의 카드의 불발.... 넘겨짚은 곳이 디딤돌이 아닌, 낭떠러지로 밝혀진 지금, 영준을 구원해줄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폭사되는 무시무시한 희연의 살기 뿐.
그리고.....................

[딸랑]

영준의 모든 것을 끝낼 소리가 희연의 오른손에서 울렸다.

“네놈이 이승에서 듣게 될 마지막 소리다. 원 없이 실컷 듣게 해주지.”

방울소리. 그것은 바로 밑의 병동에서 대기하고 있는 백여 구에 이르는 시체 병사들과 주위의 동료를 부르는 신호. 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영준이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는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물론, 희연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영준을 처리하는 일은 너무나 간단해서 여기 옥상에 있는 네 구의 시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영준의 사지를 걸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영준에게 당한 굴욕과 망신, 수치가 너무나도 컸기에 영준에게 보다 큰 절망과, 보다 큰 공포와, 보다 큰 두려움을 맛보이게 하기 위해 병동의 모든 시체와 동료들까지 불러 모으려 한 것이었다.

‘자, 주제도 모르고 까분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영준의 뒤에서 철컥거리기 시작한 문.
그것이야말로 영준을 지옥으로 초대하는 효시가 될 신호였다.
이제 곧 비상구의 문이 열리고 그녀의 충실한 심복들이 영준을 잡기위해 공포의 술래잡기를 시작할 것이었으며, 그 술래잡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이제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것도 숨는 것도 할 수 없었으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죽는 일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스스로 뛰어내려 죽느냐, 시체들에 의해 오체분시를 당하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희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영준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지는 것을 감상했다.
이제야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영준이 처음으로 그녀의 반응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단지, 자신의 동료들이 호출에 늦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런 애송이 하나를 잡는데 동료들을 동원한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자신의 실패를 크게 부각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런 것을 가라앉혀 주었다.
아니, 오히려 동료들은 그대로 몸을 숨기고 있는 편이 좋았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기륭을 처리하려면 동료들의 기습적인 공격이 가장 중요할 테니까........




‘끝장이다........’

문은 어느 샌가 활짝 열려있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붉게 충혈된 광기어린 눈동자들....... 그리고 그 눈동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준은 자신도 모르게 절망하고야 말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그 어떤 위기에 몰리더라도 살아남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상황이 영준에게 있어서 너무나 절망적일 뿐이었다.
그의 몸 하나를 노리고 수십의 우악스러운 시체의 손들이 달려들었지만, 영준은 그것을 뿌리칠 의지도 없어보였다.
물론 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동이었으니까 헛되이 힘을 소모하다가 지친 몸으로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 얌전히 있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영준은 그런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시체들이 손을 뻗어 그 사지를 붙드는 순간에도 영준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자신이 틀렸을 리가 없다는 미련을............................
분명히 결계가 쳐져있었고 희연은 그 사실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모든 정황을 살펴봐도 영준 자신의 논리는 완벽했으며 희연과 자신을 제외한 제 3의 존재가 이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영준은 여기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위기에 부딪히게 되었다.

‘도대체 왜.............’

영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되뇌었지만, 그런 그의 집착은 계속 될 수 없었다.
그가 살아서 듣게 될 마지막 목소리가 될 지도 모르는 말이 희연의 입을 타고 나직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짧고 간결했으며, 잔인했다.

“찢어버려.”


1-5. 종 결

희연은 시체들이 영준을 붙잡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걸음을 옮겨 멀리 떨어졌다.
아무리 그녀가 피와 살육을 좋아하는 난폭한 성격이라 해도 눈앞에서 피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질 모습에 비위가 좋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늘 그녀가 입은 옷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어서 근처에 있다가 피라도 튀기는 날이면 상당히 기분이 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준과 시체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돌려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명령했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최후가 될 한마디를........ 그리고 자신에겐 무수한 일상과 임무 중하나가될 보잘 것 없는 한마디를.........

“찢어버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한 영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시체들은 그녀의 바람대로 영준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기위해 아주 천천히 전신을 쥐어짜며 찢어가고 있는 듯 했다.
고통에 가득 찬 인간의 비명.
차가운 밤공기에 섞인 비릿한 향이 나는 붉고 잔인한 피의 향기.
희연은 주위의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만끽하며 크게 심호흡했다.

“좋은 밤이야.”

영준의 고통에 찬 비명은 지금까지 굴욕과 분노로 가득한 자신의 하루를 말끔히 씻어주었으며, 시체들의 것인지 영준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혈향은 최악으로 치달았던 그녀의 기분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영준의 비명은 철퍽 하며 사지가 절단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철퍽. 철퍽 하며 내동댕이쳐지는 소리.
희연은 그 모습을 직접보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그 광경을 상상했다.
붉고 뜨거운 신선한 피로 가득한 옥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영준의 잔해.
남아있는 오장육부를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시체들.
희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녀석의 시체는 이대로 밑으로 던져 버려야지. 후후... 분명 지금까지 도시에 일어났던 사건 중 가장 잔인하고 엽기적이며 큰 이슈가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희연은 오늘의 실패도 그다지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이라면 분명히 능력자건 아니건 간에 누구든 반응을 보일 것이고 그러면 또 그 상대를 찾아 족치면 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체분시가 되었을 영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희연의 발치까지 굴러와 차이는 것은 영준의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다.
시체의 일부였다.



옥상을 비추는 것은 오로지 차가운 달빛 뿐.
희미한 달빛 속에서 영준은 전신에 피칠 갑을 한 상태로 살아있었다.
서 있는 존재는 오직 영준 뿐.
영준을 제외하고 서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바닥을 붉게 물들인 핏물과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기조각들만이 무언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능력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영준이 저질렀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한 광경. 그렇다고 영준이 능력을 감추고 있다가 위기가 닥치자 힘을 발휘했다고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도망 다니며 몇 번이고 위기에 봉착하는 쇼를 할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모든 희연의 의문들은 모두 말끔하게 해소되고 말았다.
해답을 찾기 위해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답은 친절하게도 희연의 눈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

하룻밤.
그것은 무시무시한 충격과 공포를 털고 일어나 복수전을 위해 전의를 다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짐짓 상대에게 농을 걸며, 자신의 여유를 과시하려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미처 숨기지 못한 긴장과 두려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어제와 달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조우하고 패퇴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희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도 어제와는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었다.

“오늘은............ 어제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비장한 각오를 담아 말하는 희연.
그런 그녀의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 차갑고 섬뜩한 금속성이 밤하늘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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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다녀왔습니다.^-^
무지무지 덥더군요 --;(거긴 나라가 사우나야............)
덕분에 더위를 먹고 푹 쉬다가 이제야 다시 올립니다.
결국엔 1-5까지 넘어갔습니다. 정말 남은 내용은 얼마 없는데 은근히 오래가네요.............................. 아마 6월안엔 끝날것이 틀림없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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